코로나19 팬데믹으로 꽁꽁 묶여 있는 동안 영화계는 그야말로 고난의 겨울나기를 이어가고 있다. 관객의 발길이 뚝 끊긴 극장가에서는 신작이 사라졌고 업계는 각종 기획전으로 애처롭게 영화팬을 불러 모은다. 최근 극장가에는 ‘오드리 헵번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반세기 전, 전 세계 영화팬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할리우드의 전설적 여배우 오드리 헵번을 대형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오드리 헵번(1929~1993)이 출연한 작품 중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1953), ‘사브리나’, ‘화니 페이스’, ‘티파니에서 아침을’, ’샤레이드’, ‘마이 페어 레이디’ 등 대표작 6편이 상영되고 있다. 물론, 이들 작품은 TV에서도 수십 차례 방송되었고, OTT서비스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반세기 전 흑백영화를, 극장 대형스크린으로 본다는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북유럽 모 국가 공주, 로마에서 길을 잃다
유럽 각국을 공식방문 중인 어느 왕국의 매력적 공주 앤(오드리 헵번)이 마지막 방문지로 이탈리아 로마를 찾는다. 방문하는 나라들의 국민들은 열광하고 언론들은 공주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꽉 짜인 일정과 연일 계속 되는 연회에 공주는 파김치가 된다. 안정제를 맞고 잠이 드는 듯 하던 공주는 호기심에 호텔을 빠져나와 로마의 밤공기에 흠뻑 취한다. 그러다가 벤치에서 잠들고 만다. 잠든 공주를 발견한 것은 로마에 나와 있는 ‘아메리카 뉴스 서비스’ 소속 기자 존 브레들리(그레고리 펙). 존은 그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숙소에서 하루 재운다. 그리고 다음날, 신문에 난 사진을 보고서야 자신이 엄청난 특종을 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곤 하루 동안 앤 공주는 ‘세일즈맨’이라고 속인 존을 따라 로마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한다. 물론, 사라진 공주 때문에 왕국은 발칵 뒤집어지고.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를 만끽했을 공주, 세계적 특종거리를 손에 쥔 기자. ‘로마의 휴일’은 그렇게 완성된다.
전형적이며 전통적인 공주, 오드리 헵번
<로마의 휴일>의 관람 포인트는 ‘로마 관광지’가 아니라 ‘오드리 헵번’이다. 공주의 우아함과 함께 오드리 헵번의 사랑스러움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왕실규범 하의 연회와 접견 장면에서 지쳐버린 공주에 동화된다. 발가락 꼼지락거림에서 숏 컷 대변신까지 <로마의 휴일>은 온통 오드리 헵번의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하다. 오드리 헵번은 이 영화로 세계적인 여배우로 부상했으며 많은 팬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54년 처음 개봉되었단다. 공주와 평민의 로맨스(?)는 물론이고 오드리 헵번의 청순한 매력은 오랫동안 영화팬의 뇌리에 남았을 것이다. 오드리 헵번은 영화계를 떠난 뒤 유네스코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더욱 우아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업적을 남겼다.
뒤늦은 영광, 달턴 트럼보
<로마의 휴일>은 로맨틱한 작품의 아우라와는 안 어울리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원래 이 영화는 할 리우들의 거장 프랭크 캐프라가 감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캐프라 감독의 프로젝트는 엎어졌고 윌리엄 와일러 감독 손에 넘어간다. 와일러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그레고리 펙과 (당시로서는) 신인이었던 오드리 헵번을 캐스팅한다. 제작사 뜻과는 달리 이탈리아 로케이션을 감행한다. 감독은 제작비 문제로 <로마의 휴일>을 흑백 필름으로 찍는다. 개봉과 함께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많은 후보에 올랐고, 결국 여우주연상, 의상상, 원작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원작상’은 지금은 없어진 부문이다) 개봉 당시, 그리고 오랫동안 크레딧에는 이안 맥클런 헌터가 시나리오 작가로 나왔다. 원래 시나리오는 달런 트럼보가 쓴 것이다. 194~50년대 당시 미국사회를 옭아맨 빨갱이사냥(매카시즘)에 트럼보가 희생당한 것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는 오랫동안 이름을 드러내 놓고 일을 할 수 없었다. 이후, 1993년 아카데미 협회는 뒤늦게 그(의 유족)에게 원작상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주었다.
로마는 오랫동안 기억된다
이 영화의 대성공 이후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는 앞 다퉈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찍는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또 다른 흥행대작 <벤허>도 이탈리아 치네치타에서 촬영되었다. <로마의 휴일>은 오랫동안 이탈리아 로마를 관광명소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돌아다녔던 로마 구석구석이 핫스팟이 된 것이다. 그리고, 둘이 탔던 그 스쿠터(베스파)로 세계적인 브랜드로 각인되었고 말이다.
흑백영화 <로마의 휴일>을 만약 극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게 된다면 굉장히 즐거울 것이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저런 영화는 저렇게 보아야할 제 맛이다. 오드리 헵번의 연기에, 표정에, 눈물에 함께 웃고 울고 빠져 들테니 말이다. 클래식은 그냥 클래식인 게 아니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영화 '로마의 휴일'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