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은 위험한 부업에 뛰어든 10대 청소년의 일탈을 그린다. 이해할 만한 불장난이 아니라, 도저히 용서 못할 범죄행각을 그리고 있다. ‘N번방 사건’가 맞물러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작품을 쓴 사람은 신인작가 진한새이다. 알려진 것은 그가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등을 집필한 송지나 작가의 아들이라는 사실. 어릴 때 뉴질랜드로 유학 갔었다는 것이 알려지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드라마 <인간수업>의 이해를 위해 작가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넷플릭스를 통한 서면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 한국 TV방송사에 큰 획을 그린 송지나 작가님의 자제분이라 더 화제가 된 것 같다. 작가수업이라든지 어머니의 영향은 있었는지.
“방송에 종사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받은 가장 큰 영향은 아마 남들보다 일찍부터 영상물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을 겁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굉장히 어릴 적에는 VHS플레이어 보급률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어요. 당시 저는 부모님이 구해다 주신 디즈니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따위를 수백 번씩 돌려보곤 했습니다. 그랬더니 비디오 테이프가 너덜너덜해져서 나중에는 영상이 중간중간 저 혼자 통편집 되더군요. 제가 제일 좋아했던, 벨로시랩터가 주방 조리대 위로 점프하는 장면도 그때 날아갔습니다.”
“20대 중반쯤 어머니에게 글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체계적인 커리큘럼은 아니었지만 워낙 누굴 가르친 경험이 많은 분이라 배운 것이 많았습니다. 이후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도 어머니 밑에서 보조작가로 업무를 도우면서 꽤 오랜 시간동안 이것저것 익혔어요. 이 시기에 시놉시스는 정말 지겹도록 써봤던 것 같습니다.”
● “십대 청소년의 조직적 범죄 이야기”
- 극중에서 규리(박현주)는 인생의 탈출구로 시드니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호주는 아니지만 뉴질랜드에서의 경험이 작품에 어느 정도 녹아 있나.
“뉴질랜드 고등학교 일화가 와전되어 '진한새는 고등학교 때부터 <인간수업>의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계시던데 사실이 아닙니다. 제 작업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의 그 기억을 소재화 시킬 생각을 한 것은 2015년 여름이고, 본격적으로 시놉시스 및 대본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18년 가을쯤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정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당시 한 아이가 친구들에게 담배를 팔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그이나 나나 똑같은 고등학생인데도 사는 세계가 너무 달라 보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다는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돈을 벌고자 하는 그 동기, 그 무게가 실감이 안 났던 거지요. 사실 동기야 당연히 돈 때문이었겠죠. 고등학생인 저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벌면 왜 안 되는 걸까요? 짧게 생각하면, 경찰한테 잡혀가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안 잡히면 되는 걸까요? 안 들키면 그만인 걸까요? 정말 그게 다일까요? 그 물음이, 나중에 나이를 먹고 아이템 리서치를 하던 도중 어떤 신문 기사를 접하자 갑자기 되살아났습니다. 십대 청소년이 조직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었죠. 그것도 주도적으로. 그때 '죄라는 건 왜 나쁜가'하는 굉장히 유치원생 같은 수준의 질문에 나름대로 진지하게 답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묻고 답하는 과정은 보통 이야기가 되죠.”
- <인간수업>이 워낙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고, 10부작을 보면서 자연스레 지수(김동희)와 규리(박현주)의 이후 이야기가 궁금해질 밖에 없는 것 같다. 당연히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작가입장에서 만약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최대 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해 나가실지.
“속 시원하게 대답해드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지금은 질문주신 부분들에 대해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솔하게 포부부터 밝히기보다는 스케줄과 관련자 여러분의 입장을 비롯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내려야 할 결정인 것 같습니다.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 신인급 배우들의 열연이 드라마를 돋보이게 한다. 캐스팅 과정이나 오디션에 참석해 봤는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한 말씀.
“오디션에 직접 참관한 적이 없습니다. 그 무렵 한참 마감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와 별개로 저는 캐스팅에 있어서 김진민 감독님과 윤신애 대표님의 안목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 믿음은 틀리지 않았죠.”
● 작가가 좋아하는 작품
- 평소 어떤 작품을 보시는지.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K드라마, 혹은 미드?
"어려운 질문입니다. (좋아하는 작품이) 너무 많아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꽤 취향이 뻔 한 편인데, 생각 나는대로 말해보자면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외 TV시리즈로는 HBO의 '식스 핏 언더‘(Six Feet Under)가 있습니다. 대학 시절 엔딩을 보고 철철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한국 드라마 중에서는 TVN의 「미생」을 무척 재미있게 봤습니다.“
“영화 중에서는 비교적 최근 작품으로는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Birdman)이 좋았습니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거의 다 좋아하는 편이고, 놀란의 영화들은 볼 때마다 얼이 빠집니다. 개인적으로 그분은 생태계 교란종이 아닌가 싶어요. 당연한 소리겠지만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도 너무나 근사합니다. 다분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전 그분의 영화중에서는 <마더>가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최근에는 비디오 게임들이 내러티브가 굉장히 좋습니다. 단순 재생 영상에서는 결코 보여줄 수 없는 연출도 가능하고요. 많은 분들이 공감 하실 텐데 Naughty Dog 사의 ‘The Last of Us’가 명작입니다. 후속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만의 제작사 Red Candle Games의 ‘Detention’이라는 작품도 플레이하면서 여러 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 10부작 <인간수업>이 신예작가의 글이란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첫 작품이신지, 다른 습작이나 참여한 작품이 있으신지.
“개인적으로 작업한 습작은 이것저것 많지만 거의가 꽁트나 단편소설, 시놉시스 혹은 미완성 대본 따위의 어설픈 것들이라 내세우기는 좀 쑥스럽습니다. 그리고 <인간수업>이전에 제가 참여했던 작품 중 제작이 되어 공식적으로 방영된 것은 <아이리시 어퍼컷>이라는 웹드라마가 유일합니다. <아이리시 어퍼컷>은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한 요리사가 어느날 실수로 자기 목숨을 끊는 바람에 연옥에 갇힌 후 연옥 요리대회 우승을 통해 이승으로의 탈출을 꾀한다는 로그라인으로 요약되는 이야기인데, 첫 작품인 만큼 지금보다도 한참 요령이 부족했던지라 굉장히 힘들게 작업했습니다. 여담이지만 그때 함께 했던 스탭들 중 조감독님과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재회했습니다. 제겐 한 분 한 분 은사였던 그 선배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그분들에게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첫 작품이라면 꽤나 시간과 공을 들인 것이 느껴지는데, 얼마나 오래 다듬은 글인지.
“시놉시스와 대본 파일상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2018년 8월경에 시놉시스 작업을 시작해서 2019년 7월경에 10부 최종고를 냈군요. 집필은 대충 1년 남짓 걸린 것 같네요.”
-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지, 어떤 작품을 해 보고 싶은지.
“나름 준비 중인 것들은 있지만 워낙 초기단계라 뭐라 말씀드리기는 애매하네요. 청춘이라기엔 이제 좀 간당간당해져가는 나이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럭저럭 일상을 살아내고 있던 이들이 어느 날 엉뚱한 사건에 말려드는 식의 이야기요.”
- <인간수업>에 대한 리뷰나 댓글을 보셨는지. 인상적인 네티즌 평이 있었다면.
“평소에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편이라 인터넷을 포함한 여러 간접 경로를 통해 <인간수업>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제가 참여한 작품에 대한, 얼굴을 모르는 분들의 소감을 듣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네요. 저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고무되는 한편 대단히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통이라는 게 본디 그런 것이겠죠. 기대되면서도 떨리는...”
● “아이리시 어퍼컷을 보셨나요?”
진한새 작가는 질문에 대해 충실하게 꼼꼼하게 답변서를 보내주었다. 딱, 하나 대답 안 한 질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만약, 극중 아이들이 재판을 받는다면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게 될까. 한국과 뉴질랜드의 경우에 말이다.” 대본을 준비하며 조사를 했을 것 같아 던진 질문인데 답변을 하지 않은 것은 ‘드라마’의 영역과 ‘사법’의 영역에 대한 나름의 조심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진한새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물론, <인간수업> 시즌2가 진지하게 논의되는 것도!
참, <아이리시 어퍼컷>은 2017년 네이버(V라이브)를 통해 공개된 작품이다. 김지석, 보라 등이 출연한 이 작품의 시놉은 이렇다. “이승에선 되는 일 없이 깨지기만 하는 5년차 주방말단 요리사 우시형이 실수로 저승에 떨어지며, 저승에서도 깨지는 말단 저승사자 도해나라를 만나 펼치는 하드보일드 코믹 판타지” 궁금해진다. 찾아보시길.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진한새 작가/ 넷플릭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