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7년 전인 2003년의 만우절 날, 정말 거짓말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홍콩스타 장국영(레슬리 청)이 자살했다는 것이다. <영웅본색>과 <천녀유혼>, 그리고 <해피투게더>의 그 장국영이 팬들 곁을 허망하게 떠나간 것이다. 그 날 이후 해마다 이때 즈음이면 그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그의 영화를 다시 찾아본다. OTT서비스인 왓챠플레이에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그의 출연작이 하나 포함되어있다. <금수전정>이다. <동사서독>,<금지옥엽>,<야반가성> 등과 함께 1994년 홍콩에서 개봉되었던 작품이다. 반가운 작품이다.
<금수전정>은 1990년대 홍콩영화 황금기를 끝날 무렵에 나온 작품이다. 특정 장르 영화의 자기복제가 넘쳐나던 한때가 지나가고, 재능 넘치던 영화인들이 이 영화 저 영화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남발하던 시절 말이다. 장국영과 함께 양가휘, 관지림이 출연한다.
아룽(장국영)은 막 보험회사에서 해고당한다.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업무태도 때문이다. 설상가상 여자친구에게도 차인다. 가진 것은 정말 몸뚱이 하나뿐이 아룽은 자연스레 일레인을 찾아간다. 아룽이 여자에게 차일 때마다, 형편이 어려울 때마다 찾아가는 곳이다. 사실, 그 집은 일레인의 오빠(양가휘)의 집이다. 양가휘는 양로원에서 일하고 있다. 성실하고 헌신적이지만 너무 순진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매번 친구 아룽에게 당한다. 아룽이 어려울 때마다 친구(양가휘, 왕민덕, 황자화)는 같이 어울려주고 힘을 보태고, 기회를 준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책임감이 없는 아룽은 우연한 기회에 번듯한 투자회사에 취직한다. 이제 아룽이 정신 차리고, 친구들에게 신뢰를 안겨줄까. 그런데 그 투자회사 부사장이 관지림이다. 당연히 친구들 사이의 연애전선이 복잡해지고, 세속적인 선택을 앞두게 된다.
제목 ‘금수전정’(錦繡前程)은 ‘비단길이 앞에 놓였다’는 말이다. 청춘의 앞날을 이야기할 때 많이 쓰인다. ‘전도유망’, ‘꽃길뿐인 청춘’ 등을 의미한다. 영화를 보면 그 당시 홍콩 청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 시작하면 직장인(上班族)들이 출근하는 모습이다. 피곤한 몸을 지하철에 싣고 직장으로 향하고 있다. 좁은 집에 살며 정말 근면성실하게, 개미처럼 일하는 홍콩 젊은이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네 명의 친구 중 장국영만이 유일하게 ‘뺀질이’다. 회사 일은 설렁설렁, 여자라면 재기발랄, 친구 일이라면 건성건성.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여러 여자를 울리는 타입이다. 장국영이니까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물론, 장국영은 개과천선(?) 환골탈태한다. 영화가 끝나면 네 명의 친구가 부르는 주제가가 나온다. “내일이면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거야. 서로 돕고 격려하면, 내일은 새로운 희망이 피어나겠지”라고 말한다. 친구가 좋다는 게 여전히 먹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영웅본색>과는 또 다른 결이 느껴지는 홍콩영화이다.
장국영과 함께 양가휘도 멋진 연기를 펼친다. 친구 중 경찰로 등장하는 배우는 왕민덕이다. 서구적 외모로 낯이 익다. 그리고 돈밖에 모르는 투자회사 대표는 ‘증강’이다. 그 당시 홍콩 느와르에서 자주 보던 인물이다. <금수정전>은 홍콩 황금기를 관통한 영화인 중 한 사람인 진가상이 각본과 함께 감독을 맡았다. 그 시절 빠질 수 없는 인물 왕정이 프로듀서 중 한 명이다.
<아비정전>에서 장만옥을 희롱(!)하던 장국영의 프리한 모습을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볼 수 있다.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난봉꾼 장국영의 아우라여!
참, 왓챠플레이에는 천녀유혼, 영웅본색, 아비정전, 성월동화, 백발마녀전, 연지구, 위니정전, 색정남녀 등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17편이 올라와 있다. 오늘 현재!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영화 '금수전정'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