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는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일본 작가이다. 1985년 소설 데뷔작 <방과 후> 이후 그가 쓴 수십 권의 작품은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다. 그의 작품은 소설로뿐만 아니라 영화와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놀라운 것은 그의 쉼 없는 창작열이다. 거의 해마다 새로운 작품을 내놓고 있다. 올봄 그가 내놓은 책이 바로 <녹나무 파수꾼>이다.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정통 추리소설은 아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휴먼드라마이다. 덧붙여 <눈보라 체이스>에서 보여준 소프트한 불륜(?)의 추적극이 느닷없이 더해진다.
주인공 나오이 레이토는 보잘것 없는 청춘이다. 긴좌의 술집여자였던 엄마가 죽은 뒤 할머니 손에 자랐다. 아버지는 누군지 모른다. 유부남이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 그럭저럭 자랐지만 풀리지 않는 운명의 레이토는 절도죄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때 그를 찾아온 변호사. 생전 처음 보는 이모라는 사람이 그를 빼내 주며 뜻밖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월향신사의 녹나무를 지키라는 것이다. 그렇다. ‘녹나무’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셈이다
덤불숲을 빠져나가면 문득 시야가 툭 트이고 그 앞에 지금 5미터, 높이 20미터가 넘는 굵직한 가지가 뒤엉킨 녹나무를 만나게 된다. 레이토는 신사 주위를 청소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신전이 마련된 녹나무를 안내해 주면 되는 것이다. 이모님 말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기원(祈願)이 아니라 기념(祈念)을 한다고 한다. 별 보잘 것 없는 레이토도 녹나무의 비밀을 파고들게 되고 그의 삶이 출렁이게 된다.
녹나무는 ‘이웃집 토토로’에서 만났던 그 웅장한 나무이다. 우리나라에도 시골마을에선 수호신같은 커다란 나무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 나무는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의 수복을 기원하는 기능을 했었다. 정한수를 떠놓고 애타게 비는 어머니의 심정이 나무의 정령을 통해 하늘에 감응하리라는 것은 지극히 토속적인, 그래서 인간적인 믿음일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특별한 녹나무에 특별한 능력을 부여한다. 그것의 진실 여부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떠한 삶이라도 열심히, 애절하게, 처절하게 살다보면 그 뜻이 전해질지도 모른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하는 녹나무의 비밀은 무엇일까.
히기사노 게이고의 <녹나무의 파수꾼>(クスノキの番人)은 일본과 한국, 대만(祈念之樹)에서 동시에 출간되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이렇게 실시간으로 번역된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에 대한 믿음과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이리라. 코로나19로 만방이 꽁꽁 묶인 작금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하는 인간과 인간의 믿음, 산 자와 죽은 자의 공명이 저 하늘에 느껴지는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저/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554P)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녹나무의 파수꾼'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