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방송공사(KBS)는 1927년 경성방송국으로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했고, 해방 후 1947년 서울중앙방송으로 재출범했다. TV방송은 1961년 시작했으며, 1973년 한국방송공사로 공영방송 체제를 갖춰 오늘에 이르고 있다. 3월 3일이 공사창립일이다. KBS는 이날을 맞아 3주 동안 언론본연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 세 편을 준비했다. 29일(토) 밤 10시 35분에는 <더 포스트>가 방송된다. ‘뉴욕타임스’와 함께 미국의 양대 간판신문사인 ‘워싱턴포스트’가 유명해진 어떤 특종을 다루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엔 이른바 중앙지와 지방지가 명확하지만 미국에선 USA투데이 지(紙)가 창간되기 전까진 전국지가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전문지는 빼고) 우리가 아는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도 지역단위에서 명성을 떨치는 신문이다. 그런데, 뉴욕에서 발행되면서도 전국적인, 그리고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뉴욕타임즈와는 달리 워싱턴포스트는 지명도가 한참이나 떨어지는 진짜 ‘지역지’였다. 그런 워싱턴포스트가 뉴욕타임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특종보도 때문이었다. 닉슨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려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터뜨린 것이 워싱턴포스트였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또 하나의 특종이 있다. 바로 ‘펜타곤 문서’특종이다. 1971년의 일이다. 당시 미국 대통력은 닉슨이었고, 수렁에 빠진 월남전에서 출구를 찾아 헤맬 때였다.
영화 <더 포스트>는 바로 그 시점의 미국을 배경으로 워싱턴에서 발행되던 ‘지방지’ 워싱턴포스트가 직면한 ‘특종’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1871년에 창간된 워싱턴포스트는 1933년에 유진 메이어가 인수한다. 그는 루즈벨트 시절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낸 거물이었다. 1946년에 WP 사주(社主) 자리를 딸 캐서린 그레이엄이 아니라 사위인 필립 그레이엄에게 넘긴다. 필립이 죽은 뒤 ‘미망인’ 그레이엄이 전면에 나선다. 조금은 보수적인 풍토의 미국(신문업계)에서 얼굴마담이 아닌, 여자 사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미국)언론사에서 사주와 편집장의 관계는 흥미롭다. 사주는 주로 경영을 책임지고, 편집장은 기사를 책임지는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원론적인 설명은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는 훨씬 더 복잡하다. 사주는 백악관과 친하고, 장관들과 교류하고, 온갖 셀럽들과 친분을 유지한다. 그런 관계 속에서 고급정보가 나오거나, 특종의 실마리가 잡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원래부터 WP가문은 백악관 사람과 친했고, 국방부장관(로버트 맥나마라)과도 잘 아는 사이였으니 특종에 꽤 가까운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사건이 터진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의 하나인 랜드연구소의 연구원이 펜타곤의 극비 문서를 빼돌린 것이다. 지난 역대 미국정부(백악관)가 베트남에서 펼친 모든 것(더럽고, 치명적인!)이 고스란히 포함된 문서였다. 그런데 이 문서를 먼저 입수한 것은 뉴욕타임즈의 명기자 닐 시헌(Neil Sheehan)이었다. NYT는 다니엘 엘스버그로부터 문서를 입수한 뒤 석 달 간 8천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문서를 분석하고, 결국 1보를 터뜨린다. 백악관이 뒤집어진다. 미국 정부는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기밀의 유출’이라며 후속보도를 금지한다.
‘경쟁사’의 특종에 다급해진 워싱턴포스트도 백방으로 노력하고, 결국 펜타곤 문서를 입수하는데 성공한다. NYT보다 늦었지만, 더 자세하게, 더 공격적으로 신문에 실을 준비를 끝낸다. 다급해진 미국 정부는 전가의 보도인 소송을 선택했고, 미국 대법원에서는 세기의 재판이 벌어진다. 언론자유와 국가의 안위에 대한 재판이었다.
영화 <더 포스트>는 워싱턴포스트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 여사와 편집장 벤 브레들리(톰 행크스)가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언론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주 입장에서는 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는 극한의 상황이다. 편집장 입장에서는 이번 보도로 NYT의 반열에 올라설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물론 둘 다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영화는 미국의 언론이 왜 튼튼한지, 아니면 언론이란 것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SF에만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링컨>과 <스파이 브릿지>를 거쳐 내놓은 <더 포스트>는 국가와 언론의 정면대결을 다룬다.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의 명연기는 영화에 빛을 더한다.
<더 포스트>를 본 사람은 ‘워터게이트’를 다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을 떠올릴 것이다. 미국의 언론자유, 혹은 언론파워는 끝없는 투쟁의 결과이다. 그것은 정부와의 투쟁이고, 사주(편집권)와의 투쟁이고, 팩트와 역사에 대한 투쟁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NYT’는 물 먹은 셈이 되지만 언론인들은 다 안다. ‘WP’보다 더 빨랐고, 정확했고, 능력이 있었음을. 결국, 특종이란 것이 기자들이 발로 뛰는 것, 그리고 평소 취재원을 어떻게 만들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취재원은 어떻게든 끝까지 지켜야하는 직업윤리도 알려준다.
‘뉴스위크’를 발행하던 워싱턴포스트는 인터넷시대가 되면서 경영난에 빠진다. WP를 인수한 것은 인터넷거물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이다. 억만장자 베조스는 넘치는 자금을 바탕으로 ‘WP'를 어떻게 ’잘‘, ’스마트하게‘, ’디지털스럽게‘ 활용할지 고심하고 있다.
<더 포스트>는 명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작품 치고는 심심한 정통드라마이다. 하지만 미디어 종사자라면 언론의 본분과 기자의 역할에 대해 반추하게 하는 작품이다.
KBS 공사창립특선영화는 <더 포스트>에 이어 3월 7일 <모비딕>, 3월 14일 <굿나잇 앤 굿럭>이 방송된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영화 '더 포스트' 스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