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읽은 세계명작동화전집에는 <작은 아씨들>도 끼어 있었다. 지은이는 ‘올코트’였을 것이다. <레이디 버드>로 할리우드의 차세대 유망감독으로 부상한 그레타 거윅은 영리하게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아니라 <작은 아씨들>로 1860년대의 미국을 보여준다. 멀리 보면 역사, 가까이로는 가족의 소중함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녀의 꿈을 이야기한다. 지금 와서 더욱 주목받는 자의식 강한 여성을 앞세워서 말이다.
루이사 메이 올코트가 1868년 발표한 소설 <작은 아씨들>은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이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번에 그레타 거윅 감독은 엠마 왓슨, 시얼샤 로넌, 플로렌스 퓨, 티모시 샬라메, 메릴 스트립을 캐스팅하여 다시 한 번 고전적 품격에 도전한다. 이 영화는 <기생충>이 휩쓸던 이번 아카데미시상식에서 6개부문 후보에 올랐었고, ‘의상상’을 수상한다. 확실히 ‘의상’만큼은 볼만하다.
영화는 1860년대 메사추세츠 콘코드에 사는 ‘마치’ 패밀리를 보여준다. 목사인 아버지는 저 멀리 전쟁터로 떠났고, 사랑과 헌신의 마음이 넘치는 엄마는 네 딸을 소중히 키우고 있다.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꿈인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그리고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이다. 전쟁을 치르느라 모든 것이 결핍한 시대였지만 이들 남매에게는 사랑이 넘치고 희망이 있다. 게다가 훌륭한 이웃까지 존재한다.
영화는 남북전쟁이 끝난 뒤의 마치네 가족과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의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네 자매는 서로 부대끼고, 아옹다옹 다투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다. 그것은 시대의 영향이며 이웃사촌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웃집 로렌스 할아버지와 대고모(메릴 스트립)는 행복한 이들 가족의 고달픈 삶에 결정적 여유를 안겨준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둘째 딸 ‘조’를 메인 캐릭터로 삼았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글을 쓰는 작가의 경우 ‘여자’라는 것이 핸디캡인 1860년대의 이야기를 현대에 전하면서 원작에 대한 엄청난 전복보다는 핵심 스토리의 확장을 선택한다. 순응을 요구하는 시대에 조는 여성 투사의 과격함을 선포하지는 않는다. “여자도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어요. 외모만이 아니라 야심과 재능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조를 통해 자신의 색깔과 야망을 반 발자국 내딛는데 성공한다.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에 등장했던 인물들처럼 각자의 운과 각자의 뜻에 따라, 배필이 결정되고, 미래가 선택된다.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가 가진 꿈과 그들의 사랑이 전쟁과 그 후의 현실의 풍파에 따라 조금씩 탈색되고 변하더라도 그들의 삶을 풍성하게 가꾼 유대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티모시 샬라메는 부유한 이웃집 로렌스씨의 손자 로리로 등장하여 마치네 아가씨들의 풍요로운 러브 스토리를 이끈다. 소설 제목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은 전쟁터의 아버지가 편지에서 딸들을 부르던 말이다. 아버지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린 딸들이 엄마를 잘 모시고 도와 우아하고 품격 있는 여자로 커 나가기를 기원했으리라. 2020년 2월 12일 개봉/전체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 컷/ 소니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