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연기자를 남자와 여자로 나눴을 때, 작년 ‘여’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중 최고 흥행을 기록한 것은 ‘겨울왕국2’(?)이고, 그 다음이 ‘캡틴 마블’이다. 충무로영화로는 ‘82년생 김지영’(367만)과 ‘걸캅스’(162만)가 인기를 끌었다. 영화와 방송을 오가며 자신만의 브랜드를 지켜온 라미란으로서는 감격스러운 일. 올해, 다시 한 번 원톱 주연으로 영화팬을 찾는다. 코믹연기의 장인 라미란이 선택한 영화는 장유정 감독의 <정직한 후보>이다. 오는 4월 15일 국회의원선거를 앞둔 명백한 기획영화로 보이지만, 영화사는 절대 ‘정치영화’가 아니라 ‘라미란표 코미디’라고 홍보한다. 개봉을 앞두고 라미란을 만나 영화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위력을 떨치기 시작하던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언론 라운드인터뷰 자리였다.
영화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이 습관이 된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이 4선에 도전하는 마당에, 마치 하늘의 벌을 받기라도 하는 듯 하루아침에 ‘절대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코미디이다. 뮤지컬과 연극무대에서 이름을 드높인 뒤 충무로로 진출하여 <김종욱 찾기>(2010)와 <부라더>(2017)를 내놓은 장유정 감독의 신작이다.
“(섭외가) 들어왔으니깐 출연했죠. 대본이 재미있었어요.”
출연계기를 묻는 질문부터 ‘정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날 라미란은 정말 정직하게, 영화판 이야기와 자신의 출세담(?)을 유쾌하게 펼쳤다. 영화 <정직한 후보>는 원작이 따로 있다. 로베르토 산투치 감독의 2014년 작품(O Candidato Honesto)이다. (imdb사이트에 따르면 이 영화의 제작자는 짐 캐리의 <라이어 라이어>와 윌 패럴이 나온 <선거캠페인>에 영감을 얻었다고 정직하게 밝힌다)
“원작이 있다고는 생각을 못할 정도로 현지화가 잘 된 작품이다. 거의 새로 썼다고 보아도 될 정도이다. 상황만 가져와서 거의 다 바꾼 것이다”
- 원톱 주연의 부담감이 없었는지.
“이제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한다.”(웃음) “코미디에 대한 부담감이 더 많았다. 내가 코미디에 최적화된 배우라는 것은 편견이다. 남을 웃게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 정치(적)영화는 처음인가.
“<특별시민>에서도 선거에 참여했다. 최민식 선배의 아우라에 밀려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꺾인 후보이다. 이번에도 정치라는 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곤란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영화가 정치영화라고 생각 안 했다.”
- 애드립 연기가 많이 포함되었나?
“많지는 않았다. 거의 대본에 있는 대로 찍었다. ‘선거는 19금이다’ 이런 대사도 대본에 있는 것이었다. 당황했을 때 내뱉어는 말은 여러 버전으로 찍었었다. 내가 막 던져도 다들 잘 받아 주더라.”
- 장유정 감독과 작업한 소감은.
“무대 쪽에서는 유명한 분이다. <방구석 1열>에 나온 걸 봤는데 그 사람의 생각이나 시선이 보이더라. 의외였다. 저렇게 진중한 사람이 코미디를 했구나 싶었다. 믿고 보는 타입이다. 잘 될 것이라 생각했다.”
“원작이 된 브라질 영화에서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캐릭터를 여자로 바꾸면서 라미란을 캐스팅하면 더 효과적이고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제가 그만큼 독보적이라는 이야기니까.“ (또 한 차례 웃음)
- 원작이랑 바뀐 것을 소개하자면.
“주인공 남자가 와이프를 버리고 여기자랑 바람난다. 뭐 그런 내용. 그런 정서가 우리랑은 안 맞을 것 같았다. 19금에 수위가 좀 있다고 한다. 그걸 바꾸면서 시어머니 코드가 들어온 것이다.”
- 라미란에게는 '코미디의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이에 대한 소감은?
“그런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은 그만큼 내 연기가 인상 깊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고착되면 안 될 것이다. (작품이 공개되는) 그 시기에는 괜찮지만 말이다. 다음엔 ‘멜로 장인’ 같은 것으로 바꿀 것이다.”
- 본인이 본인 연기를 보면 어떤가.
“이 영화를 두 번 봤다. 블라인드 시사회와 기자 시사회를 통해. 편집에서는 크게 바뀐 게 없는데 내가 부족한 게 보이더라. 뭔가 다른 지점이 있는 것 같이.”
- 정치에 대해서는?
“정말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감독님이 자료조사를 철저히 한 것이다. 영화 찍을 때 우리끼리 그랬다. ‘이 영화는 특정집단에 대한 반대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누군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뭐 이런 자막을 넣자는 이야기도 했었다.” 면서 “정치는 정말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괜히 모르는데 떠들지 말고. 뭐라고 말할 입장도 없다.”
- <걸캅스> 개봉 때 여성 서사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부담이 없는지.
“부담이나 걱정은 없다. 그렇게 저한테 힘을 써주시니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무섭다. 어느 순간에 그런 것들이 사실처럼 되거나,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고, 일을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은 믿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 정치판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이런 후보(정직한 후보)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큰일 날 일이다. 다들 거짓말을 하면서 산다. 정말 대의나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는 그런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현명한 사람이 더 필요한 것 같다.”
- 라미란 배우도 영화처럼 갑자기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면?
“그렇게 살아야죠. 난 거짓이나 꾸밈은 없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최근에 한 거짓말은?) “딱히 생각나는 거짓말이 없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아예 말을 안 한다.”
(한 기자가 짓궂게 묻는다. ‘저 어떻게 생겼어요?’) “잘 생겼어요. 도토리, 다람쥐 같이 생겼어요.”란다.
-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고 화제다. 봉 감독의 <괴물>에 나온 배우로서 덕담을 한다면. (<괴물>에서 라미란은 한강에 갑자기 나타난 괴물 때문에 패닉에 빠지는 ‘발동동아줌마’로 출연했다.)
“제발 다시 불러주셨으면. '발동동 아줌마' 이후에 연락이 없었다. 해외에서 이렇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좋은 소식이다. 우리 영화가 많이 발전했다고 느끼게 된다. 이런 작품이 윤활유처럼 잘 작용했으면 한다. 젊은 작가도 많이 나오고, 감독들도 배우들도 폭이 넓어지고 작품이 다양해진다는 게 좋다.”
- 라미란 배우에게 작품선택의 기준이 있다면?
“옛날엔 세 가지 기준이 있었다. 작품이 진짜 좋거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좋거나, 아니면 돈. 이 중 하나만 맞으면 한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다른 이유를 찾기가 힘들더라.”
- 개봉시기가 애매하다.
“설 기간에 개봉할 것 같았는데 후반작업 때문에 미뤄졌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사태 때문에 개봉을 미루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빨리 찍고 빨리 개봉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 라미란 후보는 영화에 걸맞은 흥행공약을 내걸었다. 천만을 돌파하면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고.
“(영화 캐릭터답게) 막말의 연장선상이다. 취소하고 싶지는 않다. 나중에 정말로 그렇게 되면 "뻥이었습니다"라고 대국민사과를 하고, 제작사 대표는 삭발하기로 했다.”
라미란과 김무열(보좌관), 나문희(어머니), 윤경호(남편), 장동주(아들)이 출연하는 코미디 <정직한 후보>는 지난 12일 개봉되어 주말까지 무난히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라미란,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컷/ NEW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