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넷플릭스는 <더 킹 헨리 5세>, <두 교황>, <결혼이야기>, <내 몸이 사라졌다> 등 네 편의 작품을 ‘극장’ 공개했다. 조그만 화면으로만 감상하기엔 아까운 작품들이었고, 여러 면에서 영화배급(유통)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실감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넷플릭스 종교극 ‘두 교황’
<두 교황>은 2013년 실제 일어났던 가톨릭교계의 초대형 이벤트(!)를 다루고 있다. 교황은 종신제이다. 선종(서거)하지 않는 이상 권좌에 ‘존재함으로서’ 전 세계 교인들의 신심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2013년, 제265대 교황인 베네딕토16세가 별안간 사도좌(교황 자리)를 물러나겠다고 밝힌다. 전례가 없는 상황에 봉착한 바티칸, 과연 그 자리는 어떻게 될까.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라는 거물급 배우에게 어울리는 근사한 사제복을 입히고, 장엄하게 바티칸 드라마를 재현한다.
영화는 오랫동안 추기경 은퇴를 고민하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조나단 프라이스)이 바티칸의 베네딕토16세 교황(안소니 홉킨스)에게 끊임없이 은퇴를 청원하는 편지를 보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계속 거부만 하던 교황이 그를 로마로 초청한다. 베르골료 추기경은 이번엔 자신의 (은퇴)의지를 관철시키고 싶어 한다. 그렇게 마주 앉은 두 사람. 베르골료 추기경은 현재 가톨릭교회가 당면한 문제점에 대해 설파하고 교황은 역정을 낸다. 그러면서 밀당 아닌 밀당이 벌어진다. 장엄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과 추기경은 서로의 고충에 대해 성스러운 고해성사를 하는 셈이다. 그러다가 교황이 자신은 사임할 것이라고 밝힌다.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프란치스코
<두 교황>에서는 초반에 2005년의 베네딕토16세 선출과정이 짧게 등장한다. 전임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가 몇 주 동안 병환으로 꼼짝 못하다 서거한다. 장례식에는 전 세계에서 164명의 추기경이 참석했다. 그리고, 콘클라베가 열렸다. 독일(바이마르공화국) 출신의 요제프 라칭거가 새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이 되면 속세의 이름은 사라지고, 새로운 교황명을 자신이 직접 고르게 된다. 그는 베네딕토를 골랐고, 그렇게 ‘베네딕토 16세’가 된 것이다. 그 때 나이가 78세. 지난 300년 동안 가장 고령의 교황이자, 심장박동조정기를 단 최초의 교황이 되었다. 이때 열린 콘클라베에서 베르골료 추기경은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그런데 베넥딕토16세는 줄곧 ‘바티칸의 적폐’와 힘겨운 행정적 싸움을 펼쳐야했다. 교황청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세계 곳곳에선 성직자의 성추행 비리가 잇달아 폭로되었다. 교황의 일처리는 우유부단하게 느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티칸은행의 재무비리사건도 터진다. 게다가 교황의 집사에 의한 비밀문서가 언론에 유출되는 스캔들까지 터졌다. 그런 사태 속에서 2013년 2월 11일, 베네딕토16세는 자신의 연령이 너무 많아 업무 처리가 힘들어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공식발표한 것이다. 지난 콘클라베에서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얻었던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은 그렇게 ‘베네딕토16세’의 뒤를 이어 새로운 교황이 된 것이다. 교황명은 ‘프란치스코’를 택했다. 이미 그의 나이 76세. 전임자의 선종 없이 새 교황으로 선출된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415년, 그레고리오12세는 오랫동안 지속된 동서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 사임하였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두 교황>에는 교황선출 의식인 콘클라베가 세밀히 재연된다.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 화법의 그림들로 가득한 성당에 모여 투표를 진행한다. ‘최후의 심판’아래에서. 어느 한 사람이 2/3이상을 얻기까지 투표는 거듭 진행된다. 그동안 성당 밖 광장에는 수십만의 신도들이 그 결과를 기다린다. 굴뚝에서 흰 연기가 나오는지, 검은 연기가 나오는지 기다리며.
콘클라베에는 80세 이하의 추기경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고. 50개국 117명의 추기경이 해당한다. 그런데 이번 콘클라베에는 115명이 참석했다. 인도네시아 추기경은 건강문제로, 스코틀랜드 추기경은 부적절한 행동(성문제)으로 공적 활동이 제한되었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사람은 발터 카스퍼 추기경으로 3월 5일, 80세가 된단다. (교황부재가 공식적으로 2월 28일이어서 투표 자격이 있었다고 한다) 115명의 추기경 중 2005년에 참석했던 사람은 50명이란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황의 제의에 주저했던 것은 자신에게 따르는 어두운 과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 아르헨티나를 암흑으로 몰아넣었던 군사정권 시절 펼쳤던 예수회 활동의 공과이다. 1976년에서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른바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암흑기가 있었다. 1만 3천명에서 3만 명에 이르는 정치인, 교수, 교사, 학생, 좌파작가, 노조원, 마르크스주의 게릴라들이 군사정권에 살해당했다. 한밤중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서는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 <두 교황>에도 잠깐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들 중 다수는 눈을 가린 채 ‘죽음의 항공기’에 실려 하늘에서 산채로 대서양에 던져졌다. 예수회를 이끌던 베르골료 추기경은 당시 백방으로 뛰었지만 무력했던 자신을 한탄한다.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콘클라베>
넷플릭스의 <두 교황>을 재미있게 보았다면,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콘클라베>(알에이치코리아, 2018년 출간)는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로버트 해리스는 히스토리 팩션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이다. 2차 대전에서 히틀러 나치 독일이 승리한 뒤의 1964년 유럽을 그린 <당신들의 조국>을 내놓은 뒤, 독일의 에니그마를 풀어내는 암호해독가의 이야기를 다룬 ‘에니그마’, 스탈린의 숨겨진 일기장에 얽힌 비화 ‘아크엔젤’, 고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폼페이’ 등 역사고증과 정치적 스릴러의 수준을 결합시킨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로버트 해리스의 <콘클라베>는 2022년 교황의 선종으로 인한 후임을 뽑기 위한 ‘콘클라베’를 다룬다.(물론, 소설이다!) 전 세계에서 118명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으로 날아오고, 이들은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투표)에 들어간다.
소설을 보면서 자금의 가톨릭의 (정치적) 세력 분포를 알 수 있다. 바티칸이 소재한 로마, 이탈리아에 추기경이 수적으로 제일 많고, 이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 세력이 최고의 파벌이 된다. 그리고 아시아-아프리카 출신의 신흥세력들. 미국 추기경들, 그리고, 남미의 세력들. <콘클라베>에서는 차기교황 자리를 두고 이들 세력의 대표적 추기경이 등장한다. 머리 좋고 매체를 잘 다루는 걸로 알려진 프랑스계 캐나다인 조지프 트랑블레 추기경, 동성애엔 강경한 입장이지만 다양성을 중시하는 나이지리아인 조슈아 아데예미 추기경, 초보수주의자 이탈리아인 조프레도 테데스코 추기경, 진보주의자들의 위대한 희망으로 군림하는 이탈리아인 알도 벨리니 추기경. 세속적 정치판처럼 부정과 부패, 비리로 얼룩진 선거판은 아니지만 이들 교황선출 현장은 미묘한 신경전과 지역적 결합이 노정된다. 2/3이상의 추기경들의 선택을 받는 사람이 나오기까지 투표는 거듭된다. 그 과정에서 가톨릭계의 어두운 면이 조금씩 드러나고, 투표라는 과정을 통해 배제, 도태, 해결된다.
로버트 해리스는 실제 바티칸의 룰과 함께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러한 성스럽고도 영적인 선출과정을 할리우드 스릴러 못지않게 독자를 지적(!) 흥분에 빠뜨린다. 여덟 번의 투표 끝에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은 처음에는 초반에는 전혀 예상하지 인물이며, 마지막에 벌어지는 한판 승부수는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참, <두 교황>은 이번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조나단 프라이스), 남우조연상(안소니 홉킨스)과 각색상 등 세 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시나리오는 안소니 맥카턴 자신의 극본(연극대본)을 옮긴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번 아카데미에서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 ‘두 교황’, ‘내 몸이 사라졌다’, ‘클라우스’, ‘아메리칸 팩토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체념 증후군의 기록’ 등 8개 작품, 24개 부문의 후보작을 올렸다. 정말 대단하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두 교황' 스틸 컷/ '콘클라베'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