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통해 [지옥], [정이], [선산]을 선보였던 감독 연상호가 다시 한 번 넷플릭스와 손잡고 6부작 오리지널을 내놓았다. 일본 이와아키 히토시의 베스트셀러 만화 <기생수>를 한국배경으로 만든 스핀오픈 <기생수: 더 그레이>이다. 지난 5일 공개와 더불어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에서 순항 중이다. 엄청난 창작 열정을 과시하고 있는 연상호 감독을 만나 ‘기생수’의 세계관과 ‘연니버스’의 무한확장에 대해 들어봤다.
Q. <기생수>라는 대단한 원작을 다시 넷플릭스와 작업했다. 작업 소감부터.
▶연상호 감독: “이번 작업이 재밌었다. 스핀오프를 만들면 상업적으로 잘 될 것이라는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순수하게 팬픽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작업했다. 고단샤(講談社)에 내 뜻을 전달하고, 직접 미팅하고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를 브리핑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이다. 고단샤 측에서 그걸 재밌어했다. 원작자가 그런 것에 마음이 열려있는 것 같다. <네오 기생수>나 <기생수 리버시>도 나온 상태라서. 성향이 열려있다고 생각했다.”
Q. <기생수:더 그레이>의 창작 포인트가 있다면?
▶연상호 감독: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액션스릴러이다. 원작에서 보여주는 공존의 문제에 대해 한국적으로 설정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Q. 원작의 이야기를 가져올 때 어려웠던 부분은?
▶연상호 감독: “어려움보다는 재미가 더 있었다. 원작에서의 ‘신이치’와 ‘미기’(오른손이)의 이야기를 ‘수인’과 ‘하이디’로 바꾸면서 설정을 극대화했다. 날개달린 기생수가 등장하는데 그것도 원작에 잠깐 나오는 개의 모습을 끌어다 쓴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든 것은 없다. 4화에서 수인과 하이디가 환상 속에서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원작에 나오는 것을 시각화한 것이다.”
Q. ‘오른손’을 ‘얼굴’로 바꾸었다. 신체 부분 중 얼굴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연상호 감독: “위치의 차이보다는 소통 방식의 차이가 컸다. 수인과 하이디의 관계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은 직접 소통을 못한다. 그런 장애를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둘이 직접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가지만 수인과 하이디는 엔딩에 이르기까지 갈등한다. 가치관이 다르다. 그래서 그 과정에 강우(구교환)와 철민(권해효)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필요하니 그런 면에서 ‘얼굴’이 되었다. ‘왼손’을 하기엔 그렇잖은가. ‘바디 스내이처’에서는 평소 잘 알던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공포를 보여준다. ‘얼굴이 열린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모든 공포의 근원을 살릴 수 있었다.”
Q. 개인의 문제와 조직의 필요성을 다룬 것 같다.
▶연상호 감독: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이 공존하는 방식이다. 공존의 형태는 보통 조직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여러 모습의 조직을 보여주려고 했다. 강우는 폭력조직에 있고, 준경은 경찰조직에 있다. 기생생물은 종교단체에서 모이고. 이정현 배우가 연기하는 준경은 체격이 작다. 인간이 무서운 것은 전투력이 아니라 ‘조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조직을 보여준다면 그 반대편에 있는 인물은 어떤 모습일까. 가족이라는 조직에서 떨어진 인물을 그리고 있다. 아이러니이지만 수인/하이디는 인간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기생생물의 생존 전략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조직의 모습을 통해 액션스릴러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Q. 전소니 캐스팅이 일단 신선함을 준다.
▶연상호 감독: “전소니 배우는 독립영화를 통해 존재를 알고 있었다. 느낌이 괜찮아 언젠가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다. <기생수>를 하면서 그림체에 맞다고 생각했다. 막상 일해 보니 수인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얼굴에 잘 묻어난 것 같다. 수인/하이디는 인위적으로 표현하면 설득력이 없을 것 같은 캐릭터인데 전소니 배우가 세밀하게 세공을 해서 보여준 것 같다.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는데 놀랐다. 처음 준비하며 볼 때보다 더 마른 얼굴이었다. 첫 촬영에서부터 정수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후반부에 가서는 하이디가 더 많이 보이더라. 정수인 캐릭터를 더 잘 이해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Q. 최준경을 연기한 이정현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는 어떤가.
▶연상호 감독: “준경은 독특한 상황에 놓인 인물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기생생물에 희생당했다. 그 원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놈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그 얼굴에 복수를 하려는 복잡한 심사가 있다. 준경은 내면의 고통을 감추기 위해 가짜광기라는 가면을 쓴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는 수인과 하이디가 화해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준경이 자신의 가짜광기를 벗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초반에 보여주는 연극적인 모습은 진짜 준경의 모습이 아니다. ‘남편’(의 모습을 한) 기생수가 죽고 나서 보여주는 모습이 진짜 준경의 모습일 것이다. 제 영화에서는 호불호가 나뉘는 캐릭터가 항상 있었다. <지옥>의 화살촉처럼. 캐릭터 자체가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준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준경이 수인과 제대로 화해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데 그것도 좋았던 것 같다.”
Q. 원작이 만든 세계관을 [더 그레이]에서 설득시키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연상호 감독: “원작은 연재형식이다. 실제로 10년 가까이 연재되며 기생물의 세계관, 설정이 만들어진다. 그에 비해 <더 그레이>는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하면 원작의 설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계속 질질 끌면서 보여줄 수는 없다. 그래서 기생생물에 대한 게임의 법칙은 1화에서 털고 나가자는 생각이었다. 원래 대본과는 달리 1화에 당겨온 이야기가 있다. 앞부분에 그걸 털어내었기에 2화부터는 속도감 있게 나갈 수 있었다고 본다. ‘머리카락 뽑아봐야 한다’는 그런 설정 같은 것.”
Q. 인간의 이야기와 조직의 문제를 늘 다룬다.
▶연상호 감독: “그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가장 혼란스러운 주제이기도 하다. 예전엔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뒤엉켜 있다. 어디에 의지해야할지 모르는 애매모호한 시대이다. 그래서 그런 문제에 더 집착하는 것 아닌가. 무엇을 믿을지 모르는 사회이다.”
Q. 구교환 배우가 설강우를 연기한다.
▶연상호 감독: “수인은 우울하고, 하이디는 차가운 존재이다. 둘의 소통방식도 어렵다. 그걸 전달하는 친구가 필요했다. 원작에서는 (신이치와 오른손이) 둘의 티키타카가 있는데 <더 그레이>에서는 그런 티키타카가 힘들다. 강우 역할을 너무 무거운 느낌의 배우가 하기 보다는 원작의 발랄함이 있었으면 했다. 구교환 배우가 그런 부분을 잘 캐치를 했다. 본인이 연출도 하기 때문인지 자신이 포함된 신에 대한 설정을 잘 맞췄다.”
Q. 마지막 장면은 확실히 후속 시즌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연상호 감독: “그 문제는 넷플릭스의 판단에 달렸다. 시즌2가 만들어지려면 복잡한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저렇게 한 것은 출연하는 배우를 위해서이다. 그가 무슨 상황인지 알고는 있어야하니. 작품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8년 후이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시즌2가 실제 제작이 된다면 같이 할 수도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그렇다. 배경은 한국이 될 것이다. 그가 그 장면에 등장하는 것은 (일본) 원작의 모험을 다 끝내고 여기로 온 것일 테니.”
Q. 일본에서의 반응도 괜찮은 편이다.
▶연상호 감독: “<기생수>는 일본에서는 꽤나 대중적인 작품이니 반응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평가를 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팬의 마음으로, 팬픽으로 작업했다. 걱정은 별로 안했다. 나는 원작의 열성 팬으로 만든 것이니.” (다른 일본 작품 생각해 본 것 있는지?) “다 알아봤다. 일본IP는 글로벌한 아이피가 많다. 미국 쪽에서 많이들 가져갔더라. <기생수>가 아직 남아있었다는 것이 운명 같았다. 변승민 대표(제작사 클라이막스)랑 ‘기생수’를 이런 식으로 만드는 게 어떨까 말했었다. 재밌다며 한번 해보자고 했었다. 판권을 얻을 수 있을까 했었는데 의외로 고단샤와 일이 잘 풀린 것이다.”
Q. 연상호 감독은 원작IP로 글로벌 OTT와 작업을 해봤다. 일본의 IP 비즈니스는 어땠는지.
▶연상호 감독: “<기생수>는 엄청 큰 아이피이니 판권 진행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고단샤를 갔었는데 출판사 지하에 커다란 도서관이 있었다. 지금까지 출판한 고단샤 작품이 다 보관되어 있었다. 내가 <아키라> 팬이라고 하니 <아키라> 초판 연재물을 보여주더라. 물론 그걸 나한테 주지는 않았고.(하하) 신기하더라. 작품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다.”
Q. 연상호 감독의 필모를 보면 모든 작품이 인간의 내면을 다룬다. 사악한 인간, 관계성 등에 집착하는 것 같다.
▶연상호 감독: “아마도 내가 재밌게 본 만화나 영화가 휴머니즘에 관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기생수>나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같은 휴머니즘의 끝판왕 작품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관점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키우다보니 내 아이한테 어떤 것을 보여주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작품 좋아하던가?) “초등학생인데 <최애의 아이> 좋아하더라. 나도 보면서 처음엔 당황했었다. 이걸? 그런데 왜 좋아하고 왜 빠져들고, 그 감정을 이해하는지 배우게 된다. 저도 만화와 애니메이션 좋아한 사람이다. 이제 나도 기성세대가 되었는데 그런 게 신기하기도 하다. 아이가 만화 본다고 잔소리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권장한다. <드래곤볼>을 억지로 읽혔다. 그랬더니 ‘내 친구 중에 드래곤볼 아는 사람 아무도 없어’라고 하더라.“
Q. 앞으로의 계획은?
▶연상호 감독: “<지옥 시즌2> 후반작업이 거의 끝나간다. 내년에 <계시록>이 나올 것이다. 5월에 새로운 프로젝트 들어갈 것도 같은데.. 전에 한 것과 다른 형식의 작품이 될 것 같다.”
Q. 끊임없이 작품을 내놓는 것 같다. 힘들지 않은가. 혹은, 소재나 아이디어가 고갈된다는 느낌은 없는지.
▶연상호 감독: “대본 쓰는 게 힘들어진다. 그래도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하는 맛이 있다. 하기 싫을 때 하는 게 프로니깐. 제일 힘든 건 각본이다. 대본 쓰면서 고독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꿈은 큰데 능력이 안 되다 보니 항상 거기서 괴리감이 생기는 것 같다. 몸이, 머리가 안 따라준다는 것을 매일 느낀다.” (휴식을 취하거나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생각은 없는지?) “데뷔하기 전에 강제휴식을 오래 갖다보니 그런 생각은 안 든다. 그러면 머리가 더 안 돌아가더라. 하기 싫을 때 해야 뭐가 나오더라. 하고 싶을 때는 안 오더라.”
Q. 혁신적인 작품을 내놓겠다는 말을 자주하는데.
▶연상호 감독: “최근에 내가 그동안 내가 만든 작품을 다시 한 번 봤었다. 연출한 작품과 연출하지 않은 작품을 전부. 그걸 보면서 내가 대중성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다보니 투쟁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중적이지 않은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런 걸 못하게 되면? 뭐 상관없다. 난 서양화과 출신이니 대중적이지 않은 것은 그때 해도 될 것이다. 대신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준다. 내가 대중적이지 않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은 도움을 준다. 부담감을 느끼거나 불평불만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배부른 소리이니.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런 것은 내가 해결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돈을 받는 것일 테니.”
Q. <기생수>의 확장가능성에 대해 .
▶연상호 감독: “당연히 이야기가 더 확장되면 좋겠다. 나올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미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 그레이>를 통해 그런 이야기로 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미국에 있는 사람이 ‘이거 미국에서 벌어진다면 재밌겠다’하고 만들 수도 있잖은가. 그렇게 된다면 <기생수>의 팬으로 재밌게 볼 것이다. <건담>, <마크로사>, <스타워즈>처럼 파생되는 이야기가 많다. <기생수>도 그랬으면 한다.”
Q. 마지막으로 요즘 OTT가 대세가 되면서 ‘DVD’나 ‘극장용 포스터’ 같은 피지컬한 기념품, 굿즈가 없다. 아쉬움이 없는지.
▶연상호 감독: “있다. 그래서 제가 가질 피규어를 직접 만든다. 요즘은 귀인을 만나 소장용으로 만든다. 판매용이 아니라. 티셔츠도 만든다. 그런 것 좋아한다. <지옥> 시즌1때는 디자인을 제가 했었는데 시즌2는 미술감독이 했다. 그게 더 좋더라.“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