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캐머런 미첼의 뮤지컬 <헤드윅>(Hedwig)이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이번엔 샤롯데씨어터이다. 대극장이다! 1994년 미국 뉴욕 맨허튼의 작은 록 클럽에서 첫 선을 보인 <헤드윅>은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소극장이 적합한 작품이다. 주인공의 내력이나, 보여주는 퍼포먼스,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의 소통 측면에서 보자면 말이다. 아기자기하게 둘러앉아 내밀하게 쑥덕대며 헤드윅의 신세한탄을 들어주고 다함께 등을 토닥여주는, 그 와중에 갑자기 엄청난 에너지의 샤우팅에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그런데 시즌이 계속 이어지고, 많은 배우들이 제각기 자기만의 컬러로 헤드윅의 삶을 전하면서 그 이야기가 더욱 알록달록해지고, 풍성해지면서 더 넓은 세계, 더 많은 관객에게로 달려간다. 1인치의 존재감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는 지난 2005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그리고 올해로 20년을 채우며 14번째 시즌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대단하잖은가.
뮤지컬의 배경은 독일이 분단되었던 시기의 동베를린과 미국 켄사스시티, 그리고 뉴욕이다. ‘헤드윅’이 그 어느 곳에서 살았던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루저의 삶에 어울리는 허름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헤드윅의 이야기는 참으로 비참하고, 비루하고, 처연하게, 슬프다. 어쩔 수 없이 동정을 불러일으킨다. 들어보시라, 헤드윅과 이츠학의 삶을.
독일 동베를린의 한 아파트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소년 ‘한셀’은 불행하다. 그의 내레이션으로 듣게 되는 그의 어린 시절은 악몽 그 자체이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스스로 쌓아올린 탑 속에서 생을 버텨온 아이이다. 동베를린에서도, 켄사스시티에서도 그에게 조금의 빛을 준 것은 ‘음악’이다. 미군 라디오방송에서 들려오는 찬란하고도 황홀한 ‘록’ 음악이었다. 어느 날 미군 루터가 그에게 프로포즈한다. 남자가! 이 악몽 같은 과거와 지옥 같은 현재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리고 유일한 방법은 그가 '여자'가 되어 양키의 신부가 되어 이곳을 떠나는 것이란다. 그래서 수술한다. 그런데 실패한다. 그리고 남은 것은 ‘1인치의 흔적’뿐. 어쨌든 ‘헤드윅’이란 이름으로 미국으로 건너오고, 루터에게 버림받는다. 켄사스시티 하우스에서 연명하다 소년 토미를 만난다. 토미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 록 음악의 진수를 전수하지만, 토미는 '헤드윅'의 신체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좌절. 헤드윅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어느새 슈퍼스타가 된 토미의 전국투어 콘서트를 따라다니며 맞은편 허름한 공연장에서 자신의 신세타령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토미가 뉴욕타임스퀘어에서 엄청난 팬들 앞에서 찬란한 슈퍼쇼 공연을 할 동안, 헤드윅은 자신의 밴드 '디 앵그리인치 밴드'의 연주에 맞춰 자신의 길고 긴, 어둡고 어두운, 비참한 삶을 술회한다. 그가 노래할 때 백보컬 이츠학이 코러스 화음을 넣고, 샤우팅을 하며 절규한다. 그렇게 헤드윅을 좇아오다가 이제 이츠학의 비밀, 삶, 이야기, 생을 듣게 된다.
뮤지컬 <헤드윅>은 주인공 헤드윅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이야기이다. 헤드윅은 쾌활하고 신나는 록 음악과 함께 조고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베를린의 삶과 미군의 이야기를. 관객들은 점점 헤드윅의 삶에 끼어들게 된다. 가련한 것들!
존 캐머런 미첼의 대본과 스티븐 트래스크의 작곡/작사로 완성된 <헤드윅>은 관객들이 그렇게 대본 밖의 세상과 오선지 너머의 노래에 스며들게 된다. 헤드윅과 이츠학은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삶의 빈 공간에 관객을 끌어들여 감정을 일렁이게 하는 것이다. 헤드윅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비참하고, 괴롭고, 힘든 삶의 연속이지만 ‘사노라면 살아진다’는 삶의 진리를 전해준다. 관객은 그와 함께 팔을 들어 올리고 손을 흔들고, 화음을 맞추는 것이다.
이번 시즌에는 조정석,유연석, 전동석이 오랜만에 무대에서 다시 헤드윅을 연기한다. 다들 ‘헤드윅’의 삶을 살아봤기에 어떤 삶인지 무대에서 흥미롭게,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펼친다. 이츠학에는 장은아, 이예은, 여은이 새롭게 합류하여 꾹꾹 누른 감정의 응어리를 폭발시킨다. 전체적으로 헤드윅과 이츠학의 에너지가 그야말로 폭발한다.
▶뮤지컬 '헤드윅' ▶공연: 2024년 3월 22일(금) ~ 2024년 6월 23일(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원작: 존 카메론 미첼 (대본), 스티븐 트래스크 (작곡/작사) ▶출연: 조정석, 유연석, 전동석, 장은아, 이예은, 여은, 이준, 최기호, Zakky, 조삼희, 이한주, 홍영환, 최기웅, 전일준, 유지훈, 정다운 ▶연출: 손지은 ▶주최: SBS ▶기획/제작:쇼노트, 롯데컬쳐웍스 ▶고등학생이상관람가/ 2시간15분 (인터미션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