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넷플릭스 경영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팬들이 가장 기대했던 작품 중의 하나가 마틴 스콜세지(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이리시맨>(The Irishman)이다. 이 작품은 2004년 발간된 찰스 브랜트의 회고록 < I Heard You Paint Houses>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책은 1940~50년대 미국 노동운동사에서 최고의 조직 장악력을 보이며 톱스타급 인기를 누렸던 전미트럭운전사노조(팀스터즈)의 지미 호파 위원장 실종사건의 전말을 담고 있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흥미를 느낀 로버트 드니로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영화로 만들기로 마음먹었지만 다른 프로젝트들 때문에 프로젝트는 한참 뒤로 밀렸고, 10여년이 흐른 뒤에야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시나리오를 다듬었고, 주류영화판을 일거에 뒤집으려는 넷플릭스의 야심이 합쳐져서 무려 1억 59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으며 완성된다. 런닝타임은 209분으로 마틴 감독 작품 중 가장 길다. 지난 9월 뉴욕필름페스티벌에서 처음 상영되었고, 이어 이달 초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일제히 공개되었다. 물론 넷플릭스 공개 전에, 극히 일부 상영관관에서 극장상영도 이뤄졌다.
2차 대전 때 이태리 전선에서 싸웠던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니로)은 제대 후 트럭운전수로 일하며 자연스레 암흑가 사람들과 연줄이 닿게 된다. 조금씩 배포와 힘자랑을 하던 시런은 필라델피아 지역을 주름잡던 마피아 보스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의 오른팔이 되었고, 러셀은 그를 팀스터(전미트럭운전사노조)의 지미 호파(알 파치노)에게 소개시켜 준다. 마피아 보스와 노조위원장, 그리고 과묵한 행동대장은 서로 어울리며 ‘밤의 미국’을 평정하는 듯하지만, 1975년 ‘페인트를 칠할 일’이 생긴다. 과연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
지미 호파의 행불사건은 미국 FBI의 장기 미해결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다음으로 유명하다는 지미 호파 위원장은 1975년 7월 30일 흔적도 없이 ‘디트로이트’에서 사라져 버린다. 저간의 사정을 알만한 FBI는 광범위한 수사와 수색작전을 오랫동안 펼치지만 ‘과묵한 마피아’ 사람들의 입을 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지미 호파는 1982년 법적으로 사망처리 된다)
검사 출신의 찰스 브랜트는 (지미 호퍼 살인혐의가 아니라 다른 죄로) 장기복역 중이던 프랭크 시런의 변호를 맡아 그를 가석방시키며 친분을 쌓았고, 오랜 설득 끝에 그의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가 있었단다. 대부분의 이해당사자가 나이 들어 죽었기나, 아니면 마피아끼리의 총격전으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에. 요양원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프랭크 시런은 찰스 브랜트에게 자신의 일생을 담담히 들려주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 I Heard You Paint Houses>가 완성된 것이다.
책 제목을 처음 들으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영어권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 넷플릭스에 공개될 즈음 그 의미를 물어 보는 사람이 많았다. “난 너가 페인트칠한다고 들었다”라는 말은 영화에도 등장한다. 지미 호파가 프랭크 시런과 처음 전화로 통화할 때, “너가 페인트 칠 한다던데.”하자, 시런이 “뭐, 페인트도 칠하고, 목공일도 한다”고 대답한다. 우리나라 조폭식으로 말하면 “피칠감 좀 해봤나?” “물론, 직접 관도 짜주고..”라는 의미. 사람도 죽이고, 시체도 깔끔하게 처리한다는 ‘그쪽 업계’ 용어인 셈이다.
한때 갱스터 무비에서 명성을 떨쳤던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가 오랜만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합을 맞춘다. 영화는 2차 대전 때의 모습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관통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타 영화와는 달리, 노배우들이 직접 자신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다. ILM의 ‘디-에이징’기술로 주름살을 지우는 등 디지털 회춘작업을 진행한 것. 넷플릭스에는 본영화와 함께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가 둘러앉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리시맨을 말하다’라는 스페셜 영상이 올라와 있다. 오랜만에 만난 노배우들은 ‘디 에이징’ 기술에 대해서도 소감을 밝힌다. 얼굴은 어떻게 되는데, 나이를 속일 수 없는 몸동작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최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마블 영화’에 대해 한마디 했다가 논쟁이 붙었다. 아마도 노감독은 ‘영화에 대한 미학적 관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많은 사람들은 ‘영화가 가져다주는 판타스틱한 감정’을 무시 말라는 소리인 듯. 그 소동 때문에 ‘극장용’이냐 ‘넷플릭스용’이냐는 이분법은 더 이상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영화는 큰 스크린에서 꼭 봐야하는 적절한 이유도 못 찾겠고 말이다.
엄청난 감독과 엄청난 배우가 만난 넷플릭스의 엄청난 영화 <아이리시맨>은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로서는 투자한 만큼 ‘유명세’는 충분히 뽑고 있는 듯. 12월 1일 넷플릭스 공개.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아이리시맨 스틸/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