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말 개봉한 영화 <나를 찾아줘>(감독 김승우)는 이영애가 <친절한 금자씨>이후 14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하는 작품이라 관심을 받았다. 영화는 6년 전 실종된 아이를 찾는 이영애의 처절한 몸부림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이 영화에는 최근 스크린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유재명이 이영애의 대척점에 서서 영화를 타이트하게 이끈다. 늦깎이 결혼에 최근 아이를 낳은 배우 유재명을 만나, 영화와 연기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개봉을 앞두고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 자리였다.
“이런 자리는 아직도 낯설다. 아마 말을 잘 못하는 것 같아 영화사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는 모양이다.”고 말문을 연 유재명은 놀랍도록 적확하고, 화려한 언변으로, 그리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언론시사회에서 완성된 작품을 처음 봤다는 유재명은 “완성된 작품을 보니 굉장히 색다르게 다가왔다. 완성도도 높았고, 긴장감 있게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본 것 같다. 마지막에는 울컥했을 정도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재명은 실종된 아이를 찾아 외딴 낚시터로 온 정연(이영애)에 맞서는 역할이다. 악역인 셈이다. 유재명은 자신이 맡은 홍경장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표면적으로는 악역이 맞다. 단순한 악역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일상 속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조율된 악당 홍경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의 질서가 어질러지는 것을 싫어하는 인물이다. 정형성을 가진 평범한 인물이다. 악역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정연이라는 인물을 통해 내재된 본성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인다.
유재명은 "그런 사람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평균적인 군 생활을 했다면 만나봤음직한 인물일 것이다. 올 여름 태풍이 잘 지나갔고, 정년까지 무사히 (경찰 일을) 마쳐서, 낚시터 옆에 펜션 짓고 연금을 받아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면서, 라스트 씬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보탠다. “그런데, 유독 당신(정연)만 우리를 그런 눈으로 보느냐는 것이다. 당신한테 무슨 잘못했냐하며 악다구니 치는 것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 나오는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 왜 그 나이에 ‘경장’이었을까요.
“그런 설정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안했는데. 아마 무슨 문제로 강등을 당했을 수도 있고, 늦게 경찰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해안마을 경찰이라 검게 그을린 분장을 해서 더 나이 들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 <겨울왕국2> 열풍 속에서 개봉하는 심정은 어떤가.
“영화라는 건 팝콘을 먹으면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 영화도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극장 문을 나섰을 때 들이키는 공기가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다. 우리 영화가 그런 영화이고 싶다.”
- 한류 대스타 이영애와의 연기는 어땠나.
“함께 작업한다는 듣고, 리딩을 마친 뒤 촬영에 임하기까지의 순간을 되새겨보면 굉장히 설렜다. 멋있는 배우란 함께한 배우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데 ‘이영애 배우님’을 통해 한 단계 더 발전한 것 같다”며, “같이 있으면 사람들을 편안하게, 기분 좋게,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배우이다.”
유재명 배우는 부산 출신이다. 프로필을 찾아보니 부산대학교 생명공학과를 나왔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부산대에 있는 연극동아리인 ‘부산대 극예술연구회’에서부터 연극에 매달렸고, 부산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연극 활동을 했다. 당시 부산에 있었던 소극장 ‘열린소극장’을 무대로 ’열린공동체’ 연극활동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에 단역으로도 출연했단다. 영화판 첫 연기였던 셈. 궁금해서 그해 부산영화제에 가 봤는지 물어보았다. “못 갔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연기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어머니가 장사를 하셨는데, 나는 극장에 앉아 종일 영화를 봤었다.” (부산의 ‘노동회관’이었단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관계로 알게 모르게 마음의 한 곳에는 소명감이 있는 듯하다.
“부산에서 연기를 하고 싶다. 작년에 부산에서 모여 한번 연극을 했었다.”고 밝힌다. 그가 부산에서 활동하던 시절 함께 연기했던 배우 중에는 태인호가 있단다.
- 그 시절 어떤 작품을 무대에 올렸었나.
“이런저런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고, 창작극도 썼었다. 나름 괜찮은 연출이었다.”
- 연출욕심은 없는지
“지금은 전혀 없다. 어떤 나라의 대통령보다 바쁜 게 연출이라고 하지 않는가. 결정할 것이 너무 많고, 많은 걸 이해하고 설득하고 세계관을 만들어 내야한다. 자기 배우를 사랑해야하고, 경제적인 것도 따라야한다. 몇 작품 하면서 내 몫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미련 없이 그만 뒀다.”
- 좋은 연기란 어떤 것인가.
- “좋은 연기, 나쁜 연기는 없다. 마찬가지로 좋은 연기자 나쁜 연기자도 없다. 다만, 잘 어울리는 배우냐는 것이다. 잘 안 어울린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연기에 완벽하다는 것은 없으니까. 무수히 많은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경험이 많은 배우에게 그런 게 있다. 최근 개성 있는 많은 배우들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유난히 많은 작품에 출연한 유재명은 “와, 그렇게 많이 출연했었나.”라며 “출연의 기준은 없다. 계속 가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같은 시기에 개봉된 영화 <윤희에게>의 임대형 감독의 데뷔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도 얼굴을 비친다. ‘우정출연’이라고 나온다. “출연하고 술 마시며 우정을 쌓았다.”고 밝힌다.
유재명 감독은 현재 JTBC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촬영 중이다. 이날 인터뷰에도 짧은 헤어스타일로 ‘다작 현역 배우’의 아우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 달 27일 개봉한 영화 ‘나를 찾아줘’는 62만 여명이 관람했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