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를 감독한 안국진 감독이 실로 오랜만에 ‘극장용 영화’를 내놓았다. 장강명 작가의 날카로운 풍자고발 소설 <댓글부대>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대세 배우 손석구와 김성철, 김동휘, 홍경이라는 핫한 배우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기존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팩트’가 아니라 ‘스토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그 ‘스토리’는 한낱 ‘상상’인지 ‘현실’인지 되묻게 만든다. 개봉을 앞두고 만난 안국진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팩트 체크’ 들어간다. 영화는 오늘(27일) 개봉한다.
“부끄럽지는 않게 나온 것 같다. 10년 뒤에 봐도 촌스럽지 않은, 그 때 봐도 지금 이야기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만족한다.”고 자평했다.
Q.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이후 오랜만에 영화를 만들었다. 그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안국진 감독: “그 동안 작품 열심히 준비했는데 하다가 안 된 것도 있고, 그 사이에 단막극을 두 편 했다. 짧게 해봐야지 했는데 1년씩 지나가더라. 이 작품도 몇 년 걸린 셈이다.”
* 안국진 감독은 그 사이 tvN 단막극 <내 연적의 모든 것>(2018)과 웨이브 오리지널/MBC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2020)를 연출했다. *
Q. 원작소설 <댓글부대>는 베스트셀러이고, 사회상을 담고 있다. 영화로 만드는 부담감은 없었는지.
▶안국진 감독: “부담은 없었다. 제안을 받았을 때 이게 그렇게 인기 있는 소설인 줄 몰랐다. 한때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바이블처럼 읽혔다고도 한다. 실제 나도 재밌게 읽었다. 내용은 재밌는데 영상화하기에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원작과는) 관점을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반적인 각색이 아니라 새로 쓰겠다는 각오로 시작했다.”
Q. 원작소설에서 의도적으로 바꾼 것은 어떤 것인지.
▶안국진 감독: “소설은 팀 알렙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나는 임상진 기자 이야기를 더 많이 하려고 했다. 영화 전체를 기자가 제보를 받아 기사를 쓰는 과정으로 보고, 그걸 틀로 해서 시나리오 작업을 한 것이다. 기자를 중심으로 하면서 팀 알렙에 대한 묘사는 배제할 생각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전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20대 남성의 시각처럼 묘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Q. 임상진 기자는 전형적인 정의의 기자 상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기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안국진 감독: “그 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했다. 지금은 인터넷이 고도화 되었고, 이미 도구가 되었다. 이 도구를 어떻게 쓸 것인가가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이다. 그 힘은 기자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범람하는 가짜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조금은 풍자극처럼 흘러갔으면 좋을 것 같았다. 관객 입장에서는 어느 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보이는 영화일 것이다.”
Q. 계속 캐릭터의 의도, 행동, 발언 등을 의심하며 보게 된다.
▶안국진 감독: “작품을 준비하며 기자들을 취재했다. 주로 신입 기자들을 만나 그의 고충과 에피소드를 들어보았다. 아직은 언론에 대해 적응이 덜 된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제보자의 말로 접근하게 된다. ‘경찰도 아니고 FBI도 아니니’ 증거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기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기자가 대상화가 안 되면서 직업군에 대한 풍자가 가능할 것이다. 대중들은 엔딩이 새롭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임상진조차 끝까지 의심하며 본다면 아귀가 맞을 것이다. 그렇게 끝나지 않는 엔딩이 주는 쾌감이 있을 것이다. 기자에 감정이 이입 되든, 한발 떨어져서 보든, 아니면 팀 알랩의 입장이 되든 어디에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Q. 기자라면 팩트체크에 충실해야할 것인데, 실제 임상진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국진 감독: “그렇다. 하지만 부조리극처럼 그쪽에 집중하거나 매몰되면 애초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멀어질 것이다. 전혀 포커스가 다른 데로 갈 것이다. 관객을 무시한다기보다는 관객을 속이는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기자라면 모르겠지만 일반인이 보자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상한 데가 있겠지만, 전혀 그런 것 없이 따라가는 임상진이 억울할 것이다. 그렇게 따라가는 심플한 경제적 선택을 한 것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항의전화’를 확인해 봤을까.”
Q. 오락영화이며 고발영화이다. ‘기업’관련 해서는 무서울 수도 있는 수준이다.
▶안국진 감독: “그런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상황, 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누구에게 더 큰 잘못이 있는지를 환기시키고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모든 게 의심스러울 것이다. 기자마저도 의심하게 된다. 기자든, 팀 알렙이든, 고(高)관여층이든 아니든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런 현상을 알고, 오락적으로 즐기면서 이 ‘찝찝함’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끔 하는 게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안국진 감독: “영화흥행의 요소에는 재생산되는 지점이 있다고 본다. 이젠 평론가마저도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일반인도 평론가만큼 많이 알고, 해석하고, 그 정보를 공유하며, 재해석된다. <댓글부대>는 그런 문화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흐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영화가 끝나고 나서 관객들은 인터넷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분명 영화를 보기 전과 달라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영화는 계속 끝나지 않을 것이다.”.
Q. 영화에 등장하는 ‘만전전자’가 어디를 모티브로 한 것인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실명을 못 쓴 것인지, 안 쓴 것인지. 법률 검토를 거쳤겠지만 그래도 들어보고 싶다.
▶안국진 감독: “법률 검토를 당연히 거쳤다. 실명은 허락 없이 쓸 수 없다. 영화에서는 ‘사실적시명예훼손’이란 것도 이야기한다. 그 모든 것을 블랙코미디처럼 사용하고 싶었다. 이 영화 자체에도 걸려있는 문제처럼, 마치 영화 만드는 사람이 약간 겁먹은 것처럼 보이게 말이다. 모자이크 처리하며 용기를 내는 것 같지만 그걸 벗겨봐도 가명인 것처럼. 그런 현실마저 이용하고 싶었다.”
Q. 극중 ‘김준한’이 댓글부대의 배후에 대해 ‘정부보다 더 크다’는 식으로 말하는 장면이 있다. 감독의 생각이나 의도는 어떤지.
▶안국진 감독: “더 클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가 공개되면 제가 슘겨 놓은 장치들을 어디까지 발굴하게 될지 궁금하다. 영화에 나오는 것들, ‘찡뻤킹’이 올린 게시물은 기존에 많이 돌아다닌 것들이다. 그게 현실로 엮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것들에 대해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볼 것 같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Q. ‘팀 알렙’으로 마오는 찻탓캇, 찡뻤킹, 팹택은 세 사람이면서 한 사람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마치 다중인격자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원래 어떻게 만들어진 캐릭터인가.
▶안국진 감독: “그것에 대한 답을 피하는 것은 아니다. 의도 자체가 여러 가지로 해석되게 만든 측면이 있다. 팀 알렙의 구성원 한 사람, 혹은 전체, 임상진 조차도 모두 재해석될 여지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소소한 것들을 찾아 재해석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것들 찾아, 재해석하고, 의심하면서 미궁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쾌감에 가까운 놀이문화가 되기를 기대한다. ‘저 캐릭터는 어떤 곳에서 있었는데, 여기선 없지?‘ 하는 것도 있다. 숨겨놓은 장치 찾기와 재해석을 기대한다.”
Q. 손석구 배우에 대해서.
▶안국진 감독: “손석구 배우가 <뼁반>에 나올 때부터 언젠가 캐스팅하고 싶었다. 대사 없이 운전하는 장면이 있는데 엄청 시선을 사로잡았다. 뭔가 뉘앙스가 있는 표정으로 디테일하게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영화 감독한 한준희가 친구인데 ’저 배우 어떻게 캐스팅 했어?‘라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이번에 운 좋게 1순위로 캐스팅할 수 있었다.” (완전히 스타덤에 오르기 전에 캐스팅한 것이다) “정말 그렇다. 사람이 떠서 중간에 변할까 걱정했는데 그런 게 없었다. 나는 그가 톱스타가 되는 과정을 다 지켜봤다. 그게 신기하더라. 나 같으면 정신병 걸릴 것 같다고도 했었다. 나보다 훨씬 성숙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했다. 내가 멘탈이 나갈 때마다 붙잡아주는 사람이다. 말을 놓으라고 그랬지만, 몇 번 시도했는데 안 되더라. 정신적으로 형 같다. 하하.”
Q. 손석구 출연 장면 중에 놀랐던 장면을 하나 뽑는다면.
▶안국진 감독: “마지막에 표하정 편집국장(이선희)에게 ’다 알겠어요‘하며 뛰어오는 장면. 거기가 너무 귀여웠다. 자기가 다 당해놓고 뭐가 좋다고 웃으면서 ’제가 속은 게 맞아요‘라고 말한다.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상황에서 그 섹시하다는 배우가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는 게 쾌감이 있었다. 소파에 앉아있는 것도. 그 뉘앙스, 세밀한 표정을 표현해내는 방식이 좋았다. 본인이 유머에 대한 욕심이 있어 뭔가 나온다. 자기는 조금이라도 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모습이. 저랑 취향이 맞는 것 같다.”
Q. 영화작업 사이에 단막극을 찍었는데 소감은.
▶안국진 감독: “영화작업과는 차이가 엄청 컸다. 10회 차 촬영도 안 되었다. 8회 정도 했었나? 확실히 영화가 밀도가 있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고민할 시간과 스태프와 의견 나눌 기회가 충분했다. 배우에게도 충분히 설명하고 해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천지차이였다. 계속 영화를 하고 싶다. 이번에 <댓글부대>를 하고 나서 영화가 더 좋아졌다. 영화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왜 영화인가 스스로에게 답이 찾아졌다고 생각한다.”
Q. 그럼, 영화감독의 꿈은 어떻게 생겼었나.
▶안국진 감독: “초등학생 때부터 꿈이 영화감독이었다. 그때부터 영화광이었다. 동경만 하다가 중학생 때는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TV에 나오는 그 사람들 학벌을 보고 어렵겠다고 포기했다. 서울대더라. 그렇게 영화를 보기만 하다가 스물부터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다. 집에서 반대해도 뿌리치고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Q. 이 영화에 어떤 댓글이 달렸으면 하는가. 직접 댓글을 쓴다면?
▶안국진 감독: “‘영화 만든 사람 미친 놈들인 것 같다’, ‘다시는 없을 괴랄한 온갖 짓들을 다하구나.’ 이런 댓글?”
'괴랄하다'는 '괴이하고도 발랄하다'는 요즘 말이다. 괴랄한 영화 <댓글부대>는 오늘(27일) 개봉한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