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제들>(2015)과 <사바하>(2019)에 이은 장재현 감독의 세 번 째 장편영화 [파묘]가 지난 달 22일 개봉되어 32일만인 24일 오전,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난 21일(목), 천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둔 장재현 감독이 기자들을 차례로 만나 그 소감을 ‘미리’ 밝혔다. 마지막 인터뷰 타임에서 ‘아직도 덜 한’ 이야기가 있는지 물어봤다. 없는 듯하다. 이미 수십 차례는 반복해서 ‘파묘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 밝힌 같다. 천만관객 영화감독의 복이자, 고통일 듯하다. 마지막으로 별신굿(?)을 하듯 ‘파묘’를 던져놓고, 다음 작품으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Q. 영화 개봉 뒤, 관객이 몰리면서 유튜브엔 각종 [파묘] 해설이 넘쳐난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영화에 집어넣은 것들이 많다. 관객과의 GV나 기자인터뷰에서 대답하기에 힘들었던 것은?
▶장윤현 감독: “없었던 것 같다. 각본 작업할 때부터 예민하게 공을 들였다. 썼다가 지웠다가, 뜯었다 붙였다를 거듭했다. 5년을 잡고 있었던 시나리오이다.”
Q. 사실, 일본관련 이야기 나오기 시작할 때 놀라웠다. ‘세키가하라 전투’와 ‘은어와 참외’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게 뭐지?’ 했다. 나중에 해설한 것 보고 감탄하게 된다. 이게 정말이지 하루 이틀에 나올 이야기의 힘이 아닌 것 같은데.
▶장재현 감독: “원래 우리 세대가 좋아했던 것이다. 나도 일본 만화책이나 소설 좋아했다. 특촬물도 좋아하고. 나는 일본문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다. 많이 공부했고,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관객들이 올린 해설 보면서 알게 된 것도 있다. 의도한 것도 있고. 그 시절 일본에 (우리나라의) 참외는 없었다. ‘마쿠와’라고 말한다. 수백 년 전 사람의 고어(古語)이니 화림(김고은)이 그건 알아듣지 못하고 ‘은어’(銀魚/あゆ)만 알아듣고 대답하는 상황이라고 배우랑 이야기했다.”
Q. 올해 운수는 어땠는가. 관객이 이렇게나 많이 올 줄 예상했는지.
▶장재현 감독: “사주 같은 것은 안 본다. 손익분기점만 넘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 만들 때 재미있게 만들자는 생각뿐이었다. 한 신도 재미없는 신은 만들지 말자는 각오였다.”
Q. 박지용(김재철 배우)의 고모 역할로 박정자 배우가 등장할 때 놀랐다. <이어도>에서의 무당 신이 떠올랐다.
▶장재현 감독: “굿할 때 박정자 배우가 등장하면 그렇게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나이에 그 정도 카리스마를 가진 게 드물다. 진짜 출연을 졸랐었다. 은근히 앞뒤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캐릭터라 생각했다.” (보국사의 보살(이종구) 역할을 맡은 배우의 목소리가 정말 좋았다) “그 분 성우 출신이다. 영화에도 여러 작품 출연하신 유명하신 배우시기도 하다.”
Q. 장르물에서는 귀신과 혼령을 다룬다. <파묘>에서는 일본의 ‘정령’이야기가 나온다.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장재현 감독: “우리나라에도 빗자루 도깨비 같은 게 있긴 하다. 일본은 애니미즘(Animism,精靈信仰)이 발달되어 있다. 콘텐츠로 많이 소비된다. ‘포켓몬스터’나 ‘일본요괴’들이 그렇다. 제가 워낙 그런 것 좋아해서 영화로 한 번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소재하고도 잘 붙고 말이다.”
Q. 장르 마스터로서, 자신만의 베스트를 뽑는다면?
▶장재현 감독: “‘엑소시스트’와 ‘드라큘라’.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이다. 내 인생영화였다.”
Q. <사바하>와 <파묘>를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이 영화 보고 <사바하> 찾아보는 사람도 많아지고.
▶장재현 감독: “<사바하>는 문학적인 작품이었다. 소설로 읽으면 재밌는 요소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찬찬히 뜯어보면 대게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 <파묘>는 육체파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직관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Q. 중국 네티즌 사이에 <파묘>의 얼굴 묵경(墨經) 장면 때문에 설왕설래 하지만 많은 영화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대만과 홍콩에서는 개봉되어 인기이다. 중국 영화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장재현 감독: “뭐, 곧 <패왕별희>가 한국에서 재개봉된다고 한다. 나는 중국영화 진짜 좋아한다. 옛날부터 중국배우랑 같이 작업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개봉하기 힘들다고 들었다. 중국에서 쉽게 잘 개봉하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한다.”(중국배우 누구?) “곽부성이다. 옛날부터 찐팬이었다. 옛날에 <친니친니>라는 영화에 반했다. 유목연으로 나온다. 곽부성이 부산영화제 왔을 때 가서 만났다. 악수까지 나눴다. 같이 작업하고 싶다.”
Q. 어제 <유퀴즈온더블럭> 나온 것 잘 봤다. 영주 출신이라는데 부석사는 몇 번 가봤는지.
▶장재현 감독: “갈 데 없으면 간다. 그 앞에 유명한 묵밥집이 있다. 묵밥 먹으려 저희는 자주 간다. 계단이 높아서 올라가진 않는다.”
Q. 한 우물을 파고 있다. 언젠가 미국이나 해외로 진출하여 더 큰 뜻을 펼칠 생각이 있는지.
▶장재현 감독: “한국에서 계속 작업을 하고 싶다. 그게 좀 더 자유로울 것 같다. 큰 버젯의 블록버스터를 만들 마음도 없다. 이런 류의 영화를 계속 깊이깊이 파고 싶다. 그게 재미가 있다. 할리우드에 가서 일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진짜 잘 만들고 싶다.” (영어 때문에?) “하하. 영어 은근히 잘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Q. 계속 이런 소재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평소 소재를 어떤 식으로 찾고 있는지. 특별히 눈여겨보는 것이 있는지.
▶장재현 감독: “특별하게 눈여겨보는 것은 없다. 오히려 고전영화를 많이 본다. <파묘>는 옛날에 보았던 <피라미드의 저주>의 영향이 있다. 이건 찾아볼 수가 없다. 어릴 때 유선방송에서 본 기억이 있다. 한 고고학자가 피라미드에서 관을 여는데, 같은 시각 뉴욕에서 딸이 태어나는 것이다. 미이라의 영혼이 뉴욕에 있는 딸에게 옮아 붙는다.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강시도사> 같은 고전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도 다소 있다. 그런 고전영화에서 많이 참조한다. <검은 사제들> 뒤에는 <엑소시스트>라는 명작이 있다. <엑소시스트>의 구마의식은 영화 뒷부분에 잠깐 등장한다. 난 그걸 한 시간 정도 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고전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더 하고 싶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내 안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 <파묘> 하면서 ‘강시’를 떠올리시는 관객이 있을 것이다. 관을 마차에 싣고, 안개 낀 숲을 달려가는. 코미디인데 긴박감이 넘치는 장면이 있다. <파묘>에서 밤에 관을 싣고 내려오는 장면에서 그런 정서가 있지 않을까.”
Q. 아, 그러고 보니 관을 이전할 때 갑자기 비가 내린다. 그런 장면은 살수차를 이용하는가?
▶장재현 감독: “야외에서 찍을 때는 빛이 중요하다. 낮에 해가 떠 있을 때 물을 뿌리면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식을 쓴다. 구름이 낀 날 물을 뿌리면 아주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촬영장비가 물에 젖어 곤란한 문제가 많이 생긴다. 해 뜨기 전, 떨어지기 전 큰 샷을 찍고, 햇빛을 컨트롤해야 한다. 야외 신이 힘들다.”
Q. 영화에서 화림(김고은)과 상덕(최민식)은 자신들의 직업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을 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또 다른 중요 직업군인 ‘장의사’(유해진)는 왜 따로 내레이션이 없는지.
▶장재현 감독: “처음 챕터 제목은 ‘음양오행’이 아니라 ‘음양과 오행’으로 생각했었다. 무속인의 세계는 ‘음양’이다. ‘빛이 있는 세상과 빛이 없는 어둠 속의 세상’이라고. 그렇게 화림이 음양에 대해 이야기하고 뒤에 최민식 선배가 오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건 누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음양과 오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해진까지 한다면, 또 이도현이 안 하는 게 이상할 것이다. 네 명 다 하면 너무 많고. 그래서 ‘음양’과 ‘’오행‘ 두 파트로 나눠 생각했다.”
Q. 공교롭게도 화림도 ‘100퍼센트’, 상덕도 ‘100퍼센트’라는 대사를 한다.
▶장재현 감독: “그렇다. ‘묫바람이 확실한 건가요’에 대해 김고은이 그렇게 말하고, 뒤에서 김고은이 ‘쇠말뚝 있겠죠?’ 물으니 최민식 배우가 ‘100프로’라고 대답한다. 그게 전문가스러웠다. 수미상관 맞춰주기도 하고.”
Q. 등장인물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관객들이 한 번씩 찾아보고, 감독의 의도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영화에서 김재철의 조부가 중추원 부의장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도 역사적인 인물인가?
▶장윤현 감독: “‘박근현’이다. 이유가 있겠죠?(하하) 가족의 이름들에 이유가 있다. 여러 가지를 섞었다.”
Q. 유해진이 성경 구절을 읊는 장면이 있다.
▶장윤현 감독: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장 12절이다. 세 명이서 협동하는 캐릭터인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았다.” (그런 구절은 어떤 식으로 찾는가?) “유명하지는 않은 문구다. 그냥 열심히 찾는 것이다. 이 장면과 잘 어울리는 걸로. 성경은 [창세기]만 열심히 읽고 있다. ‘수학의 정석’ 집합만 열심히 하듯이. 그런데 성경구절은 의외로 찾기 쉽다. 포털에 ‘협동 성경구절’치면 쭉 나온다.”
Q. 보국사 안내표시판의 표시가 정말 풍수마크인가.
▶장윤현 감독: “그렇다. 시대별로, 파(派)마다 조금씩 다르다. 영화에 나오는 것은 조선시대 풍수마크로 알고 있다. 한국에 얼마 없는 풍수지리사가 알까 모를까.”
Q. 사실 <파묘>가 천만 관객이 든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극장 상황이 여전히 녹록치 않다. 한 영화에 관객이 쏠리는 경향도 있고. 흥행감독으로서 어떻게 보는지.
▶장재현 감독: “정말이지 여러 영화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흥행 기운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다음에 <댓글부대>와 <범죄도시4>도 기대되고, 작은 영화도 골고루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극장이 살아났으면 한다. 일단 잘 되면 좋겠다. 코로나 지나면서 극장을 찾는 기쁨이 잊히는 것 같다. 극장을 찾는 즐거움을 다시 환기시켰으면 한다.”
Q. <사바하>때 같이 걸린 영화가 무엇이었나.
▶장재현 감독: “<캡틴 마블>과 <증인>, 정우성 나왔던 영화가 같은 시기에 개봉되었다. <사바하> 때 느낀 것은 그게 <검은 사제들> 감독이 하는 것이라 봤는데 스타일이 다르다며 초반에 반응이 안 좋았다. <파묘>도 ‘사바하’ 좋아하는 사람이 와서 보고는 ‘어 이게 뭐야?’하며 안 좋게 보기도 한다. 항상 그렇다. 대중들은 어렵다.”
Q. 영화감독의 꿈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장재현 감독: “영상학과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시골에서 살아서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되는 걸 상상도 못해봤다. 그러다가 길에서 영화 찍는 것을 보고 ‘영화과’라는 것이 있고 ‘영화감독’이란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군대 가서 입시공부 했다.”
Q. 단편을 많이 찍었는지? 전부 이런 류의 작품이었나?
▶장재현 감독: “아니다. 단편은 <열두 번 째 보조사제>만 그렇다. 이것저것 찍어봤는데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처음 이 장르에 접근할 때 이런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보고 싶어서 만들었다.”
Q.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장재현 감독: “습작도 있고. 쓰다가 만 것도 있다. 여러 가지가 있긴 하다. 메모지에 몇 도막 쓴 것도 있고. 지금은 오롯이 <파묘>를 즐기고 싶다. 5년 동안 고생한 작품이 지금도 극장에 걸려 있으니. 즐기고 싶다. 지금도 1주일에 두 번 정도 <파묘>를 본다. 요즘 영화는 (극장에) 금방 걸리고 금방 내려간다. 걸려 있는 동안은 또 보려고 한다. 아직은 헤어질 결심은 못했다.”
Q. 혹시 <파묘>에 대한 자문자답을 한다면?
▶장재현 감독: “아, 챕터별로 제목이 있는데 네 번째가 ‘동티’ 챕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동티’또는 ‘동토’라고 말한다. 그게 묘를 파던 친구가 ‘형님, 내가 동티났어요’라는 의미로 쓰였다. ‘동티’에는 ‘건드리지 말아야 될 것을 건드려서 부정이 옮는다’는 뜻이 있다. 두 번째 관이 나오고 화림이 ‘우리, 이거 건드리지 마시죠’ 할 때처럼 그런 의미도 있다. 아무도 이 이야기는 안 해 주시더라. 그런 결이 있었다. 그 챕터 제목 정할 때 그 친구 한 명으로만 챕터 제목 적기에는 너무 단편적이라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건드리지 말아야할 것을 건드렸다는 것을, 관통하는 의미의 제목이다.”
장재현 감독 집에는 TV가 없다고 한다. 핸드폰에는 OTT앱도 안 깔렸단다. 당연히 자신이 출연한 <유퀴즈온더블럭>도 못 봤다고 한다. 참, 미스터리한 감독이다.
[사진=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