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1997)과 <텔미 썸딩>(1999)의 장윤현 감독이 <가비>(2012) 이후 실로 오랜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추자현과 이무생이 주연을 맡은 <당신이 잠든 사이>이다. 부부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아내는 ‘해리성기억상실’로 2년여의 부부관계를 잊어버린다. 과연 이 부부는 어떤 사이였을까. 행복했을까, 사랑했을까. 추자현은 애절하게, 애잔하게, 처절하게 남편과 마주한다.
“영화 홍보를 위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이제는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활동하던 때랑 시스템이 달라진 것 같다. 그래서 데뷔한 신인 같다.”며 인터뷰 자리에서 말문을 연다.
Q. 영화는 무척 오랜만이다. 매체들과 인터뷰를 가지는 것도. 소감은.
▶추자현: “중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30대 시절을 통틀어서 말이다. 한국에서는 본의 아니게 <동상이몽>으로 복귀했다. 작품 들어가면서 또 임신을 하였고 연기 복귀가 늦어졌다. 또 드라마만 하다 보니 영화로 스크린 앞에서 인사하는 게 처음인 같다. 정말 신인이 된 것 같다.”
Q. <당신이 잠든 사이>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추자현: “멜로를 하고 싶었다. 내가 20대, 30대에 연기를 할 때는 멜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 나이에 멜로를 할 기회가 많았었는데 말이다. 그때는 오히려 장르물에서 센 캐릭터를 많이 했다. <사생결단>과 드라마 <카이스트> 같은. 꽁냥꽁냥 연애하는 멜로보다는 임팩트 있는, 개성 있는 연기하는 걸 좋아했다. 많은 작품을 중국에서 할 수 있었다. 30대가 되어 성숙한 아름다움이 멜로에 가미되었을 때 감정연기가 빛을 더하는 것 같다. 즐기면서 감사하게 생각하며 연기에 임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말을 하는 상대와 멜로 연기를 하고 싶었다. 우효광(于晓光,위샤오광)씨 만나서 결혼했다. 사랑받고, 상대를 믿을 수 있다는 느낌을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이 작품이 시나리오가 온 것이다.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Q. 멜로에 대한 갈증은 풀린 것인가.
▶추자현: “그런 것 같다. 나는 뭘 하더라도 정말 열심히 한다. 잘 한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결과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 때 난 정말 열심히 했어’라는 걸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찍은 작품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쏟아 부었다. 연기, 멜로 연기에 대한 갈증이 해소가 되었다.”
Q. 저예산 작품을 하며 오순도순 즐거웠을 것 같다.
▶추자현: “우선은 다들 한국말을 하니. 현장에서 스텝들이 말하는 게 다 들리는 게 좋았다. 영화 현장은 특별하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의 컨텐츠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무생 배우, 장윤현 감독이랑 열정적으로 작업한 게 좋았다. 영화는 드라마보다 그런 소통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그런 게 좋아서 예전에도 영화를 많이 꿈꿨었다. 예전처럼 배우들과 스텝들이 풋풋한 열정으로 으샤으샤하며 찍었다.”
Q. 덕희는 불우한 과거를 갖고 있다. 사연이 많은 인물을 어떻게 연기했는지.
▶추자현: “저도 덕희처럼 결혼했고, 비슷한 가정환경이 있다 보니 연기에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더 힘들더라. 굳이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전문직을 연기하거나 할 때는 현장도 많이 가고 노력을 한다. 그냥 삶 자체를 연기해야하는데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웠다. 이걸 따로 계산하지 말고, 그냥 날 것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내겐 과감한 도전이었다. 관객에게 어느 정도 전달될지 모르겠다. 부족하거나 과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감독님이 잘 잡아주셨고, 이무생이라는 좋은 배우와 합을 잘 맞출 수 있었다.“
Q. 남편을 연기한 이무생 배우와의 연기 합은 어땠는지.
▶추자현: “이무생 배우와는 처음 연기를 같이 했다. 이무생 배우는 앞으로 더 잘 될 것 같다. 이무생 배우를 처음 눈여겨 본 것은 <부부의 세계>였다. 센 역할이거나 독보적인 캐릭터 연기가 아닌데 김희애를 지켜보는 따듯한 후배 의사를 잘 소화해준 것 같았다. 많이 접한 얼굴도 아닌데 유독 시선이 가더라. 이 영화 참여한다고 했을 때 감독에게 그랬다. ‘진짜요?’”
Q. 장윤현 감독도 한동안 중국에서 영화 작업 했는데, 중국에서 만난 적이 있는가.
▶추자현: “장 감독님과는 접점이 없었다. 중국은 워낙 넓으니까. 한국 와서 감독님께 그 이야기 들었다. 이번 작품은 예산도 적고, 한 달 남짓 빨리 찍어야 해서 사담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감독님은 본인 이야기를 하는 분은 아니시다.”
Q. 중국에서 연기하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연기하는 느낌은 어떤지.
▶추자현: “중국에서 활동한 것은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제가 우리나라 여배우 중에서는 독특한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20대 때에는 개성 있는 역할을 많이 하다가 훌쩍 중국으로 갔다. 거기서는 또 하기 힘든 배역을 많이 했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연기한다거나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경험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연기력과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공부가 되었다. 그런데 나이를 점점 먹으니까 한국 생각이 간절했다. 중국에서는 더빙으로 연기를 한다. 다시 내 나라에서 내 나라말로 연기를 하고 싶었다. 20대에는 감독님이 원한 트랜드가 있었다. 30대 때 중국에서 연기할 때도. 지금은 또 다르다. 한국에서 데뷔하고, 중국에서도 데뷔하고, 또 다시 돌아와 데뷔하는 것이다. 이번에 연기하면서 내 연기가 올드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다른 배우들은 계속 분위기 맞춰가며 트랜드를 쫒아갔을 텐데. 난 다시 왔으니까 튀면 안 된다. 10년 동안 동시녹음도 안 해 봤다. 지금 관객들이 봤을 때 이상하지 않을까.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제 또래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공부한 것이다. 다행히 욕은 안 먹었다. ”
Q. 후반부 시어머니와의 통화 장면에서 감정이 최고조로 폭발하고 만다.
▶추자현: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저도 만만치 않은 어린 시절과 20대를 경험해 본 사람이다. 정신이 나갔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시나리오를 보고 그렇게 느껴졌다. 남편이 죽은 것도 아직 실감이 안 나고 넋이 나간 상태인데, 시어머니는 내 옆에 있어주지 않고. 누군가를 원망해야 하는데. 나도 미칠 것 같고, 시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내 탓을 하는 것 같고.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내 나이에서는 공감하는데, 이걸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눈빛, 표정, 딕션, 제스처 모두. 큰 스크린에서 볼 때 공감할 수 있게, 훅 와 닿게 연기하는 것이 숙제였다. 감독에게 말은 안하고. 핸드폰을 저기 두고, 동선에 대한 리허설만 한 상태에서 어떻게 연기해야할지 저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를 펼쳤다. 계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장면이 나온 것이다. 나중에 시어머니 목소리가 입혀질 것이다. 내가 옛날에 힘들었던 그것을 떠올리며. 내가 어떤 연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관객 분들이 저걸 어떻게 보실까. 언론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연기 못했다’고 쓰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Q. 목소리 톤은 어떻게 연기하였는가.
▶추자현: “목소리 톤에 신경을 많이 썼다. 20대엔 한국에서, 30대엔 중국에서 활동했다. 중국에선 더빙을 하니 제 육성이 방송에 안 나가니 표정과 눈빛 연기에 집중을 많이 했었다. 40대에 한국에서 다시 연기할 때 목소리 톤 잡는 게 어렵더라. 20대가 아닌 40대 연기를 하는 게 어려웠다. 내가 작품에서 내 한국말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오래 되었으니. <아름다운 세상>(JTBC,2019)에서 내 목소리 톤이 계속 떠있었다. 10회분 촬영할 때 1회가 방송되었는데 그걸 보고 너무 놀랐다. ‘도’라 생각했는데 ‘미’나 ‘파’정도였다. 그래서 11회에서부터 톤을 잡기 시작했다. 후회하거나 다시 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 물으신다면 모든 작품을 열심히 했기에 돌아가더라도 더 열심히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세상>의 톤은 작가님의 금쪽같은 대사를, 톤을 좀 더 무게감 있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 다음에 '가족입니다'. '그린마더스클럽', '작은 아씨들', 수리남' 할 때는 캐릭터에서 톤을 잡는데 노력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영화적으로 반전 요소가 있다. 이무생 배우와 둘이 끌고 가는 것이라 너무 밋밋하거나 떠있는 느낌을 주면 보기에 힘들 수가 있다. 그 점에 주의를 기울였다.”
Q. <가족입니다>나 <수리남>에서 느낄 수 있는 배우의 단단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추자현: “추자현이라는 이름도 특이하다. ‘여성여성한’ 것도 아니고, 제가 걸어온 길도 결이 좀 다른 편이다. 개인적인 삶도 평범하지도 않고. 그렇게 따지면 사연 없는 집이 없겠지만 말이다. 내 생각엔 새로운 것을 많이 해본 것 같다. 어린 나이에 혼자 연예계 들어와서 ‘연기의 연’자도 모르면서 연기에 도전했고 그렇게 업계에서 살아남았고, 그 성향이 타국에 가서도 이어진 것이다. 그렇게 혼자 버티는 것이 차곡차곡 쌓인 것이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예전의 그 막무가내로 열심히 하던 추자현에게 조금의 노련미, 말랑말랑함. 그리고 뻔뻔함도 더해진 모양이다. 그게 <가족입니다>나 <그린마더스클럽>에서 잘 나온 모양이다. 제가 끌고 가는 것보다는 드라마에 긴장감을 주는 역할이다 보니. 툭툭 내뱉은 대사에 제 외모도 한몫한 것 같다. 눈도 큼직큼직하고 눈매도 강렬하니. 저는 쳐다보는데 보는 사람은 그렇게만 느끼지 않은 모양이다. 신인 때 그런 눈빛 때문에 저를 캐스팅해 준적도 있다. 이제 40대가 되어 힘은 풀린 것 같지만 톤은 강해진 모양이다. 이제 저만의 색깔로 연기를 잡아간다고 생각한다.”
Q. 나이 들어가면 연기의 변화를 실감하는 모양이다.
▶추자현: “그렇다. 예전엔 힘 조절을 잘 못했던 것 같다. 배우도 그렇고, 인생도 다 그런 것이다. 20대에는 그 열정으로 버티는 것 같고, 30대엔 뭔가를 좀 알아서 권태기가 올 것도 같았고. 이제 40대에 그런 힘 조절 시기가 온 것 같다.”
Q. 이제 ‘여배우’ 추자현이 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은 어떤가.
▶추자현: “신인 때는 그런 게 없었다. 나를 선택해 주면 그냥 좋았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남자 배우 못지않은 흡입력 있는 느와르 장르의 빌런을 해보고 싶다. 느와르에서는 남자배우의 흡입력이 세다. 여자는 어쩔 수 없이 보호본능 같은 게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두려움 없는 강렬한 빌런을 해보고 싶다. 나이가 어리면 절대 나올 수 없다. 40대 후반에서 50대의 여배우가 보여주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선과 악이 완전하게 맞붙는 그런 역할 말이다. 기자님 잘 써주세요. 그런 대본 들어오게.”
** 추자현 배우는 이 이야기를 하며 두 눈이 반짝거렸고, 팔 근육이 꿈틀거렸다. 빌런에 대한 욕망이 안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저 빌런할 수 있어요!!!”라고. **
Q. 많이 유해진 느낌이 든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영향인가, 아니면 중국 연예활동 결과인가.
▶추자현: ‘제가 말랑말랑한 것은 중국활동 때문은 아니다. 사실 중국에서 활동할 때는 늘 긴장되어 있었다. 중국 배우와 합을 못 맞추면 또 튀는 것이니. 내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중국에서 잘 되었습니다‘라고 다들 써주셨지만 이야기를 안했다. 중국에서 연기하는 게 쉽지는 않다. 말랑할 겨를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훌륭한‘ 남편을 얻어 너무 감사하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엄마로서의 또 다른 책임가도 생긴다. 유해졌다면 아마 다채로운 경험의 결과 아닐까. 계속 긴장하였는데 어느 순간 유해지더라.“
Q. 아이를 낳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인가.
▶추자현: “솔직히 말하면 출산 전후보다는 남편을 만난 전후가 내 인생관, 가치관이 더 많이 바뀐 것 같다. 촬영하거나 중국에 출장가면 집안일은 남편이 다 한다. 연애할 때의 사랑이 설렘이라면, 남편 만나서 사랑의 힘을 많이 배웠다. 난 어두운 사람이었는데 지금 남편을 만나 밝아지고, 똑똑해지고, 말랑말랑해졌다. 항상, 매순간 남편이 고맙고, 감동받는다. 제가 늙고 아프면 저를 챙길 사람은 제 남편 아닐까요.”
추자현, 이무생 주연의 장윤현 미스터리 스릴러, 혹은 치명적 멜로 <당신이 잠든 사이>는 오늘(20일) 개봉한다.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