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2019)으로 1626만 관객을 불러 모은 흥행감독 이병헌이 기묘한 드라마 <닭강정>으로 돌아왔다. 이병헌 감독의 장기인 배우들의 티키타카와 끊임없이 쏟아내는 말맛의 향연 속에 우주선이 날아다니고, 닭강정이 배달되는 소동이 펼쳐진다. 과연 <닭강정>은 어떤 작품인지, 그 오묘한 정체불명의 맛을 탐구해 봤다. <닭강정>은 지난 1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Q. <닭강정>이 공개되었다. 주말 동안 네티즌 반응은 보았는지.
▶이병헌 감독: “<닭강정>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고 처음부터 예상을 했었다. 좋아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다. 그런데 싫어하는 분은 비슷한 것 같더라. 그런 반응은 기획단계에서 예상했던 것이라 댓글과 리뷰를 읽고 있다.” (‘불호’에 대한 댓글은 어떤 것인가?) “욕이다. X같은 것 또 만들었네라고.” (그럼 ‘호’는?) “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번 작품에 대해 분석하시는 분들도 있더라. 여태 내 작품에 대해 그런 적은 없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재미를 느끼셨는지 분석까지 하더라. 감사하다. 날 어디에 가둬놓고 이런 것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도 있다.”
Q. 원작 웹툰과 다른 지점은? 결말을 어떻게 바꿀 생각이었는지.
▶이병헌 감독: “웹툰을 처음 봤을 때 완결이 안 된 상태였다. 처음에는 이 작품이 편견에 관한 이야기, 외모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외계인이 등장하면서 여기서 끝내면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중반이후의 문제점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 주었기에 작가님도 아셨을 것이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주제를 확장시키는 게 큰 재미였다. ‘이런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세계관이 넓어지구나.’ 중반 이후의 이야기가 단점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좀 더 보충하며 이야기답게 만들고 싶었다. 중반 이후부터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갔는데 분량은 많지 않지만 시간이 좀 걸렸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보니 엔딩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난 것이다.”
Q. ‘극한직업’에 이은 또 한 번의 ‘닭’을 택했다. 닭에 대한 세계관이 있는가?
▶이병헌 감독: “닭에 대한 애착은 없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웹툰 찾아다니다 보니 웹툰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제작사들이 정말 발이 빠르더라. 재밌겠다 싶으면 이미 판권이 팔렸더라. 제작사가 처음 내게 이 작품(웹툰) 보여줄 때 ‘이거 하자는 것 아니에요. 감독님 재밌어 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내게 낚시질하는 것처럼. 내 안에 닭에 대한 이미지가 있나 싶었다. 작가님 그림체가 특이했다. 손가락도 5개를 다 안 그리더라.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게 뭘까. 말이 안 되는데... 그러면서 다음 화를 넘기고 있더라. 알면 알수록 더 재밌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Q. 이번 작품에서 도전이었던 지점이 있었다면.
▶이병헌 감독: “전체적인 무드 자체가 저에겐 새로웠다. 이전 작품에서는 현실감 있는 방향의 연출을 했다면 이번엔 만화적으로 그려 넣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런 것은 처음해보는 연출이었다. 미장센도, 연기도 만화적이고 연극적이다. 소재 자체의 어색함이 그런 것으로 메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연극적인 대사 톤도 그런 차원이다. 원작의 색깔을 살리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아주 재밌는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Q.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JTBC)이 이번 작품에서 소재로 많이 활용되었다. 이유가 있는지.
▶이병헌 감독: “코미디적인 장치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안 그럴 것이다.”(하하) ”<멜로가 체질> 본방 할 때의 아쉬움이 있다. 왜 처음 시작할 때는 그렇게밖에 사랑받지 못할까 생각이 나서 가져다 썼다. 지금은 OTT 통해 많이 봐주신다.“
Q. 류승룡, 안재홍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이병헌 감독: “두 사람만으로도 어벤저스 느낌이 든다. 각자 코미디 연기를 잘 하시는 분들이다. 이 두 사람을 모았을 때 작가로서 뿌듯함이 있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현장에서 편했다.”
Q. 대사가 과장된, 연극적 톤으로 진행된다. 이걸 끝까지 밀고 갈수는 없었을 것이다. 배우들과 톤을 어떻게 구상했는지.
▶이병헌 감독: “배우들과 대사 맞춰보고 그러지는 않았다. ‘우리 작품이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만화적이고, 연극적이고, 뮤지컬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습니다’라고. 배우들이 참 똑똑하다. 1부에서는 톤이 많이 올라간 연기를 한다. 만화적인 연기에 제스처까지 덧붙여서. 이게 시간 순으로 찍은 것이 아닌데 연기자들이 서서히 힘을 빼더니 중간 정도로 낮추었다. 사람들이 이야기에 쓰며드는 것이다. 배우들이 정말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다. 현장에서 연기나 톤에 대한 이견을 없었다.”
Q. ‘병맛’, ‘키치스러움’에 대해.
▶이병헌 감독: “그런 만화를 많이 본 영향도 있다. 이런 스타일 좋아한다.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원작에 그런 색깔이 있으니 그것만 고스란히 가져오면 키치적인 드라마가 될 것이다. 어정쩡하게 타협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고증하듯이 내가 좋아하는 원작 웹툰을 고스란히 옮겨보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새롭고, 재밌는 작품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Q.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 패턴이 보인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이병헌 감독: “그게 고민이다. ‘이게 읽혔구나, 내 이름이 걸림돌이 되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4~5년에 한 작품을 해야 하나. 제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을 생각하며 일을 하는 것이니까. 뒤에 나올 작품은 그런 게 아니니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코미디는 제가 좋아해서 하는 장르이다. 국내 영화팬뿐만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도 제가 고민해야하는 상대라고 생각한다. 해외 관객반응이 궁금해서 영화제 가서 해외관객 반응를 체크한다. 코미디는 하고 싶은데 해외에서 어필이 될까.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에게 코미디 장르는 어필하는 게 힘들다. <닭강정>은 어떨지 궁금하다. 이런 데이터가 계속 쌓이면 좋겠다.”
Q. 넷플릭스가 이런 ‘병맛 작품’을 픽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런 작품도 과감하게 볼 줄 아는 넷플릭스와 작업한 소감은?
▶이병헌 감독: “제작사와 작품 기획을 하면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가 할 이야기는 이미 찾은 것 같고, (우리끼리) 확인해 봤다. 용기를 좀 내야하는 원작이었으니 투자자에게 한 번 더 체크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이것 투자 못 받아도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어떤 플랫폼에 어울릴까. 넷플릭스에 전달했고 그쪽이 받았다. 그 쪽 의중은 나도 모르겠다.”
Q. 정호연이 특별출연한다. 캐스팅 비화 같은 게 있는지.
▶이병헌 감독: “정호연 배우는 <오징어게임>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 <오겜>이 한창 잘 되고 있을 때였다. ‘닭강정’이라는 재밌는 기획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특별출연 제안을 드렸다. 대사가 이렇게나 길 줄 몰랐을 것이다. 준비를 너무 잘 해 오셨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대사를 술술 외는 것이다. 류승룡 선배도 칭찬하셨다.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공개 후 연락은?) “아, 아직은 없었다. 곧 하게 되겠죠.”
Q. 정승길, 허준석 ,박형수 배우는 감독의 영화에서 곧잘 만나게 된다. ‘이병헌 사단’인가?
▶이병헌 감독: “아니다. 캐스팅에서 친분 관계를 우선 하지는 않는다. 리스트 뽑아서 어떤 사람이 어울릴까 고민하고 (제안을)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던질 때마다 다 시간이 되어서 캐스팅이 이뤄진 것이다. 안되었던 적이 없다. ‘시간 없어서 안 되었으면 좋겠다’고 농담하기도 한다. 카메오 느낌이 아니면서, 의미 있고, 비중 있고, 임팩트 있는 그런 역할로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우 하나하나 떠올리며 연락하고, 캐스팅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양현민 배우는?) “대본을 써놓고 보니 너무 잘 어울렸다. 다행히 시간도 되었고. 그런 걸 누가 그렇게 잘 하겠어요. 시간이 안 된다고 해도 캐스팅하려고 했을 것이다.”
Q.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재밌을 것이라고 확신한 장면이 있는지.
▶이병헌 감독: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는 재밌었는데 막상 찍을 때 불안했던 장면은 ‘미사일’신이다. 끝까지 고민했다. 배우들은 벌써 안무실에서 연습하고 있고. 처음 느낌이 지워지지 않더라. 이것도 분명 호불호가 갈리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재밌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배우들이 연습이 많이 했다.”
Q. 왕종근 진품명품과 역사스페셜의 성우 내레이션, 같은 것은 원작웹툰에 있는 것인가?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인가?
▶이병헌 감독: “원작에 있는 것인데 코미디 장치로 활용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 <진품명품> 자주 봤었다. 주말에 보는 재미가 있었다. 얼마인가 맞추고. 그래서 문득 생각이 나서 왕종근 선배에게 부탁드렸다. 난 <한국인의 밥상>도 좋아한다. 만화도 좋아하고.”
Q. 지금 촬영 시작한 드라마는 김은숙 작가의 각본으로 연출만 한다. 어떤가.
▶이병헌 감독: “너무 초반이어서 특별히 말씀 드릴 게 없다. 공부하듯이 잘 하고 있다. 대본이 너무 재밌다.”
** 이병헌 감독은 현재 김은숙 작가가 대본을 맡고, 김우빈, 수지, 안은진이 출연하는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를 찍고 있다. **
Q. 후반부에 외계인이 갑자기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넷플릭스 해외관객을 위한 노림수인가?
▶이병헌 감독: “사실, ‘국뽕이 차오른다’는 말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글 쓰면서 유승목이 말할 때 너무 재밌더라.” (애드립이 많이 들어갔는가?) “배우들에게 애드립도 편하게 하라고 한다. 현장에서 디렉션한 적이 별로 없다. 대사 자체가 길어서 그런 것 같다.”
Q. 그래도 ‘극한직업’에 이어 ‘닭강정’까지, ‘치킨유니버스’란 말이 나온다.
▶이병헌 감독: “이걸 뭐.. <닭백숙>으로 삼부작을 해야 하나. ‘유니버스’나 ‘사단’ 같은 거창한 말을 듣는 게 부끄럽다. 그런데 재밌는 것 있으면 하겠죠. ‘닭’이어서가 아니라 제가 흥미를 느낀다면. 이야기가 의미가 있어야할 것이다.”
Q.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는지.
▶이병헌 감독: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사로 다 쓴 것 같다. 백정이 이야기한 대사들 중에도 있었고. 제가 바라는 방향이었던 것 같다. 원작을 보면서 왜 이리 싸웠지, 좋은 방향으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런 것을 고스란히, 쉽게 작품 속에 넣고 싶었다.” (가장 인상적인 대사가 있다면?) “‘인간은 배려를 바탕으로 진화를 한다’가 대사인데, 나는 ‘...진화를 했으면 좋겠다’이다.”
Q.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웹툰이 있는지.
▶이병헌 감독: “요즘 바빠서 웹툰 못 본다. 그런데 재밌다 싶으면 이미 (판권이) 다 팔렸더라. 웹툰 나오기 전에 설정만 듣고도 사간다고 하더라. 정말 열심히들 한다."
▶닭강정 ▶감독/극본:이병헌 ▶원작:박지독 웹툰 ▶출연:류승룡,안재홍,김유정,김태훈,황미영,정순원,이하늬,유승목,정승길 ▶특별출연: 정호연(홍차) 박진영(유태영) 조현재(한량) 문상훈(정효봉) 김기천(관리소장) 왕종근(교수) ▶우정출연: 고창석(백중부) 백지원(순심) 양현민(배달) 허준석(형사) 박형수(면접관) 이주빈(김씨부인) ▶제작사스튜디오N, 플러스미디어엔터테인먼트 ▶공개: 넷플릭스 2024년 3월 15일/ 10부작(총321분)/ 15세이상관람가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