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에게는 문화왕국 프랑스의 시네마떼크를 추앙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네필은 복사된 비디오테이프와 크라이테리온을 통해 금지된 걸작들을 애타게 ‘구해’ 보았었다. 그러다가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을 영접하고 있다. 물론, 최고의 방법은 여전히 커다란 스크린의 극장이다. 코엔 형제의 데뷔작 <블러드 심플>을 그렇게 맞이하게 되었다. 미국 개봉 34년 만에 말이다.
세 살 터울의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형제는 제작비 150만 달러를 힘겹게 구하고 8주간의 촬영을 거쳐 이듬해 <블러드 심플>을 완성한다. 형제의 영화사랑이 총집결된 이 영화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다. 영화는 치밀하고, 캐릭터는 영악하고, 결말은 드라마틱하다.
영화는 치정에 얽힌 엉망진창 살인소동극이다. 텍사스의 한 마을, 조그만 바의 사장 마티는 아내 에비와 바텐더 레이의 불륜을 의심한다. 사립탐정 비저가 모텔에 투숙한 그들의 현장사진을 넘겨준다. 질투와 분노, 제어할 수 없는 격정에 빠져드는 마티는 결국 비저에게 청부살인을 의뢰한다. 배신과 배반, 욕정과 욕망이 뒤섞인 청부살인극은 의도한대로 진행되지 않고, 영화는 관객의 예상과는 달리 살인이 이어진다.
험프리 보가트의 탐정 스릴러를 좋아했음이 분명한 코엔 형제는 미국식 저예산 독립영화를 멋있게 완성시켰고, 선댄스는 그런 영화를 기꺼이 상찬했다. 지극히 적은 인물이 만들어내는 사건은 효율적으로 극을 이끈다. 관객은 등장인물 누구에게든 동정의 시선으로 그들의 궤적을 따라간다.
1984년에 완성된 이 영화는 1998년에 디렉터스컷으로 재편집된다. 엄청난 뒷이야기, 베일에 가려진 인물을 새로 추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3분을 잘라내며 더 타이트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음악문제도 손보았다. 이 버전이 2016년 4K-UHD로 복원되었고, 부천(BIFAN)에서 상영되고, CGV아트하우스에서 개봉되었다.
의심스러운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코엔 형제의 <블러드 심플>은 히치콕의 유풍을 안고 달리는 차안의 불륜남녀의 운명을 지켜보는 것이 영화의 재미이다. 지독히도 운이 없는 남편과, 이들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탐정의 결정적 실책과, 결국은 지옥에서 돌아온 남자, 그리고 마지막 행운을 차지하는 자까지. 물론, 살아남는 것이 행운이다. 영화는 그런 재미로 가득하다. 우리나라에선 오래 전 <분노의 저격자>라는 다소 낭만적 제목으로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참, 이 영화로 감독 데뷔한 조엘 코엔은 이 영화로 데뷔한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영화 찍다가 사랑에 빠졌고, 둘은 결혼한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