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개막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전 세계 85개 국가에서 출품된 303편의 영화상영과 함께 영화매니아를 매료시킬 다양한 부대행사가 함께 펼치고 있다.
6일 오후, 영화의 전당과 마주한 신세계백화점 문화홀에서는 ‘필름메이커토크 두 번재 시간으로 박찬욱감독과의 대화가 열렸다.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영화연출기를 듣기 위해 부산에 몰린 영화팬들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이날 박찬욱 감독은 '박쥐'(2009)와 '친절한 금자씨'(2005)에 얽힌 제작 스토리를 전했다.
박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라는 제목을 갖고 이영애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사실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후반부에 가서는 금자씨는 조연이다. 뒤로 물러나서 구경하는, 가끔씩 무언가 잘못될 경우 개입해서 조율을 해주는 정도로, 일이 잘 굴러가게 함으로써 일종의 구경꾼으로 스스로 퇴각시킨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연히 복수극의 주인공일 줄 알았던 사람이 뒤로 물러나고 조연으로 여겨졌던 유족이 전면에 드러나 임무를 수행한다. 금자씨의 복수극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다른 사람들의 복수극이었다는 게 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다. 그들이 금자씨가 만들어 놓은 복수의 무대에서 복수를 한다. 제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잘 구현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조화롭게 잘 구현됐던 거 같다"고 밝혔다.
소문난 씨네필이었던 박감독은 “최민식의 대사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그게 회심의 대사였다. 그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뜨거운 것이 좋아'(1961)의 마지막 대사였다"라며 "빌리 와일더 감독의 마지막 대사다. 영화 역사에 남을 대사인데, 까먹고 있었다. 아마도 제 머릿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무의식 중에 나온 거 같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고, 읽은, 어디서 들은 이야기들이 머리에 남아 있다가 사용될 때가 종종 있다는 좋은 예였다"고 했다.
이어 '박쥐'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날 그가 꼽은 장면은 뱀파이어가 된 신부(송강호 분)가 태주(김옥빈 분)의 피를 마시고, 죄책감을 느껴 그녀에게 다시 자신의 피를 수혈하는 장면이었다. 5분정도 이어지는 영상을 보여준 뒤 박감독은 ‘박쥐’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솔직히 밝혔다. "'박쥐'는 10년 동안 구상하다가 만들어진 작품"이었다며 "핵심은 신부가 태주를 죽이는 걸 의식한 순간 '내가 뭘 한 거지?'라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죄의식은 사라지고 욕망이 그걸 채운다. 자기가 죽인, 사랑하는 사람의 피를 빠는 게 첫 단계였다"며, "신부(송강호)는 김옥빈을 되살릴 생각을 한다. 자신의 피를 줌으로써 되살릴 생각을 한다. 자신이 상처를 내서 그녀가 다시 피를 먹게 해준다. 여기서 혈액형은 생각하지 말자였다. 미친 광기의 애정이 끝까지 갔을 때 하나의 피로 합쳐진다는 궁극적인 단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혀에 상처를 내서 키스를 해서 그녀로 하여금 나의 피를 흡혈하게 해준다. 이것이야 말로 키스 중의 키스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궁극의 키스를 선보이겠다는 마음이었다.“
박 감독은 ‘박쥐’ 시나리오에 대해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을 모티프로 삼았다. 원래 그 소설을 따로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다. 19세기 말 파리를 배경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안수현 프로듀서가 '그럼 두 개를 합치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했다.”며 “괜찮긴 한데 두 편 만들 소재를 하나로 합치는 게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이 하나로 합쳐져서 오늘날 '박쥐'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오전 영화제 개폐막식이 열리는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는 박찬욱 감독과 그리스의 영화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과 오픈토크 행사가 열렸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1975년 칸영화제 감독상(스페셜 섹션),198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미싱), 1990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금곰상 (뮤직 박스)을 수상했으며, 올해 BIFF영화제에서는 그가 최근에 제작한 '어른의 부재'가 상영된다.
박 감독의 모든 작품을 보았다는 가브리스 감독은 “영화 '올드보이' ‘아가씨’ ‘박쥐’ ‘스토커’ 네 작품만 보더라도 도저히 한 감독이 제작한 영화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성을 띠고 있다”며 “어떻게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감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고 애정을 보였다.
박찬욱 감독은 “대학교 시절 만난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미싱’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이 눈물을 흘리며 보았던 작품”이라며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들은 외국 영화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아픔을 다루는 듯한 보편성을 띠고 있다”며, “감독님의 신작 '어른의 부재’ 역시 과거 우리 국민 겪었던 외환위기에 있어 자본가의 음모와 대중의 저항을 떠올리게 한다”며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20대 감독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판 정신이 날카롭고 영화에 대한 에너지가 화산처럼 터지는 열정에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액스>를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필생의 프로젝트로 만들려고 한다. 소설 원작이 있는데 코스타 감독님이 불어로 먼저 만들어 판권을 가지고 있다. 제가 다시 만들려고 하는데, 코스타 감독님과 아내분이 제 영화의 프로듀서다"라고 덧붙였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