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흠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명훈 대위의 모델이 된 군인이다.*
지난 25일 개봉된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감독:곽경택 김태훈)은 특별한 영화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의 한 지점에서 일어난 전투를 다룬다. 공산당이 쳐들어왔고, 국군이 낙동강 밑으로 내몰렸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시점의 이야기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별로 이야기하려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리고 영화가 전해준 이야기를 알고 나서는 좀 더 다르게 이 영화를 생각하게 만든다. 왜, 2019년에 이 영화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인천상륙작전과 장사리 상륙작전, 양동작전, 혹은 성동격서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북한인민군의 파죽지세로 금세 끝날 것도 같았다. 그런데, 맥아더의 유엔군은 신속하게 반격을 준비한다. 9월 15일, 미명에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것. 6년 전, 프랑스 해안 노르망디에서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있기 전 히틀러는 노심초사했다. 분명 적들이 상륙작전을 펼칠 것은 확실한데 어디에서 몰려올지 알 수가 없었다. 연합군은 여러 곳에 연막탄을 피웠으니. 인천도 마찬가지였다. 유엔이 곧 상륙할 것이라는 첩보는 입수했지만 정확히 어디인지 몰랐다. 맥아더의 연합군은 인천, 군산, 주문진, 포항 등 몇몇 곳이 될 것이라는 역정보를 열심히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믿을만한 연극도 펼친다. 포항 위, 장사리라는 곳에서 작전을 펼친 것이다. 인천상륙작전 직전 9월 14일에 말이다. 실제 모든 병력(군함,전투기)이 인천에 집중될 때 이 작전에 나선 것은 772명의 학도병이었다. 서둘러 군사훈련을 마친 17살 남짓 학도병이 총을 들고 배에 오른다.
곽경택-김태훈, 충실한 재현
영화는 단도직입, 속전속결이다. 이명준 대위(김명민)는 전투경험이 전무한, 막 끌어 모은 772명의 학도병을 화물선 문산호에 태우고 장사리로 향한다. 임춘봉 장군(동방우)은 인천상륙작전의 연막작전으로 이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것이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격랑의 동해. 마침내 저 멀리 장사리 모래밭이 보인다. 해치가 열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군의 총알이 쏟아진다. 겨우 2주의 군사훈련을 속성으로 받은 학도병들은 죽어나간다. 겨우겨우 뭍에 오른 학도병들. 그들은 그때부터 사흘간의 유격전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배에 오른다. 오랫동안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은 말하지만, 이명준 대위가 이끈 장사리 상륙작전은 거의 완전히 잊혀진 작전이었다.
반전영화 같은 계몽영화
영화 <장사리>는 곽경택 감독과 김태훈 감독의 협업이 빛난다. 충무로 이야기꾼 곽경택은 욕심내지 않고 772명 학도병들의 기구한 사연을 적절히 펼쳐놓는다. 하지만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 시국에 대한 분노, 전선의 비장함도 크게 터뜨릴 것 같지만 의외로 적정한 선에서 멈춘다. 군복 색깔만 다를 뿐 총을 든 병사의 고달픔은 같으니까. 그래서 최민호가 보여주는 스탠스가 돋보인다. 그들이 맞닥뜨리는 모습이 당시 남과 북 대치의 압축판이다. 이데올로기나 인륜의 문제를 거론하기도 미안한 절망적 순간들. 김태훈 감독은 그런 드라마를 돋보이게 하는 전투씬에 공을 들인다. 엄청난 폭격씬이나 장대한 폭파씬 없이 처연한 백병전으로 그날의 비극을 갈음한다.
<장사리>를 보고 나면 남북분단의 현실, 동족상잔의 비극, 군사작전의 비정함, 끝나지 않은 비극 등에 대해 바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다루는 영화의 지루함과 구태의연함, 혹은 경향성에 말문을 닫게 될지 모르겠다.
이명흠 대위와 장사리 전투
육군본부에서 지난 1994년 펴낸 <한국전쟁시 학도의용군 學徒義勇軍>이란 책을 읽어보았다. 한국전쟁 당시 국내학생 5만 여명과 재일유학생 641명이 전투에 참여했다고 한다. ‘장사리’ 전투를 보자.
전쟁이 발발하자 육사 5기생 ‘이명흠’ 대위는 육본 정훈대에서 정규군이 아닌 유격대를 준비한다. 대구역에서 수백 명의 학도병을 모집하기 시작하여 대구, 밀양을 거쳐 부산에서 제식훈련을 시킨다. 그들이 ‘독립제2유격대대’였고, 부대장의 이름을 따서 ‘명부대’라 불리게 된다. 물론, 군번도 없는 학도병 신분이다. 이들에게 작전명령(육본작명 제174호 1950.9.10.)이 떨어진 것이다. 772명은 대한해운공사 소속 LST 문산호를 타고 동해안 영덕군 남정면 장사동 해안으로 향한다. 영화에서처럼 태풍이 몰아치던 밤은 아니었지만 높은 파고에, 처음 배를 타 보는 학도병들은 멀미에 시달린다. 그리고, 쏟아지는 총알!
전쟁의 비극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영화에서 학도병들은 기관총에 속수무책이었다. 겨우겨우 고지에 올라 진지를 접수한다. 인민군이 패퇴한 곳에 기관총을 잡고 있는 사수는 그들보다 더 어려보이는 병사들이었다. 발목에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배달의 기수’ 시절엔 당연히 영화에 담았겠지만 곽경택 감독은 그런 이야기는 빼버린다)
살아남은 이명흠 대위와 학도병들은 LST조치원호에 구조되어 귀환한다. 육군본부에 귀대 보고를 하려가니 다들 놀란다. ‘다들 죽을 줄 알았고, 다들 죽은 줄 알았으니’. 이명흠 대위는 좌초한 문산호를 해안에 방치한 채 철수했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야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단다. (영화에 잠깐 나온 이야기가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원안은 태원 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가 썼다. 그가 <포화 속으로>와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장사리-잊혀진 영웅들>까지, 리암 니슨에 이어 메간 폭스까지 끌어들이며 한국전쟁에 끈질기게 집착하는 이유가 무척 궁금해진다.
영화에서 학도병 최민호는 전사한 전우의 마지막 편지를 전해주려 우물가로 간다.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언급한 <학도의용군>에 책 표지에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학도병이 쓴 편지가 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허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이 영화가 기억되어야할 이유는 누군가에겐 분명 있는 셈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