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만든 장재현 감독이 이번엔 무속인(무당), 풍수사(지관)와 장의사 등 한국의 전통적 무속신앙의 수호자를 앞세운 영화 <파묘>로 돌아왔다. 우리 땅, ‘위도 38.3417, 경도 128.3189’의 산 정상부에 있는 기이한 묘를 파헤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파묘>는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의 그야말로 신들린 연기를 볼 수 있는 오컬트 무비이다. 개봉하자마자 화제를 몰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해 장재현 감독은 “배우님에게 감사합니다. 덕을 많이 본 것 같습니다.”라고 말문을 연다.
Q. <파묘>를 만들려고 한 계기가 있는지.
▶장재현 감독: “영화를 준비하면서 극에 등장하는 직업군 현장을 많이 따라 다녔다. 자료를 조사할 때 표피를 보는 것보다는 코어를 보려고 했다. 한번은 장의사에게서 전화가 와서 급하게 따라나섰다. 현장에서 하나라도 도와드리려고. 그런데 현장에서 상주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묘를 파는데 근처 수로공사가 잘못되어 물이 차 있었다. 현장에서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급하게 처리하는 것도 보았다. 쏟아지는 비속에서 천막치고. 파묘라는 게 과거를 들추어서 잘못된 것을 꺼내 없앤다는 정서가 느껴지더라. 우리 땅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돌이켜보면 엄청난 피해자이고, 그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파묘’를 통해 피멍을 꺼내고, 표 안 내게 불로 지지고 싶었다.”
Q. 장의사나 무당, 풍수사에 대한 소재는 어떤 식으로 얻게 되었나.
▶장재현 감독: “한예종에서 이창동 감독님 수업을 들었다. 그 때 감독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야기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열심히 움직여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전제에 깔려있다. 그래서 사방에 레이더를 깔고 있다.”
Q. 무서운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지.
▶장재현 감독: “저를 어둡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가 관심 갖는 것은 생각보다 밝다. 밝은 사람인데 반대로 그로테스크한 것을 좋아하고, 그런 작품을 동경하고, 어두운 이야기 좋아한다. 어두운 세계관에 ‘날라리’ 같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좋아한다. 캐릭터는 어둡지 않다. 그리고 사회생활 하면서 느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의리, 정 같은 이야기를 하는 곳은 교회밖에 없는 것 같다. 사회에선 그런 이야기 절대 안 하더라. 그 사람이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같은 이야기만 한다. 교회나, 성당, 절에서만 그런 이야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런 것이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런 것에 대한 반발심인 것 같다. 인간에겐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이란 것이 교회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새벽기도 가는 우리 엄마의 마음이다. 그런데 <파묘> 예고편이 무섭게 나온 것 같다. 하하.”
Q. 기독교에 대해선 누구보다 많이 알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영’(靈)과 ‘육’(肉)의 대결처럼 위험한 상상력이 발동된다. 정령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장재현 감독: “서양에는 뱀파이어도 있고, 미이라도 있다. 중국에는 강시도 있다. 이들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일본의 국가대표급 정령이다. 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에겐 친숙하지 않다. 제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가 ‘음양사’이다. 요즘 10대, 20대는 게임을 많이 해서 이런 캐릭터나 문화에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옆 나라 대표선수를 모시고 온 것이다. 가져왔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사실 난 귀신을 찍은 적이 없다. 공포영화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귀신을 찍어야하는데 어떻게 찍어야하는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전 세계 심령사진을 계속 찾아봤다. 귀신이란 것은 찍는 것이 아니고 찍히는 것이다. 그렇게 ‘찍히는 것’처럼 찍고 싶었다. 귀신, 혼령 뒤에 나오는 정령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게 이 영화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소재에 대해 시나리오부터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걸 끝까지 밀어붙여야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계속해서 발전하는 감독’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그게 나의 감독 관(觀)이기도 하다. 계속 돈 벌려고 하는 것 보다, 계속 발전하고 싶다.”
Q. 영화가 한결 같다. <파묘>의 출발선은 어디였는지.
▶장재현 감독: “영화를 만들 때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끝날 때의 감정. <검은 사제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그런 희망적인 이야기로 끝내고 싶었다. <사바하>는 그냥 슬픈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신은 존재하는데 왜 사람들은 죽어나가는 거죠?’ 같은 감정이 들게. 이번 <파묘>는 개운하게 끝내고 싶었다. 발바닥의 티눈을 빼내듯이. 처음 ‘파묘’의 소재를 잡았을 때는 음흉한 공포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려면 이 영화에서 피해자가 되는 박지용이 주인공이 되어야한다. 공포영화의 99%는 피해자의 플롯이다. 그래야 무서운 영화가 될 수 있다. <검은 사제들>은 박소담과 그 가족들이 주인공이 되어야한다. <사바하>도 금화를 연기한 이재인과 그 가족들이 주인공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제가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 공포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다. 대신 신비롭고 그로테스크한 것을 좋아한다.”
“ <파묘>는 원래 그렇게 만들려고 했는데 그 때 코로나가 터졌다. 관객 없는 극장에 매일 갔었다. 이러다가 극장 망할 것 같았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개봉을 미루면서 묶여있던 유럽 영화들이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몇 없는 관객들이 우울하게 극장문을 나서는데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날 것 같았다. 극장이 없어지면 어쩌지. 그래서 <파묘>를 화끈하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익사이팅하게 말이다. 그래서 주인공을 다 바꿨다. 플롯도 다르게. 처음 기획한 것은 ’우리 집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하면서 풀어가는 것이다. 자기 업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이런 영화는 기존 공포영화에서 많이 봐왔고, 어떻게 보면 제가 해왔던 방식이다. 주인공이 전문가이니 공포영화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공포감을 주기 위한 장면보다는 긴장감을 안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도 신비롭게 보여주고 싶다. 무섭게 보여주기 보다는 나무랑 이야기하는 것 같은 신비로운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래서 마니아층이 이 영화에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다.”
Q. 영화를 개운하게 했다는데, 한국과 일본 간의 역사코드가 들어가서 ‘한일전 승리’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장재현 감독: “저도 일본영화, 일본만화 엄청 좋아한다. 라쿠텐에서 쇼핑도 하고, 일본 여행도 자주 간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일본이 아니라 우리 땅과 우리 주인공에 포커스를 맞췄다. 우리 땅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 정서, 그 공포감과 트라우마를 우리의 구세대와 신세대가 힘을 합쳐 개운하게 뽑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일본적 요소를 가져와서 괴하게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표피에서 느끼는 상징, 군인, 아직도 전쟁하고 있는 대사와 이미지로 은유하고 싶었지 일본의 감정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공포영화로 만들려면 훨씬 무섭게 묘사했을 것이다. 대신 그 사람(험한 것)의 옷과 태도와 대사로 의미를 담고 싶었다.”
Q. 첫 장면, 비행기 장면에서 김고은에게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일본말을 하고, 김고은도 일본말로 대답하더니 ‘나, 한국사람이에요’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최민식이 묘를 파헤친 뒤 빈 땅에 100원짜리 동전을 던진다. 이순신이 새겨진 동전. 그런 것 때문에 관객들이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되는데.
▶장재현 감독: “그건 화림이 캐릭터가 일본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시작부터 보여준 것이다. 그래야 캐릭터 끌고 갈 때 효율적이다. 나중에 뜬금없이 일본말하면 이상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비행기 타면 일본말, 중국말로 말 거는 경우가 많다. 경험에서 온 캐릭터이다. 최민식 선배의 <명량>은 오래 전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을 줄 몰랐다. 시사회 때 반응을 보고 ‘관객들이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구나’ 하며 동전이 새롭게 보였다. 원래 풍수사가 관을 꺼내 이장할 때 그 땅 값으로 지신(地神)에게 동전을 던진다. 보통 ‘10원짜리’를 던지는데 흙의 색깔과 대비하기 위해 ‘100원’을 던진 것이다. 어쨌든 얻어걸린 장면이다.”
Q. 극중 이름에서 ‘기수네’라는 일본 승려 이름이 나오는데, ‘여우’(キツネ)인가. 그리고, 주인공들 이름이 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과 관련 있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의도한 것인가.
▶장재현 감독: “극중 이름 관련해서는 노코멘트하겠다. (하하하) 맞습니다. 더 찾아보면 더 많이 발견할 것이다. ‘기수네’는 여우(キツネ) 맞다. 발음을 잘 못해서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최민식의 차량 넘버도 ‘0815’이다) “하하, 우연이다. 미술팀이 신경을 좀 많이 쓴 것 같다.”
Q. 장재현 감독 작품에 대한 마니아의 기대감이 있다. 공포영화에 대한 고민은 있는지.
▶장재현 감독: “나의 전작 두 편이 무섭다거나 공포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말릴 수는 없잖은가. 대신 어떤 장면들을 과도한 음향효과로 그런 분들에게도 서비스하려고 애는 썼다. 그런데 근본은 바꿀 수가 없다.”
Q. 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최고였던 것 같다.
▶장재현 감독: “실제 풍수사나 장의사를 만나보면 없어지는 직업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 나이가 많다. 다들 꼬장꼬장하시다. 그런데 젊은 무속인들 보면 몽클리에 입고, 포르세 타고 다니더라. 잘 나가는 무속인들 말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 서로에 대해 ‘꼰대’라거나, ‘발랑 까졌다’고 말한다. 그런 세대들이 서로 의지해서 처음에는 아이를 구하고, 그 다음 세대를 구하고, 그 다음 세대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렇게 세대를 맞추다보니 앙상블 캐스팅이 되었다. 그리고 이 정도 캐스팅이면 다들 알아서 잘 하신다.” (MZ세대는 컨버스를 신는가?) “그것도 그렇다. 에어 있는 걸 신더라. 오래 뛰어야하니 말이다.”
Q. <파묘>를 준비하기 위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는지.
▶장재현 감독: “제일 먼저 한국장례협회란 곳을 찾았다. 협회 찾아가는 것이 제일 빠르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장의사(葬儀師)를 소개해 준다. 예전에 있던 장의사(葬儀社)는 이제 다 없어졌다. 상조회사에서 한다. 그런데 하이클래스 사람들의 장례는 여전히 그런 라스트스탠딩 장의사(葬儀師)가 해준다. 그분들 만나서 수업도 듣고, 참관도 하고 그랬다. 장례지도사가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하더라. 그분들 소개로 풍수사를 만나서 그 분야도 배웠다. 미신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 사람들은 거의 지질학자이다. 박사 같은 사람들이다. 미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엄청 돈 많은 사람들은 그걸 엄청 중시한다.”
Q. 영화는 여섯 개의 막(幕)을 나눠 진행된다. 내레이션을 넣은 것은 어떤 효과를 기대해서인가.
▶장재현 감독: “고민을 많이 했었다. 편집할 때보니 ‘막’ 구분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더라. 사람에게 복선으로 던져주는 게 더 친절하라고 생각되었다. 갑자기 도깨비 나오는 것보다는 ‘도깨비불’이 나오고, 김상덕이 어디론가 갈 때 ‘쇠말뚝’이라고 알려주는 게 관객에게 약간의 준비를 시켜주는 것 같았다. 그런 텍스트 넣은 게 전체적인 편집방향에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첫 챕터는 ‘음양오행’이다. ‘음양’은 무속인을, ‘오행’은 풍수지리사와 장의사를 가리킨다. 그들의 세계관을 알려준다.”
“앞의 내레이션은 뒤의 내레이션을 위해서이다. 뒤에 가면 김상덕이 일을 풀어야한다. 우리 영화에는 액션이 거의 없다. 이런 것을 감정적으로, 내레이션으로 풀어줘야 하는데 앞에 한번 깔리면 뒤에 이런 내레이션이 나와도 받아들이기가 쉽다.”
Q. 이야기는 전반부 이야기와 후반부 이야기가 이어지는 듯 끊어진다. 두 이야기의 연결점은 ?
▶장재현 감독: “작가적 욕심이 있었다. 이야기의 허리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두 개의 이야기를 엮어주는 것은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는다’인데, 그 이야기의 구성처럼 중간에 끊고 싶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분명 연관이 있다. 앞의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관(棺) 이야기는 연막이면서 뒤의 이야기와 연관이 꽤 있다. 뒤를 숨기기 위한 구조이다. 그런 이야기 구조를 끊는 방식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시나리오 때부터 호불호가 있었다. 하지만 주제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Q.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다. 현장 반응은 어땠는지.
▶장재현 감독: “걱정이었다. 이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그런데 같이 보면서 놀란데 외국 관객들은 옆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죽여!’ 하고 소리 지르더라. 서양엔 ‘미이라’, ‘뱀파이어’도 있으니 아마 동양의 뱀파이어인가 하며 익사이팅하게 즐기더라. 이 영화 블라인드 시사회 때 보니 10대, 20대가 그렇게 보더라. 그들은 일본문화도 더 친숙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익사이팅하게 한다. <서울의 봄> 볼 때 우리(세대)는 전두광에 대해 복잡할 텐데 그들은 그냥 ‘나쁜 xx’로 그냥 받아들인다. 블라인드 시사회때 10대 20대 반응이 뜨거워서 조금 희망을 가졌다.”
“베를린에서 내 영화를 다 봤다는 외국 기자분이 인터뷰하면서 ‘당신이 호러영화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리엔탈 그로데스크 신비주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나도 나 자신에 대해 정의를 못 내리고 있었는데 그런 것 같다. 신비롭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무랑도 이야기하고, 변신도 하고. 신비로움을 유지하고 싶었다. 긴장도 유지하고. 저의 아이덴티티를 찾게 된 것 같다.”
Q. 영화에서 ‘물에 젖은 나무가 불에 타는 검을 이긴다’는 장면이 있다. 음양오행설에 맞는 이야기인가.
▶장재현 감독: “음양오행설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서로 보완하는 관계도 있고, 서로 상극인 관계도 있다. 우리나라는 ‘나무’(木)에 해당한다. 그동안 많이 맞았지만 안 부러졌다. 나는 나무가 저 검을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水)에 젖어야한다. 영화에서는 피를 묻힌다. 상극이론이란 게 반대로 말하면 서로 보완하는 셈이다.”
Q. 영화에 ‘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특별한 느낌을 준다. 거울과 물의 이미지로 인상적이고.
▶장재현 감독: “이 영화에 빛과 어두움, 오행을 다 찍으려고 했다. 불도 곳곳에 넣으려고 했다. 쇠도 넣고, 나무도 넣으려고 했다. 흙도 당연히 나올 것이다. 물의 이미지도 엄청 나온다. 그런 걸 다 집어넣은 미장센에 고심했다. 그게 나중에 중요한 키로 나오니까. 도드라진 게 나무인 것 같다. 다시 보면 그 컷이 여기서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Q. 대살굿 장면에 대해서. 타살굿을 변형시켰다고 하는데.
▶장재현 감독: “원래 그런 대살굿이 있다. 내가 닭띠인데 죽어야 될 운명이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게 저승사자 올 때 타이밍 맞춰 닭을 바치는 것이다. 그동안 굿 장면을 중요하게 찍었는데 요즘은 그런 장면이 비주얼로 소비되는 것 같다. 목적이 정확해야한다. 이 영화에서는 굿 장면이 세 번 등장한다. 처음에는 ‘대살굿’이다. 화림이 엑스터시 상태가 되어 자신의 몸을 칼로 긋고, 불에 손을 넣어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뒤 다른 사람의 ‘살’을 쳐낸다. 굿을 하다가 힘이 달리면 자기에게 온 신에게 피를 먹이며 일종의 영양분을 주입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혼(魂)부르기이다. 죽은 혼을 다시 부르는 구슬픈 굿이다. 마지막에 무당 셋이서 봉길이가 하는 도깨비놀이이다. 도깨비놀이는 제주도에서 행해지는 퍼포먼스이다. 숨어있는 귀신을 살짝 깨워, 알고자하는 정보를 얻는 것이다. 이건 만화 <배우도사 무도사>에도 나온다.”
Q.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나 격문 같은 것은 직접 쓴 것인가.
▶장재현 감독: “아니다. 고증에 따라 한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험한 것’의 움직임, 걸음걸이 하나도 고증에 따랐다. 나는 무당이 칼로 누군가를 잡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귀신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고, 그런 귀신 잡으러 가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화림은 자신이 시간을 끌 테니 쇠침을 뽑으라고 하지 그것을 없애라고는 하지 않는다. ‘고스터버스터즈’ 같은 이야기는 저의 영화철학과는 다르다. 절대 그렇지 않다. 김상덕이 수수께끼를 풀듯 하다가 뒷걸음질 치다가 쇠말뚝을 꺼내는 이야기이다. 무당이나 풍수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귀신을 잡겠는가. 평범한 동네아저씨다. 못 잡는다.“
Q. 영화에 나오는 쇠말뚝에 대한 감독님의 정확한 생각은 어떤 것인지.
▶장재현 감독: “쇠말뚝이 중요하지만, 그게 생각나지 않게 찍으려고 했다. 만약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마지막에 없어지는 것도 보여줬을 것이다. 저는 그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풍수사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확신할 수 없어서, 그냥 그 기운을 없애고 싶어서 육체화(형상화) 시킨 것이다. 그래서 아삼아삼하게 끝난다. 노력한 우리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다고(쇠침을 뽑는다고) 우리나라가 갑자기 통일되고 그럴 순 없을 것이다. 처절한 주인공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오히려 그게(쇠침) 생각나지 않게 하려고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할머니 틀니’ 이야기는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란다. “할머니가 저를 키우셨다. 서울에서 급하게 내려가서 장례식을 치렀다. 화장실 컵에 할머니 틀니가 있더라. 그때 너무 울었고, 가지고 있었다.”란다.
<파묘>는 개봉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단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이 연기한 배역의 이름은 김상덕, 이화림, 고영근, 윤봉길이다. 다들 일제강점기때 독립운동한 사람이란다. 그 외에도 장재현 감독은 영화 곳곳에 오묘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심어/숨겨놓았단다. 그걸 파헤치는 것이 <파묘>를 보는 재미일 듯하다.
[사진=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