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감독 데뷔를 한 사람이 있다. 오랫동안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졌고, 그러다 보니 삶에 대한 열정과 사람에 대한 믿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듯. 7일(수) 개봉하는 영화 [도그데이즈]로 감독으로 ‘입봉’하는 김덕민 감독을 만나 영화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 [도그데이즈]는 동물병원을 중심으로 사람과 동물(개)의 유대관계와 기른 정, 살아갈 인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번 버전만 예닐곱 번 본 것 같다. 다른 버전은 수도 없이 봤다. 앞 버전에서는 자신감이 없었다. 만남에 대한 설명적인 요소가 많았다. 설명을 보완한 것 같아서 괜찮게 보인다.”며 오랜 편집 끝에 완성된 <도그데이즈> 완성본을 자평했다.
Q. 19년만의 감독입봉이라고 한다. 원래 꿈이 영화감독이었는지.
▶김덕민 감독: “군대 제대할 때 즈음하여 복학할 생각을 하며 고민이 많았다. 공무원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말년에 <공각기동대>를 보았는데 저런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애니메이션을 배우자는 일념으로 일본에 갔다. 랭귀지 스쿨 다니며 고민이 더 깊어졌다. 애니메이터로서 한국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림 그리는 것 말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겐 소설은 택도 없을 것 같았다. 그 때 일본영화학교가 눈에 띄었다. 실기위주로 2년을 배웠다. 연출파트를 결심하고, 그때부터 연출부생활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쪽엔 연줄이 전혀 없었다. 계속 문을 두드렸지만 안 뽑히고 그랬다. 그러다가 우연히 박영훈 감독의 신작 연출팀 뽑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당시에 다들 핸드폰을 갖고 있었지만 나는 핸드폰 살돈이 없었다. 주말에 집 전화로 연락 준다고 해서 주말 내내 집에서 전화기 앞에 앉아있었던 기억이 난다. 마침내 전화가 왔고, 그렇게 연출부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가 2003년 초였던 것 같다.”
Q. 연출부로서 어떤 작품에 참여했는지.
▶김덕민 감독: “첫 작품이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었고, 두 번째 작품이 <댄서의 순정>이었다. 세 번째 작품 <브라보 마이 라이프>로 퍼스트 조감독이 되었다. 그러곤 10년의 공백이 있었다. 조금 시건방진 생각이 들었다. 세 작품 했으니 데뷔해야지 마음이 앞선 것이다. 시나리오 쓴답시고, 들어오는 작품도 있었지만 몇 개월 지나면 엎어지고, 투자가 안 되고, 캐스팅 안 되고 그랬다. 계속 박영훈 감독님이랑 있으면서 이런 저런 알바하며 버틴 것이다. 10년을 그렇게 보내며 진짜 영화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인천상륙작전>하고 그 다음에 JK필름과 인연을 갖게 되었다.”
Q. 마침내 ‘JK필름’이구나.
▶김덕민 감독: “그렇다. <그것만이 내 세상>하고, <영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윤제균 감독님이 좋은 기회를 주셔서 이번에 <도그데이즈>로 감독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좌절 했을 만도 한데, 어떤 확신이 있었나?) “나중엔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가 계속 자랐다. 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아빠는 영화감독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중학생 되고, 고등학생 되더라. 아들에게 꿈을 접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감독으로) 한 작품이라도 해놓고 이 바닥을 떠나든지 하고 싶었다. 사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인천상륙작전> 사이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오기로 버틴 것이다. 아들이 ‘도그데이즈’ VIP시사회에서 영화 보고 아빠에게 용기 주는 응원을 하더라. 크랭크인 하던 날이 제일 감격스러웠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된 것 같다. 고생한 것 다 보상받은 느낌이 들었다.”
Q. JK필름, 윤제균 감독은 왜 김덕민 감독에게 이 작품을 맡겼을까.
▶김덕민 감독: “애쓰는 모습?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그렇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조감독할 때 저를 눈 여겨 보신 모양이다. 윤 감독님이 작품에서 보충촬영을 할 때였다. 보통 이럴 경우 배우 혼자서 대사를 맞춘다. 그 때 배우 맞은편에 내가 앉아서 대사를 맞받아주었다. 감정이 업되는 장면에서 샤우팅까지 해야 하는데, 끝나고 나서 (윤제균) 감독님이 ‘누가 했지?’ 하면서 칭찬해주시더라. 그 다음에 <영웅>할 때 조감독 시켜주셨다. 감독님은 배우들에게 연기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차분하게 디렉팅 하신다. 많이 배울 수 있었다.”
Q.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해피 디 데이>로 한국에 개봉되었다. 현지화 과정을 소개해 달라.
▶김덕민 감독: “원래 원작의 제목도 ‘해피 디 데이’가 아니라 ‘Dog Days’(2018)이다. 제목을 어떻게 할지 다양한 의견이 있었는데 다시 ‘도그데이스’가 되었다.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원작에는 5개팀의 사연이 있다. 우리는 4팀으로 조정했다. 하나는 미국적 정서가 너무 센 것 같아서 들어냈다. 인디밴드 이야기는 비슷하다. 김윤진-정성화 커플의 아이 입양 문제도 있다. 초보 엄마아빠 컨셉은 같다. 김고은 이야기는 아예 없다. 윤여정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많이 바뀌었다. 원래는 은퇴한 남자교수이다. 피자배달부하고 잃어버린 멍멍이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원작을 가지고 CJ기획팀과 이야기 나누다가 남자를 여자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했다. 윤제균 감독님 첫 마디가 ‘윤여정 선생님’이었다. 그에 맞는 캐릭터를 쓰기 시작했다. 네 가지 사연에 대해 어느 정도 뼈대만 세워놓고 유영아 작가에게 부탁했다. 뼈대 위에 좋은 살을 얹어주었다. ‘수정’ 캐릭터도 만들고. 초고 나온 것 보고는 이건 무조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겠다. 시켜주세요’ 그랬다.”
Q. 윤여정 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신인감독으로서의 패기?
▶김덕민 감독: “<그것만이 내 세상>의 조감독으로 뵀었다. 그게 유일하다. 몇 년 동안 가끔 문자 드렸다. 그 사이 아카데미상도 받으시고. 축하드린다는 문자를 못 드리겠더라. 손가락 아프시게 답장하실 것 같아서. <도그데이지>를 통해 한 작품 꼭 하고 싶었다. 민서 캐릭터를 해 주시면 더 멋질 것 같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원작에서는 남자 캐릭터이다. 신파스럽지 않게, 선생님만의 날선 대사의 느낌을 잘 살린다면 세련된 꼰대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고맙게도 하겠다고 답이 와서 너무 기뻤다. 첫 미팅 하면서 보자마자 큰 절 올리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Q. 신인감독으로서 캐스팅 어려움은 없었나.
▶김덕민 감독: “촬영 들어가고 좀 친해지고 나서 유해진 배우에게 물어보았다. ‘이거 입봉 작품인데 괜찮으세요’라고. ‘나는 그런 것 안 따져. 뭘 안다고 신인감독을 평가하겠어. 작품(글)보고 결정한다고 그러시더라. 물론 JK필름이 뒤에서 서포트한 덕도 있겠지만 결국, 선택은 배우들이 하는 것이다. 선택한 배우들의 힘이 합쳐져서 좋은 캐스팅이 된 것 같다.”
Q. 중간에 현(이현우)이 부르는 노래에 대해서. ‘개’가 등장하는 노래도 많을 것인데, 창작곡을 사용했다.
▶김덕민 감독: “시나리오 쓸 때는 ‘사랑의 대화’를 넣었었다. 이정석, 조갑경의 듀엣곡. 그런데 CJ의 젊으신 분들이 들어보고는 ‘가사는 좋은데, 좀 올드하다’고 하더라. <영웅>을 했던 황상준 음악감독에게 이야기했더니 입봉선물로 멋지게 새 노래를 하나 만들어 주겠다더라. 몇 개월 뒤에 카톡으로 곡을 보내주더라. 아들과 함께 들었다. 10대이고, 발라드 좋아하는 애라서 정서적인 느낌을 들어보고 싶었다.두 소절 듣고는 ‘좋아요’했다. 그래서 그 곡을 사용한 것이다. 이현우에게 기타 연습 시키고.”
Q. 원작에서 바뀐 부분 중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김덕민 감독: “유영아 작가 버전에서 수정이가 언급된다. ‘아프리카에서 죽었잖아’라고 다니엘이 말한다. 그 대사 할 때 임팩트가 있었다. 그 지점이 좋았다. 그건 작가님이 만든 서사이다.”
Q. 김서형 배우의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었나. 최근에 출연한 영화 <비닐하우스>에서의 이미지가 조금 엿보인다.
▶김덕민 감독: “처음에 빌드업 하기는 동물병원에서 민상, 민서, 정아, 친구들이 모인다. 김서형 배우가 연기하는 수의사 진영이가 한그루의 나무 같은 존재로 버티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이곳에 와서 나무그늘에서 잠깐 쉬어가는 버팀목 같은 존재. 오프닝에서 양치하면서 등장한다. 관개들이 ‘어~’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다. 김서형 배우에게는 그런 성격이 있다. <스카이캐슬>의 날선, 다크포스 뿜는 면도 있지만, 자기 일에 열심이고, 애견인이고, 정이 많은 분이시다. 편집할 때 최대한 많은 버전을 갖고 작업하고 싶어서 다양한 모습을 요청했다. 왈가닥 느낌이 들게, 차분하게, 또 아예 내려앉는 버전까지. 톤이 다르게 연기하셨다.”
Q. 유해진 배우가 맡은 민상이란 캐릭터에 대해.
▶김덕민 감독: “유해진 배우가 캐스팅 제의에 응해주실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시나리오 보내고 3일 만에 연락이 왔다. 기뻤다. 민상 캐릭터는 어쩌면 저한테 있는 속물적인 근성이 녹아 있을 것이다. 좋은 집에서 깔끔하게 살고 싶은 욕심, 그러면서 또 가슴 한편에는 멍멍이에 대한 애정이 투영되어있다. 그렇다고 ‘캐릭터가 이런 거에요’라고 말씀드린 적은 없는 것 같다. 촬영 들어가서는 제가 생각한 동선이나, 감정이 조금 업이 되어 있을 때 ‘좀 낮춰 볼까요’했을 뿐이다. 유 배우는 그 캐릭터를 완전히 빌드업해서 왔다. 편집실에서 편집기사님이 작업을 하다가 그러시더라. <올빼미>로 대종상을 받은 김선민 기사님이시다. ‘이 영화, 유해진 배우 없었으면 밋밋한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고. 유해진 배우의 연기는 평범해 보이지만 뭔가 온기가 담겨 있다. 편집하며 수백 번 봤을 텐데 감이 맞는 것 같다. 연기 하나하나가 그렇다. 신발끈 묶는 장면, 꼬물이 회상하는 장면, 건축주한테 PT할 때 놀랐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마치 자기의 생각인 것처럼 말하는 그 장면. 그들의 말들을 조합해서 자기가 하는 것처럼, 한 호흡에 하는데 놀라웠다. 각자의 대사가 들어갈 지점에 딱 맞춰, 눈빛 연기까지 한 호흡에 다 끝내는 것이었다.”
Q. 촬영은 언제 한 것인가. 편집 때 크게 손 본 부분이 있는지.
▶김덕민 감독: “첫 촬영은 2021년 12월 26일 연남동에서 시작했었다. 영하 17도에서 크랭크인 했다. 완전 냉동 신이다. 이현우 배우가 스팅을 데리고 산책 가는 신이다. 응가를 하고 치우는 장면인데 편집에서는 빠졌다. 그리고 오후에는 스팅을 건네받는 장면 찍었다. 2022년 1,2,3월 열심히 찍었고, 4월에 다니엘 헤니가 한국 와서 이현우 배우와의 장면 찍었다. 시나리오대로 다 찍었고, 편집에서는 소소한 것, 신 배치만 좀 바꿨다. 시나리오 담긴 것은 다 담아냈다. 수정(김고은)이 노래 시퀀스는 정말 찍고 싶었던 장면인데 들여 내자면 어쩌나 싶었다. ‘눈은 울고 있는데 입은 웃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었다. 수정이 현에게 주는 가장 따뜻한 위로인 셈이니까, 다시없는 미소를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랬다.”
Q. 캐릭터들이 다 사연이 있고 감독의 애정이 묻어있는 것 같다.
▶김덕민 감독: “그렇다. 민상에게는 나의 한 모습이 있고, 현에게는 밴드음악에 대한 존경이 있다. 탕준상의 라이더는 예전 나의 모습이 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게 힘들었을 때의 모습이다. 9년여를 주유소 건맨, 대리기사 등 알바를 전전할 때의 감정이 담겨있다. 윤여정 선생님의 모습에서는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동경이 담겨있다. 김윤진, 정성화에게는 애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애는 다 키웠지만. 그래서 솔직하게 찍을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감정선 안에서 투영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 같아 좋았다.”
“이런 영화로 입봉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난 ‘액션’을 하게 될 줄 알았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그런데 차라리 다행이었다, 20대, 30대, 40대를 겪으면서 생활이 바뀌고, 생각이 바뀐 것 같다. 거짓말하고, 속이고, 허세 부리는 액션범죄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에게 상처 주는 서사를 많이 생각했는데 다 내려놓고, 뭔가를 고민하는 시점에 이걸 만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Q. 액션이라고 하니, 한 장면이 생각난다. 민서가 쓰러져서 앰블란스에 실려 가자 완다가 정신없이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 어떻게 찍은 것인가.
▶김덕민 감독: “앰블런스를 쫓아가는 완다를 담으려면 CG가 필요할 것 같았다. CG팀이랑 조련사가 같이 회의를 가졌다. 조련사가 초록색 의상(쫄쫄이)을 입고 줄을 잡고 옆에서 같이 뛰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렇게 쫄쫄이 입고 평창동 내리막길에서 여러 번 찍었다. 완다가 지치면 쉬었다 다시 찍고 그랬다. 횡단보도에서 차가 급하게 멈추는 장면은 무술팀이 차를 딱 세우는 장면 찍은 뒤 합성하는 레이어촬영이었다. 훈련사 분들이 도움을 많이 주셨다. 콘티 단계에서부터 완다 훈련에 초점을 맞췄다. 미리 완다의 동선에 따라 어떻게 뛰고, 어디에서 멈추고, 언제 짖을지 훈련을 시켰다. 신기하게 그대로 따르더라.”
“멍멍이 캐스팅은 동호회를 통해 오디션을 많이 봤다. 촬영 때는 훈련사들이 같이 하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촬영하면서 훈련사분이 ‘완다’, ‘스팅’, ‘차장님’ 세 마리를 다 입양했다.”
Q. 정말 오랜 시간 끝에 감독으로 입봉하게 되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었으면 하는가.
▶김덕민 감독: “<도그데이즈>를 보고 극장 문을 나올 때 기분 좋은 감정이었으면 좋겠다. 엔딩크레딧에서 그런 걸 느꼈으면 좋겠다. 가슴에 모닥불 같은 온기를 느끼고 갔으면 너무 좋겠다.”
영화계에 입문한 뒤 19년 만에 감독의 꿈을 이룬 김덕민 감독은 “생계형 감독으로 다음 작품 할 수 있도록 기분 좋은 작품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유해진, 윤여정, 김윤지, 정성화, 김서형, 이현우, 탕준상, 다니엘 헤니가 출연하는 영화 <도그데이즈>는 10일(수) 개봉한다.
[사진=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