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아이돌이었다. 치열한 K팝 그라운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던 박형식이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입대 전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작품은 영화 <배심원들>(감독:홍승완)이다. 지난 15일 개봉된 영화 <배심원들>에서 박형식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재판정의 ‘배심원단’에 앉게 된 인물 권남우를 연기한다.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에 ‘배심원 제도’가 도입된 지가 10년이 넘지만 여전히 낯설다. ‘배우’ 박형식은 이 낯선 제도를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뛴다. 영화 개봉 전에 진행된 인터뷰다.
- 영화를 보니 어땠나?
“기술시사 때 관계자분들과 같이 봤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살펴봤고, 스크린 속 내 모습도 궁금했다. 내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울컥했다. 영화가 좋았다. 마음도 따뜻해졌고, 희망이 있는 영화 같다. 나도 배심원이 되어, 같이 사건을 풀어나갔으니 성취감이 들었다.”
- 울컥한 지점은?
“판사님이 판결을 내리기 전. 배심원들이 한 사람씩 손을 들 때, 그리고 마지막 선고 장면. 원래 판결문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바뀌잖은가. 그런 모습이 참 좋았다.”
- 배심원 제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나.
“물론 배심원 제도가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시나리오 받고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그런 공부를 일절 하지 말라고 했다. 캐릭터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지 말랬다. 작품 들어가기 전 이런 주문은 처음이었다.”
- 대본 받고,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인가?
“애드리브까지 준비할 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왜 (그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야하니까. 나름 첫 영화라 잘 하고 싶었다. 준비 없이 가도 괜찮을까 싶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나만 믿고 따라와 달라고 하셨다.”
“아기병사일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재판에 빠져드는 것을 원하신 모양이다. 나만의 의미와 의도를 담으려다 감독의 정확한 의도를 놓칠 수가 있다. 그래서 대사만 외워갔다. 연기를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이렇게 하는 방법도 있구나 싶었다.”
- 극중 ‘8번 배심원’ 권남우와 성격이 비슷한지?
“비슷한 면도 있다. 어떤 일에 흥미를 갖고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성격이다. 스킨 스쿠버를 좋아하면 체험하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격증도 따고, 등급도 올리고 싶어진다.”
● 같은 장면, 27번을 찍었다
- 이번 영화에서 한 장면을 27번이나 찍었다는데.
“감독님 지시대로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촬영장에 갔다. 그냥 느끼는 대로 대사를 하라고 하셨다. 감독님이 ‘형식씨 편하게 하세요’라고. ‘저 지금 편해요’라며 계속 촬영이 이어졌다. 그게 열 번이 넘어서니 걱정이 되더라. 20번 정도 되니 ‘아,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이러면 안 되는데’ 속으로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 때 문소리 선배가 니 마음 잘 알겠다는 눈빛으로 보고 있더라.”
박형식은 촬영현장에서 문소리 선배가 연기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누나에게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랬다. 감독님께 다른 날 촬영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근데 문 선배가 ‘난 이창동 감독과 찍을 때, 테이크를 40번, 50번 가기도 했다. 편하게 해라’라며 위로 해주셨다.”
- 도대체 문제의 그 장면이 어떤 장면인가.
“별 거 아니다. ‘배심원은 처음이다’고 말하는 장면. 찍은 것 중 몇 번째 장면을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비밀이래요. 전, 처음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 ‘27번 테이크’의 교훈은?
“감독님이 오케이하고 넘어간 게 가장 큰 위로가 된 것 같다. 그냥 한 번에 오케이 했으면 아마 그날 난 잠도 못 잤을 것이다. 다시 찍자고 했을 거다.”
- 법정에서 만난 ‘청소 요정’(김선영)은?
“너무 재밌었다. 내가 길을 잃었을 때 어떤 영적이 존재가 나타나서는 ‘어디로 가’라고 바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 그런 게 좋았다. 영화 끝에 다시 등장하잖은가.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의를 표현하는 느낌이랄까.”
- 아이돌출신 연기자로서 ‘발연기’ 논란에 대해.
“아휴~ 제가 처음 출연한 드라마 <바보 엄마>(2012,SBS) 보세요. 그 드라마 할 때 회사에서 연기선생님을 붙여주었다. 기본기도 없는 애가 당장 촬영 들어가야 했으니. 급한대로 정해진 연기를 배웠다. 선생님의 억양, 말투를 그대로 카피해서 현장에서 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다른 느낌으로 안 될까요’ 그러는 거였다. 귀가 다 빨개졌다. 도망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기 공부가 필요하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 열심히 연습했다. <시리우스>(2013,KBS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때는 ‘다른 느낌으로 하면 안 될까요’라는 주문을 받았을 때 ‘이런 감정으로 가면 괜찮을까요’라고 감독님이랑 의견을 나눴다. 소통한다는 것이 너무 기분 좋았다. 다행히 좋게 봐주신 것이다. 자신감이 생겨 더 열심히 한 것 같다.”
- 장편영화는 처음이다. 드라마와는 어떤 점이 달랐나.
“드라마에선 한 씬을 찍기 위해 27번 테이크를 가는 경우는 없다.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 27번씩이나 같은 장면을 찍는 것도 정성이다. 어떤 마인드인지 아니까. 그래서 리허설 많이 한다. 공연 올리기 전에 연습하는 것처럼.”
- 실제 자신에게 배심원 참여 제의가 들어오면?
“무언가를 판단해야하는 입장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영화 속 그들처럼 했을 것 같다. 특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 아닌 이상, (증인으로 나온) 전문가의 의견과 (배심원)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까. 그렇게 심판을 내린다는 게 내겐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
- 그럼,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평가자 섭외가 들어오면?
“재밌긴 하겠지만 제의가 들어와도 안 할 것이다. 노래나 연기나 그림이나, 모든 걸 점수로 매길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은 이제 ‘취향’의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잘 한다 못 한다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취향을 존중하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 박형식, 진짜 사나이 된다
-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에 출연한 이유가?
“당시 모든 상황이 맞아 떨어졌다. 앨범을 냈지만 성과가 별로 없었다. 멤버가 9명이나 되었다. 뭐라도 시켜달라고 했다. 정말 뭐든지 하겠다고. 그런 마음일 때 주말 황금시간대 예능프로그램 고정멤버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진짜 열심히 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생 많이 한 프로그램이다. 그땐 뭐든지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진짜 못한다.”
홍승완 감독은 ‘진짜 사나이’에서의 ‘아무 것도 모르고’ ‘눈치껏 따라하는’ ‘어리바리 아기병사’ 박형식을 떠올리며 <배심원들>의 권남우를 캐스팅했다고 한다.
박형식은 내달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대에 입대한다. 먼저 군에 간 임시완은 제대했다.
“시완이 형 군에 갈 때 ‘시간 금세 간다’고 말했었는데....”라며 “남은 시간 스킨스쿠버 하고 싶고, 즐겁게 보내야죠.”란다.
인터뷰가 끝나고 싸인을 한 장 부탁했다. “몸 건강히 잘 다녀올 수 있길..”이라고 쓴다.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팬들의 마음일 것이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제공=U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