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법정드라마를 보면 피고인을 앞에 두고 판사, 검사, 변호사와 함께 또 하나의 무리를 만날 수 있다. ‘배심원’이라 불리는 존재이다. 이들은 검사와 변호사의 불꽃 튀는 법정공방을 지켜보며 ‘판사’의 판결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다. 2008년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제도’(‘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다.
만 20세 이상의 국민 중 무작위로 선정되어 형사재판에서 사실의 인정, 법령의 적용 및 형의 양정에 관한 의견을 판사에게 제시하게 된다. 현재로선 ‘형사재판에 한해’, ‘의견의 제시’까지만 가능한 제도이다. 물론, ‘법조인만의 리그’에 ‘일반 시민’이 참여한다는 것은 ‘없는 것 보다는 나은 일’일 것이다. 한국형 배심원제도가 현재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영화가 개봉된다. 홍승완 감독의 데뷔작 <배심원들>이다. 이 영화에서 문소리는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큰 변화를 몰고 올지도 모르는 첫 번째 국민참여재판을 이끄는 재판장 김준겸으로 출연한다. 문소리에게 소감을 물어보았다. 영화개봉을 앞두고 지난 주 진행된 인터뷰이다.
- 영화는 어땠나?
“기술시사회 때 봤다. 기자시사회 때는 긴장이 되어 내가 출연한 영화를 편하게 볼 수가 없더라. 반응을 들어보니 우리가 가고자했던 방향으로 배를 띄우긴 한 모양이다. 감독님이 중심을 잃지 않고, 처음 원했던 방향대로 갔다. 물론 아직 샴페인 터뜨릴 때가 아니라고, 개봉되기를 기다려보자고 했다.”
- 한국에서의 배심원제도는 낯설다
“제목부터 그렇다. <배심원들>이라고 하니 어떤 영화인지 금방 떠오르지는 않는다. 관객들이 제목에서부터 낯설어하겠구나 생각했다. 법정드라마에 대한 우려는 있었다. 내가 잘 하면 된다. 밸런스를 잘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신인감독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는지. (배우 문소리는 ‘단편’과 ‘장편’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 “연출은 어렵다. 현장에서 결정할 게 많은 힘든 자리이다. 경험이 많은 감독과 작업할 때는 어느 정도 기대어 갈 때가 있다. 신인감독과 작업할 때는 오히려 기운을 빠지게 할까봐 조심스럽다. 그런데 홍 감독님은 이 영화 준비를 오래 했다. 난 캐스팅이 일찍 되어 1년 정도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충분히 신뢰를 쌓았다. 감독이 얼마나 꼼꼼하게 취재하고,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가다듬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점이 신뢰가 갔다.”
문소리의 24K 금반지
“영화에서 김준겸 판사는 24K 반지를 끼고 있다. 의상팀에 특별히 부탁한 것이다. 디자인까지, 꼭 24K로.”
“영화를 준비하면서 판사들을 만나보니 우리랑 똑같더라. 판결문 쓰는 스타일도 제각각이고. 관객에겐 드러나지 않겠지만 내가 보면서 각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순금 같은 느낌. 오랜 기간 뭔가를 축적한 분들의 이미지이다. 24K 순도의 자긍심도 있었을 것이다. 연기하면서 그런 판사의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그런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끼고 있었다.”
영화에서 “처음이니 잘 하고 싶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박하사탕>을 찍을 때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배심원들> 첫 리딩 때 감독님이 그 말을 하셨다. 처음이라 잘 하고 싶다고. 그게 감독님의 대표워딩이었다.“
- (남편) 장준환 감독의 조언은 있었는지.
“영화 이야기는 많이 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조언은 없었다. 각자가 알아서 한다. 이 작품 출연 결정 나고, 시나리오 궁금해 하기에 보여줬고, 홍 감독이랑 같이 만나기도 했다.”
아이돌 배우 박형식
“그때까진 그가 출연한 작품을 본 게 없었다. 캐스팅 이야기 나왔을 때 찾아봤다. 허진호 감독의 단편 ‘두개의 빛: 릴루미노’에 나왔더라. 아름다운 청년이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감독님은 ‘진짜 사나이’보고 캐스팅하려고 했다더라.”
- 문소리는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되었나.
“연기에 대한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소극적인 아이였다. 연극에 관심이 있었지만 감히 하겠다는 꿈을 갖지 못했다. 근데 서클 활동은 할 수 있잖은가. 나중에 학교에 근무를 하게 되도 말이다. 문학을 좋아했고,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고, 대학로에서 살다시피 했다. 강의도 안 듣고. 지금 생각해보니 강의는 낮이고, 연극은 밤인데, 그 때 왜 강의를 안 들었을까?”
- 배우가 안 되었다면?
“예전에 이런 질문 받으면, 그냥 인터뷰용으로 연극과 관련된 일이나 창작 쪽 일 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이전에 어느 영화제에서 기자에게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다른 대답을 한 적은 있다. 버라이어티에서 영화제 특집호 낼 때 감독이랑 배우에게 공통질문을 했었는데 난, ‘알코올 중독’이라고 대답했었다. 아마, 못 버텨낼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질문한 기자가 배꼽을 잡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답변이라고 하더라.”
- 좌우명이 있는가?
“잠깐만요” 하더니, 다이어리를 꺼낸다. 책을 읽다 좋은 글귀를 만나면 적어둔다고. 다이어리 첫 장엔 싸인이 있다. “한영애 가수 싸인 받았어요.”라고 웃는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부유불거(夫惟不居) 시이불거(是以不去). 공을 이루더라도 거기에 머물지 말라.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완성된 것에 떠나야한다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뭘 좀 이루면, 계속 버티려고 한다. 그것에 집착하게 되고. 고통도 생기고 그런다. 잘 흘러가면 밀려날 걱정도 없는 거죠.”
- 그래서 어디로 갈 것인가?
“영화의 세계 안에서 재밌게 탐험 중이다. 가을엔 연극을 할 것이다. 2016년에 국립극단과 프랑스 연출자 아르튀르 노지시엘와 함께 <빛의 제국>이라는 작품을 했었다. 그 연출가와 한 번 더 작품을 하는 것이다.”
문소리가 재판장을, 박형식, 백수장, 김미경, 윤경호, 서정연, 조한철, 김홍파, 조수향이 배심원으로 출연하는 영화 <배심원들>은 15일 개봉한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