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과 OTT, TV드라마를 오가며 연니버스를 펼치고 있는 연상호 감독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내일(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염력>, <반도> 등을 함께 작업한 민홍남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선산>에는 영화의 질감과 두께를 결정짓는 중요한 설정이 있다. 물론 공개되면 다 알려질 이야기지만 아직 작품을 보기 전이라면 비밀로 해야할 듯. 연상호 감독은 “결정적인 스포가 되니 그 점만 피해주시기 바란다.”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넷플릭스 6부작 오리지널 <선산>은 존재조차 몰랐던 작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상상도 못했던 ‘선산’을 물려받게 된 윤서하(김현주)의 이야기이다. 갑작스레 큰돈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길 수밖에. 이제 윤서하의 윤씨 집안, 그리고 마을 사람을 혼돈에 빠뜨릴 엄청난 이야기가 펼쳐진다.
Q. [부산행] 이후 연상호 감독 작품은 우리 관객만큼이나 해외 영화팬의 기대가 크다.
▶연상호 감독: “그렇다. 기대가 된다. 해외 관객들은 어떤 관점으로 이 작품을 볼까. 가족의 이야기이다. 가족 이야기는 한국만의 것은 아니기에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는 조금 낯설 것이다.”
Q. <선산>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연상호 감독: “작가와는 한국적인 색채의 스릴러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시작할 때는 두 가지 정도의 아이디어가 있었다. 시골마을의 ‘사이비 종교’와 ‘선산’이라는 소재였다. <사이비>는 비닐하우스의 이미지도 있고 익숙하다. <선산>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선산’에 얽힌 가족, 친척간의 싸움에 대해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선산’의 핵심은 무엇일까. 선산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스릴러로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좋은 작품이란 관객에게 좋은 질문을 던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윤서하가 이야기하는 가족이야기에서 ‘가족’이란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를 던지고 싶었다. 통념에서 벗어나는 극단적인 것을 생각해 보았다. 엄청난 대비가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라면 괜찮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보았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고 난 뒤, 그 이후의 범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것이다. 엄청난 쓰레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엄청난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Q. 캐릭터는 어떤 식으로 배치하려고 했는지
▶연상호 감독: “처음 생각한 것은 이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가족과 연관이 있는 사람으로 설정하고 싶었다. 윤서하, 김영호뿐만 아니라 최성준. 박상민도. 후반부 건물주(유승목)도 모두 저마다의 가족과 얽혀있다. 이성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더라도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계속해서 다른 사건이 유발되는 것이다. 결국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른다.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재미가 있다.”
Q. 김영호를 연기한 류경수의 역할이 중요했다.
▶연상호 감독: “류경수는 전작 <지옥>에서 유지 사제를 연기했다. 그 때의 캐릭터는 ‘새진리회’에서 무언가를 이어받은 역할을 연기했다면, 여기서는 뭔가를 발생시켜야하는 인물이다. 도전정신이 강한 배우이다. 넘칠 수도 있고, 모자랄 수도 있는데 역할이었는데 두려움 없이 잘 표현해냈다. 김영호 캐릭터가 전체 이야기에서 제일 재미있는 연기를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Q. 김현주 배우가 또 출연한다.
▶연상호 감독: “<지옥>을 찍으면서 김현주 배우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었다. 액션 연기를 얼마 안 해봤을 텐데 잘 소화했고, 잘 어울렸다. <지옥>에서 엄마가 화살촉에 테러 당해 입원했을 때, 사람들 눈치 보는 장면이 있다. 그때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해서 <선산>의 윤서하가 나온다. 남의 눈치를 보는 인물이다. 김현주 배우라면 <선산>의 윤서하에게서 다른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편집본을 보니, 정말 다른 모습을 보이더라. 여태 못 본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Q. 배우들의 연기가 다들 대단했다. 그중 차미경 배우의 후반부 연기가 놀라웠다. 중견배우의 응축된 에너지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
▶연상호 감독: “차미경 선배 관련해서는 스포일 수 있다. 정말 놀라운 연기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해줄 줄 알았다. 저하고는 개인적인 만남은 없다. 이전에 <방법>에서 성동일 배우 엄마 역할로 나왔다. 그때 연기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부탁드린 것이다. 열정이 대단하시다. 후반부에 손톱으로 벽을 긁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제작진과 협의가 없었다. 감정을 표출하는 신인데 손이 진짜 다 까질 정도로 역할에 빠졌다. 차미경 배우에게 더 많이 주목해 주셨으면 한다.”
Q. 윤서하 캐릭터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선산에서 조금씩 무너지면서 특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연상호 감독: “윤서하가 벼랑 끝에 내몰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는 가족과의 관계에, 현재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벼랑에 내몰린다. 남편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비아냥대는 장면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가족 입에서 듣는 것은 더 비참할 것이다. 그리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도 더해진다. 결국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된다. 그동안 해온 작품에서 휴머니즘을 자주 이야기했다. 휴머니즘은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 빛이 난다. <선산>에서 그런 엔딩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박희순 선배도, 윤서하도 엔딩의 순간에 빛이 난다.“
Q. 10년 전에 부산국제영화제 APM에 스토리로 참여한 것이 시발점이라고 했는데, 당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인 영화사가 없었나.
▶연상호 감독: “그 때는 단지 두 개의 설정만 있었다. 스릴러인데, 당시 썼던 트리트먼트를 보니 주인공이 남자였다. 이후 그 이야기만 줄곧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후반부 소재 때문에 말이다. 그동안 다른 작품 하면서 관계자들에게 <선산>에 관해 꽤 많이 이야기했었다. 제작자들이 듣고는 난색을 표했다. 드라마로 가는 건 힘들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넷플릭스가 성장하면서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주인공이 선산을 물려받으면서,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을 알게 되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였다.”
Q. 트리트먼트에서 시작된 ‘선산’ 프로젝트는 어떻게 6부작으로 완성되었나.
▶연상호 감독: “<돼지의 왕>이후 실사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사이비>까지 하고 나서도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을 기획하고 싶었다. 그게 <선산>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기차에 좀비가 타는’ 이야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에서 온도차가 느껴졌다. <선산>은 그냥 그런 반응이었는데 <부산행>은 반응이 좋았다. 결국 시간이 걸렸지만 이런 소재를 넷플릭스와 다루게 된 것이다.민 감독과 황 작가랑 같이 완전히 쪼그만 아이디어를 해체하고 만들어낸 것이다.”
Q. 연상호 감독은 그야말로 넷플릭스의 총아 아닌가.
▶연상호 감독: “절대 그렇지 않다. 작품 하나 들어갈 때마다 힘들다. 대본 보내고 그것이 결정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다. 얼마 전에도 몸살이 난 와중에 뭔가를 해야 했다. 주사 맞고 자료 넘겨야했다. 넷플릭스가 만만하지는 않더라.” (연 감독 같은 크리에이터는 장기계약 가능하지 않나? ‘몇 개 작품, 몇 개 에피소드’ 식으로?) “그렇게 일을 정해 놓고 하고 싶지는 않다.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다. 그렇게까지 잘 할 자신도 없다. 흥행만을 생각하면 몸을 움직이기 어렵다. 만화를 그리는 이유도 그렇다. 영화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움직인다. 자본도 많고. 투자 받기도 힘들고, 투자 받으면 책임이 따른다. 만화는 만드는 것 자체는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혼자서라도 가능하다. 만화 작업을 하면서 영감이 생기는 것 같다.“
Q. <선산>이 가장 한국적인 소재라고 자신했는데.
▶연상호 감독: ”처음 민감독이랑 작업할 때 같이 본 드라마가 미드 <트윈픽스>였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것인데 예전에 한국 TV에서도 방송했었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스릴러인데,초자연적 요소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상당히 미국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미국사람이 아니니 100퍼센트 이해는 못하더라도 기묘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사건을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아마 <선산>에서도 해외 팬들이 낯선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Q. 무속신앙에 대한 리서치를 했는지. ‘부적’ 같은 게 흥미롭다.
▶연상호 감독: “<방법>할 때 공부를 많이 했다. 그 당시에 자료를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 당시에만 해도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았다. 무속신앙은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선산>에서는 그런 요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촬영 때문에 철거현장에 간 적이 있는데 폐가에 ‘삼재부적’을 보고 놀랐다. <방법>때 조사한 것을 많이 사용했다. 황 작가도 그때 자료조사를 해서 잘 알고 있다.”
Q.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지.
▶연상호 감독: “당연히 있다. 작품으로 할 때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 흥행이든 비평이든. 그런데 제 뜻대로 되지는 않더라. 그런 것에 연연한 적도 있고, 초연해지려고 한 적도 있다. 결과가 무의미하더라. 작품은 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넷플릭스 담당자와 계속 소통하고, 배우들과 계속 이야기 나누고, 그렇게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부산행>은 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지?) “글쎄. 그때는 잘 몰랐다. 정확한 이유를. 한두 가지 이유는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즉각적인 텐션인 것 같다. 초반 세팅 되고 바로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 걸 생각하고 쓴 것은 아니었다. 요즘 콘텐츠 중에 그런 게 많더라. 초반 세팅이후 바로 텐션이 발생한다. 그런 재미 요소가 있었던 것 같다. <선산>은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다. 느슨하게 조여 오는 텐션. 물론 결과는 모르겠지만.”
Q. 충격적 결말에 대해서는?
▶연상호 감독: “자극을 위해서가 아니다. 극중 차미경 선배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통념을 벗어난 상황이다. 그게 영화의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자극적이지 않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작가(황은영)와 감독이랑 제일 많이 이야기한 지점인 것 같다. 충격과 자극? 그 뒤의 정서를 받아들이는 것. 관객들도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Q. 차기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연상호 감독: “<지옥2>는 촬영 끝났고 후반작업 중이다. 정진수가 부활을 한다. 부활자들을 데리고 세상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세상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방법이 다 다르다. 세상의 모습도 다 다르고. 그래서 그들이 격렬하게 충돌하게 된다. 작업을 하면서 배우들의 연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만화하고 다른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생수: 더 그레이>가 먼저 개봉될 것 같다. 완전히 다 끝났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일본 <기생수>를 바탕으로 전소니, 구교환, 이정현이 출연하는 공포 스릴러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촬영이 끝난 <지옥 시즌2>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김현주, 김성철, 김신록 등이 출연한다. 김성철이 새진리회의 새로운 의장(교주)로 출연한다.
연상호 감독은 “그리고 곧 ‘이것’ 촬영 들어갈 것이다. 영화이다. 아직 도장은 안 찍었다.”고 덧붙인다. 최규석과 함께 한 만화 <계시록>을 손에 들고 열 일하는 크리에이터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김현주, 박희순, 박병은, 류경수, 류승목, 현봉식, 김재범, 정인기, 최유화, 차미경, 박성훈 등이 출연하는 넷플릭스 6부작 오리지널 <선산>은 내일(19일) 공개된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