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크리처’는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 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탐욕 위에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이야기다. 한소희는 죽은 사람도 찾아낸다는 소문난 토두꾼 윤채옥을 연기한다.
작년 12월 22일 ‘파트1’(1부~7부)에 이어 해가 바뀌고 1월 5일 파트2(8부~10부)가 공개된 넷플릭스 ‘경성크리처’는 박서준, 한소희라는 핫한 스타가 출연하는 것 말고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이른 1945년 봄, 경성(서울) 한복판, 옹성병원 지하에서 벌어지는 은밀하고도 위험한 ‘생체실험’을 다룬다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독립운동가의 활약상? 731마루타에 대한 고발극? 아니면 시대극을 빙자한 박서준, 한소희의 로맨스? <경성크리처> 시즌2가 만들어진다는 소식과 함께 한소희를 만나 ‘경성’의 ‘크리처’에 대해 물어보았다. 한소희는 사라진 사람을 찾아내는 일을 전문적으로 한다는 토두꾼 윤채옥을 연기한다. 지금은 아빠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진 엄마 성심(강말금)의 행방을 찾고 있다.
“시즌1과 2가 함께 진행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시작할 때 시즌1이 경성시대이고 시즌2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촬영 들어갈 때는 경성시대 대본만 나온 상태였다.”
Q. 호불호가 갈린다. 독립군에 대한 묘사나, 채옥과 장태상(박서준) 관계의 급전개에 대해서 말이다.
▶한소희: “저희가 진심을 다해 촬영을 했지만 시청자들은 다르게 볼 수도 있다. 그것을 두고 왜 우리의 뜻을 이해 못하느냐, 곡해하느냐 하는 것은 시청자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태상과의 관계가 급전개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저는 이 작품을 찍으면서 이게 로맨스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대를 살아간 여러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태상과 채옥의 감정선 안에는 사랑도 있지만 전우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스타에 ‘너무 로맨스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그 시대를 살아간 여러 인물의 삶을 잘 봐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Q. 시대적 배경이 1945년 봄이고, 작품 속 옹성병원은 731부대의 만행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다. 역사적 소재를 다룬 드라마에 참여하면서 따로 공부한 것이 있는지.
▶한소희: “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을 연기한 것이다. 채옥은 독립군 캐릭터가 아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기반만 알고 캐릭터를 준비했다. 채옥의 대사 중에 ‘만주에서도 똑같은 생체실험을 하고 있었다’는 대사가 있다. 채옥이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그 현장을 직접 몸으로 맞닥뜨리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시청자의 눈이 된다. 허구와 논픽션이 섞인 드라마이다. 채옥의 삶은 독립군이 아니라 엄마를 찾기 위해 자기의 인생을 오롯이 건 인물이다. 그런 것들에 밸런스를 맞춰가며 채옥을 연기했다.”
Q. 촬영할 때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한소희: “초록색 크로마키 촬영이 너무 힘들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라서. 초록색 막대기로 초점을 맞추면서 ‘이게 엄마야!’라는 것이다. 레퍼런스 영상 보고 엄마와 처음 마주하는 신인데 오직 상상력만으로 엄마를 그려야했다. 사람과 사람이 연기하면 눈으로 전해지는 에너지가 있는데 이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감독님에게 물어봤다. 지금 엄마의 모습이 어떤지. ‘고문을 많이 당해서 상처가 많다. 팔과 다리에.’ 엄마의 상황을 두고 어떤 감정이 떠오를까. 10년 만에 만난 엄마가 저런 지경이라면? ‘누가?’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그런 대사가 왈칵 나오더라. 액션은 힘들지 않았다.” (그럼, 엄마를 연기한 강말금 배우와 대면 연기를 한 신은?) “없었다. 수중장면 촬영 때 현장에서 잠깐 봤고. 다 따로 촬영한 것이다.”
Q. 시대극 대사가 힘들었을 것 같은데.
▶한소희: “채옥의 성격이 급하다. ‘내가 알아서 할 게’ 같은 느낌. 그 성격이 들어가면 대사를 할 때 자연스레 톤이 정해진다. 채옥의 목표는 딱 하나이다. ‘엄마!’ 나머지는 다 필요 없다. 대사에도 많이 나온다. ‘됐어. 다 필요 없고, 내가 찾을게’라고. 다른 사람 못 믿는 것이다. 물불 가리지 않고, 자기 인생을 포기하면서 엄마를 찾으려고 한다. 그게 실제 내 성격과 교집합이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야 한다. 물불을 왜 가려야하나.”
Q. 한소희가 연기한 채옥은?
▶한소희: “내가 해석하고 연기한 채옥에 대해 감독님이 믿어주셨다. 작품을 찍으면서 ‘그래. 여기서 채옥이를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나야!’라는 생각을 갖고 그 믿음 하나로 촬영에 임했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많이 괴롭혔다. 분장, 의상, 미술, 소품 스태프를 많이 귀찮게 했다. ‘컷’ 하면 그들에게 달려가서 ‘채옥이 같았어?’라고 물어봤다. 계속해서 ‘채옥이 같았어?’, ‘채옥이 같았어?’, ‘채옥이 같았어?’라고. 나중엔 다들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하하하) 촬영할 때 나는 모니터링을 안 한다. 한 번 하게 되면 신경이 쓰인다. 머리를 이렇게 쓰다듬다가 그 손에 신경이 쓰이게 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정확할 때가 있다. 그래서 ‘채옥이 같았어?’라고 묻는 것이다. ‘소희가 짱이야’ 이런 말 하는 사람 말고. 정확하게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한다.”
Q. 마음에 드는 장면은.
▶한소희: “‘죽는 건 별로 슬프지 않은데 내가 살다간 흔적조차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면 그건 왠지 슬플 것 같애.‘ 이 대사가 왠지 모르게 슬펐다. 원래 우는 대사가 아닌데. 그 대사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 대사는 꼭 그 순간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 말해도 슬픈 것이다. 그리고 박서준의 대사 중에 ‘그 시대에 살지 않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사람들이 그렇게 살게 되었어’하는 말도 마음에 든다.”
Q. ’파트1‘ 공개 때보다 ’파트2‘가 마저 공개되면서 호평을 받았다.
▶한소희: “아무래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8,9,10화에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제목이 ’경성크리처‘이다보니 시청자들이 혼란스러운 면이 있다. 이게 크리처물인가? 태상과 채옥의 사랑이야기인가?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인가? 생체 실험에 대한 이야기인가. 혼란스러움이 있었을 텐데 마에다(수현)가 등장하면서 정리해 주고, 우리가 원래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제대로 전해 준 것 같다. 이건 ’크리처‘물이 아니다. 그래서 인스타에 그렇게 올린 것이다. ’700억짜리 크리처‘를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Q. 한소희 배우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안중근 사진과 관련하여 반응이 뜨겁다. 일본어 댓글도 많이 달렸고. 안중근 의사 사진을 올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한소희: “특별한 이유는 없다. <경성크리처> 공개되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와 심란한 마음에 밖으로 드라이브 나갔다가 안중근 선생님 그림이 있어 찍은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 관련하여,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 사진을 하나씩 같이 올린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이 삶을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악플이 많이 달렸다는데 난 일본어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인지 몰랐다. 그런데, 일본 팬이 ‘슬프다’고 한 댓글에 ’슬픈 일이지만 그것은 사실‘이라고 답변을 한 것뿐이다. 실제로 DM으로도 많이 보내주신다. (악플에 대해) 그것이 전체 일본인의 의견이 아니라고. 인신공격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고맙기도 하고. 또 정작 저는 못 알아들었고. 그렇게 사과해주니 너무 고맙다.”
Q. 한소희 배우는 롤모델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것이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가.
▶한소희: “이런 것들이 금기어가 된 것이 이상하다. 화난 것도 알겠는데, 나는 픽션과 넌픽션이 섞인 작품에서 채옥이를 연기한 것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한다. 우리는 현대를 살고 있고, 미래를 살아야지, 과거에 사는 사람이 아니잖은가. 작품은 작품으로만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Q.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한소희: “이런 작품에 참여했다는 것이 감사하다. 저는 한국인이니까. 근데 마치 제가 죄를 지은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 난 죄를 짓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냥 떳떳한 것이다.”
Q. 작품 선택의 기준이 있다면?
▶한소희: “누구 한 사람의 독주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앙상블이 되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걸 잘 보는 것 같다. 누구만 빛나는 대본이 아니라, 다 같이 하나하나 빛이 날 수 있는 작품. 그런 걸 좋아한다. <경성크리처>가 그랬다. 나월댁(김해숙)이 되었다가, 갑평 아재(박지환)에게도 이입했다. 다채롭게 볼 수 있더라. 명자(지우)에게도 이입했었다.”
Q. 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한소희: “저대로 살고 싶다. 법(法) 안에서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저답게 사는 것. 어차피 인생은 한번인데 눈치는 조금만 보더라도 재밌게 살고 싶어요.“
Q. <경성크리처>와 함께 20대를 보내고, 이제 30대 배우가 되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소희: ”20대에는 건강을 해쳐가면서 연기를 해도 되는 것 같았다. 살을 뺄 때에도 굶어서 빼면 되고, 연기할 때도 실제로 나를 구석으로 몰아서, 날 울려서 연기를 하면 되었다. 그렇게 해도 금방금방 회복이 되었다. 그런데 불과 1,2년 사이, 회복이 잘 안 된다. 잠을 자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가 없고, 밥을 먹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가 없다. 팬들에게는 밥을 잘 챙겨먹으라고 했는데 이제 나에게 그런 말을 하게 된다. 이젠 육신이 일단 건강해야한다. 그걸 뼈저리게 느낀다.“
'경성크리처'는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 봄을 배경으로 두 명의 청춘 남녀가 ‘크리처’와 맞서 싸우는 <경성크리처>는 [시즌1]을 끝내고 [시즌2]를 준비 중이다. 시즌2는 현대가 배경이란다. 이제 진짜 ‘크리처 드라마’가 될지, 진짜 로맨스가 될지, 그 이야기의 향방이 개대된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