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공영방송 KBS <고려거란전쟁> 시청자라면, 이제 양규(楊規)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아직, 모른다면, 그의 위업을 모른다면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보시기 바란다. KBS와 웨이브, 넷플릭스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지난 주 16회 방송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양규 장군, 서북면 도순검사(都巡檢使)를 연기한 배우 지승현을 만나 대한민국 역사히어로를 연기한 소감을 들어보았다.
“이렇게 인터뷰한다고 많이 와주시다니. 어제 KBS에 갔었는데 직원 분들이 알아봐주시고,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Q. 최수종 배우가 나오는 대하사극이라 강감찬의 활약상을 기대했었는데, 초반은 양규 장군이 시청자를 사로잡은 것 같다.
▶지승현: “양규 장군을 잘 표현해 주었다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서희, 양규, 강감찬, 그리고 조선의 이순신은 하나같이 위대한 분이시라고 생각한다. 양규 장군을 이렇게 사랑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Q. 드라마에서는 거란 사람과 많이 맞선다. 촬영현장은 어땠는지.
▶지승현: “사실은 현장에서도 거란족 선배(배우)들을 만난 적이 없다. 흥화진부터 따로 찍었다. 마지막 15, 16부 촬영 때, 죽음 신 장면에서 고려 파트 다 끝나고 잠깐 나와서 찍었다. 대부분 혼자 찍고 마지막에 멀리서 화면에 걸리는 장면만, 필요한 부분만 찍는 식으로 합리적인 촬영 시스템이었다고 생각한다. 고려 쪽도 그랬다. 최수종 선배님도 네댓 번 밖에 못 봤다. 주로 주연우(김숙흥), 김산호(정성) 셋이서 같이 있었다. 나머지 배우들은 같이 호흡을 많이 못 했다. 현장에서 뵐 일도 별로 없었다.”
Q. 양규가 펼친 전투에 대해 소개해 달라.
▶지승현: “흥화진(興化鎭)은 적인 거란과 처음 조우하는 성이었다. 거란의 40만 대군을 3천 명 병사가 지킨다. 7일간 버티며 막은 것이다. 처음부터 거란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거란은 흥화진을 두고 20만이 내려가면서 등 뒤에 적을 두고 간 셈이다. 각주성 전투는 보급로와 연락책마저 끊은 전투이다. 마지막 전투인 ‘애전’(쑥밭) 싸움은 거란이 철수를 결심했을 때 펼치는 전쟁이다. 양규에게는 의미가 있다. 도망가는 적을 그냥 놔두면 되지만 그는 목숨을 바치고, 잡혀가는 고려의 백성, 포로 3만 명을 구한다. 적에게는 고려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포로에서 생환한 사람들은 나중에 귀주대첩 준비할 때 인력자원이 될 수 있었다. 그게 의미가 있다.”
Q. MBC <연인>과 KBS <고려거란전쟁>이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연말에 상도 받고.
▶지승현: “두 작품에 모두 참여해서 기쁘다. 영광이다. 운이 좋았다고 밖에 이야기할 수 없겠다. 연속해서 사극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의 서사로 로맨스 드라마이다. <고려거란전쟁>은 전쟁 드라마로 생각하고 연기를 했다.”
Q. <연인>에서의 구원무는 조금 찌질한 남성상을 보여준다.
▶지승현: “고려와 조선의 사회상을 조금 다르다. 고려시대만 해도 1부에 길거리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산분배에서도 남녀가 같았다. 모계(母系) 힘이 있었다더라.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가부장적 유교적 가치가 지배한다. 그것에 대한 반감이 있는 지금 세대에게는 구원무가 나쁜 놈이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구원무 편을 들 수밖에 없다. 유길채(안은진)를 찾으러 갔다는 자체가 이미 그 시대를 뛰어넘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구원무 생각에는 말이다. 지금 시청자가 보면 찌질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캐릭터 사랑했고, 욕받이가 되어도 괜찮다. 그만큼 드라마를 사랑한다는 관심의 증거이니 좋았다. 두 작품은 같은 시기에 촬영했다. 원래는 <연인> 끝내고 가야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촬영하게 되어 왔다 갔다 했다. <고려거란전쟁>에서는 고려 장군의 면모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걸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양규 장군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내심 뿌듯하다. 시작할 때 ’이 역할을 잘 해서, 양규를 널리 알릴 것‘이라고 스태프에게 밥 먹듯이 이야기했었다.”
Q. <고려거란전쟁>에서의 전투장면은 중후하면서 박진감이 넘친다. 갑옷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승현: “갑옷은 이전에 <나의 나라>(JTBC,2019)에서 잠깐 입었었다. 이번 작품에서 놀라웠던 것은 16부에 펼쳐지는 죽음의 전투에서 볼 수 있다. 칼로 갑옷을 때려서 쓰러뜨리고, 단검으로 갑옷 사이를 찌르는 장면이 세세하게 표현된다. 당시 철갑 옷의 형태에 대한 고증이 철저했다. 활 쏘는 것은 국궁 선생님에게 지도받았다. 특별히 부탁하여 각궁과 카본 활을 가지고 다니며 연습했다. ’각지‘를 손가락에 끼고 쏘는 것에 대해 국궁 동호회분들이 알아봐 주시더라.”
Q. 김한솔 감독의 연출은 어땠나.
▶지승현: “전쟁 장면은 김한솔 감독과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장이었다. 콘티북, 동영상 애니메이션으로 흥화진 전투장면을 미리 준비해서 볼 수 있었다. 그것과 똑같이 촬영했다. 필요한 컷만 촬영할 수 있었다. 해야 할 것만 명확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란팀과 마주치지 않고서도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상상에 의존해서 하는 것도 있다. 그린 스크린 쳐놓고, 하늘에서 불화살 쏟아지는 것. 상상하면서 연기했다. 현장에서는 다들 연신(연출의 신), 촬신(촬영의 신), 조신(조명의 신)이라고 감독님을 불렀었다. 한 팀이 되어 잘 촬영한 것 같다.”
“김한솔 감독은 솔테일이라 부른다. 너무 디테일하다. 흥화진 전투에서 거란의 한차례 화공이 이어진 뒤, 성벽에 핀 꽃이 등장한다. 그게 CG로 불꽃이 일더니 양규가 등장하며 불화살 공격을 시작한다. 그가 죽고 수레에 실린 시신으로 성에 돌아올 때, 그 꽃이 또 보인다. 물망초이다. ’나를 잊지 마세요‘인 것이다. 우리 구국영웅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현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희열을 느꼈다.”
Q. ROTC 장교 출신이다. 군인으로 보았을 때 양규 장군을 평가한다면.
▶지승현: ”하하. 28사단에서 근무했었다. 일단 양규라는 인물을 대본으로 처음 만났을 때는 그 분을 잘 몰랐다. 실존인물이라고 하더라. 김한솔 감독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업적이 대단했다. 화려하다고 말할 수밖에. 흥화진에서는 40만 대군을 상대로 3천명의 병사로 7일을 지켜냈다. 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곽주성을 탈환했다. 마지막엔 3만 명의 포로를 구한 게, 그 희생정신, 애민정신에 공감했다. 이런 위대한 인물이 왜 안 알려졌을까. 지금 이순신을 이해하는 것처럼 양규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할 것이다. 그런 양규의 업적을 고증대로 잘 표현만 해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전투 액션 찍으면서 영하 10도의 날씨에 다들 고생했다. 촬영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실제 전쟁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국제정세와 한반도 정세 불안하다. 평화의 시대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Q. <연인>과 <고려거란전쟁>은 TV뿐만 아니라 OTT에서도 인기가 높다.
▶지승현: ”이번 드라마하면서 플랫폼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젊은 세대들이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넷플릭스에서도 하니 ‘일단 보자’하는 것도 있고. 전쟁 장면을 짧은 숏폼으로 만들어졌고 많이 보는 것 같다. 그게 드라마로 유입되는 것도 있다. 예전엔 KBS와 MBC의 사극 톤이 달랐다고 하더라. K는 굵은 목소리가 떠오르고, MBC는 스타일리쉬한 것으로. 퓨전사극이 많아지면서 대하사극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김동준 같은 젊은 배우도 왕 역할을 하고, 고증 부분에서는 CG로 더 리얼리티를 살린다. 목소리 톤도 불편하지 않게, 과하지 않게 하는 것 같다. 대하사극 자체도 변하고, 플랫폼도 넓어지고, CG의 힘을 받아 고증도 더 디테일하게 만들어진다. 이런 변화가 사극을 만들 때 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예전부터 사극에 참여한 스태프 중에 ‘대사 톤이 사극 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긴 하다. 시대변화와 같이 가는 것 같다.“
양규는 장렬하게 전사했지만, 지승현 배우와의 인터뷰는 ②부에서도 이어집니다.
[사진=빅웨일엔터테인먼트/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