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하고, 예민하고, 심각한’ 표정의 배우 김윤석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충무로에서 활동하기 전 연극판에서 고생한 김윤석은 오래 전부터 연출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단다. 배우로 일가를 이룬 뒤 마침내 가슴에 품어두었던 꿈을 펼친 것이다. 5년 동안 준비한 작품 <미성년>이다. 김윤석을 만나 감독의 꿈을 들어보았다. 영화는 오늘(11일) 개봉한다.
● 연극을 사랑한 남자
- <미성년>은 원래 ‘연극’ 작품이었다.
“정식으로 무대에 오른 작품은 아니다. 인큐베이팅 단계의 작품이었다. 창작극을 내부적으로 올리는 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 무대 세트도 없는 상황에서. 극을 발전시키면 좋을 것 같았다.”
김윤석은 연극하는 후배들의 작품을 눈여겨본다고. “그런 작품은 지원을 받아야 실제 무대에 오를 수 있다. 그 때 제목은 ‘옥상 위의 카우보이’였을 것이다.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었다. 그걸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업하고, 영화로 먼저 선을 보이게 된 셈이다.”
-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소재가 매력적이었다. 흔한 소재지만 조금 특이했다.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의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원래 그런 이야기는 어른들끼리 싸우잖은가. 아이들 입장에서 보여주는 게 독특했다. 이야기를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
“처음 영화감독을 하게 된다면 대단한 영화적 메커니즘이 필요한 작품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카메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니.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연출하고 싶었다. 딱 그 정도가 나한테 맞을 것 같았다.”
● 김소진, 미희의 모습
“미희(김소진)는 19살, 고3때 아이를 낳았다. 그 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도박에 빠진 애 아빠(이희준)는 또 얼마나 한심한가. 철없는 불장난이었을 것이다. 미희는 홀로 아이를 키운 것이다. 그렇게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성장이 멈춰버렸는지 모른다. 세상의 차가움을 이겨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채워주길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김소진의 역할은 가장 미움 받기 쉬운 캐릭터이다.”
“배우 김소진은 내성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순수하기가 그지없다. 그가 웃으면 현장이 바로 무장해제 된다. 아기처럼 해맑게, 순수하게 웃는다. 그런 면이 있어야 ‘미희’의 상황에서 미움을 덜 받을 것 같았다. 김소진씨가 훌륭하게 해 주었다.”
-배우 연기 디렉팅은?
“동료배우로 다가갔다. 의미만 전달되면 된다고 대본에 묶이지 말고 편하게 대사를 하라고 했다. 난 서툰 신인감독이니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배우에게 다가가서 불편한 게 뭔지 물어보는 것이다. <미성년>은 배우들이 집중해서 연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캐스팅이 중요했다.”
● ‘대원’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김윤석은 이번 영화에서 연출뿐만 아니라 직접 바람피우는 ‘아빠’, 대원을 연기한다.
“영화에서 대원은 대부분 옆모습만 보여준다. 원래 콘티에도 옆모습과 뒷모습뿐이었다. 대원이 만나는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이런 역할을 할 배우를 찾는 게 어렵다. 대원은 기능적인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그가 뭘 했는지 알고 싶지도 않은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네 사람(네 명의 여자)이 상황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게 핵심이다.”
“대원의 대사도 ‘미안하다’,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뭐 그런 대사 말고는 없다. 한 배우에게 분노를 너무 키우면, 나머지 배우를 오염시킨다고 생각했다. 대원을 찌질한 인물로 바꾸니 영화에 숨 쉴 공간이 많아졌다.”
“작품을 고를 때 감독으로, 배우로 끌리는 것은 같다. 탄탄한 드라마와 단단한 사람이 있는 영화가 오래 가더라. 그런 작품은 몇 번을 봐도 새롭게 보인다. <쇼생크 탈출>은 열 번을 봐도 괜찮다. 사실 난 그런 장르를 좋아한다. 하지만 배우로 먹고 살아야하니깐. 감독들도 내게 파워풀한 캐릭터를 원한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나’ 답다고 한다. 아마도 박처장, 염가, 아귀, 이런 캐릭터가 기억에 남아 날 보는 모양이다.”
- 극중 유머코드는?
“대원에게는 유머 코드가 있어야하니까. 그런데 대원이 웃기기보다는 만나는 사람이 웃기는 것이다. 병원 에스컬레이터 장면에서 ‘코믹함’이 너무 심하면, 전체 톤이 무너질 것이다. 수위조절을 했다. 감독이니까 그건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공들인 장면이 있다면
‘아기의 인큐베이터 씬은 우리 영화에서 유일하게 세트를 짓고 촬영한 것이다. 더미(DUMMY)를 만들었다. 의학자문도 구했다. 5~6개월 아기 크기로. 25에서 28센티 정도 된다. 이런 아기는 7개월만 넘기면 대부분 문제없이 잘 자란다. 굉장히 섬세한 아기를 만들었다. CG까지 더하여. 굉장히 공을 들인 장면이다. ’못난이‘라고 부른 그 아기. ’못난이‘와 유일하게 교감을 나누는 게 두 사람이다. 신경 써서 찍었다.“
● 주리와 유나에게 아이의 의미
- 마지막 장면은?
“원작은 너무 이상했다. 그래서 많이 고쳤다. 30번 정도 고쳤을 것이다. 아무리 고쳐도 주리와 유나, 두 아이가 세상에 고개를 숙이는 것 같았다. 패배감 같은. 그때 작가가 써온 게 그것이었다. 의미가 있었다. 아이들이 잊지 않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못난이를 잊지 않도록.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당신들이 한 짓도 잊지 않겠다’는 뜻도 내포되어있다. 이 아이가 세상에 존재한 적인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다.”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보면 ‘너희가 버려서 우리가 주웠다’는 이야기가 있잖은가.”
김윤석 감독은 여기서 세대 간의 이야기를 펼친다.
“세대 간의 간극이 커진다. 지금이라도 손을 내밀지 않으면 큰일 날 것이다.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기고 말 것이다. ‘용각산’은 그 메타포이다. 기성세대가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나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정체되었고, 석고 굳듯이 굳어가는 것 같다. 그렇게 늙어갈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열어야할 것이다. 이젠 안 할 수 없는 시기가 된 것이다.”
● 제목 ‘미성년’, 성년이 아니다
- 제목은 어떻게 정했나.
“모든 스태프들이 참여한 가운데 50만원 걸고 제목 공모를 했다. ‘유원지의 불청객’, ‘주리와 윤아’ 등 별별 제목이 다 나왔다. 최종적으로 ‘미성년’이 정해졌다. 내가 정한 것이다“
- ‘미성년’의 의미는?
“‘미성년’은 아직 ‘성년’이 아닌 사람이다. ‘성년’이란 게 운전면허증 같은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한다.”
- 김윤석에게 ‘성년’이란
“청결? 톤앤매너가 중요하다 사람을 대할 때 예의와 매너가 있어야한다. 나이가 들면 무뎌진다. 아무렇게나 트림하고,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다. 밥 먹고는 이쑤시개 입에 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고. 그러지 않아야할텐데.”
오래 전 연극판을 떠난 김윤석에게 ‘연극 연출’할 생각을 있는지 물어보았다.
“우선은 마땅한 작품이 있어야지. 연극판 무대 메커니즘 그동안 많이 발전했다. 그걸 새로 배우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준비하는 자세는 똑같다. 철저한 준비가 최우선이다. 연극을 영화로 옮기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인테리어만 다시 하는 수준으로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새로 지어야한다.”
- 하정우가 감독으로 나선 것에 자극받았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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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정말 대단하다. 연기와 연출을 동시에 해보니 정말 멘탈이 왔다갔다 하더라. 하정우는 <허삼관 매혈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와 연출을 이끈다. 대단하다.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대원’역할이 딱 맞다”
● 주리와 윤아, 김혜준과 박세진
- 신인 김혜준과 박세진의 연기가 훌륭하다
“처음부터 오디션을 통해 신인을 뽑을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후보가 압축되었을 때 일대일 면담을 진행했다. 크랭크인하기 두어 달 전부터 계속 만나서 연습했다. 같이 밥 먹고, 맥주도 하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대학생이니.”
- 윤아와 주리.
“주리(김혜준)는 해설자 역할까지 한다. 처음에 창문 너머 훔쳐보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다들, 90%가 ‘윤아’를 연기하고 싶어 했다. 윤아는 강렬한 캐릭터이다. 독보적으로 튀니까. 그만큼 주리가 중요했다. 주리는 단단해야 한다. 유일하게 울지 않는 캐릭터일 것이다. 아, 물론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나. 다들 훌륭했다.”
- 방파제 장면과 펜션 이야기는 왜 집어넣었나?
“그건 집 나가면 무조건 개고생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었다. 아는 사람이 한다는 그 펜션도 퇴직금으로 장만한 것이다. 자영업해서 다 말아먹은 것이다. 명퇴를 앞둔 기성세대는 정말 중간에 낀 세대이다. 방파제에 동네 아이들에게 삥 뜯긴다. 지금 기성세대는 낀 세대로 위로도 아래도로 소통을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그런 오도가도 못 하는 모습을 방파제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심각하게 전달하면 안 된다. 이정은 배우가 원맨쇼를 잘 해주었다. 이정은은 20대 초반부터 알던 사람이다. 그런 배우를 카미오나 특별출연으로 소비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이희준, 염혜란도 똑같다. 다들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연기자이다. 미희가 입원한 병실에 등장하는 모녀 캐릭터 염혜란과 정이랑은 서로 닮은 배우로 캐스팅하고 싶었다. 가르마까지 같은 방향으로 타기를 바랐다. 비슷한 표정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주문했고 흔쾌히 ‘오케이’를 해주셨다”며, “정이랑 배우는 ‘SNL코리아’의 코미디언으로 많이들 알고 계신데, 연기자이다.”고 덧붙였다.
- 김희원 배우도 연극판 출신이다.
“김희원도 마찬가지이다. 연기도 잘 하고. 극에서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 눈치가 좀 없지. 자기 입장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어른이다. 틀이 한정적이다 보니 그렇게 아이들에게 역습을 당한다. 우리 작품에는 무시무시한 안타고니스타 나오는 게 아니다. 정말 숨 쉬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러면서 사건에 직면한 사람과 외면하는 사람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것이다.”
- 이제 배우가 아니라 감독으로, 작품과 흥행에 대한 평가가 신경 쓰일 듯하다.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칭찬을 받고 싶고, 이게 은퇴작이 안 되게 손익분기점은 넘었으면 한다. 희망사항이 있다면, 우리 배우들이 연기상 받았으면 좋겠다. 신인연기, 여우주연 다 휩쓸었으면 한다. 이보람도 각본상 받았으면 한다. 신인감독상? 그건 우선 순위 밖이다.” (KBS미디어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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