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데에는 ‘세익스피어의 영어’뿐만 아니라, ‘정보의 힘’도 주효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실존인물 T.E 로렌스는 아랍문화를 사랑해 마지않은 군인이었고, 007 제임스 본드의 작가 이언 플레밍도 모스크바 특파원과 정보관련 부대에서 일했다. 금세기 최고의 스파이소설 작가 존 르 카레는? 그는 냉전시대에 영국 외무부와 MI6에서 일했단다. 음험한 정보의 나라 영국이 느껴지는 작품 하나가 공개됐다. 존 르 카레가 1983년에 쓴 소설 <리틀 드러머 걸>을 원작으로 한국의 박찬욱 감독이 영국 BBC와 미국 AMC를 위해 만든 6부작 TV드라마이다.
유대인과 관련된 장구한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 건국과 관련된 짧은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땅은 ‘영국의 외교적 실책’의 압축판인 셈이다. 1948년, 지금의 땅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었고 그 이후 이스라엘과 중동의 갈등은 끝이 나지 않는다.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 숙소를 습격한 테러단에 맞서는 이스라엘의 보복작전은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에서 자세하게 나온다. 아라파트가 수장인 PLO는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맞서 싸웠다. <리틀 드러머 걸>에서는 그런 두 세력의 총력전이 펼쳐진다.
때는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몇 차례의 중동전쟁에서 패했지만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맞서기 위해 외롭고도, 지난한 투쟁을 이어간다. 독일의 이스라엘 외교관 저택. 팔레스타인에 의한 폭탄테러가 발생한다.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는 유럽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테러의 배후에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행동에 들어간다. 마틴 쿠르츠(마이클 새넌)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가 구성된다. 다들 스파이전에는 역전의 용사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 필요하다. 팔레스타인 조직에 침투할 인물. 이스라엘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의외의 인물이 필요하다. 이 대담무쌍한 작전에 찰리(플로랜스 퓨)가 이용된다. 런던의 작은 극단의 무명배우였던 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모사드에 합류하게 되고, 모사드의 베테랑 스파이 가디 베커(알렉산더 스카스가드)로부터 ‘침투/접선’에 필요한 최고의 기술을 익히게 사악한 이스라엘에 맞서는, 정의로운 아랍인의 대의명분에 충실한 ‘전사 찰리’를 ‘연기’하게 된다.
박찬욱 감독은 원작소설에 나온 ‘배우 스파이’와 ‘정치적 중립’에 감흥된 모양이다. 플로렌스 퓨가 연기하는 찰리는 ‘테러와 살인’의 배후에 존재하는 세계사적 역학관계에 대해 모호하다. 자신의 스파이짓이 궁극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의 붕괴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한 세계를 편드는 것도 아니다. 애매한 합류는 모호한 결말을 유도한다.
존 르 카레의 작품은 곧잘 영화화 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가장 유명하다면, 드라마에서는 ‘나이트 매니저’가 있다. BBC에서 만든 ‘나이트 매니저’는 2016년 서울드라마어워즈에서 대상과 감독상(수잔 비에르)을 받았다. 이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BBC는 박찬욱의 <리틀 드러머 걸>을 만든 것이다.
‘리틀 드러머 걸’은 물론 ‘북치는 작은 소녀’이다. 무슨 뜻일까. 5부에 나온다.(42분) 폭탄테러를 앞두고 모사드의 쿠르츠가 영국 정보당국자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스라엘의 일처리 방식이 못 마땅한 영국 책임자가 옛날 이야기를 들러준다. “옛날에 어떤 이스라엘 꼬마를 잡아서 신문했지. 제일 만만해 보여서 친구들 이름을 불겠거니 했는데 신문이 아무리 해도 말을 않더군. 녀석을 풀어주면서 내가 북 치는 소년을 하나 만들어냈구나 생각했지. 다음 전투에 뛰어나가 북을 두드려댈 녀석을. 염병한 시오니스트 깡패들.”이라고.
풀려난 소년은 더욱 맹렬히 상대에게 복수의 총질을 해댈 것이다. ‘찰리’는 커다란 파장을 불러온 작은 ‘혁명아’가 된 것이다.
<리틀 드러머 걸>은 국산 동영상플랫폼인 왓차플레이를 통해 감독판 6부작이 공개되었다. ‘감독판’은 영국 BBC, 미국 AMC, 그리고 한국의 채널A에서 방송되는 방송버전보다 러닝타임이 조금 길다. 박찬욱 감독은 ‘방송판과 감독판의 미세한 차이, 그러나, 감독의 의중에 대해’ 설명했다. 훨씬 더 공을 들여, 내밀하게 캐릭터의 심리를 살렸다고.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모사드가 펼치는 치열한, 혹은 더러운 스파이 작전은 넷플릭스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두키 디로르(Duki Dror)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더 모사드>(The Mossad: Imperfect Spies)라는 작품이다. 모사드의 역대 정보책임자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그들이 펼친 작전의 이면, 스파이의 실체를 밝힌다. <리틀 드러머 걸>과 함께 보면 훨씬 흥미진진한 ‘역사공부’가 될 듯하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