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해가 바뀌기 훨씬 전부터 서점가는 일찌감치 ‘다음 해’를 전망하는 책들로 가득 찼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오래 전부터 <세계대전망>을 내놓고 있고, 김난도 교수는 어김없이 《OTT 트렌드 2024》를 출간했다. 서점에 가면 ‘트렌드’와 ‘전망’, ‘대예측’의 타이틀을 단 연례보고서, 동향보고서, 예측서 류(類)의 책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그 책 더미 가운데 《OTT 트렌드 2024》가 있다. 작년에 출간한 《OTT 트렌드 2023》에 이은 또 하나의 ‘연례보고서’인 셈이다. 과연 ‘2023버전’과 비교하여 이쪽 업계는 얼마나 달라졌고, 유저(구독자/시청자)들은 또 얼마나 변심했을까.
우선 《OTT 트렌드》가 해마다 나올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했을까. ‘2023’때는 이렇게까지 화제가 지속되고, 이야깃거리가 풍성하고, 업체동향이 급변하고, 울트라 머니게임이 펼쳐질 줄은 생각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코로나를 지나면서 OTT업계는 변화무상한 성장을 이어가며 미디어의 지형도를 고치고 있다. 《OTT 트렌드》는 유건식, 한정훈, 노창희 등 세 명의 저자가 힘을 모아 쓴 연례보고서이다. 각자 콘텐츠/미디어/방송/디지털/엔터테인먼트에서는 유명세를 떨치는 사람들이다. 아카데믹하고, 저널리스틱하며, 비즈니스 시각에서 OTT와 콘텐츠(유통) 동향을 분석하고 있다.
지난 달 15일 출간된 《OTT 트렌드 2024》는 OTT에 대한 역사와 발전과정, 현황, 그리고 미래전망을 담고 있다. ‘넷플릭스’가 이슈를 주도하는 글로벌한 움직임과 티빙-웨이브 합병논의까지 발등의 국내 문제까지 세밀하게 파고든다.
잠깐 책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우선 넷플릭스의 성장세이다. 넷플릭스는 그야말로 세계 방송, 영화, 콘텐츠(제작 및 유통)의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비디오대여점의 몰락은 시작에 불과했다. 기존의 거대 방송사,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그리고 그 방송사와 영화사를 소유한 미디어그룹도 출렁거리며 대응전략 수립에 골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넷플릭스의 승승장구로 100년 엔터테인먼트 기업 디즈니조차 쩔쩔 매며 새로운 생존 도식을 그려야했다. 그런데, 업계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언젠가는 ‘넷플릭스 천하재패’와 함께 ‘넷플릭스도 살아남을까’라는 화두가 던져질 것이다.
실제 넷플릭스의 성장세(가입자수 증가폭)도 주춤하고, 합종연횡이 이어지며(혹은 관측되며) 장기적인 이용자는 정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가격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할인정책’이 아니라 ID공유제한 같은 ‘인상정책’이 대세가 되어버렸다.
되돌아보면 2023년은 OTT는 격랑의 바다였다. 넷플릭스는 물론이고 디즈니,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 파라마운트 등 OTT자이언츠들이 군웅할거의 시대를 거쳐 죽고죽이는 글래디에이터 콜롬세움 싸움이 본격화된 것이다. ‘시계 제로’라고 할 만큼 업체는 가파른 성장세 다음에 만나는 미지의 절벽에 선 상태이다. 어떻게든 가입자 수를 확대시키려는 전략은 수정되기 시작했다. 독점 콘텐츠 제작, 독점 유통 방식만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이용자 사용패턴을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OTT업계는 앞 다투어 광고방식의 도입과 이용자 확인절차강화(ID공유제한)뿐만 아니라 다양한 패키지(번들링)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요금인상은 디폴트이고 말이다.
할리우드 파업이라는 빅웨이브를 거친 뒤 글로벌 OTT업계에게 사업을 지탱시킬 유의미한 킬러 콘텐츠는 무엇일까. K-콘텐츠? 일본 애니메이션? 스포츠 프로그램? 엄청나게 많은 드라마들? 지금도 충분히 많은데 앞으로 더 많은, 그리고 더 새로운 콘텐츠를 ‘끊임없이’ 쏟아내야 할 것이다.
그 와중에 한국은 비틀거린다. <오징어게임>의 영광이나, K-콘텐츠의 위대함은 빛 좋은 레토릭되어 버리고, 실속 없는 넷플릭스(혹은 글로벌OTT)의 하청 신세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넷플릭스 대공세 속에 한국 콘텐츠업계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방송사는 방송사대로,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고민이 깊어진다. 콘텐츠 제작/유통의 한 축이었던 통신업계는 물론이고.
《OTT 트렌드2024》의 부제는 ‘AI 시대를 맞는 OTT의 전략’이다. 이제 이쪽 영역에서도 ‘AI’를 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게 편성의 문제인지, 제작의 문제인지, 혹은 더빙/자막의 영역인지는 올 한해 더 확실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FAST’라는 게 내년에는 그림이 더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K-콘텐츠의 대박과 국산OTT의 기사회생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OTT 트렌드》는 내년에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넷플릭스가 망하지 않는 이상, 아니 망하면 더 글감이 될 것이니.
저자 유건식은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장을 역임한 TV프로그램/콘텐츠 전문가이고, 한정훈은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며,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장은 미디어 산업 전반, OTT 산업 및 정책, 콘텐츠·문화산업을 파고 있다.
참, ‘OTT’는 ‘Over The Top’이다. 원래는 TV옆이나 위에 놓인 ‘셋트박스’를 의미하는데, 이젠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만끽할 수 있는 영상 신세계의 관문을 뜻한다. 넷플릭스를 보든, 웨이브를 보든, 티빙을 보든 말이다.
▶OTT 트렌드 2024: AI 시대를 맞는 OTT의 전략 ▶저자: 유건식 한정훈 노창희 ▶형설eLife/ 3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