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TV에서는 ‘책’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더러 있었다. ‘금주의 신간’이라며 몇 권을 소개하는 식이다. 한 시간 남짓, 꽤 진지하게 책과 저자, 그리고 책을 통해 세상의 변해가는 모습을 전해주었다. 언젠가부터 책이 우리 손을, 우리 서가를 떠나듯 TV에서도 그런 코너가 사라지고 있다. 지금도 정규뉴스시간에 ‘문화뉴스’를 전하는 꼭지가 있긴 하다. 이런 책 소개 프로그램의 효용성은 과장된 면도 있다. 물론 오프라 윈프리가 소개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하는 전설에 기댄다. 우리나라에선, 여름휴가철 대통령의 휴가지 독서목록에 관심을 가진다. 그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한다. 조금은 서글픈 현실이다. 물론, 그렇게라도 책을 읽어만 준다면 너무나 고마운 일이니 언론도, 출판사도 그런 홍보방식에 기대감을 갖는다. 여기 그런 책이 있다. ‘버락 오바라 전 대통령이 강력 추천’하고 ‘빌 게이츠가 미국의 모든 대학 졸업생에게 직접 선물한’한 화제의 책이다. 게다가 ‘[옵저버] 선정 금세기 최고의 책!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가디언] 베스트셀러’란다. 대단하다! <팩트풀니스>(김영사, 이창신 번역)라는 책이다. ‘세계적 석학’ 한스 로슬링의 책이다.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사전에 없었던 단어이다. 저자는 ‘사실충실성’(이라고 번역했다)에 입각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모든 매체들이 ‘올바른 저널리즘’에 입각하여 너도나도 ‘팩트체크’를 하면서 쏟아내는 뉴스조차 때로는 또 하나의 ‘검증된 가짜뉴스’를 만드는 세상에서 ‘사실충실성’이라는 말은 묘하게 자극적이다.
저자 한스 로슬링은 스웨덴 출신의 의사이다. 단순한 의사가 아니다. 그는 아프리카를 누비며 각종 전염병에 맞서 싸웠다. 슈바이처 다른 점은 그가 공중보건 전문가라는 것. 유엔 등 각종 국제기관을 통해 ‘아프리카의 전염병’과 ‘제3세계 국가들의 의료체계’,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 빈민국가’의 삶의 질에 대해 충분히 통찰한 경험과 혜안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의 오랜 의료현장경험과 세계적 이슈에 대한 이해도는 이 책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의 경험은 그의 아들 올라 로슬링과 며느리 안나 로슬링 뢴룬드의 헌신적 노력의 결과로 이 책이 완성된다.
<팩트풀니스>에는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라는 다소, 철학적인, 희망적인 부제를 달고 있다.
조금은 현학적인 표현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증편향이 기승을 부리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에, 《팩트풀니스》는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을 이기는 팩트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빈곤, 교육, 환경, 에너지, 인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와 실제 세계의 간극을 좁히고 선입견을 깨려고 저자는 각종 통계치를 내세우고, 그 그래프의 추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것? 저자는 인간이 갖고 있는 비합리적 본능을 10가지 정도로 나열한다.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이란다. 책은 각각에 대해 챕트 별로 자신의 경험에 입각한 세상 사람들의 오해들을 소개하고, 올바른 접근법을 제시한다.
유엔의 존경받는 공중보건의이자, 통계학자이다보니 각종 수치를 보는 방식이 글로벌하고, 특별하다. 극빈층의 비율부터 여성의 교육 기간, 기대 수명, 세계 인구의 변동 추이, 자연재해 사망자 수, 아동의 예방접종 비율, 평균기온 변화 등 다루는 분야로 폭 넓다. 저자는 세계적 재앙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자세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단견에 대해서도 충고한다.
“뉴스가 부정적이고 극적인 면에 주목해서 보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쁜 소식이 우리에게 전달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래서 주변 세계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 인상을 받기 쉽다. 뉴스는 항상 극적인 사건만 보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아프리카 오지에서 전염병과 맞서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 분투한 저자가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각종 통계를 보여준다. 실제 이 책에는 통계학적으로 전 세계를 보면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은 1970년대와 비교하면 100분의 1, 재해 사망률은 10분의 1로 줄었고, 전 세계 문맹률은 10%에 불과하며, 여학생의 90% 정도가 초등학교를 나왔다고 전한다. 안전한 상수원의 물을 이용하는 사람과 예방접종을 받는 아이의 비율은 90%에 달하며,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85%, 휴대전화 사용자 비율은 65%나 된단다. 우리가 간과한 ‘희망찬’ 팩트들이란다.
저자는 지구촌을 4단계로 나눈다. 하루에 2달러 남짓을 벌면 1단계, 2~8달러는 2단계, 8~32달러는 3단계, 32달러 이상은 4단계다. 그에 따라 어떤 물을 마시고, 부엌은 어떤 형태이고, 잠자는 곳은 어떤지 등등을 비교해본다.
저자처럼 세상이 희망적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한스 로슬링과 그의 유산이 남긴 갭마인더재단의 홈페이지(▷바로가기)를 참조하시길. 달러스트릿 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벌고, 어떻게 사는지 사진으로 보여준다. 책만큼 흥미로운 사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