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 대한민국 어느 땅에서 끔찍한 일이 발생했었다. 단편 영화를 만들던 이수진 감독은 그 사건에 주목하여 시나리오를 완성시킨다. 바로 <한공주>(2013)였다. 개봉 이후 많은 영화제에서 상찬 받았다. 물론 극장에서 영화를 본 사람은 다시 한 번 그 끔찍했던 사건에 대해 분노했고 말이다. 이수진 감독이 5년 만에 돌아왔다. 여전히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목불인견의 상황을 극화한 작품이다.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라는 대배우들이 출연한 <우상>이다. 개봉을 앞두고 감독을 만나 영화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무척 오랜만이다
“‘한공주’ 이후 5,6년 된 것 같다. 촬영은 진작 끝냈는데 후반작업이 좀 길어진 것 같다. 원래 작년 10월에 개봉할 계획이었다. 이 작품은 처음 구상에서 완성할 때까지 시간이 걸린 작품이다. 2014년에 ‘한공주’ 끝내고, 정식 시나리오 나오고, 캐스팅 들어가고, 2017년에 촬영을 시작했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한공주’의 후유증이랄까, 문제는 없었는지.
“후유증이라기보다는 한 작품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공주’는 무거운 이야기이다. 다른 작품으로 새롭게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우상’이란 작품을 만들면서 전작 위에 새로운 것을 쌓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 감독은 ‘한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털어놓았다. “그 작품을 처음 시작하면서 과거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걸로 포장될까 경계했었다. 그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기사화되면서 과거의 실화가 모티브가 되었다며 주목받게 되었다. 제가 원래 기대한 바와는 조금 달랐다. 과거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 ‘우상’의 원래 제목은?
“‘우상’이야기는 ‘한공주’ 전에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는 제목도 달랐다. 이야기의 중심도 조금 다르다. 나오는 캐릭터는 같지만. 중식(설경구)이 거의 주인공이다. 명회나 련화는 중심인물은 아니었다. ‘한공주’ 끝내놓고 시나리오를 다시 쓰면서 주제가 좀 더 깊어졌다. 명회와 련화 캐릭터에 균등하게 중심이 갔다. 그러면서 제목도 ‘우상’이 되었다.”
감독은 시나리오가 발전하면서 주제적인 측면, 이야기의 줄기, 구성이 새로워졌다고 한다. “구성 장체가 달라졌다. 간단한 이야기였는데 ‘한공주’ 이후 주제적인 측면에서 좀 더 포괄적이 되었다. 바뀐 이유는 여러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보게 되면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 '명회'가 서사를 이끌고 가는데
- 영화 제목이 ‘우상’이다보니, 누군가 맹목적으로 따르는 롤 모델을 찾는 듯하지만 실제 영화는 개별 캐릭터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목이 <우상>이라고 정해지면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때 ‘우상’이 뭘까에 빠져들 것 같았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기에 누구, 무엇이라고 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명회(한석규)의 비중이 좀 더 커지면서 중식(설경구)하고 대비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명회는 귀납적으로 퍼져나가는 인물이다.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인물이다. 중식은 련화(천우희)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그 한 방향으로 가지만 정작 련화를 찾고 나서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본인이 어떤 일들을 해왔고,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알아가는 방식이다.”
● 천우희, 련화라는 캐릭터
“천우희가 연기하는 련화라는 캐릭터는 중국사회가 자본화되어가며 사회문제로 대두된 첩 문화를 이야기한다. 아들을 낳으면 호적에 올리고 딸이면 버림받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이다. 그런 인물이 한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한국에서는 가장 낮은 계급이다. 이용 당하고, 또다시 버림받는, 사기 당하는 모습이다. 련화라는 캐릭터는 그런 성장 과정, 환경에서 그런 식으로 무섭게 변모되지 않았을까. 련화가 무서운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한국도 다문화사회가 되면서 가슴 아픈 사건도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 얼마나 힘들었을까. 외로웠을까, 무서웠을까. 그래서, 련화라는 캐릭터는 가장 낮지만, 가장 무서운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설경구, 아들이라는 무게감
- 영화에서 설경구의 아들은 ‘4살 지능의 지체장애인’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해주는 것 중에는 이전 ‘섹스 볼런티어’라는 작품에서 본 상황이 펼쳐진다. 감독의 단편 중 ‘아빠’(2004)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
“군대 제대한 뒤 어느 봉사단체에 잠깐 있었다. 그때 처음 그런 사실을 알았다.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장애인에게도 성적인 욕구가 있다는 것을. 그때 그런 문제에 관심이 생겼고 주변 전문가에게 물어봤지만 잘 모르시더라. 그런 문제는 조심스럽고, 애써 관심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아빠’(2004)에서도 이번 작품에서도 직접적으로 묘사하자는 않았다.”
● 한석규의 방언, 히틀러의 그림자
- 영화 마지막 장면은 구명회(한석규)의 변신이다. 마치 종교단체의 신앙 간증회 같다. 정확히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는지.
“영화를 보는 사람이 ‘우상’에 흡입되었다면 그렇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나도 객석 저 어딘가에 앉아있지는 않은지, 나도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그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매 장면에 대해 촬영 전날 한(선규) 선배랑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그 장면 찍을 때는 그러질 못했다. 참고자료도 주고 그런다. 선배님은 사전에 준비하고, 시연도 하는데 그날은 안 보여주더라. 촬영하면서 처음 봤다. 자기는 연설 모습을 히틀러처럼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사람을 현혹시키는 그런 컨셉을 잡은 것이다. 후시 녹음할 때 독일어 단어 몇 개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그랬다.”
● 영화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다.
“제가 만든 영화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러 사회문제, 시스템의 문제를 담고 싶었다. 어떻게 변화되는가. 환경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여러 이슈들이 이 영화 안에 있지만 그런 것들을 전면에 드러내는 영화는 아니다. 그것들이 캐릭터들에게 어떤 선택을 하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그게 ‘낯섦’이라고 생각한다. 상업영화에는 기존의 구성방식이 있다. ‘우상’은 이야기 전달방식에서 차별되는 점이 있다. 가만히 영화가 전달하는 것을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 한 캐릭터에 이입해서 따라가는 것도 아닐 것이다.”
“관객이 고민하고 사유하게끔 하는 영화가 잘 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되씹어 볼 수 있고,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관객들이 부담스럽게 보지만 않는다면, 100%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사소한 불만 “대사가 잘 안 들린다”
- (7일 진행된) 언론배급시사회 때 대사, 특히 련화와 언니가 나누는 대사가 거의 안 들린다는 이야기가 많다. 단지 중국 조선족 대사라서 그런가?
“자막을 넣을 것인가 후반 작업할 때 의견이 있었다. 련화가 중요한 말을 한다. 후시작업(더빙) 때 대사도 좀 바꾸기도 했다. 그런데 감독 입장에서는 배우가 그 공간에서 하는 연기, 톤, 감정과 후시에서 나오는 것이 갭이 있더라. 대사도 수월하게 바꿨는데 원하는 맛이 안 살아났다. 감정이 좋은 쪽과 에너지가 좋은 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자막을 넣으면 이상할 것 같기도 했다. 사투리가 강하다 보니.”
감독은 지난 달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된 것과, 국내 언론시사회 상영본, 그리고 개봉될 작품에 대한 차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베를린 상영버전과 비교하면 한 씬이 오밋(삭제)되었고, 크게 느낄 수 없는 프레임 정도를 넣고 빼는, 리듬에 대한 편집을 진행했다. 그 씬 빠진 것 말고는 CG작업이 덜 된 것을 완성시킨 수준이다. 명회의 병실 장면에서 바닥에 뿌려진 피. 그건 오늘부터 들어갈 것 같다. 리듬에 대한 고려는 저 혼자 느낄 수 있는 수준이다.”
● 감독의 개인사
- ‘한공주’도 그러했지만, ‘우상’의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어떤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쓸 때는 나의 첫 장면을 어떤 것을 할까 고민할 때였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모여 영화가 완성된다. 처음엔 중식(설경구)이 이야기의 중심이었을 때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 큰 사건이 있었다. ‘나에게 저런 일이 있었다면’ 생각도 들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제 또래에 대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문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 그 시작은 무엇일까 생각한 것이다.”
● 련화, 여성혐오, 마사지 업소
- 련화에게 가해지는 폭력, 련화를 둘러싼 이야기가 상투적이거나 낡았다는 평가에 대해.
"그런 시점으로 바라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여줌으로써 련화가 더 강하게 보이지 않나 생각한다. 련화는 생명력이 강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민감한 관객은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선입견일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래서, 한석규는 무엇이 될 것인가
“한석규 캐릭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고 있구나. 마지막 연설장면에 프롬포터에 나오는 글은 이런 내용이다. ‘돈도 많은 사람이 왜 성형을 하지 않느냐’ 그는 여전히 자신을 마케팅으로 활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음 행보에 대해, 해석의 여지는 많을 것이다.”
이수진 감독은 달려온 긴 시간이 힘들었는지 쉬고 싶다고 말한다. “‘우상’ 잘 마무리한 다음에, 이 영화에 대해 복기를 좀 하고. 관객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보고, 그 다음에 차근차근 다음을 준비해야할 것 같다.” <우상>은 오늘(20일) 개봉한다. (KBS미디어 박재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