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석이 악마 그 자체로 변신했다. 지난 달 24일 '파트1'에 이어, 이달 8일 '파트2'까지 모두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운수 오진 날>에서 유연석은 친절한 웃음과 함께 택시기사 오택(이성민)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묵포항까지 장거리 운행을 부탁한다. 전날 돼지꿈을 꿨던 오택 기사는 신이 나서 그와 함께 묵포로 향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끔찍한 연쇄살인마. 이제 오택은 자신의 생명은 물론 가족까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 피도 눈물도 없고, 그리고 타인의 아픔은 물론, 자신의 통증까지 느끼지 못하는 희대의 살인마인 금혁수를 연기한 소감을 들어보았다. “이미지 변신에 대한 호평들에 감사하다. 저라는 배우에게서 새로운 이미지를 찾은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Q. 섬뜩한 악역을 연기했다.
▶ 유연석: “이렇게 악랄한 역할은 처음인 것 같다. 원작 웹툰과 대본을 보면서 내가 맡은 혁수의 독특한 설정이 흥미로웠다. 최근 의학드라마에서 선하고 따듯한 이미지를 연기하면서 조금 색다른 캐릭터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연기자로서 이미지 변신의 니즈가 있었던 것이다. 악역에 대한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컸다.”
Q. 금혁수라는 악역을 어떻게 접근했는지.
▶ 유연석: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답이 안 나오더라. 실제 사이코패스 사례를 많이 찾아보았다. 자기만 아는, 철이 덜 든 아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자기 잘못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이 행한 살인에 대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웹툰을 볼 때 첫인상이 그랬다. 그 살인마는 천진난만하게 혼자 신나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그러다가다가 저 혼자서 삐치기도 한다. 그런 인물이다.”
“혁수는 자기의 행동들을 즐기듯이 한다. 그런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말의 죄책감 없이, 놀이로, 단순한 장난거리로 생각한다. 그래서 과감한 시도를 한 것 같다. 블랙박스에는 자신이 저지른 일련의 살인과정이 찍혀있는데 그 앞에서 기념촬영이라도 하듯이 브이포즈를 해보이기도 한다. ‘나 잘했지?’ 식으로 설정을 해가니 그런 것이 섬뜩했던 것 같다.”
Q. 금혁수를 연기하면서, 더 악랄해 보이려고 아이디어를 낸 게 있는지.
▶ 유연석: “감독님 디렉션에 따랐고, 제가 아이디어를 낸 부분도 있다. 악역이라고 해서 악한 모습, 무서운 모습을 보이려고 한 것은 아니다. 해맑게 웃을 때는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 상황을 즐기려는 것 같다. 어디 찔려도, 상처가 나도 아픔을 못 느끼는 무통증에 대해서는 공감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 ‘사이코패스이며 무통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매운 맛이다. 그가 매운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시청자에게도 익숙한 떡볶이가 어떨까. 휴게소에서 매운 핫바에 아주 매우 소스를 잔뜩 뿌려서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다. 오택은 어쩔 줄 모르고 말이다. 혁수의 행위들이 납득이 안가니 그렇게 인식하고 연기했던 것 같다.”
Q. 금혁수가 천진난만해 보인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그런가.
▶ 유연석: “실제 사이코패스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그게 섬뜩하다.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의 감정을 조금도 담지 않는다. 살인을 이야기할 때는 오히려 눈빛이 반짝거린다. 그런 섬뜩함을 가져오려고 했다. 웹툰에서의 캐릭터가 기괴한데 천진함을 떠올렸다. 자신을 쫓는 황순규(이정은)의 이미지가 건조함이라면 난 천진함을 느꼈다. 학교에서 놀다온 이야기를 말하듯이 자신의 살인행각을 신나게 말한다.”
Q. 파트2에서는 택시운전수 오택의 처절한 사적복수가 시작된다. 그런데, 또 결말은 사이다가 아닐 수 있다. 결말에 대한 ‘악당’의 의견은.
▶ 유연석: “나라면 혁수에게 어떻게 복수할까? 혁수란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눈을 찔려서 복수하는 것은 뭔가 보지 못하는 공포를 안겨주려는 것이다. 그게 혁수에게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이미지에 눈이 있다. 시리즈 회차 마지막에 눈을 클로즈업하고 끝난다. 타이틀 로고에도 눈이 형상화되어있다. 나름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Q. 유연석 배우는 ‘정의의 사적복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 유연석: “신호 대기하는데 뒤에서 1초도 못 기다리고 빵빵거릴 때 분노한다. 물론, 나는 창문 내려 본적은 없다. 하하.”
Q. <운수 오진 날> 찍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 유연석: “밤에 촬영을 이어가야하니 바이오리듬이 깨진 것 같다. 몇 차례 가위 눌린 것 같은 후유증도 있었던 것 같다.”
Q. SBS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과 이 작품을 함께 촬영했다는데.
▶ 유연석: “3주 정도 겹쳤다. 그래서 초반에 힘들었다. 저쪽 드라마에선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데 여기 와선 죽이는 것이니. 저쪽은 의학드라마여서 대사에 의학용어가 많았다. 특별출연이다 보니 제가 출연하는 신이 몰려있었다. 여기 와서는 택시 타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는 캐릭터이다. ‘내가 이랬고, 누굴 저렇게 했다’식으로. 신을 준비할 때 쉽지 않았다. 택시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오택과의 대사를 하면서 미세한 신경전을 펼쳐야한다. 그 긴장감을 디테일한 표현들로 만들어가야 해서 신경을 많이 써야했다. 3주 지나서는 <운수 오진 날>에 올인할 수 있었다.”
Q. 액션 연기가 힘들지 않았는지.
▶ 유연석: “저보다는 (이)성민 선배가 힘들었다. 저는 후반부에서 조금 당하는 입장이었다. 육체적으로보다는 심리적 요소가 어려웠다. 액션은 몸으로 하면 되지만, 그런 사람의 감정 상태를 온전히 연기하는 건 쉽지 않다. 납득이 안 되니.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해야 했다. 다른 뇌구조의 인물이니.”
Q.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었다면.
▶ 유연석: “첫 촬영이 옥상 신이었다. 이 캐릭터가 어떤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 장면을 찍었다.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액션을 펼친다. 좀비 같기도 하고. 기괴했었다. 제일 사이코 같다고 생각하고 찍었다. 순차적으로 찍지 않은 게 재밌었다.”
Q. 가족들은 이번 연기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 유연석: “시사회 때 가족이랑 봤었다. 형이 보고나서 당분간 어머니 전화 받지 말라고 하시더라. 걱정이 많다고. 극중 역할이 너무 세니까 걱정하시는 것 같다. 어머니는 늘 걱정하시죠. <수리남>때도 보시고 걱정하셨다. 왜 그런 부류의 사람 캐릭터를 하냐면. 의학드라마 하면 좋아하신다.”
Q. 악역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 유연석: “이전에도 악역을 했었다.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를 연기하면서 시청자들이 작품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나의 이미지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한 번 보고 각인되는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건 아니다. 뭔가, 착한 이미지가 있는데, 또 내 안에는 선하고 악한 이미지가 같이 있다 보니, 그걸 잘 이용해서 캐릭터를 잘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웹툰 뿐만 아니라 실존 인물을 캐릭터로 만들 때 고민한다. 인물의 매너리즘을 얼마나 활용할 것이냐 생각해보게 된다. 매너리즘은 부정적인 표현이 아니다. 캐릭터 매너리즘이라 해서 인물의 독특한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목소리나 외형적 요소, 독특한 특성을 잘 캐치하면 대중들이 인식하는 캐릭터를 구현해낼 수 있다. 캐릭터 고민을 항상 하는데 그게 재미가 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Q. 그동안 한 역할 중 자신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이 있다면.
▶ 유연석: “악역은 아닌데 <미스터 선샤인>의 유동매 캐릭터를 팬들이 꾸준히 이야기 해주시는 것 같다. 얼굴에 피가 묻어있는 게 잘 어울리나 보다. 이번 작품에서도 얼굴에 피가 튀는 것을 팬들이 좋아하더라. 하하.”
Q. 원작 웹툰에서의 캐릭터와는 어느 정도 싱크로율을 가져왔다고 생각하는지.
▶ 유연석: “원작이 있다 보니 비교해볼 것이다. 웹툰에서의 금혁수의 모습은 독특하다. 개구리 같이 생겼고, 눈이 댕그랗고, 뽀글머리를 했다. 개구리 얼굴은 할 수 없으니 뽀글머리는 가져가자고 했다. 기괴한 모습을 위해 주근깨 설정을 좀 한 것 같다. 매끈하지 않은, 정돈되지 않은 이미지를 주려고. 그렇게 하면 이병민 때의 모습이 오히려 말끔하게 보일 것이다.”
Q.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유지태의 아역으로 데뷔했다. 그 영화 개봉 20주년이 되었다. 유연석 배우는 <올드보이>에 대해 어떤 기억이 남아있는지.
▶ 유연석: “나의 데뷔작인데 이렇게나 유명해질 작품인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참여했었던 작품이다. 올해 20주년 행사를 가졌었다. 미국에서 재개봉할 때 그 자리에 박찬욱 감독이랑, 최민식 선배랑 같이 갔었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그분들은 여전히 레전드이다. <카지노>하시고, <헤어질 결심> 찍으시고. 정말 그때 대단한 분들과 작업을 했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감사할 뿐이다. 지금 제 나이에 감독님이 <올드보이>를 만들 것이다. 최민식 선배는 마흔 하나에 오대수를 연기했었다.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복수극이라는 설정과 (올드보이)에서의 우진 캐릭터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오대수의 뽀글머리도 연상되고. 작품의 키워드들이 순간순간 겹쳐 떠오른다. <올드보이>를 10주년 때 보고, 이번에 다시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운수 오진 날> 찍으면서도 그 생각을 했다.”
Q. 이성민 배우와의 연기는 어땠나.
▶ 유연석: “후배가 다양한 연기를 맘껏 시도해보고, 펼칠 수 있게 현장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현장에서 이끌어 가는 힘이 대단하다. 주변 스탭을 챙기며 본인 캐릭터를 구축해 가는 열정은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혁수가 특별한 연기를 하지 않아도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성민 선배의 리액션이 받쳐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배가 공포심에 잔뜩 긴장하는 연기를 잘 해주어 제 캐릭터가 잘 살아난 것 같다. 제 캐릭터를 빛나게 해주시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연기 팁도 알려주시고. 고마웠다.“
Q. 예전에 사진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요즘도 사진 많이 찍는지.
▶ 유연석: “요즘은 핸드폰이나 폴라로이드, 자동카메라를 쓴다. 현장에서 사진 찍는 것 좋아한다. 매번 촬영 끝날 때면 스탭이랑 배우랑 폴라로이드 사진 찍는다. 그게 요즘 의미가 있더라. 출연작품이 늘어나면서 ‘폴로라이드 2개 있어요’, ‘세 장 있어요’하는 스태프를 만나게 된다. 마치 도장 모으기 같다.” (10장 모으면?) “하하. 한 장 더? 그런 게 추억이 쌓이는 것 같다.”
Q. 2023년을 보내며 소회를 밝히자면.
▶ 유연석: “올해는 연기 20주년이었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행복한 한 해였다. 한해에 작품으로 인터뷰도 3번 했다. 이런 기회가 주어져서 기쁘다. 이제 40대가 된다. 지금까지 해온 것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게을러지지 말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 다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진=티빙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