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피디로 일하던 김재환 감독은 자기만의 영화를 찍기 위해 방송사를 나온다. 그리고 2011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트루맛쇼>를 공개했다. 지상파 방송에서 맛집을 소개하는 메커니즘을 해부한 페이크 다큐멘터리이다. 김 피디는 가짜 레스토랑을 열고, 엉터리 메뉴를 만들어 ‘가짜 맛집’ 알리기 작전을 펼친다. ‘트루맛쇼’는 개봉을 앞두고 한 지상파 방송사로부터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받기도 했다. 물론, 김재환 감독의 싸움닭 기질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후, 이명박 집권기에 개봉된 ‘MB의 추억’, 한국대형교회의 민낯을 고발한 ‘쿼바디스’, 그리고 유신의 향수를 가진 사람을 추적한 ‘미스 프레지던트’를 만들면서 독특한 다큐멘터리 세상을 이어나갔다. 그의 최신작은 경상북도 칠곡에 사시는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고, 세상을 더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담은 <칠곡 가시나들>이다. 영화개봉을 앞두고 김재환 감독을 만나,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 칠곡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상대로 한글을 가르치는 곳은 전국적으로 600곳이 넘는다. 우연히 팟캐스트를 통해 칠곡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시를 읽는 것을 듣게 되었다. 가슴에 와 닿았다. 만나보고 싶었다.”
김 감독은 칠곡에서 찍은 것에 대해 “칠곡은 아무런 인연이 없는 곳이다.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펼쳐진 낙동강 전선이었고, 다리가 폭파된 곳이었다는 인상뿐이었다. 한 달에 두세 번 내려가서 촬영을 계속 했다. 칠곡군에만 그런 학교가 27개 있더라. 하나하나 참관해 보고 약목면 (복성2리)을 택했다. 칠곡군의 협조는 전혀 없었다.”고 덧붙인다.
“KBS는 칠곡 할머니의 절대적 엔터테인먼트”
이날 김재환 감독은 KBS에 대한 쓴 소리를 쏟아냈다. 특히 아침드라마가 폐지된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칠곡가시나들’을 보면 할머니들은 집에서 거의 TV를 끼고 사신다. 특히 TV화면은 오로지 KBS 1TV만을 비추는 것 같았다.) 오해의 소지도 있겠지만 김 감독의 고언이기에 옮긴다.
“아침드라마가 그 분(시골 사시는 할머니들)들에게 절대적이고, 소중한 채널이다. KBS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은 장년층과 노년층이다. 요즘은 젊은 KBS를 추구하면서 무리한 편성을 펼치는 것 같다. 그분들은 ‘아침마당’, ‘6시 내고향’, ‘저녁에 하는 일일드라마’,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의 애시청자들이시다. 이런 프로그램은 KBS의 척추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겐 절대적 엔터테인먼트이다. 칠곡 사시는 분들은 태어나서 극장에서 영화를 한 번도 못 보신 분들이 많다. 도시민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가 바로 KBS이다.”
. “MBC에서 ‘무한도전’ 중단할 때 젊은 시청자들이 목소리를 높였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댓글 달고 싶어도, 항의전화 하고 싶어도 못하신다. 수신료라는 재원의 소중함을 위해서라도, KBS에는 좋은 명분이 될 것이다.”
● 내가 내 영화를 만드는 방식
- 방송사를 나왔다. 독립영화계 생활은 어떤가.
“작은 나만의 회사를 창업하고 싶었다. 경력단절 없이 하던 일과 연관된 것을 하고 싶었다. 물론 자유롭게 살려면 포기해야하는 게 있다. 방송사 안에서 일할 때의 갑갑함은 벗어났지만 그 자유는 대가를 치러야한다.”
- ‘칠곡가시나들’은 실버 세대, 고향, 휴먼스토리 등 외부의 투자를 끌어내기에 좋은 아이템 같다.
“‘칠곡 가시나들’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피칭을 진행한 작품이다. 투자하겠다는 분들이 있었지만 고심 끝에 투자를 안 받는 쪽으로 결정했다.”
- 왜?
“투자자들이 보기에는 관객을 더 울려야 될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슬픔이다.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슬픔. 그런 것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있어야한다. 투자자가 붙었다면 작품도 그런 식으로 완성되었을 것이다. ‘슬픈 것’들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만들어야 된다는 압력!”
김 감독은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원했던 ‘칠곡가시나들’은 ‘재미있게 나이 듦’, 이렇게 7자로 압축할 수 있다. 노년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불편함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트루맛쇼’부터 시작하여 이번 ‘칠곡가시나들’까지. 흥행에 크게 성공한 작품은 없다. 한국적 현실에서 망하지 않은 게 신기하다.
“지금까지 투자 받은 게 없으니 크게 망할 것도 없다. 그래도 이번 작품이 버젯이 제일 큰 작품이다.”
무슨 돈으로 계속 영화를 만드는지 궁금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LG전자 조성진 부회장님께 감사드린다. 조성진 부회장님은 LG전자의 CEO이고, 용산공고를 졸업한 세탁기박사이다. 그분이 CEO되면서 주가가 많이 올랐다. 그 덕분이다. 이 말은 기사에 쓰셔도 괜찮다.” (김 감독이 말한 것은 ‘칠곡가시나들’ 제작단계에서의 이야기이다. 다른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되어 그대로 옮긴다)
김재환 감독은 MBC PD로 입사하기 전, 금융권에서 잠깐 근무했다고 한다.
“기업들 감사보고서 보면 알 수 있다. 그 행간을 읽고 그 기업의 비전을 보는 게 재밌다.”란다.
그러니까 김재환 감독은 갖고 있던 주식이 때맞춰 오름세를 탔기에 외부투자 없이 자기 돈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LG전자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투자의 유혹에 넘어갔을 것. 투자를 받으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최고의 노력을 할 것이지만 그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 내가 다시 영화를 찍어야 오를 것 같다.”고 덧붙인다.
(사실, 충무로 영화판에는 김재환 감독처럼, 큰 규모의 영화는 아니지만 자기 돈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몇 있다.)
● 할머니들을 찍는다는 것은
- 칠곡의 한글배움터에는 영화에 출연하시는 일곱 분이 다이신가.
“원래 여덟 분이시다. 한 분은 몸이 불편하셔서 자주 학교에 나올 수 없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을 촬영하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 이 직업의 가장 안 좋은 것 중의 하나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을 생각하고 가능성을 열어두고, 어떻게 다룰지 생각해야한다. 이런 잡(job)을 가진 이상 어쩔 수 없다.”
“할머니는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쿨 하시다. 그들을 죽음이 두려운 사람, 죽음에 사로잡힌 자로 바라보는데, 아흔 넘으면 그런 단계는 넘어선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어떤 삶을 늘리려고 하는 욕심도 없다. 할머니들이 이 영화 보고 죽어야지 그런다. 까르르 하신다.”
“이 영화는 칠곡 할머니들의 설렘을 담은 작품이다. ‘쉘위댄스’의 칠곡할머니 버전이다. 무료한 일상에 설렘이 자기 삶에 들어오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중년의 남자에게 댄스가 있었다면 칠곡 할머니에겐 한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또, 꼭 한글일 필요는 없다. 노년의 설렘은 매력적이다.“
“항상 노년을 문제로 보고 있다. 존재로 보지 않고 말이다. 그런 선입견,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일상을 재해석하면 설렘이 보인다. 투자를 받았다면 제 가슴 속에 있던 설렘이 사라졌을지 모른다. 이 ‘설렘’에 집중하고 싶었다.
● 미스 프레지던트의 설렘
박근혜 탄핵국면에 개봉된 ‘미스 프레지던트’는 뜻밖의 영화였다. 오래된 청와대 패밀리의 행복했던 한 순간을 담은 흑백필름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아직도 박정희-육영수를 숭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칠곡 가시나들’과 ‘미스 프레지던트’는 동시에 찍은 것이다. 두 영화 모두 설렘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젊을 때 내 가슴을 뛰게 했던 그 사람, 그 설렘을 기억하고 그 뒤를 돌아보게 하는 오르페우스 같은 존재이다. 칠곡에 있는 분들은 오늘의 일용할 설렘을 찾아 용감한 모험을 하는 존재들이다. “
- ‘미스 프레지던트’가 그런 내용이었나?
“‘미스 프레지던트’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든 것이다. 같은 시기를 살고 있지만 모두 똑같은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독일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작년 태극기라든지, 촛불 등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이다. 그분들도 방식은 다르지만 어찌 보면 또 다른 설렘을 찾아 나선 것이다. 젊은 시절 내 가슴을 뛰게 한, 나의 존재를 산업역군이라 불러줬던 박정희를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다. 그런데 그 죽어버린 존재를 살리려고 되돌아보다 죽은 오르페우스 같은 존재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설렘이 필요한 존재이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그것이 욕망이고, 설렘이란 단어랑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노년을 바라본다.”
- ‘미스 프레지던트’는 논란이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굉장히 화가 많이 나서. 폐기처분해야할 사람들을 새롭게,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기대했던 게 아닌 것 같다고. 한쪽에서는 또 감독이 빨갱이라고 돌을 던지는 상황이었다. 그런 작품은 그 시기에 가장 해야 할 이야기인데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든 작품이다. 가장 새로운 작품이고, 저를 설레게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돌을 던지니 얼마나 재밌는 상황인가. 어려운 이야기를, 가장 하기 힘든 순간에 한 것 같다.”
● ‘MB의 추억’은 우리들의 욕망
“'MB의 추억‘에는 사실 MB를 꼬집는 것은 없다. 그가 했던 이야기를 다시 끌어 모은 것이다. 시기가 달라졌을 때 그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보여준다. 관객들은 MB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자기의 욕망을 비춰 보는 것이다. 비판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모든 욕망의 총합이 MB이다. 그런데 전략을 잘못 짰다.”
- 왜?
“‘트루맛쇼’를 먼저 하는 게 아니었다. MB임기 중반 무렵 준비해서 임기 중에 개봉시키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방송사들이 영상을 안 팔더라.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한 장면도 살 수가 없었다. ‘트루맛쇼’ 때문에 이런 후폭풍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영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MB의 추억’을 위해 촬영한 것은 아니었다.”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사실 꼭 해야 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당시 전국 개봉관이 4개뿐이었다. MB가 여전히 현직에 있을 때니 대통령의 영향력이나 파워가 지금의 모습과는 비교도 안 된다. ”
● 연결고리들
- 한국 대형 교회의 민낯, 한국 기독교계의 부끄러운 모습을 신랄하게 보여준 <쿼바디스>는 어떤가. 이미 많은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한국교회의 문제를 여러 번 다뤘다. 그런데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한국교회의 문제와 MB의 문제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다. 둘 다 건축을 좋아한다. 자기가 왜 욕을 먹는지 모른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날 싫어하지’라며 스스로 억울해한다. MB시절 청와대 있었던 사람 이야기 들으면 정말 일은 열심히 했다더라. 방향을 잘못 잡고 너무 열심히 일하니까 본질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멀어져 버렸다. 그게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초대형교회를 건축할 때 (법적인 문제가 있으면) 기도의 힘으로 돌파하겠다고 열심히 기도하더라.”
- 회사이름이 단유필름이다. 무슨 뜻인가.
“단유. 바른 단(端)에, 오직 유(唯). 영어로는 다뉴(DANEW). 모든 것이 새롭다는 말이다. 맘에 든다. 제가 생각한 게 잘 담긴 것 같다. 원하는 콘텐츠 만들고, 투자하는 회사이다.
- ‘트루맛쇼’로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받았다. 창작자 입장에서 위축되지 않나.
“당시 MBC 김재철 사장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 땐 KBS가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김재철 사장이 신년회에서 ‘1등 탈환, 1등 탈환’이라고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 화가 단단히 나신 모양이다. 영화 개봉 전날, 가처분신청을 기각한다는 법원의 결정이 났다. 가까스로 개봉하게 된 것이다. 멀티플렉스 한 개 관에서 상영됐다. 대학로CGV. 밤 10시에 하루 한 번. 좌석은 76개. 상영 전날 결정이 났기에 상영시간표 올릴 수도, 예매도 없었다. 그런 법적 조치가 겁박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뒤에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으로 조사받고 힘들었다. 여러 번 소송당해 본 사람들은 그런 게 무덤덤할지 모르겠다. 최승호 선배처럼 말이다.”
김재환 감독은 ‘트루맛쇼’ 때문에 회사(사무실)를 옮겨야했다고 한다.
“당시 방송제작을 하고 있었는데, ‘트루맛쇼’ 때문에 다 잘렸다. 매출액은 제로였고. 어쩔 수 없이 직원들과 족구만 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도 쫓겨났다. ‘트루맛쇼’에 등장하는 장소는 여의도의 유명한 빌딩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그걸 이탈리아 식당으로 개조했었다. 레스토랑 이름은 ‘조작과 기만’. 물론 이탈리어어로! 맛집을 만들어주는 ‘홍보대행사’를 통해 쇼를 펼친 것이다. ‘트루맛쇼’ 만들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게 목표였다.” 그 건물은 ‘CCMM빌딩’이다.
“결국은 여의도 그 건물에서 쫓겨났다. 8년 동안 있었던 사무실을 나와야했다.” (방송관계자들이 항의를 했는지, 건물주 측에서 나가라고 했단다)
- ‘쿼바디스’를 보면 목사를 쫓아가며 ‘예수 믿는 사람 맞습니까?’ 질문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 이유로 ‘쿼바디스’를 찍은 것은 아니다. 그런 의도나 목적은 전혀 없었다. 1도 없었다.”
“영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 같다. ‘트루맛 쇼’처럼 ‘쿼바디스’도 페이크 다큐 형식이다. 이용마 기자, 이상호 기자. 뉴스타파에 있던 최승호 선배가 앵커로 등장하여 교계의 권력자 길 목사를 인터뷰하는 하는 장면이 있다. 최승호 선배는 딱 10년 선배이다 뭐라도 도와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흔쾌히 승낙하시더라. 최 선배가 뉴스타파에서 취재한 ‘서울시간첩(조작)사건’을 다룬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면서 내게 프로듀서를 부탁했다. ‘쿼바디스’때 출연해 주신 게 고마워서 맡겠다고 했다. 을밀대에서 냉면 먹으면서. ‘자백’은 내가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정말 열심히 했다. 내가 만든 것은 솔직히 보려면 보고 말려면 말아라 심정이었다. ‘미스 프레지던트’ 개봉 때는 아예 해외로 나가 버렸다. 하지만 ‘자백’ 때는 정말 어떻게든 성공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최승호 선배는 ‘쿼바디스’에 출연했고, ‘자백’ 만들면 재미가 들었는지 ‘공범자들’도 만들더라.” (최승호는 지금 MBC사장이다)
또 다른 스타일의 독립영화인
“제 영화는 외부에서 투자를 받은 적도, 제작지원을 받은 적도 없다. 이번에 ‘칠곡가시나들’이 전주국제영화제의 JPM(우수 독립영화제를 발굴하는 전주프로젝트마켓)에서 관객상을 받으며 기획개발비 천만 원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하면 어떤 소리 들을지 잘 안다. 독립영화계에서 펀딩하고, 외부 지원금 받는 게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배부른 소리 하구나 할 것이다.”
- 다음 작품은?
“이 시기에 한다면 필이 딱 꽂히는 걸로. 준비되면 바로 할 것이다. 재미있는 걸로”
- 혹시 감독님에게만 재미있는 것 아닌가?
“아니다. 관점만 바꾸면 된다. 대중이 재밌는 것으로. 피디를 했던 사람의 장점은 대중에 대한 감이 좋다는 것이다. 대중이 뭘 좋아하는지 늘 생각한다. 방송국피디를 해서 잘 안다. 방송 다음 날 책상 위에 날아오던 전날 시청률표 데이터로 훈련된 사람이다. 대중의 트렌드를 쫓고, 신속하게 작품을 내놓는 것이 장점이다. 물론, 요즘 그런 장점도 발휘하지 않지만.”
● 금오산
- 다시 영화 이야기로. 작품에 등장하는 폭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칠곡과 구미의 경계에 있는 금오산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 갔었다. 할머니들에겐 추억의 장소이다. 여름이면 피서 가던 곳이다. 돈이 없어 비둘기호 타고, 역에서 내리면 막걸리통 들고, 수박 들고 올라가던 곳이다. 그분들이 40대, 50대에 올라가던 추억의 장소이다.”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날 잡아 갔는데 하필 비가 쏟아졌다. 저는 사실 안 가셨으면 했다.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할머니들이 너무 좋아하셨다.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할머니 하고 싶은 것 못하게 하는 게 자녀들인 것 같다. 자녀들 같았으면 못 가게 했을 것이다. 할머니들이 힘들었지만 너무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그런 존재이다. 조금은 위험해 보여도, 오늘 어떻게 재밌게 보낼까 생각한다. 옛날 갔었던 그 장소를 다시 찾는 설렘 같은 게 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자식들이 그 설렘을 방해하는 것 같다. ‘그 나이에 뭘 배우려 하나’.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지 말라고 설렘에 찬물 끼얹는 존재다.“
● 그런데 한글학교에는 할머니만 계시나
“할머니들이 더 오래 사시고. 칠곡에는 그런 교실이 27개 있고, 학생 수는 400여 명이다. 다 할머니시더라. 작년엔 할아버지도 몇 분 계셨는데 안 나오시는지...”
“지금 시골에서 노동을 지탱하는 분은 할머니들이다. 노년의 삶은 할머니들이 더 왕성하다. 할아버지는 체면을 못 버리시는 모양이다.”
‘칠곡 가시나들’은 작년 칠곡에 새로 생긴 영화관 (50석 규모)에서 상영되었다. 김 감독은 ‘칠곡 가시나들’에 출연한 할머니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고.
“극장에서는 처음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많았다. 할머니들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까르르 대셨다 정말 음성지원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김재환 감독의 ‘칠곡가시나들’은 지난 27일 개봉되었다. 독립영화로서는 나름 ‘고군분투’ 혹은 ‘절찬상영중’이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다뉴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