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는 어느 날 우연히 광고모델로 ‘길거리 캐스팅’ 되며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99년 KBS 드라마 <학교>를 시작으로 독특한 개성의 연기자로 주목받는다. 봉준호 감독의 천재성이 번뜩이던 <플란다스의 개>에서 극강의 생활연기를 보여준 배두나는 연기경력이 이미 20년에 달한다. 최근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에서 다시 한 번 생활연기의 진수를 선보였다. 지난 달 전 세계 190개 나라에서 일제히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 <킹덤>은 놀랍게도 배두나에겐 첫 사극이다. <킹덤> 공개에 앞서 진행된 매체 라운드인터뷰를 통해 ‘넷플릭스 무비’에 출연한 소감을 들어보았다. 배두나는 <킹덤> 이전에 이미 <센스8>을 통해 넷플릭스를 맛본 연기자이다.
● 사극을 처음 연기한 소감은 어땠나.
“제가 봐도 웃겼다. 관객들이 보면 얼마나 낯설어할까라는 생각은 촬영 들어가며 예상했었다. 그런 것은 각오했었다. 연기를 오래 하려면 도전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먹어?”라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그 대사가 확실히 귀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촬영할 때 테이크를 많이 가지는 않았다. 그 때 좀 감정적으로 흥분했다. 감독님이 차분하게 가라고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사람들이 반인륜적인 일을 한 것에 대해 너무 흥분한 것 같다.” (지율헌의 인육스프를 말한다)
- 자연스레 인터넷에 논란이 되고 있는 배두나의 사극톤 연기에 대한 자평이 이어졌다.
“첫 사극이기 때문에 작품 들어가기 전부터 연습을 많이 했다. 엄마가 연극배우이시다. 2001년 '복수는 나의 것'을 준비할 때 엄마에게 대사 톤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었다. 호흡하는 것만 가르쳐주시더다. 그 후 한 번도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다. 이번에 '킹덤'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엄마와 1대1 레슨을 받았다. 그런데 촬영 직전에 그냥 제 방식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배두나가 자신의 스타일로 의녀를 연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맡은 서비의 전사(前史)를 생각해 봤다. 아마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 출신일 것이다.그런 아이를 의원이 데려다가 의녀로 키운 것이다. 글을 배웠지만 신분이 낮다. 사극 톤으로 하면 마치 대왕대비마마 같아 보인다. 서비의 신분에 맞는 대사톤을 보이고 싶었다. 서비란 아이는 산에서 약초를 캐는 의녀이다. 살면서 양반과 몇 번이나 말을 섞어봤을까. 만약에 이상하다면 후시녹음을 다시 하기로 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이 톤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배두나는 김성훈 감독과 두 번째 작업이다. 재난극 <터널>에서 하정우의 아내로 출연했었다.
“<터널>에서 한번 겪어봤지만 감독님은 집요한 면이 있다. 그냥 걷는 장면도 마음에 안 들면 4시간을 찍었다. 그때 경험해봐서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컸다. 연기자를 힘들게 하지만 좋은 장면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감독님이 오케이할 때까지 연기를 했다.”
● 연기는 개인적 취향
“결국 연기는 개취(개인적 취향)인 것 같다. 상을 받았을 때도 저 스스로는 '그 정도로 잘한 것은 아닌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제 삶의 모토가 ’작은 칭찬에 동요하지 말고 큰 비난에 마음 아파하지 말자‘이다. 마음의 중용을 맞추는 편이다”며, “제가 자랑스러운 것은 못 하는 것도 과감하게 도전해 보는 것이다. 좀 멋있는 것 같다.”
● 김은희 작가의 시나리오
“굉장했다. <킹덤>은 힘이 없고,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힘 있는 권력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자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인물이다. 제가 맡은 서비도 의녀이지만 똑똑해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 느낌을 주는 게 싫다. 평범하고, 투박한 의녀가 간절하게 싸우는 이야기이다.”
● 넷플릭스와 비밀유지 각서 없었다
배두나는 이미 ‘센스8’을 통해 시즌제 미드 시스템을 경험했다. 사전제작의 경우 드라마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면 큰일 나는 그런 조항이 있는지 궁금했다. (배두나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시즌2’ 시작한다면 대본 표지 사진을 올렸다.)
“비밀유지각서 같은 것은 없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만 업계 사람들이 당연히 지켜야할 매너이다. 물론 저도 SNS에 그런 것 올릴 때 조금 불안했다. 올려도 되는지. 한번은 올렸다가 바로 내리기도 했다. 다른 분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따로 그런 각서를 쓰지는 않았다.”
● ‘킹덤’과 한국 드라마, 혹은 ‘센스8’의 차이점은.
“심의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사실 '킹덤'에서는 잔인한 장면 빼고는 걸릴 게 없는 작품이다. '센스8'은 정말 센 장면이 많았다. 넷플릭스에서는 감독이 표현하고 싶은 것은 모두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
● 낯선 플랫폼에 공개되는 작품에 출연하는 거부감은 없었나.
“넷플릭스나 새로운 매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케이블드라마가 지금같이 위세를 떨치기 전에 ‘썸데이’라는 케이블 드라마에도 출연했었다. 힘들더라도 시도는 해 봐야죠. 제 스타일이 그렇다.” (‘썸데이’는 2006년 OCN에서 방송된 16부작 드라마이다.)
● 작품을 보면 동래부사 조범팔(전석호)이 의녀 서비에게 연정의 눈빛을 보낸다. ‘시즌2’에서는 두 사람의 로맨스를 기대해도 되나?
“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군요. 전 로맨스라고 생각 안 했다. 서비는 강인한 여자라고 쓰여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조범팔이란 캐릭터와 대비되어 더 강인해 보인다. 전석호가 그렇게 연기해줘서 고마웠다. 난 로맨스라 생각하지 않고 찍었다.”
“촬영 현장에서 주지훈, 김상호, 저, 전석호, 김성규까지 ‘독수리5형제’였다. 전석호가 연기하는 조범팔은 생존력이 최강이다. 어떻게든 살아오잖은가. 이들은 조금씩 모자란 면이 있다. 용맹한 히어로가 아니라 조금씩 모자란 게 매력적이다.”
● 호러는 좋아하는지
“사실 호러는 잘 못 본다. 무서운 걸 보면 며칠 잠을 못 잔다. 좋아하는 것은 코미디 보는 것. 빨리 ‘극한직업’ 보러 가고 싶다.”
● 김은희 작가의 시나리오
“김은희 작가와는 처음 작업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구성이 세련되었다. 초반에 외국시청자들도 충분히 따라올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신경 쓴 것이 보인다.”
● 촬영하면 가장 힘들었던 것
“워낙 추웠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화장실 문제였다. 정말 건물 하나 없는 내추럴한 곳을 찾아다니며 찍다 보니 그랬다. 화장실 안 가려고 물도 안 마시고 그랬다.”
“춥고 고생한 것은 공통적이다. 그런데 단역배우들이 고생하는 걸 아니까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다. 좀비를 연기할 때 렌즈를 끼고 있으면 빛이 반사된다. 그렇다고 자꾸 빼면 위생적이지 않으니. 한 번 끼면 장시간 견뎌야한다. 그런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제가 <링>(1999)에서 귀신분장을 했었다. 그런 분장이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 ‘시즌2’와 앞으로 계획은.
“설 지나고 촬영 들어간다. 1차 촬영 끝나면 봄에 다시 찍는다. ‘시즌2’는 6개월 정도 촬영한다. 그것 끝나면 영화를 생각하고 있어요.”
외국의 친구들과 SNS를 통해 넷플릭스 반응을 실시간으로 본다는 배두나는 "넷플릭스 가입자가 많지 않다는 한국에서 어느 정도 반응을 보일까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다.“며 ”최근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킹덤’ 재밌게 봤다고 하더라. '킹덤'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에 가입하셨다는 말을 듣고 괜히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드라마 <싸인>과 <시그널>에서 필력을 자랑한 김은희 작가와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손을 잡고, 배두나와 함께 주지훈, 류승룡, 김상호 등이 출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 <킹덤> 시즌1의 6편은 지난 달 25일 공개되었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