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동안 많은 한국 사람이 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갔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곳에서 터를 잡는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많은 사람이 모국으로 돌아오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눌러앉은 사람도 있다. 부산에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부산 ‘영도’ 출신의 김민주 감독의 가계도를 보면 그런 사연을 안고 있다. 자신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뼈대로 하여, 엄마와 세 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한다. 6일(수) 개봉하는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이다. 감독을 직접 만나 가족 이야기와 영화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도이야기도 함께.
Q. 개인적인 가족이야기가 반영되었다고 했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가.
▶ 김민주 감독: “외할머니가 일본 사람이다. 어머니는 11살에 부산으로 왔고 줄곧 일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실제로 외할머니가 정신병원에 갔다는 편지를 받았다. 엄마의 외할머니가 연락을 주셨다. 그러다가 연락이 끊겼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2019년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엄마랑 언니랑 셋이서 일본의 병원을 찾아가기로 했었다. 원래는 그 여정을 다큐로 찍을 생각이 있었다. 다큐 촬영은 해봤었고 지금도 하고 있으니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준비도 부족했고, 그런 가족 이야기를 핸드폰으로 찍는 게 조금 가슴 아팠다. 돌아와서 구체적으로 준비했다. 제작지원도 알아보고. 그 때가 2019년 5월이었다. ‘노 저팬’ 운동과 수출규제 이슈가 있었고, 곧바로 코로나 터지면서 다큐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장편 극영화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Q. 세 딸의 이야기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 김민주 감독: “구조를 종과 횡으로 생각하면서 짰다. 우선 영도를 중심으로 고향을 떠나고 싶은 사람, 돌아온 사람, 떠나고 싶지만 머무는 사람, 엄마는 고향을 떠나 다른 고향에 정착한 사람이다. 여러 케이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와 더불어 세대 이야기를 겹친다. 외할머니와 엄마의 이야기가 가진 역사성은 그 아래 세대는 모른다. 나도 어렸을 때는 몰랐고 관심이 없었다. 둘째 혜영과 더 어린 친구가 알아 가면 좋겠다고 세팅했다. 가장으로서 책임지고 있는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 자매가 완성되었다. 영화에서 막내는 소중한 편지를 물에 젖게 만든다. 그 때문에 남은 기억이 다 없어져 버리지만 그것으로 인해 세 딸이 하나로 뭉쳐 어머니의 잊어가는 것을 채워주게 된다. 세대 간의 순환을 그리고 싶었다. 고향을 중심으로 떠나고 돌아오고 하는 것. 그런 식으로 다양한 측면을 전해주고 싶었다. “
Q. 배우들은 부산출신이라 기본적으로 ‘네이티브’ 부산말(사투리)을 능숙하게 구사한다. 둘째 혜영을 연기한 한선화는 어떻게 캐스팅했다.
▶ 김민주 감독: “사투리 구사가 캐스팅을 할 때 중요한 요건이었다. 기본이자 1차 관문 같은 조건이었다. 물론 사투리를 잘 쓰는 것과 함께 이미지가 맞는 사람이어야 했다. 둘째는 엄마,언니, 동생 모두와 관계가 있고 전체를 끌고 가는 인물이다. 다양한 얼굴을 가졌고, 오히려 밋밋한 이미지를 생각했었다. 한선화 배우가 출연한 독립영화 <창밖은 겨울>을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한선화 배우는 당시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가리지 않고 연기하고 싶다고 그랬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저희 기수에 캐스팅디렉터가 있었는데 그분은 독립영화에서는 쉽게 컨택트할 수 없는 분들도 연결시켜줬다. 한선화 배우를 부탁했고, 만나게 되었다. 이 작품 전에 한 <영화의 거리>와 <창밖은 겨울>이 모두 부산 사투리를 하는 캐릭터여서 계속 이런 식으로 소비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상관없다면서, 캐릭터와 시나리오 보고 하고 싶다고 그랬다.”
Q. 한선화가 연기한 극중 인물은 방송국에서 작가로 일한다. 그런 직업 설정은 어떻게 했는지. 이것도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된 것인가.
▶ 김민주 감독: “그것은 막내 혜주랑 비슷한 느낌이다. 꿈을 찾아 영도를 떠났다가 자리 잡지 못하고 내려오는 사람이다. 나랑 비슷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부산을 떠날 때 허무맹랑한 꿈을 갖고 가는데 거 드라마틱할 것 같았다. 소설 쓰는 친구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가지고는 먹고 살 수 없을 것이다. 주위에 물어보니 방송국에 리서치하는 사람이 있더라. 엄마는 자기 딸을 포장하는 사람이다. 딸을 잘 키웠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혜진이 대사 중에도 ‘옛날엔 나도 명품매장에서 일했다고 그랬어’라는 대사가 있다. 그런 레이어를 넣고 싶었다. 방송국 하면 보통 피디를 생각하니까 방송작가를 사이드잡으로 설정한 것이다. 결말도 처음부터 생각한 것이다. 부산에 큰 방송국이 있으니 그런 설정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봤다.”
Q. 원래 꿈이 영화감독이었나.
▶ 김민주 감독: “학부 자체를 영화과에 들어가긴 했지만 ‘난, 무조건 영화해야 해!’는 아니었다. 그때는 연출을 하고 싶었다. 광고든, 무대연출이든, 드라마든. 신방과나 언론학과를 생각했었다. 학교(중대 연영과) 들어와서 오히려 영화에 대한 애정을 키운 것 같다. 정말이지 나는 영화과가 만들어낸 사람이다. 좋은 영화 보면서 저절로 영화를 좋아하게 된 케이스이다.”
Q. 맏이 혜진을 연기한 한채아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 했나.
▶ 김민주 감독: “우선 외모로 보아 대개 화려하고, 예쁘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가졌으면 했다. 딱 보고는 ‘왜 저런 사람이 부산에 있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면서 현실과의 간격이 필요했다. 둘째도 떠나가는데 남아서 책임을 지는 그런 설정을 주고 싶었다. 예능프로그램 <온앤오프>에서 육아하는 모습을 봤는데 생활력이 엄청 좋아 보였다. 그런 지점이 첫째의 느낌이었다. 그 때 한채아 배우는 애기 낳고 연기 복귀를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던 모양이다. 독립영화에 출연하신다니 고마웠다. 아마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가족과 떨어져서 재밌게 촬영했다. 부산에서 고향친구도 많이 만나고 즐겁게 촬영했다.”
Q. 혜진이 일하는 가게 지점장을 맡은 배우는 송지호이다. <닥터 차정숙>에 나왔던. 그의 역할은?
▶ 김민주 감독: “혜진과는 전 연인 사이이다. 형은 서울에서 지점을 운영하는데 잘 나가는 상황이고, 송지호는 미련이 남아있는지 이곳에 머문다.”
Q. 막내 혜주를 연기한 송지현은 유일하게 부산네이티브가 아니었다.
▶ 김민주 감독: “당연히 사투리를 잘 구사하는 친구를 찾았다. 춤도 춰야하고, 연기도 되는 세 조건을 맞춘 배우 찾기가 어려웠다. 두 언니랑 나이 차도 있고 마냥 막내 같으면서도 ‘나는 어른인데..’하는 억울함이 있는 친구여야 했다. 거의 마지막 날에 송지현 배우를 찾았다. 춤과 사투리를 열심히 연습시켰다.” (‘춤’과 ‘사투리’ 연기가 어떤 수준이라고 보나) “송지현 배우가 좀 마른 체형이라서 파워가 부족해 보였다. <스우파> 때문에 춤을 보는 눈이 높아졌잖은가. 사투리는 정말 열심히 했다. 현장에 부산 출신 스태프가 많아 틈틈이 물어보고 그랬다. 짧은 기간에 한 것 치고는 성공한 것 같다.”
Q. 이야기의 중심인물인 엄마 화자를 연기한 차미경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 했는지.
▶ 김민주 감독: “사투리 되고, 그 나이에 연기를 잘 하시는, 독립영화 할 수 있는 분은 차미경 배우밖에 안 떠올랐다. 선배가 출연한 독립영화 많이 봤었고, 성격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랑스럽고 애교도 많다. 여고생 같은 느낌도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맑고 순순한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픔’이 느껴지지 않게. 순수한 느낌이 났으면. 연락 드렸더니 흔쾌히 응해주셨다.”
Q. 차미경 배우가 연기한 엄마는 보기에 안쓰러운 사연을 갖고 있다. 게다가 치매 증세까지 있다. 다루기 힘든 이야기인데.
▶ 김민주 감독: “이 영화는 외할머니의 사정을 모르고 자랐던 세대가 이것을 기억하는 이야기이다. 기억을 잃어가고, 그것을 채우는 과정에 극적인 요소로 기억을 잃는 병을 넣은 것이다. 그런 것은 최대한 앞에 내세우지 않고 연출하려고 했다. 하면서도 부담이 되었다. 내가 아무리 조사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실제 그런 사람, 가족의 마음을 채울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런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영화도 아니다. 그런 것을 차용한 것은 기억을 잃어가는 것을 딸들이 채워준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아픔 같은 것도 다음 세대가 기억을 해준다면, 서로 보담아줄 수 있지 않을까. 비단 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려고 하는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Q. 그럼, 첫 장면에서 서울에서 영도로 내려온 한선화가 엄마와 나누는 대사 중 ‘감과 홍시’ 대사가 그 복선인가.
▶ 김민주 감독: “그런 면도 있지만 사실은 이 이야기를 쓸 때 엄마가 첫째를 제일 아낀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엄마기 동생만 챙긴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엄마는 항상 첫째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 미안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세 딸을 똑같이 좋아하지만 은근 첫째를 챙겨주려고 한다는 나름 설정이었다. 몰라도 되는 이야기지만. 그리고 첫 만남부터 서로 너무 좋아하는 장면 보이면 재미없으니. 티격태격할 수 있는 다양한 레이어를 넣고 싶었다.”
Q. 그때 맛있는 빵을 사왔다고 하는데, 무슨 빵인가.
▶ 김민주 감독: “아, 그 장면을 제대로 못 찍었다. 원래는 동그랗고 예쁘고, 도톰하게 생긴 빵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포장 방식도 다르고. 맛있는 일본빵, 단팥빵이라고 봐주셨으면 한다.”
Q. 일본 장면은 어디서 찍은 것인가. 교토인가?
▶ 김민주 감독: “일본에서 찍은 장면은 없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버전에서는. 올해 초 혼자 일본에 가서 소스 촬영을 했다. 일본으로 넘어갈 때 풍경을 찍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기차 신은 세트였다. 역이랑, 병원도 한국에서 여기저기 헌팅해서 이어붙인 것이다. CG로 연결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든 것이다. 예산도 그렇고, 코로나 때여서 찍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 티가 안 나는 장소를 생각했다.” (그럼 영화에 등장하는 타카미야(高宮)역은 가공의 역인가?) “그렇다. 일어 번역하는 사람에게서 몇 개 추천받았고, 그중에 하나 선택한 이름이다.”
Q. 태어난 곳이 부산 영도이다. 영도의 곳곳이 영화에 담겼다. 영도인으로서 그동안 작품에 등장한 영도에 대한 소감은?
▶ 김민주 감독: “영도라는 배경은 장르물에 많이 쓰이는 것 같다. 폭력적인 범죄 현장으로. 혹은 너무 역사성만 강조된다. 피난민이 정주한 곳으로 절절한 사연이 깃든 아픔의 동네로. 그런 두 가지 측면만 강조된 것 같아 살았던 사람으로 아쉽기는 했다. 영도 자체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이야기 자체도 그렇고. 일부러 막내 혜주와 남자의 로맨틱한 장면을 항구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원래는 그런 곳에서 살인사건이 많이 나오는 식으로 소비되었으니.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Q.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처음 공개되었다. 반응이 조금 남달랐을 것 같다.
▶ 김민주 감독: “확실히 그랬다. 혜영처럼 이곳을 떠났다가, 영화제 때문에 오신 분들도 있고, 꿈을 좇아 떠났다고 돌아온 사람도 있고. 공감을 많이 해주셨다. 그런 분들 위해 만든 영화라서 기분이 좋았다. 해외영화제에서는 엄마가 어디에서 오셨고, 외할머니가 어느 나라 사람이라며 뿌리 이야기를 하더라. 그게 신기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보편적인 이야기인 모양이다. 감동적이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제가 뭉클해진 순간이었다.”
Q. 부산이라면 일본문화의 영향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엔 일제 전자제품도 많이 사용했었고.
▶ 김민주 감독: “한선화가 엄마랑 팥 만드는 장면에서 손으로 팥을 젓는다. 그런데 원래 그 장면 앞에 믹서기를 사용하는 장면이 있다. 버턴을 누르는데 고장이 난 것이다. 엄마가 ‘이거 어제까지 됐는데.. 이거 일제야.’라고 말하면 한선화가 ”요즘 누가 일제 쓰노?“ 그렇게 말하는 장면이다.” (아마, 이 장면 넣었다면 부산출신이라면 크게 웃었을 것 같다.)
Q. 드디어 일반관객에게 이 영화가 공개된다. 개봉을 맞은 소감은?
▶ 김민주 감독: “<교토에서 온 편지>는 가족과 고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시고 어릴 때 순수했던,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고향이 아니더라도 몽글몽글해지는 따뜻한 에너지 받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선화, 한채아, 차미경, 송지현이 가족으로 나오는 부산 영도 출신의 김민주 감독의 따듯한 드라마 <교토에서 온 편지>는 6일(수) 개봉한다.
[사진=판씨네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