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해피데이>(2003)와 <그 놈은 멋있었다>(2004)의 조감독을 거쳐 2006년,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데뷔한 김성훈 감독은 오랫동안 와신상담의 시간을 가져야했다. 그러다가 <끝까지 간다>(14)와 <터널>(16)의 흥행성공으로 드디어 찬란한 햇빛을 보게 되었다. 그의 신작은 <싸인>, <시그널> 의 김은희 작가가 집필한 <킹덤>이다.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탄생된 조선시대 좀비극 <킹덤>은 지난 25일, 전 세계 190여 개 나라의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엄청난 기대 속에 공개된 <킹덤>의 김성훈 감독을 만나 ‘좀비의 비밀’과 넷플릭스 스타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29일, 경복궁 근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매체 라운드인터뷰 자리였다. 2층에서는 김은희 작가가 3층에서는 김성훈 감독이 기자들을 맞이했다.
● ‘킹덤’이 마침내 공개됐다. 소감은
“영화가 개봉되면 무대인사 다니고, 박스오피스 기록에 신경 쓰고, 평가에 일희일비하고 그런다. 내 작품이 이슈가 되면 감독으로서 쾌감을 느끼는데 이번 작품의 경우는 그런 과정이 없다. 지난 금요일 오후 5시 개봉한 셈이다. 그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함께 모여서 관람했다. 같이 즐겼는데 좀 어색하기도 했다.”
●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한국의 사극이 해외에서 어떻게 비쳐지는지 알겠더라. 여러 가지 면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 간 조카가 ‘한국이 이렇게 예뻤어?’라고 하더라. 외국 사람들도 그런 말을 많이 하더라. 신기했다.”
● 물론, 한국은 예쁘다. 경복궁도, 비원도, 산하도. 그런데 모바일로만 보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큰 화면으로 보면 확실할 것이다. 4K 카메라로 찍어 엄청나게 선명하다. 미장센, 미술, 조명, 촬영에 공을 많이 들였다. 고 퀄리티 사극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위한 괜한 책임감도 있었다. 많이 보여주고 싶다. 가급적이면 큰 화면으로 봐 주시길. 물론, 어떤 매체로 봐도 좋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킹덤을 봤는지 궁금하긴 한데 넷플릭스가 카운팅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반응은 알 수 있다. 해외 관련기사와 평을 보면 '새로운 좀비 장르물의 등장'이라는 말과 '화면이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꼭 있다. 그들은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다. 저도 이번 작품하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예쁜 줄 몰랐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화면에 담았는데 정말 눈이 시리도록 예뻤다.”
● 김은희 작가와는 어떻게 일하게 되었나
“영화는 준비기간이 길다. <터널> 끝낼 무렵이었다. 다음 작품까지는 공백이 길 것이라고 생각할 때 (배)두나씨가 드라마 한 번 해보라고 하더라. <터널> 개봉 즈음에 맥주 마시다가 김 (작가)가 그런 제안을 하더라.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한번 해 보지라는 생각이었다. 김은희 작가를 오랜 기간 알고 있으니 믿음이 쌓였던 것이다. 믿었으니 거저 먹을 줄 알았는데 2년 반이 되었다. 영화보다 더 길다. 이렇게 대가를 치르구나 생각한다.
● 넷플릭스 작업, 흥분과 기대
“지금은 넷플릭스가 많이 알려졌지만 처음 ‘킹덤’을 기획할 때는 넷플릭스가 한국에선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다. 대중예술을 하는 우리로서는 많은 공을 들여 봤자 찻잔 속의 태풍이 될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신매체가 궁금하긴 했다. 넷플릭스가 하는 말, ‘창작자에게 무한한 자유를’이라는 게 유혹적이었다. 아마도 한국에선 후발주자라서 파격적인 지원을 한 면도 있을 것이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파이널 편집권까지 가져갈 수 있으니. 저한테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셈이다. 좀비도, 사극도, 두 시간짜리 영화를 하다가 6부작 시리즈를 하게 된 것도 처음이니 흥분되었다. 마치 못된 짓 처음하는 애처럼.”
● 김은희 작품에서의 감독의 역할
“연극은 배우의 무대이고, 영화는 감독의 무대, 드라마는 작가의 무대라고도 한다. 김은희 작가의 위상을 알고 들어간 것이다. 나는 충분히 영화감독의 역할을 했다. 상당히 귀중한 협업과정이었다.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 관객들은 양질의 콘텐츠를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 ‘시즌2’ 결정과정은
“넷플릭스가 좋다고 판단한다면 시즌은 계속될 것이다. 속편 제작이 어려운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배우들의 스케줄 문제도 있고, 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킹덤 시즌2’는 편집 중반 무렵 ‘1년제’ 방식으로 하자는 큰 결정이 이뤄졌다. 올 1월에 ‘시즌1’이 나왔으니 내년 이맘 때 ‘시즌2’를 개봉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배우들 스케줄, 시나리오가 다 나와야한다.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충분해야한다. 그렇게 동의한 것이다. ‘시즌3’을 이야기하자면 아마 그런 과정을 또 거칠 것이다. ‘킹덤’은 계속 진화할 이야기가 있다. 적어도 4-5개의 세계관이 확장될 것 같다. 김은희 작가에게는 원대한 포부가 있는 것 같다.”
넷플릭스는 ‘시즌2’ 제작을 공식발표했고, 김은희 작가는 '시즌2' 6부작 대본을 다 끝냈으며, 2월 중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 배우들이 자랑스럽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캐스팅을 잘 한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이 배우들이라고 생각한다.”
“주지훈은 정말 왕세자 ‘창’ 그 자체이다. 하정우와 주지훈은 절친이다. <신과 함께> 촬영장에 갔다가 그를 보고 꼭 캐스팅하고 싶었다. 유약한 것 같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한 얼굴을 가졌다. 영락없이 왕세자 창이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더니 “이 친구 워낙 센스 있고 똑똑하다. 작품을 이해하고 주변상황을 잘 캐치한다. 베스트다.”
궁궐의 공기를, 조선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영의정 조학주 역의 류승룡에 대한 찬사도 이어진다.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카리스마를 가졌다. 그런 카리스마가 내재적이지 못한 배우가 그런 역을 연기하면 그냥 센 척하는 느낌이 온다. 마치 앞발톱을 숨겨도 엄청난 포스가 느껴지는 호랑이처럼 아우라가 대단하다. 물리적 분량(시간)은 많이 않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여운, 그 파장이 커서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다음, 역병의 근원을 쫓는 의녀 서비를 연기한 배두나에 대한 칭찬.
“<터널>을 같이 했었기에 배두나에 대한 신뢰는 깊다. 한 치 의심없는 최고의 배우다. 현장에서 배두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선배인데 항상 신인처럼 솔선수범한다. 배두나가 출연한 일본영화 '공기인형'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3살부터 80살까지 모든 사람들이 배두나를 좋아한다면서 가장 좋아한 사람은 자기라고 하더라. 사실은 내가 더 좋아한다. ‘킹덤’을 통해 확인했다.”
● 김성규와 진선규, <터널>에 나왔었다
의문의 남자 영신을 연기한 김성규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성규는 <터널>에 나왔었다. 건설회사 앞에서 ‘청년1’로 나와 시위하는데 편집에서 잘렸다. <범죄도시> 개봉에 앞서 감독이 가편집본을 보여줬다. 모니터링하면서 괴물 같은 친구라고 하더라. 김성규 배우였다. 출연을 부탁했다. 김성규는 말보다 더 빨리 뛸 것 같다. ‘킹덤’에 수레 레이싱 장면을 보면 김성규는 말고삐를 잡고 뛴다. 오늘도 이미 잘하지만 내일은 더 잘할 배우이다.”
‘킹덤’에는 진선규도 등장한다. 안현대감(허준호)의 오른팔 ‘덕성’이다. “<킹덤>에서 도드라진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빅 스타인데 더 돌출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극의 균형을 깨서는 안 된다. 진선규도 몸이 근질근질했을텐데."
● ‘시즌1’에서 충분한 복선을 깔아놓았는데, 캐릭터들은 자신의 운명이나 이야기 진행방향을 알고 연기하나.
“정확히 알고 행동할 때와 모르고 행동할 때는 느낌이 다르다. 모호하게 진행할 때가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이야기의 뼈대는 있지만 진화할 수가 있잖은가. 전체적으로 봐서 개연성을 흩뜨리면 안 된다. 모호성을 가지고 가면서, 개연성을 지켜야한다.”
● 좀비영화로서 킹덤
“좀비를 어떻게 보여줄지 연구했다. 놀라게 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고, 색다른 좀비를 내세우는 것도 좋은 시도일 것이다. 밤에, 안개 속에서 점처럼 보이던 것이 감당이 안 되는 속도로 내 쪽으로 달려올 때 느끼는 그 두려움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호러물 장르에서 중간에 쉴 틈을 주고 싶었다. 옥중 장면에서 목에 칼을 쓴 두 죄수가 허둥대는 장면을 넣어봤다. 웃기잖은가.”
● 전석호와 배두나는 어찌 되나
“동래부사 조범팔을 연기한 전석호와 지율헌 의녀 배두나의 케미가 이번 시즌에서는 말랑말랑한 면이 있었다. 죄송하게도 그 뒷이야기는 ‘시즌2’에서 확인하시길. 서비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 영화가 완성 뒤 아쉬운 점은
“작품이란 게 끝내고 보면 아쉬움이 몰려온다. 찍을 때도 그랬다. 하루치 촬영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오면 자아비판을 했다. 이번에 103회차를 찍었는데 술 마시고 잠든 날 빼면 항상 ‘왜 이렇게밖에 못 찍었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완성품을 보니 뿌듯하다. 어쨌든 내 자식인 셈이니. 비주얼적으로 아쉬운 점, 긴장감이 있어야하는데 밋밋하다고 느낄 때, 역동성을 노리다보니 디테일이 빠진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 <끝까지 간다>에서부터 역동성과 디테일함을 견지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 김은희 작가는 감독이 독하신 분이라고 하던데
“김은희 작가가 2년 반을 쓰고 다듬은 작품이다. 김 작가는 이 작품 하기 전에 이미 드라마 업계에서는 탑이었다. <시그널>과 <싸인>은 옆에서 결과물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킹덤>은 그 과정을 쭉 지켜본 셈이다. 특정분야에서 톱인 사람은 안일하게 접근하는 법이 없다. 저도 워크홀릭이지만, 김은희 작가는 저를 능가하는 워크홀릭이다. 미친 듯이 연구하고, 글 쓰는 것을 정말 즐기더라.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잖은가. 저렇게 기본적으로 능력가에 성실하기까지 하니 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시즌2, 김성훈 감독에서 박인제 감독으로
“‘시즌2’의 1부만 내가 감독하고 나머지는 박인제 감독이 맡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런 고민을 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경우도 데이빗 핀치가 시즌1의 첫 두 편만 감독하고 나머지는 여러 감독이 에피소드를 담당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안 해본 시스템이다. 이럴 경우 작품전체의 톤앤매너 유지가 중요하다. 이번 시도가 제대로 된다면 이러한 협업시스템이 많이 생길 것이다. 더 좋은 감독이 함께 작업할 수 있다. 물론 톤앤매너를 유지하는 크리에이터가 있어야할 것이다. 그렇게 만든 ‘킹덤’의 퀄리티가 좋아진다면 영화를 하는 창작인에게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영화팬에게도 좋은 작품을 만나볼 기회가 늘어난다.”
넷플릭스가 20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완성한 6부작 <킹덤>은 지난 25일 전 세계 190여개 나라 넷플릭스를 통해 일제히 공개됐다. 넷플릭스는 '시즌2' 제작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