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시영은 드라마에서 복서를 맡을 뻔했다. 작품은 무산되었지만 이시영은 리얼리티를 위해 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웠다. 배운 김에 시합에도 나갔고, 나중에는 국가대표에도 뽑히기도 했다. 아마추어 복서 배우 이시영이 출연한 영화 <언니>(감독:임경택)가 어제 개봉되었다. 여린 여동생이 나쁜 놈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지만, 공권력이 보호해지 못함에 분노하고, 직접 응징의 ‘오함마’(슬레지해머-오함마는 일본말이다!)를 들고 나서는 영화이다. 충격적인 장면이 많다. 개봉을 앞두고 이시영을 만나 ‘해머’의 무게감과 여배우의 책임감에 대해 들어보았다.
● “오뉴월, 새빨간 원피스에 하이힐이라니”
제작 당시 이 영화의 가제는 ‘오뉴월’이었다고 한다. “그게 오히려 좋은 것 같다. 여름에 찍었고. 다른 어려운 게 많아 더웠던 것은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의상도 시원했고 말이다.”
언론시사회에서 이시영이 맡은 여주인공 인애의 ‘빨간 원피스(미니)와 하이힐’에 대한 불편함이 묻어나는 질문이 있었다. 배우의 생각도 같았던 모양.
“촬영을 하면서 고민이었다. 한 달간 고민한 것 같다. 굳이 짧은 원피스를 입어야하는 것인지. 개연성이 있는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오프닝 씬이 강렬했다. 그 몇 장만으로도 궁금했다. ‘카센터에 빨간 치마, 오함마를 휘두르는 것’이 강렬했다. 배우들이 액션연기를 할 때는 운동화 같은 편한 신발에 편한 복장이어야 한다. 가죽 재킷 정도 걸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 그런데 저런 복장으로는 액션이 자연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액션 감독님도 반대하셨다.”
이시영은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한다. “제가 아무리 운동을 했다 하더라도 전문 액션배우는 아니다. (그런 패션이면) 몸매가 다 드러나니까 모든 동작이 정확하지 않을 것이고, 어설퍼 보일 것이다. 보통 옷의 부피감으로 작은 체격을 커버해야 하는데 그 방법도 쓸 수 없다. 하이힐을 신으면 중심 잡기도 어렵다. 어쩌면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시영이 그런 차림으로 액션연기를 한 것은 감독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었다고. “감독님이 생각하는 메시지는 확고했다. 빨간 치마와 하이힐이 보여주는 상징성. 전반부는 여린 여자의 모습이고, 뒤로 가면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상징성에 무게감을 둔 것 같다.”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잃는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다. 어쨌든 의상은 감성적인 면이니 나머지는 액션으로 채워나가자, 멋있게 보일 수 있게.”(그렇게 생각했다)
이시영은 극중에서 전직 ‘경호원’으로 등장한다. 업무수행에 문제가 있어 교도소를 잠깐 다녀온 설정이다. 작품에서는 ‘경호원’과 ‘악당’들과의 대결이 잦다. 이시영은 복싱을 비롯하여 주짓수와 카체이싱까지 펼친다. 특히 비좁은 차 안에서 일대일로 벌이는 액션 씬은 대단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액션은 조금씩 보여드린 적은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본격 액션물을 하니 부담되기도 했다. 아주 잘해야 할 것 같았다. 다른 작품과는 좀 다르게 보여주고 싶었다.“
● 영화에서 혈혈단신으로 남자무리들과 거친 액션을 펼친다.
“무기류를 가진 요원이 아니다. 동생을 찾겠다는 일념을 가진 언니 설정이다. 자기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가장 자연스런 액션을 선택한다. 다른 액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액션감독님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주짓수도 배웠다는데.
“3개월 배웠다. 해보니 1년 정도 해야 기본기를 할 수 있겠더라. 연기의 합을 맞추는 위주로 배워 겨우 촬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 분노, 동생을 위한 응징
동생 은혜 역을 맡은 박세완 연기는 어땠나.
“세완이가 없었다면 영화의 많은 부분이 부족했을 것이다. 동생을 구할 수밖에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를 완벽하게 해주어 고마웠다. 연기를 하며 외로웠는데 정말 고마웠다.
‘악녀’와 ‘마녀’에 이어 여자 주인공이 액션을 펼친다.
“두 영화를 여러 번 보았다. 부럽기도 했다.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으니. 그런데 세 편의 영화는 캐릭터와 설정이 확연히 다르다. ‘마녀’는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액션을 해도 파워풀하다. ‘악녀’에서 김옥빈 선배가 철저히 훈련되고 키워진 인물이기에 스타일리쉬한 액션이 있다. 우리 영화는 평범한 사람이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설정이 다르기 때문에 카메라워킹도, 배우들의 액션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시영은 ‘언니’의 액션이 힘을 가지는 이유를 ‘분노’라고 표현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가 컸다. 동생의 흔적을 쫓을수록, 동생의 과거를 접할수록 언니는 동생이 견뎌야 했던 그 끔찍한 상황을 알게 된다. 그런 분노와 동생을 지키지 자책감이 인애의 전투력을 상승시킨 것이다.”
● 미성년자 동생의 과거는 끔찍하다. 그걸 묘사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감독님이 말씀하시기를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이 작품을 구상한 것이라더라. 그런 끔찍한 상황에서, 공권력으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 피해자만 억울하게 남는 상황이다.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더 분노하게 되고, 연기를 한 셈이다. 저의 액션에서 그 분노를 더 표현하고 싶었지만 저의 신체적 한계 때문에 벽에 부딪힐 때 제일 답답했다.“
(원래 시나리오는 응징의 수위가 더 처절했다고. 여러 가지 이유로 수위가 낮아졌다고 한다)
이시영은 영화의 표현수위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힌다. “시나리오를 처음 볼 때만 해도 충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과 1~2년 사이에 이건 아무 것도 아닌 정도가 되었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일이 많다. 일부 장면 때문에 영화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이어 “동생 은혜는 지적장애를 가졌다. 가족이지만 동생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은혜만 아니라면 충분이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하고. 그러다가 슈퍼마켓에서 동생의 과거(몹쓸 짓을 당했다는 사실)를 알게 되면서 분노, 자책감, 자신에 대한 분노가 더욱 끓어오른다. 정말 애타게 세상의 도움을 바랐지만 말이다.”
● 여자 이시영
원제가 ‘오뉴월’이었다는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뭐 그런 정서가 있었나.
“하하하.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 같고, 나중에 ‘언니’로 바뀌었다.”
엉뚱한 질문이 나왔다. “이시영씨는 권투도 배웠고, 주짓수도 할 줄 아니, 1:1로 붙으면 웬만한 남자는 이기겠다.”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 엘리베이터 탈 때나 모르는 남자가 뒤에서 걸어오면 무서운 것 있잖아요. 1:1로 싸워 이기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지만 업어치기나 급소를 때리는 방식으로 내 몸을 보호하고 가족을 구하는 모습은 상상해 봤다.”
‘여자 마동석’이란 말이 나온다. 마동석 배우와 영화를 찍는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대립하면 안 될 것 같다. 서로 맞서 싸우는 이야기보다는 콤비가 되었으며 한다. 아니면 내가 악당들 중 하나가 되면, 필살기를 가진 인물이어야 할 것 같다.”
현실에서, 남편이랑 싸우면?
“영화개봉을 앞두고 버스와 택시에 오함마 든 <언니> 포스터가 많이 보인다. 그걸 보고 남편 친구분들이 ”행동거지 잘 해야겠다“고 했다더라. 사실은 내가 의지를 많이 한다.”
● 새해에 드라마로 돌아온다
“KBS 2TV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이다. 때리는 역할은 아니다. 맞는다. 극중 이름이 화상이다. 문영남 작가님이랑 처음 작품한다.”
● 배우로서 새해 소망이 있다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싶다. 나는 데뷔가 늦었다.(28살) 그래서 조급함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내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작품이 왔을 때 할 수 있으면 최대한 많이 하고 싶다. 내가 복싱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드라마도. 하면서 놀랐다. 그런 일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날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흥미로운 질문을 했다. ‘멋진 드라마 주인공’과 ‘드라마 같은 실제 스포츠경기’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스포츠를 선택하고 싶다. 진짜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이다.”
●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이 영화가 개봉되어 좋다. 개봉을 할 수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 너무 좋다.” (영화는 완성되고 2년 만에 개봉되는 것이다)
이시영의 복수활극 <언니>는 새해 첫날 개봉되었고, 이시영(화상)이 유준상(풍상), 오지호(진상), 전혜빈(정상), 이창엽(외상)과 함께 출연하는 KBS 수목드라마 <왜 그래 풍상씨>는 1월 9일 첫 방송된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