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다모>와 <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역린>과 <완벽한 타인>, 그리고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을 만든 이재규 감독이 내놓은 신작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병동(명신대 정신건강의학과)을 배경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과 그들을 치료하는 의료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환자와 가족, 의료진의 인생을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이상적 간호사 입주민을 연기했던 박보영은 이번 작품에서 내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옮겨온 간호사 정다은을 연기한다. 박보영 배우를 만나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정신병동에 아침이 와요’가 공개되고 호평을 받고 있다.
▶박보영: “너무 기쁘다. 1위 했다는 것 우리 ‘명신대’ 단톡방에 올려 기쁨을 공유했다. 보면서 엄청 울었다. 대본 보면서 힘든 구간이 있었다. 드라마로 보니까 더 많이 울게 되더라. 6회는 차마 한 번에 못 보겠더라. 대본 보는 것과는 달리 영상으로 보니 1부부터 쌓여오던 감정이 터진 것 같다.“
Q. 이런 드라마에 출연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박보영: “따뜻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공감을 하겠다,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크게 성공을 못하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인생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리뷰나 평을 찾아봤는지?) “ 열심히 찾아보고 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와 닿았구나 싶었다. 자문을 해주신 성모병원 간호사분들이 환자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고 말해주시더라. 주변에는 마음이 힘들지만 입 밖에 내길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반응이 올 줄은 몰랐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
Q. 병원에서 직접 간호사 업무를 참관하였다는데.
▶박보영: “서울성모병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참관을 할 수 있었다. 회진할 때 같이 참여했다. 간호사, 수간호사분들이 하는 일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정말 세세하게 업무가 짜여있는 것에 놀랐다. 수첩에 적으면서 관찰했다. 촬영 현장에는 간호사가 나와서 디테일한 점을 봐주셨다. 리얼리티를 잘 살려주셨다.”
Q.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박보영: “뛰지를 못한다. 근데 한 번, 다은이가 병동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오리나 님한테 갈 때 뛰어간다. 다은이가 이곳에 처음 와서 적응하는 과정이라서 허용이 된 것이다.”
Q. 가장 공감이 갔던 에피소드는.
▶박보영: “제 스스로 다은이가 극복해 가는 과정이 공감이 갔다. 다은이와 어느 정도 맞닿은 부분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말을 잘 못한다. ‘그 사람이 그렇다고 싫어하면 어떡해요?’라는 대사 같은 거다. 다은이가 극중에서 칭찬일기를 쓴다. 나도 써봤는데 도움이 많이 되더라. 5화 워킹맘 이야기에서 생각보다 많이 울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나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랑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 신에서 너무 많이 울었다. 각자 눈물 포인트가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연우진 배우는 인터뷰에서 박보영 배우가 현장에서 힘들어했다는데.
▶박보영: “하얀병원 장면이었다. 다은이가 다른 사람과 말을 안 섞으려고 하긴 했지만, 진짜 이유는 조금 허무한 것이다. 그 때 다리가 너무 아팠다. 구석에 앉아서 신발 벗고 다리를 치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촬영해서 다리가 아픈가? 간호사들은 앉아서 쉴 틈도 없이 돌아다닌다. 다리가 아파서 몰래 쉬고 있었는데 선배가 멀리서 보고 제가 너무 힘들어보였다고 그런 거다.” (하하)
Q. 연우진 배우는 박보영 배우가 천사라고도 했다.
▶박보영: “선배님이 나를 잘 모르는 거 같다. 단면을 보고 말한 것이다. 다은이는 너무 따뜻한 친구이다. 7개월을 그렇게 살았으니 다은이를 보고 그리 생각한 모양이다. 다은이는 천사가 맞지만 전 아닙니다.” (연기에선 연 배우보다 선배인데..) “나이가 저보다 많아 그렇게 불렀다. 인생 선배이니까. 그냥 편해요. 편해서 그렇게 불렸는데, 듣는 사람 생각을 한 번도 못했네요.”
Q. 노재원 배우가 연기한 김서완 에피소드는 어땠는지.
▶박보영: “노재원 배우랑은 현장에서 이름을 서로 말한 적이 없다. 7개월 촬영하면서 서로 ‘서완님’, ‘중재자님’이라고 했다. 그래서 ‘라포’(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친밀감, 신뢰도)가 쌓인 것이다. 촬영할 때 너무 힘들었다. 저한테는 서완이로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제 앞에 없는 상황이 너무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촬영하기엔, 인물에 몰입하는 것이 너무 잘 되었다.”
Q. 노래방 장면에서 감정이 폭발한다. 하이텐션으로 신나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린다.
▶박보영: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갑자기 이렇게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었다. 감독님은 너무 이해가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최대한 해보겠다고 한 것이다.” (춤은?) “안무선생님이 안무를 짜 주었다. 중간에 막춤도 있다. 영상을 미리 보내주셔서 잠깐이지만 동윤이랑 보면서 익혔다. 실제로 그렇게 잘 놀지는 못한다. ‘이 노래를 이렇게 많이 했다’라는 것만 보여주려는 신이었다.”
Q. 장동윤 배우와의 케미는 어땠는지.
▶박보영: “현장에서 시간을 같이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동윤이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먼저 다가왔고, 장난기가 엄청 많아 빨리 친해졌다. 동윤이라 부른 적이 없고, 늘 ‘유찬아’ 하거나 ‘야!’라고 많이 불렀다. 제가 계속 잔소리를 하게끔 장난을 많이 친다. 그런 게 쉽게 잘 나왔던 것 같다.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이다. 보면서 둘이 친구인 이유가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둘 다 바보 같아서.”
Q. 현장분위기는 어땠는지.
▶박보영: “동윤이가 다른 작품 하느라 힘들어할 때였던 것 같다.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했다. 우진 선배와는 긴장감이 계속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너무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극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가니 거리감이 좀 있어야겠다고, 긴장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다은이가 동고윤쌤에게 반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박보영: “자꾸만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잖아요. 독특한 캐릭터이다 보니 눈에 들어올 것이다. 아, 그리고 엄마의 쑥개떡을 아무도 먹어주지 않을 때, 그걸 맛있게 먹는다. 그 때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았을까요.”
Q. 기싸움을 펼치는 것 같기도 하다. 로맨스에 대해서는.
▶박보영: “한순간에 반했다기보다는 동고윤 선생님과 계속 마주치니, 서서히 마음이 커지는 로맨스였던 것 같다. 우리 드라마에서 이 정도 로맨스는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결이나 이야기 방향에 방해 받지 않는 정도로, 소소한 재미가 중간중간 나와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Q. 평상시 마음을 돌보는 방법이 있다면, 이 작품으로 배운 점이 있다면.
▶박보영: “배우라는 직업이 너무 커지지 않게 하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배우 박보영이 아니라 33살의 박보영을 키우려고 평상시 노력한다. 그래서 형부의 가게에서 일한다든지 조카를 데리고 다닌다든지. 일하지 않는 것으로 리프래쉬하고, 개인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저도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수쌤(이정은)의 대사가 크게 와 닿았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대사. 그리고 후반부에 환자보호분들이 대립하는 장면. 만약 내가 이 작품을 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 보호자들 심정이지 않았을까. 수간호사님의 말에 그들이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이 친구들이 언젠가는 사회에 나갈 것이고, 그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것이 울림을 주었다. 다은을 우리가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저도 똑같이 변화를 느낀 것 같다.”
Q. ‘칭찬일기’ 쓸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박보영: “자기칭찬을 잘 못하는 편이다. 처음 할 때 칭찬할게 뭐 있나 고민을 했었다. 실내화 가지런히 놓인 것도 칭찬하고, 알람소리 듣고 한 번에 일어나는 것도 칭찬하고, 끼니 잘 챙겨먹은 것도 칭찬한다. 그렇게 작은 시작하면 잘 될 것 같았다. 생각보다 잘 풀렸고, 자존감도 올라갔다. 아직은 스스로에 대한 칭찬의 기준이 높은 것 같다. (연기하는)일에서는 높은 것 같다.”
Q. 배우 박보영, 개인 박보영의 차이는?
▶박보영: “집에선 ‘언니가 하면 되지..’ 그런다. 배우 박보영은 책임감이 좀 더 있는 편이다. 현장에서는 선배라인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예전에 봤던 선배들의 좋은 점을 따라 하게 되더라. 예전엔 저만 잘 하면 되는데 이제 ‘우리 다 같이 잘 해요’하게 되더라. 스태프도 밟히고, 막내도 챙기게 되더라. 현장에서 저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빛이 보이더라.”
Q. 우울증 환자를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
▶박보영: “내 방식으로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표현할 때 즉각적인 모습이 보였으면, 그래서 얼굴이 피폐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다가 내뱉었을 때의 건조함, 생기 없는 목소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저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말도 아꼈고, 물도 안 마시고 그랬다. 감독님이 그때는 그냥 날 놔뒀다고 하더라. 그때는 나 스스로 ‘ 몸이 아프다. 힘들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잠식되더라.”
Q. 올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이어 하반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로 호평을 받았다.
▶박보영: “2023년은 내게 정말 특별할 것 같다. 기존과 다른 걸 해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선택했던 작품이었고 그 시도들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반응도 좋은 편이고. 연기에 대한 갈증 같은 것도 많이 해소가 된 거 같다. 앞으로 이런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 예전만큼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계속 이런 쪽으로만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최근에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에 특별출연했다. 그러면서 도봉순을 다시 많이 봐주시더라. 밝고 귀여운 거 다시 할 때가 되었나? 대중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의 타협점을 잘 찾아봐야겠다. 작품 운이란 게 때와 상황이 있더라.”
Q. 시즌2에 대한 생각은?
▶박보영: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이제 제 손을 떠났다고 생각한다.” (시즌2를 한다면?) “엔딩이 새로운 간호사 승재가 등장했으니, 시즌2가 되면 승재가 주인공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쌤이 해줬던 걸 내가 해줘야 할 것 같다. 수쌤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연쌤 정도의 역할. 그리고 다은이는 이제 시행착오는 그만 겪었으면 한다. 우리끼리 이야기 나눌 때 그런 이야기 했었다. 이담씨(민들레간호사)가 하고 싶어하는데 ‘너는 배타고 떠났잖아’했었다. ‘돌아올게요’하더라. 우리 간호사팀은 관계가 너무 끈끈하고 좋았다. 다은은 시즌2가 되든 안 되든 덜 힘들고 덜 아팠으면 좋겠다. 어디서든 잘 살아갈 것이다.”
Q. 아직 보지 않은 분들에게 메시지를 남긴다면
▶박보영: “이 작품이 희망을 강요하진 않는다. 지금도 되게 지난한 하루를 보내고 계시거나 어둠 속에서 본인과의 싸움을 하고 있거나, 주위에서 그런 분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면 내레이션에 나오는 ‘뻔한 희망’이란 대사를 떠올려 보셨으면 한다. ‘뻔한 희망’을 위해 버티는 노력, 아침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 드라마가 또 다른 느낌의 아침이 되어드리고 싶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