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멕시코 민중을 탄압하는데 태권도가 이용되었다.”
‘이 투 마마’와 ‘그래비티’의 명감독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한국의 영화기자들 앞에서 밝힌 내용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로마>는 지난 9월 열린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가 자신들이 플랫폼에서 독점적으로 공개하기 위해 만든 영화였고, ‘플랫폼 홍보차’ 출품한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자 전 세계 극장관계자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기존의 영화상영 방식이 변해가고 있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이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밝혔다.
21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명동 에비뉴엘에서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의 화상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넷플릭스의 아태본부가 있는 싱가포르를 찾은 알폰소 쿠아론을 인터넷으로 연결한 가운데 한국 취재진과의 라이브컨퍼런스가 열린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로마'는 '이 투 마마'(2001)에 이후 17년 만에 자신의 모국 멕시코에서 모국어(스페인어)로 찍은 흑백영화이다. 쿠아론 감독은 자신의 유년기였던 1970년대의 멕시코 이야기를 영화에 담았다.
넷플릭스, 흥미롭다
간담회에서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넷플릭스와 손잡은 것에 대한 질문이 제일 먼저 나왔다.
“나 역시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신작으로 소개하게 되어 흥미롭다. 내 영화에, 그리고 촬영방식에 관심을 가졌던 플랫폼이 넷플릭스였다. 이 영화는 멕시코의 미스텍 말이 사용되고, 흑백이다. 이런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넷플릭스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다.”며 “물론 관객이 극장에서 이 작품을 봤으면 좋겠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20년~30년 후 시간이 흘러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묘미인 것 같다.”
1970년 멕시코와 한국
자신의 유년기 멕시코를 다루면서 주인공을 집에서 일하는 클레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서도 이유를 밝혔다.
“클레오는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이다. 당시의 상처를 함께 공유했던 캐릭터다. 어찌 보면 한 가정이 안고 있던 상처이자, 멕시코 사회가 안고 있던 상처, 더 나아가 전 인류가 안고 있던 상처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캐릭터이다.”
1970년대의 멕시코 민주화운동과 한국
“당시 민주화를 위한 노력 덕분에 멕시코의 시대정신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멕시코의 민주화운동은 실패했다. 어찌 보면 아직도 멕시코는 민주화 과정 중에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멕시코와 한국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차이가 나지만 민주화를 얻기 위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두 나라간 감성적인 공감대가 있을 것 같다.”
쿠아론 감독은 한국의 정치상황과 한국의 영화에 대해서도 나름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영화를 보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야기가 사회고위층의 비리와 부패이다. ‘로마’ 역시 한국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클레오의 남자친구가 CIA로부터 군사훈련을 받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한국에서 온 태권도 사범’이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이야기하다보니 언급이 된 것이다. 당시 멕시코정부가 청년들을 상대로 군사훈련을 시킬 때 태권도를 가르쳤다. 안타깝게도 당시 태권도는 반정부 시위나 주로 학생시위를 제압하기 위한 사회적 억압 도구로 활용됐다.”고 말한다.
넷플릭스, 다양성의 통로
넷플릭스에 대한 질문은 한 번 더 나왔다. 쿠아론 감독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들에 대해 (칸느 등) 영화제들이 배척하는 분위기가 지속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건 단기적인 유행이 아닌 것 같다. 이를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플랫폼들도 극장에서의 영화 출시가 감독들에게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다.”면서 ”요즘 극장은 할리우드 영화나 슈퍼히어로 같은 영화로 영화 선택은 제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은 다양한 영화를 제공한다. 옛날에 다양한 영화들이 극장에 존재했다. 제가 어릴 적 극장에서는 할리우드 영화 뿐 아니라 아시아 영화, 유럽 영화, 아트하우스 영화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지금은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에서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지난 12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한국 개봉에 앞서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일부 영화관에서 제한적으로 극장상영이 이뤄졌다. 외국의 경우도 유사했다. 멀티플렉스의 ‘상영거부’라기보다는 ‘넷플릭스’의 노이즈마케팅 요소가 더 있어 보인다. 넷플릭스로서는 극장에서 상영되든 말든, 넷플릭스 브랜드 알리기엔 효과적이니 말이다. 넷플릭스는 ‘로마’ 공개 전, 한국에서의 언론시사회를 메가박스 코엑스의 MX관에서 진행했다. 아무리 개인 디바이스가 좋더라도 ‘MX’의 사운드와 스크린의 우월함을 쫓아갈 수 있을까. 영화팬들은 ‘편리함’을 얻는 대신 ‘위대함‘을 잃는지도 모른다. 쿠아론 감독이 말한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