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 막동이 한석규에게 껄렁대던 건달 판수를 연기한 배우가 송강호이다. 정말 동네 양아치를 데려다놓은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리고 송능한 감독의 <넘버3>에서 충무로의 전설이 탄생한다. “임춘애가 라면 먹고 금메달 땄다”는 대사를 내뱉으며 주옥같은 대사 퍼레이드를 펼치며 극장을 뒤집어놓는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송강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충무로 최고의 배우가 되었다. 그의 최신작은 <마약왕>이다.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의 한쪽 손목을 쓸어버리던 우민호 감독의 신작이다. <마약왕>에서 송강호는 1970년대 부산을 기반으로 히로뽕(필로폰) 제조와 밀수로 찬란한 수출금자탑을 세웠던 마약왕 이두삼을 연기한다.
영화개봉을 앞두고 지난 17일, 청와대 후문 쪽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송강호를 만나 보았다. 송강호에 대한 기대가 넘쳐 10명이 넘은 기자들이 둘러앉아 연기왕 송강호의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끗 세웠다.
- 마약왕 시나리오를 처음 봤고 든 생각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이두삼 이란 인물이 일관된 감정을 가지고 가는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여 년의 세월동안 사회적 위상과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이다. 극단적으로 오가는 다채로운 인물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마약 연기는
“우리나라에서 마약은 흔하지가 않다. 사회악이니. 미국이나 중남미랑도 다르다. 전혀 낯설고, 잘 모르는 세계를 연기하는 것이니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배우로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도전저해보고 싶었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창조된 인물이기에, 어떤 리얼함이 있었다.”
- 중점을 둔 것은.
“마약이라 세계를 집중 탐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두삼이라는 인물이 가진 인간본질. 비뚤어진 욕망, 집착, 파멸로 이어지는 한 남자의 굴곡진 삶을 연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선이 무너지면서 나락으로 빠지는 모습, 인생의 아이러니다.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에 중점을 두었다.”
- 영화 전반부에는 유쾌함이, 후반부에는 광기가 넘친다
“연기를 오래 하다 보니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진지하고, 소시민적인, 각성하는, 정의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인물. 일부러 그런 배역만을 고른 것은 아니다. 이번에 연기하면서 반가웠던 것은 ‘살인의 추억’이나, 저 멀리 ‘초록물고기’나 ‘넘버쓰리’ 때의 유쾌한 캐릭터를 이 영화에서 다양하게 발휘할 수 있었다. 관객들도 예전의 유쾌한 송강호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후반부에서는 송강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다.”며 “적절한 시기에 이런 캐릭터를 만나게 되어 반갑다.”도 덧붙인다.
- ‘마약왕’에 대한 영화 팬들의 평가를 어떻게 예상하나.
“연말 대진표를 보니 다양해서 좋더라. 관객들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약왕’은 후반부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우민호 감독의 전작 ‘내부자들’같이 기승전결이 확실하게 진행하는 익숙한 구조가 아니다. 배반감을 느끼거나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런 호불호는 나쁜 반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장일치의 느낌보다는 논란이 조금 있고, 이야기 거리를 던져주는, 열린 느낌의 영화였으면 좋겠다.
‘내부자들’과 비교하자면
“‘내부자들’은 간결함이 좋았다. 편집도, 드라마의 서사를 끌고 가는 형식들이 간결했다. 그러면서 힘이 넘친다. 캐릭터와 대사가. 좀 호방(豪放)스럽다고 해야하나. 호탕하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 시원시원하게 다가왔다. 또 그러면서도 섬세하다. 그런 지점이 공존한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육체적으로 바다에 빠지거나 거꾸로 매달려 맞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마약에 취한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힘든 연기였던 것 같다. 마약연기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니. 마약을 하면 모든 오감이 살아난다고 하더라. 발가락에서 머리끝까지, 그런 느낌으로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 송강호영화라면 영화팬들이 일단 기대를 하게 된다. 부담감은?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렇다고 해서 그 부담감이 작품 활동을 하는데 방향성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결과(흥행)를 떠나서 관객 분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인식되었으면 한다. 결과는 그 뒤에 겸허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 천만 영화를 고르느라 컴백이 늦어진 것인가?
“하하하. 그런 것은 아니다. 다음 영화가 천만 영화라는 것은 알 수도 없다. 내년(2019년)에는 자주 인사드릴 것 같다. <마약왕>에 이어 <기생충>(감독 봉준호)과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 )이 개봉된다. 세 작품은 각기 다른 지점이 있다. 그게 반갑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새로운 느낌의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이다.”
천상배우, 송강호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란?
“좋은 연기의 기준이 문법화된 것은 아니다. 관객들마다 개인의 느낌, 기준이 있듯이 배우에게도 좋은 연기에 대한 생각이 있을 것이다. 나는 배우 자신이 얼마나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을 제대로 투영했는지에 따라 좋은 연기가 결정된다고 본다. 나의 진심이 투영된 것이 확인될 때가 가장 좋은 연기라고 생각한다.”
송강호는 부산 옆, 김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70년 부산의 정서’가 어느 정도 투영되었을까.
“난 워낙 시골에서 자라 문화적인 체험이 열악한 편이다. 나중에 연극을 통해 연기를 배우게 되었다. 초중고 때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런 경험이나 정서는 없다고 봐야겠죠.”라며 “어릴 땐 권투선수가 되고 싶기도 했고, 경찰관이 되고 싶기도 했다. 어릴 때는 꿈도 많았다. 배우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다른 꿈을 꾼 적은 없었다.”
배우는 외로운 직업
송강호는 배우의 삶을 이렇게 토로했다. “배우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사실 아무 것도 아니잖은가.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배우는 외로운 직업이다. 결국은 혼자서 해야 한다. 누가 대신할 수도, 도와줄 수도 없다. 배우를 계속하는 이상 짊어져야한다. 이런 톱니바퀴 같은 삶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괴로운 작업(직업)일 수도 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칭찬을 받든 비난을 받든, 달달하지만은 않다. 그런 의미에 외롭다고 한 것이다. 이걸 극복하는 길은 좋은 작품과 좋은 사람 만나, 작은 성취감이라도 이뤄낼 수 있으면 된다. 작은 힘이 될 것이다.”
송강호는 아카데미영화상 투표권을 가진 회원이다. 투표는 해봤는지 물어보았다. 우편으로 하는 것이 아니란다. “제가 전화로 매니저에게 말하면 알아서 인터넷으로.”란다.
연기생활에서 가장 위기였던 순간은?
“연극을 할 때. 내가 과연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을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니. 두어 번 그런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배우들도 한 두 번 씩 겪는 과정일 것이다.”
자신이 출연한 작품 중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있다면
“천만이 넘은 작품이라고 아쉬움이 없겠는가. 관객 분들에게 평가를 좀 덜 받은 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제가 능력이 부족하고, 그 작품을 흡수하지 못 했을 것이다. 저의 능력의 문제라고 본다. 이건 비단 저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그렇게 느낄 것이다. 우리 인생사가 늘 좋은 길만 갈 수 있는 건 아니잖은가. 가다가 시행착오도 겪을 수 있으니까. 그걸 잘 극복해야한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싶다.”
‘편견’이라고 말한 것은?
“그런 역할을 사실 많이 해왔기에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변호인’과 ‘택시운전사’ 이후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좀 있는 것 같다. 저는 그분들 표현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그것이 편견이시지 않나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이다.”라면서, “난 이념적으로 치우친 배우도 아니다. 개인적인 가치관은 있겠지만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할 때 이념적으로 선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대신 우리가 정확하게 알고 싶어 하고,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추구하는 것을 (작품선택의 기준으로) 최대한 유지하고 싶다.”
송강호 감독의 <마약왕>은 지난 19일 개봉되었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