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면, 서가의 한 쪽을 점령하고 있는 일본작가를 만날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용의자 X의 헌신’, ‘탐정 갈리레오’, ‘나미야잡화점의 기적’, ‘백야행’, ‘유성의 인연’, ‘신참자’, ‘비밀’ 등 끝도 없이 이어진다. 어느 게 먼저 출판되었는지도 모른다. 여러 출판사에서 그의 신작이, 구작이 잇달아 번역출판되고 있다. 어느 하나에 빠지면 자연스레 그의 이름에 미혹되어, 혹은 그의 ‘범죄방식’에 반해 또 다른 작품을 손에 쥐어들게 될 것이다. 그런 그의 작품 목록 중에 특이한 것이 있다. 최근 소미미디어를 통해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이다. 그가 새로운 범죄행각에 도전하거나, 동네 파출소장의 부탁으로 일일수사관으로 근무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애정해 마지않는 겨울스포츠 ‘스노보드’에 어떻게 빠지게 되었고, 어떻게 마스터(?)하게 되었는지를 ‘미스터리작가답지’ 않게 유머러스하게 써내려간 에세이이다.
실제 이 책은 그가 일본의 <월간 제이노블>이란 잡지에 연재한 글이다. 스포츠잡지에 유명작가의 기명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축구(월드컵)에 관한 글과 ‘스노보드’ 에세이집에 어울릴 단편소설이 보너스처럼 수록되어있다.
<무한도전>이 번역 출판되기 전에 출판사에서는 <눈보라 체이스>와 <연애의 행방> 등을 내놓았다. 공통점은 배경이 스키장이란 것이다. 읽고 있으면 작가가 스키(와 스노보드)와 스키장에 대해 꽤나 많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차 탐방한 수준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스키장을 들락거리며 체험한 스키장의 이야기가 원고지에 고스란히 옮겨졌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무한도전>을 읽으면 그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밀실 미스테리 <호숫가 살인사건>을 내놓을 즈음 <스노보더>라는 잡지의 편집장으로부터 스노보드를 한번 타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는 ‘마흔이 코앞인 상황’에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한다. 그의 ‘무한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전까지 히가시노 게이고가 알고 있던 것은 오래전 <007 뷰 튜어 킬>에 등장했던 장면뿐이었다고.
이후, 히가시노 게이고는 편집장과 잡지 관계자와 함께 뻔질나게 스키장(스노보드장)을 찾기 시작한다. 초보자의 시선에서, 도전자의 마음으로. 거기에 더해 르포기자의 자세로 스노보드의 세상에 풍덩 빠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는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스노보더가 쓰는 것보다는, 베스트셀러작가가 쓰는 것이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이다. 그가 틈만 나면 어떻게 스키장으로 달려가는지, 어떻게 장비를 하나씩 득템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실력이 조금씩 늘면서, 동료를 동참시키고, 또 다른 제자들을 입문시키는지를 시원하게 펼친다. 또한 스키장의 눈이 녹을 때의 아쉬움과, 온난화 때문에 스키장 오픈이 늦춰질 때의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보고 들은 이야기가 그의 단편소설을 통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는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범죄소설 팬’에게는 흥미롭다.
이 책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호숫가 살인사건>(레이크사이드 머더케이스) 영화화 관련 글이다. 지금은 그의 소설이 수도 없이 TV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작가경력 초창기에는 원작가로서 흥분되었을 것. 게다가 아오야마 신지라는 유명 감독과 국민배우 야쿠쇼 고지가 출연한다니 우쭐했을 것이다. 작가는 촬영장에 초대되어가서 지켜본 현장의 이야기를 전한다. (원작자가 자신의 영화를 어떻게 대하는지 볼 수 있는 기회!) 결론을 말하자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영화로 만드는 것을 허용한 이상, 나는 감독과 각본가, 나아가 배우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들 모두가 좋은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가장 재미있게 재창조한 스토리가 원작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오더라도 전혀 아무 문제없다. 오히려 그건 내가 바라는 바다. 그 스토리를 살려나갈 최선의 연출을 감독은 하려고 할 것이고, 배우들은 거기에 부응하려고 할 것이다.”고 말했다.
겨울에 스키장에 갈 때, 히가시노 게이고의 많은 소설을 하나 끼고 가면 폼 날것이다. 이미 읽었다면 <무한도전>, 아니면 <눈보라 체이스>를 갖고 가시길. 혹시 스키장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왠지 반갑거나, 범죄의 스릴을 느낄지 모를 일이다.
참, 너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이 중복 출판되는 것에 대해 너무 궁금해서 소미미디어에 물어보았다. ‘방과후’를 새롭게 출간할 것이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베스트셀러작가이자 스테디셀러작가이다. (소미미디어/양윤옥옮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