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79개국 324편의 영화들이 영화팬에게 선을 보였다. 개막작은 한국영화 <뷰티풀 데이즈>였다. 이나영이 오랜만에 출연한 이 영화는 한 탈북여성이 중국과 한국을 거치면서 겪게 되는 역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윤재호 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다. 지난 22일 개봉한 ‘뷰티풀 데이즈’의 윤재호 감독을 만나 영화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부산 출신이라는데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영화의전당 무대에 올라 감회가 특별하겠다. “부산에서 21살 때까지 살았다. 그런데 그때는 영화를 하던 사람이 아니었고, 영화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부산영화제는 처음 가 본 것이다.”라며, “돌이켜 보면, 많이 갇혀 있던 사람이었다.”고 덧붙인다.
윤재호 감독은 원래 미술을 했다고.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고, 서양화를 전공했고, 2001년 무작정 프랑스로 떠났단다. “그냥 20대였던 것 같다, 다 싫고. 미래도 불안정하고 암담했다.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훌쩍 떠난 프랑스에서 청년 윤재호는 새로운 길을 찾는다. 프랑스 북동부 지방. 독일에 접경한 로렌의 낭시에서 말이다. “잔다르크 고향이다. 그 학교기숙사에서 처음 불어를 배웠고. 예술학교에 들어가서 음악도 배우고, 영화도 배우고, 조각, 디자인, 종합예술을 배웠다.” 영화에 빠진 것은 학교에서 만난 벨기에 친구 때문이었다. “영화매니아였는데, 나에게 고다르와 트뤼포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며 엄청 화를 내더라.” 그 친구는 ‘영화문외한’ 윤재호를 위해 300장의 디브이디 컬렉션을 빌려줬다고. 고전에서 최근까지 작품을 망라한. 윤재호는 그 영화를 보며 영화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특이한 영화입문기이다.
윤재호 감독은 ‘뷰티풀 데이즈’를 만들기 전에 꽤 많은 단편과 다큐를 찍으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달에는 프랑스 대통령이 거주하는 엘리제궁도 다녀왔다고.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에 맞춰, 열린 파티 행사에 ‘프랑스 엘리제궁’으로부터 초청된 것이다. “부산영화제 개막식 다음날. 프랑스에서 메일이 왔는데 처음엔 스팸인 줄 알았다.”란다. 인생에 한번 뿐인 기회라 생각하고 엘리제궁도 가보았단다. 영화 때문에, 프랑스에서 공부했다는 인연 때문에.
부산과 프랑스, 북한과 중국
그가 처음 찍은 영화는 ‘약속’이라는 단편이란다. 파리에서 불법 민박하는 조선족(정확히는 중국인) 아주머니의 이야기란다. “9년 동안 아들을 만나지 못한 엄마의 이야기이다. 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나중에 중국에 가서 그 아들을 만났다.”
이번에 개봉된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14년 동안 만나지 못한 아들을 한국에서 만나게 되는 탈북여성의 이야기이다. 그 영화의 원형인 셈이다. “중국에서 그 아들을 만나고, 주위 사람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조선족, 한국사람, 탈북한 사람들, 그리고 브로커들. 그런 만남이 인연이 되어 다큐 ‘마담B’를 찍었고, 시나리오를 보강해 ‘뷰티풀 데이즈’를 완성했다.”
윤재호 감독은 ‘같은 소재’의 이야기에 5년 이상을 천착한 셈이다. 그러니 이야기는 점점 정제되어갔다.
영화이야기로 넘어가서. ‘젠첸’의 아버지에 대해 질문했다. (스포일러일 수도 있다. 영화를 보며 캐릭터에 동화되면서 점점 이해하게 된다)
감독의 이야기. “젠첸(장동윤)이 하는 행동은 아버지의 행동성을 보여준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인 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처럼,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되는 것이다. 길러준 아버지와 태어나게 해 준 아버지에 대한 은유 같은.”
영화에서 이나영이 아들과 소주잔을 들고 마주앉아 있는 장면이다. 이나영이 “넌 누굴 닮았는지 성질하고는...”이란다.
그동안 탈북자들의 고단한 삶은 ‘태풍’, ‘크로싱’, ‘무산일기’ 등 몇몇 인상적인 영화와 TV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 알려졌다. 그들의 고행 길은 익히 짐작할 수 있는데 의외로 영화는 ‘로우 레벨’로 이야기한다. “조카가 중학생이다. 이 영화 보고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연은 어렵지만, 그 애 또래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란다.
젠첸이 만나게 되는 한국사람, 황사장이 대표하는 중국사람(그도 조선족)에 대한 인상은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편견이라는 것이 있다. 관객들도 편견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절대선도 없고 절대악도 없다. 서로 물고물리는 인물설정을 했다. 하나를 떼어 내면 고리가 흐트러진다.”
“다큐를 찍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보니 편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가 만든 편견일 수도 있고, 제 개인의 편견일 수도 있다.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면 사람이 보인다. 그 사람이란 것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우리 인간관계는 상대적일 수밖에.”란다. 그러면서 “절대 피해자도 아니고 가해자도 아닌, 얽힌 관계.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가족의 이야기이다.”라고 덧붙인다.
초저예산영화와 이나영
이 영화는 초저예산영화이다. 중국에서의 이야기는 단둥에서 찍은 것도, 연변에서 찍은 것도 아니다. 한국의 파주에서 찍은 것이다. 그런데, 이나영을 캐스팅했다니 솔직히 놀랍다. “인천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피칭행사에 ‘마담B’를 소개할 때 우연히 제작사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시기에 시나리오에 보내드렸고, 작년 펀딩에 성공했다. 1년 만에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소개한다.
이나영 배우에 대해서는 대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나영 배우는 정말 타고난 배우이다. 배우라는 직업은 타고나는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카메라를 오른쪽에서 볼 때와 왼쪽에서 볼 때가 다르다. 조명이 오른쪽에서 비출 때와 왼쪽에서 비출 때가 다르게 보이는 독특한 매력을 가졌다.“
촬영감독이 매일 윤재호 감독을 픽업해서 촬영장에 갔다고. 차안에서 이나영을 찍는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한다. “흔치 않은 매력, 그분만의 매력이 있었다.”란다.
이나영은 영화에서 10대, 20대, 30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이 볼 때마다 달라보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연구를 많이 하신 듯하다.”며 “20대가 조금 반항적이고, 불안한 감정을 가진. 복잡한 감정선을 느끼게 해줬고, 현재의 엄마는 조금 담담하게,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면 했다. 물론, 10대는 나약하지만 순수해보이게.”
황사장 역을 맡은 배우 이유준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인다. “어려운 역할이다. 악역이지만, 사람 같은 악역. 고민을 많이 했다. 집에서 함께 캐릭터 연구를 많이 했다.”란다.
영화에는 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는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한다.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다. “가족은 사이가 좋든 안 좋든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젠첸이 싫어하는 된장찌개를 먹게 되는 것도 본인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독의 된장찌개 이야기는 계속된다. “어릴 때는 엄마의 된장찌개가 맛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에 돌아와서 엄마가 해준 된장찌개 너무 맛있다. 레시피는 똑같을 것이고, 엄마의 요리솜씨는 변하지 않았을 텐데. 제가 변한 것이다.“라며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소소한 관용, 인정 같다. 싫든 좋든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의미가 그렇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어떻게 선정되었나. “콘텐츠판다가 배급한다. 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게 개막작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았다. 상상도 못했다. 영화제 개막작은 감독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가 아닌가. 그것도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윤재호 감독의 아버지가 이 영화에 깜짝 출연한다고 한다. 장동윤이 처음 서울 와서 이나영이 일하는 술집을 찾았을 때, 테이블에 앉아있는 중년 남성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의 영예를 안은 윤재호 감독은 영화제 기간에 열린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서 ‘바닷사람’으로 모네프상을 탔다. 어떤 이야기일까. “작은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필요 없다며 무시하려는 가치관을 지켜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액션영화이다.”
윤재호 감독의 미래
호러영화도 찍는다는 기사가 났던데. “그건 내년에 들어갈 예정이다. 캐스팅 진행 중이고. 3월 크랭크인을 목표로 한다.”
‘뷰티풀데이즈’는 원래 3부작 중 하나라고 하지 않았나. “2012년에 처음 그 영화를 기획할 때 세 가지 이야기를 준비했다. ‘뷰티풀데이즈’는 엄마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 작품에서는 한국에 정착한 여자의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펼치고 싶었다. 기회가 된다면 3부작을 완성하고 싶다. 가족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완성된 이야기이다. 물론 둘 다 작은 영화가 될 것이다.“
윤재호 감독은 작지만, 많은 영화를 재어둔 것 같다. “일을 하다 보니 쌓아놓은 것이 많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의 정원을 가꾸는 것 같다. 나무를 심어놓으면, 그 아이들이 언제 자랄지 모른다. 내년에 무럭무럭 잘 자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굉장히 부끄럽고, 미안한 질문이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은 어릴 때 화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다큐 ‘레터스’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BS에서 27일, 방송된다. 한번 보시길.”이란다.
기억하시라! ‘레터스’는 27일 밤 12시 45분이라는 야심한 시간에 EBS ‘다큐시네마’시간에 방송한다.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22일 개봉했지만 독립영화 특성상, 언제 종영될지 모른다. 챙겨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