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가 돌아왔다. <군함도>(17)와 <승리호>(21)에 이어 오랜만에 신작 <화란>으로. 엄청난 블록버스터도 한류스타 OTT도 아니다. 패기 넘치는 신인감독의 잿빛 느와르이다.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주인공은 17살 고등학생 연규(홍사빈)이다. 송중기가 연기하는 치건은 연규가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발버둥치는 것을 지켜보고, 손을 내밀고, 그리고 자신은 망가지면서도 그가 그 곳을 벗어나기 바라는 비장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송중기를 만나 치건을 연기한 소감과 가족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송중기가 이런 영화에서 이런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 뜻밖이다. ’화란‘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송중기: “이런 작품을 안 해 봤으니까 해보고 싶었다. 제목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 비슷한 느낌의 영화에 출연할 뻔 했지만 결과적으로 못했었다. 그게 한이 된 모양이다. 아쉬움이 남았다. <화란>은 처음 출연을 제안을 받은 작품은 아니다. 타이밍이란 게 있다. 감사하게도 출연 제안이 많이 들어오는데 비슷비슷하게 흥행공식에 짜인 게 많았다. <화란>은 신선했다. 눅눅하지만 새로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Q.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난 소감은? 처음 봤던 시나리오에서 달라진 게 있는지.
▶송중기: “홍(사빈) 배우는 초고를 못 본 모양이다. 내가 처음 본 대본은 지금보다 훨씬 묵직하고 파격적이었다. 홍사빈이 메인으로 캐스팅되면서 대본이 디벨로프 되었다. 처음 것과 비교하자면 조금 부드러워진 것이다. 지금 나온 게 마음에 든다. 칸느가 절대적 기준은 아닐지라도, 많은 영화인들이 가고 싶어 하는 그곳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해 줬다는 것이, 우리의 것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잘 했다는 근거가 되는 것 같다.”
Q. <화란>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자하는 욕심 같은 게 있었나.
▶송중기: “꼭 메시지가 있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화란>은 신인감독이라서 더 주목 받은 면이 있다. 칸에서 말이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보다는 개성이 있어 받아준 것 같다. 기존의 영화문법이랑은 조금 다르다고 본 것이다. 나는 <무뢰한>을 심각하게 좋아한다. 그 <무뢰한> 제작진이 했기에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무뢰한>을 열댓 번은 본 것 같다. 김남길이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그 미묘함이 마음에 들었다. 치건이가 연규를 도와주는 것인지 인생을 망치는 것인지, 아닌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Q. <화란>의 어떤 점이 마음에 끌렸나.
▶송중기: “제작사가 갱스터 영화를 많이 한다. 그런 색깔이 있다. 저는 느와르는 건달영화라는 좁은 해석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런 느와르에 대해선 정말 관심이 1도 없었다. 나는 치건과 연규의 관계가 마음이 끌렸다. 그리고 가정폭력을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신선하다고 느꼈다. 최근엔 그런 신선한 이야기가 끌린다. <로기완>도 그런 신선한 소재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 로기완은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작품이다.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 ’기완‘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 ’마리‘의 만남과 헤어짐, 사랑을 그린 영화이다. 2024년 공개될 예정이다. **
Q. 치건이라는 인물에 쉽게 스며들 수 있었는지.
▶송중기: “제일 많이 신경을 쓴 것은 홍사빈 배우였다. 이 영화의 메인은 무조건 연규여야 한다. 영화는 연규의 감정에 따라 진행된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나 때문에 그 친구의 플롯을 망칠까봐 겁나기도 했다. 사빈이가 어떻게 연기의 결을 잡아오는지에 맞춰, 내가 리액션을 하려고 생각했다. 저는 따라가려고만 했는데 저도 야망이 있었는지 연기를 하게 되더라. 이 영화는 연규의 감정에 맞춰 연기를 해야 한다. 그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욕을 먹든 칭찬을 듣던 그렇게 하고 싶었다.”
Q. 홍사빈에게 충분한 연기의 공간을 주었는가.
▶송중기: ’당연히 저한테 기댈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제가 아직 막내로 있는 현장이 많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이)성민이 형한테 푹 안겨 연기를 했다. 이번엔 어쨌든 내가 선배니까. 그 친구가 제게 기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르죠. 사빈이의 마음은. 그래도 전 그러고 싶었다.“
Q. 코로나 시국에 촬영하고, 칸에도 초청받고, 그리고 또 바로 개봉까지 이뤄진다. 속도가 있다.
▶송중기: ”아마 칸에 초청받으면서 개봉에 탄력을 받은 것 같다. <무뢰한>도 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았었다. 현지 반응이 좋게 나와서 배급사에서 개봉을 서두른 것 같다. 훨씬 전에 찍은 <보고타>가 아직 개봉을 못하고 있다. 예측이 안 된다. 칭찬을 듣든 욕을 듣든 어쨌든 빨리 공개되어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런 마음에서 일단은 공손하게 <화란>을 소개하게 되었다.“
Q. <화란>을 연기하면서 연기의 색깔이 달라졌는지.
▶송중기: ”힘을 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좀 더 깊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촬영을 끝낸 <로기완>에서는 힘을 뺐다. 그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변화를 주려고 한다. 개봉이 되고, 대중의 피드백을 받으면 제가 시도한 게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Q. 송중기는 누가 뭐래도 귀공자 분위기의 배우이다. 이번에 치건을 연기하면서 외모의 변화가 보인다.
▶송중기: ”사실 내 얼굴에는 어릴 때 다친 상처가 남아있다. 이번 작품 하면서 분장팀에서 실제 상처에 음영을 줘서 효과를 살리자고 했다. 저는 익숙하지가 않았다. 치건의 귀가 찢어진 부분도 있다. 그렇게 분장하고 나니 마음가짐이 바뀌더라. 치건과 연규는 가정 학대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연규는 넘어지면서 얼굴에 상처가 있다. 저는 오른쪽 귀, 연규는 왼쪽 얼굴. 그런 모습도 감독이 계산한 것 같다. 이 영화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메타포는 많고 대사는 많이 없다. 관객도 그런 것을 같이 느꼈으며 좋겠다.“
Q. <화란>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어떤 것인지.
▶송중기: ”플러스엠의 다른 작품을 제안 받았는데 그것을 거절하는 자리였다. ‘이런 이유로 죄송합니다.’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이런 저널 이야기 나누다 ‘이런 작품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그때 ’한 번 볼래?’하며 우연히 보게 된 것 <화란>이다. 처음 봤을 때 양익준의 <똥파리>를 보고난 느낌이었다. 걱정이 많았다. 수익성을 따질 텐데. 내가 나가면 또 상업영화의 공식이 따를 텐데. 그래서 ‘개런티 안 받고 이 작품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진행된 것이다.“
송중기의 노개런티는 이미 화제가 되었다. 이날도 "그 부분에 대해선 인터뷰 때 최대한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인터뷰 하면서 더 알려지게 되었다. 다른 작품도 출연료 관련 농담을 하기에 여기서 확실하게 말하겠다. 앞으론 출연료 받을 거다. 그것도 많이 받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웃음)
Q. 홍사빈 배우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송중기: ”처음 만났을 때 앳돼 보였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묵직한 성격인 것 같았다. 그 친구가 메인이니까 난 맞춰 따라가야지 생각했다. 주인공의 부담감이 있었겠지만 알아서 잘 하더라. 워낙 바르게 자라온 친구라서. 정말 잘 하더라.“
Q. 김형서 배우는 어떤가.
▶송중기: ”김형서 배우의 실제 모습이 영화 속 캐릭터에 입혀져 도움이 된 것 같다. 솔직한 성격이 ’하얀‘ 캐릭터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처음 영화 하는데 어색하면 어떡하지 생각할 것인데 현장에서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 엄청난 아티스트 느낌이 들었다.“
Q. 점점 유명해지면서 사적인 모습을 노출할 때 부담을 느낄 것 같다.
▶송중기: ”<군함도>할 때 그런 이야기한 것 같다. 지금도 비슷하다. 그렇게 하면 저만 외로워지는 것 같다. 유명한 배우라서 가리고 다니고 그러면 더 힘들어진다. 세상에 나가야지 그런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부담 같은 것을 안 가지려고 한다.“
Q. 아내는 이 작품을 봤는지.
▶송중기: ”아직 못 봤다. 자막이 없으면 못 보니까. 깐느에서 상영된 것에서 음악과 편집이 바뀐 부분이 있다. 칸 자막 버전을 보여줄 생각이다. 와이프도 개인적으로 보고 싶어하는 작품이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이 작품을 더 예쁘게 봐주는 부분이 있다.이 영화 소재를 듣고 좋아했다.“
Q. 평소 영화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지.
▶송중기: ”이쪽 업계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칸느 이야기도. 아내는 이미 세계 3대 영화제를 다 갔다 온 사람이다. 너무 들뜨지 말고 칸느에 가라고 그러더라. 우리 부부는 영어로 말한다. 지금 아내는 한국어 공부 중이다.“
Q. 평소의 일상은 어떤가.
▶송중기: ”뭐, 아기 본다. 몸을 완전히 뒤집기는 것은 아니지만 목을 가누는 정도이다. 애기가 1주일마다 크는 것 같다.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에 행복하게 살고 있다.“ (송중기는 핸드폰을 꺼내 아기 사진을 취재진에게 보여주며, ’한없이 행복한 아빠 미소를 짓는다)
Q. 연기 말고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있는지. 연출 같은 것.
▶송중기: ”연출은 깜냥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관심도 없다. 그런데 제작은 관심이 많다. 기획하는 게 재밌다. 현재 회사에서 드라마 기획하는 게 있는데 물어보기도 한다. 배우활동에도 이어져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장르의 연기를 하고 싶다.“
[사진=하이지음스튜디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