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이 돌아왔다. 송강호와 합을 맞춘 스릴러 <하울링>이후 6년 만에 영화 <뷰티퓰 데이즈>로. 그런데 뜻밖에 이 영화는 초저예산 독립영화이다. 이나영은 시나리오에 반해 ‘노 개런티’로 출연에 응했단다. 영화는 지난 달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고, 내일(21일) 극장에서 일반 관객을 맞는다. 오랜만에 대중 앞으로 돌아온 이나영을 만나, ‘저예산독립영화’ 출연소감과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나영은 이번 영화에서 사연 많은 탈북여인을 연기한다. 10대에 중국으로 건너와서 험악한 꼴을 당하고, 중국사람과 결혼하였지만 곧 남편과 아들을 두고 한국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14년이 지나 그 아들이 자기를 찾아온 것이다. 녹록치 않은 삶을 산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나영은 지금의 삶도, 이전의 삶도, 그리고 앞으로의 삶도 힘들 것 같은 여인을 연기한다.
‘뷰티풀 데이즈’ 개봉을 앞두고 영화사는 이틀에 걸쳐 이나영과의 라운드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첫날 질문에서 ‘원빈’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왔던 모양이다. “하~ 왜 작품을 안 해서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지...”라며 이나영은 해맑게 웃으며 기자를 맞는다.
원빈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이 영화의 어떤 점이 마음을 끌던가. “작품을 고를 때 어떤 캐릭터에 더 끌리는지는 모른다. 그저 앞을 보고 가고 있을 뿐이다. 한 걸음씩. 그 점들이 모여 선이 생길 것이다”며, “이 작품은 워낙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었다. 낯설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다. 사실, 시나리오에는 지문이 많지 않았다. 시나리오 자체가 얇았다. 그러나 그 속에 느낌이 확실히 전해지더라.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감독님은 탈북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감독님의 전작 다큐멘터리도 보았다. 그걸 보고 확신이 들었다.“고 말한다.
‘뷰티풀 데이즈’의 윤재호 감독은 탈북여성을 소재로 한 다큐 <마담B>를 찍었었다. “감독님이 이 시나리오 쓰고 5년 정도 되었다더라. 정확한 주제의식을 갖고, 차근차근 준비하신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마지막 장면이 먹먹해질 것이다. ‘가족’이 된 ‘식구’들이 한 자리에 둘러앉아,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묵묵히 밥을 먹는다. 된장찌개를 중간에 두고. “엔딩씬을 잘 찍고 싶었다.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대중들은 오랜만에 복귀하는 이나영씨의 작품으로 훨씬 근사한 -혹은, 훨씬 상업적인- 영화를 기대했을지 모른다. “이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만류하더라. ‘너 왜 그러니’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란다. “좋은 영화를 보면, 저기 저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나리오를 만나는 게 어려웠다.”며 그동안 작품이 뜸했던 이유를 밝힌다.
이번 작품에서 ‘엄마’의 정서는 어땠나. “물론, 영화에서는 ‘엄마’의 캐릭터가 중요하다. 그녀의 삶이 저런 식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엄마’에 대한 연관성보다, 그 여자에 대해 이해가 갔다. 14년 만에 아들을 대할 때의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더라.”라고 말문을 연다.
“10대 때부터 그녀가 겪은 삶을 보라. 굉장히 험했다. 오직 생존하기 위해서 발버둥 친다. 20대에 자신의 아이를 버리고 가는 상황도. 황사장이란 인물과의 이야기도 그렇다. 그 캐릭터는 굉장히 동물적이다. 클럽씬이나 마약하는 장면. 그리고, 현재 30대의 삶은 어떤가. 이런저런 삶을 다 겪은 사람은 쉽게, 희망을, 그리고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야하지 않을까.“ 이나영은 말을 너무 잘한다. 그리고, 이야기하며 기자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다. (그래서, 눈 둘 곳을 못 찾아 노트북 자판만 열심히 쳐다보기도 한다)
이나영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마지막에, 그래도 엄마라고 아들이 찾아왔고, 함께 된장찌개를 먹는다. 이제 희망을 가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인다.
이나영의 디테일한 연기
이나영이 극중 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극중에서 황사장이 가고 나서 숨을 조금씩 내뱉는 장면이었다. “그 극한의 공포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그 불안감을. 유튜브에서 동물이 울부짖기 전의 소리를 찾아 연구했다. 그 장면에서 감정이 많이 나왔다.”란다.
아들하고 있을 때 클로즈 업 장면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거기까지 끌어올렸다고. 편집한 것을 보니 그 장면은 안 나왔더란다. “감독님은 더 담백하게 담아낸 것이다. 그것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했는데 부산(영화제)에서 보니, 그 부분을 확 걷어내니 영화 끝나고 앞을 더 생각하게 되더라. 여백의 감정이 살아난 셈이다.”라고 말한다.
14년 만에 엄마와 아들의 재회. 가족이야기같지만 사실 가족에서는 ‘가족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단지 밥 먹는 장면에서 그렇게 느낄 뿐이다. “감독님이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여 된장찌개 대한 환상이 있는 모양이다. 한국인의 정서란 게 밥상을 둘러싸고 이루어지잖은가. 찌개를 중간에 두고. 아무 말 없이 떠먹는.”그러면서, “아들의 입장에선 짜증날지 모른다. 흰밥에 된장을 팍 올려주니. 그런데, 제가 그렇게 먹는 스타일이다.”라고 덧붙인다.
오광록 배우와 부부로 만났다. 오래 기억될 포옹 장면이 나온다. “원래 대본에서 바뀐 것이다. 어떻게 교감할 수 있을까 선배랑 많이 이야기했다. 나는 아들도, 어린 젠첸도, 남편도 안아준다. 아마 그때는 이게 마지막이란 것을 알고 껴안는 장면이다. 인간 대 인간,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 그 삶이 처절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장동윤 연기는 어땠나 “15회차 촬영으로 끝났다. 3주만에 다 찍었다. 장동윤씨는 드라마 찍고 정신없이 언어(중국어대사)를 배웠을 것이다. 동선 준비하고, 리딩할 때 보니 중국어도 잘 하고, 듬직하더라.” 근데 촬영장에서는 의외로 교감이 없었다고 말한다. “14년 만에 만나는 아들이다. 현장에선 이야기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둘의 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엄마는 엄마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감정을 지긋이 눌러야하는 입장이라면 장동윤은 화를 내고 뻗어 나가야하는 캐릭터이다. 그 감정을 깰 것 같아 현장에서 말을 못 하겠더라.”
시나리오를 열심히 읽고, 캐릭터를 열심히 분석한 이나영은 이번 영화에서 어떤 아쉬움을 갖고 있을까. “영화 속 분위기에 완전히 파묻히고 싶었다.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제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궁금했다. 내가 저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떤 근육을 썼는지. 저도 저를 보는 재미가 있다. 아쉽기 하더라.”란다.
“저만의 디테일이다. 저 장면에서 손에 힘을 더 풀었어야하는데, 시선처리는 저게 아닌데, 대사 톤을 올려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쉽다기보다는 맞나 안 맞나. 그런 것. 사실, 현장에서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나영은 디테일을 이야기하다가 담배 피는 장면을 이야기한다. “담배 필 때의 손의 힘과 불을 끌 때의 힘이 디테일하게 다르다. 감독님께 계속 다시 찍으면 안 되나요 졸랐다. 감독님이 편집해서 잘 나올 거라고 이야기했다.” 감독님이 왜 다시 안 찍었을까요 묻자, “예산이 없으니까.”란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이나영은 어떻게 살까. “딱히 답이 없는 것 같다. 한때는 거창하게 살 것이 있었는데 요즘은 행복은 무엇이고,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한다. 뭘 하면 즐거울까. 무언가 가질 때,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욕심. 그 끝이 없잖은가.”란다.
철학책을 즐겨 읽는다는 이나영은 허망함이 밀려오는 순간 뭘 하느냐는 질문에, “맛있는 거 먹죠. ‘그래, 이러려고 살지~’라며.” 친구들과 맛있는 거 먹은 기억이 소중하다고 덧붙인다.
그동안 시나리오도 많았지만 “상업적이라도 좋은데, 여성캐릭터가 조금 애매한 것도 있고. 그래서 미뤄진 것 같다.”란다. 이나영은 데뷔 이래 과작(寡作,적은 작품)의 배우이다. “작품 선택을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너무 신중해서 남들이 뭐라 그러긴 한다.”며, “남편(원빈)도 그렇다. 성격이 비슷한 것 같다. 무언가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좋아서 하는. 하고 싶은 것 하는 타입이다.”
이나영의 일상 모습은? “집에서는 평범하다. 추리닝 즐겨입고, 남자 옷도 잘 어울린다.”며 “육아도 하고, 운동도 하고. 운동을 해야 육아도 할 수 있으니까. 사무실에도 자주 가고. 영화 볼 때는 극장도 가고. 진짜 평범해요. 그게 정말 다에요.”
그런 평범한 배우, 이나영이 오랜만에 TV드라마에도 출연한다.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란 작품이다. “로맨스에요. 그것도 엄마. 대본이 따뜻했다. 밝은데 따뜻하다. 몇 회차 찍고 있는데 아직 긴장을 많이 하고 있다. 1,2부가 과거를 왔다 갔다 해서..”란다.
인터뷰 끝에, 기자들이 어쩜 말을 이렇게 잘 하시냐. 토크쇼나 예능에 나와도 잘 할 것 같다고 하자, “그럴 수도 있죠. 저는 작품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요. 예능도 하고 싶고.”
원빈은 아직 이 영화를 못 봤단다. “예고편만 봤어요. 좋게 봤어요. 색감을 좋아해서.”라고 말한 뒤, “돈 주고 봐야죠.”란다.
이전에 원빈을 인터뷰한 기자가 원빈의 과묵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집에서도 그런지 물어봤다. 이나영의 반응, “어? 할 이야기 다 하지 않나요. 아니에요. 이야기 잘 해요.”란다.
내년 계획은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 잘 완성시켜야 하는 것. 2월까지 찍는다. 겨울에. 이걸 잘 완성시켜야지 그 생각뿐이다.”
이날 기자가 ‘이나영씨의 소확행’이 뭐냐고 묻자. “뭐라고요?” 라며 ‘소확행’을 처음 들어보았단다. “소소한 행복이라고요? 아. 제가 줄임말을 좋아하지 않아서”라며 “친구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힐링이 된다. 그리고 먹는 것. 하하하.” 예쁘게 웃는다. 원빈배우와 아기는 행복하겠다. 두 사람과 아이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면 시청자들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 이나영 배우의 <뷰티풀 데이즈>는 21일 개봉한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