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열린 제7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된 영화 <화란>이 오늘(11일) 개봉한다. 영화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홍사빈)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느와르이다. 단편과 OTT에서 혹시 연기영역을 확장시켜온 홍사빈을 만나 ‘피와 땀과 눈물’의 느와르 주연 데뷔의 소감을 들어보았다. 홍사빈은 칸 국제영화제에 이어 지난 주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참석하여 팬들을 만났다.
Q. <화란>은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는지. 오디션 과정을 이야기해 달라.
▶홍사빈: “다른 작품 때처럼 오디션 정보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을 꼭 하고 싶었다. 직접 연락을 해서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은 여러 번 봤다. <화란>은 작년 11월에 촬영이 끝났다. 이거 하기 전에는 ‘방과 후 전쟁활동’을 찍었었다. 다들 재밌게 놀았으면 좋겠다고 했었고, 실제 그렇게 재밌게 논 기억이 있다.”
Q. 한양대 연영과 출신이다. 원래 연기지망생이었는지?
▶홍사빈: “연기자를 원래 하고 싶었는데 소심한 성격이라 낯가림이 많다. 앞에 나서는 것이 부끄럽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어서 그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학교는 성적을 많이 보니까. 연기전공으로 들어갔고, 연출도 배우고, 이런저런 스태프도 했다. 연기에 대한 꿈은 막연하게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배우를 하고 싶다면 꼭 연영과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면 일단 다른 것을 공부해보는 걸 권하셨다. 원서를 써본 것인데 다행히 합격한 것이다.”
Q.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홍사빈: “고등학생 때 <파수꾼>을 봤는데 박정민 선배가 유독 빛나 보였다. 그래서 이른바 덕질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발자취를 따라 가다보니 그런 배우가 되고 싶더라. 독립영화 출연하기도 했다. 정말 마법 같이 <화란>까지 하게 되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인생을 멋지게 살아도 된다는 믿음을 준 것 같다.”
Q. <화란> 전에 <방과후 전쟁활동>말고 영화와 드라마에 조금씩 출연했다.
▶홍사빈: “독립영화, 단편은 꽤 많이 출연했다. 그나마 알려진 것이 <방과후 전쟁활동>이다.” (다른 작품 중에 알만한 작품이 있는지?) ”처음 미장센영화제에 갔던 작품은 <휴가>(김윤선 감독,2018)이다. 심사위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 <폭염>(구지윤 감독,2019)도 영화제에 많이 소개되었다. 두 작품을 애정한다.“
Q. <화란> 오디션은 어떠했는지.
▶홍사빈: ”마지막 오디션은 4시간에 걸쳐 보았다. 나중에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았다. 감독님은 ‘연기가 좋아서, 더 보려고..’그러시더라. 너무 감사했다. 오디션 볼 때 솔직히 말하자면 화분의 흙이라도 파먹을 만큼 간절했다. 작품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 흐름 속에서 내가 가진 것을 다 보여주려고 했다. 연기만 보여준 게 아니라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감독님이 많이 물어봐주셨고, 저도 믿고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본에서 합일점을 찾은 것 같다.“
Q. 오디션을 볼 때 누구랑 연기할 것인지 상상은 해보았는지. 등장인물을 보면서 예상했는지.
▶홍사빈: ”어떤 캐릭터가 나올지 유추할 수 있는 대본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연규의 집’, ‘하얀과의 대화’ 등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대본이 쪼개져 나왔다. 치건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그때는 일단 내가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주변을 못 본 것 같다. 촬영하면서 배우들을 만나게 되고, 주변을 볼 여유가 생긴 것 같다.“
Q. 첫 주연 작품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홍사빈: ”이 역할을 하게 되어 너무너무 감사했다. 주연에 대한 부담보다는 연규를 연기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여러 사람을 만나, 감정을 표현해야하는 인물인데 그게 얼마만큼 관객에게 전달될까. 항상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그런데 답은 만나서 표출하면 되는 것이다. 괜한 의문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현장에서 선배님, 스태프들이 모두 동생처럼 잘 대해주었다. 부담감은 아마 영화 개봉을 앞둔 시점에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Q. 촬영은 어떤 식으로 찍었는지. 시간의 흐름대로 찍었는지. 영화에서는 운동장 장면이 제일 먼저 나온다.
▶홍사빈: ”여건상 상황에 따라 찍었다. 그러면서도 시간에 따라 촬영하게 배려해 주었다. 첫 촬영은 주로 몽타주 위주로, 대사 없는 장면들을 찍었다. 아이에게 오토바이 태워주고. 로봇 열쇠고리를 내미는 장면 같은 것. 첫 촬영 때는 배우들과 접촉이 많이 없어서 부담이 없었다. 첫날 송중기 선배가 와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재밌게 해~’, ‘편하게 해~’ 그런 말을 해주었다. 운동장 신은 중반쯤에 찍은 것 같다.“
Q. 송중기 배우와 처음 호흡을 맞춘 장면은 무엇이었나.
▶홍사빈: ”중국집에서 처음 마주치는 장면이었다. 송중기 선배의 첫 촬영이었다. 지금도 그때 장면이 감정이 기억에 남아있다.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는 오묘함이 맴돌았다. 중국집에서 치건의 뒷모습을 처음 보면서 정말로 ‘어, 저 사람 뭔가 신경 쓰이네..’ 느낌이었다. 그런 지점이 영화에서 잘 표현된 것 같다. 두 사람이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의식하고 있고, 상대의 마음을 잘 담으려는 마음이 담겼기를 바란다.“
Q. 연규를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지점은 무엇이었다. 액션인가 아니면 감정의 변화인가.
▶홍사빈: ”연규의 감정 톤을 만드는 것 같다. 연규는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울고 싶으면 우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표현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인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었다. 곧이곧대로 표현하면 관객의 선택이 닫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것을 지우려고 했다. 연규의 암울한 현실을 생각했을 때 관객들은 ‘너무 똑같은 표정 아냐?’, ‘가만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연규는 가만히 있어도 되는 아이라는 거다. 그 사회 안에서 굴러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만큼 하면 된다고. <화란>에서의 연기는 새로운 방식이었던 것 같다.“
Q.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다. 폭력적인 아버지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방에 들어서기만 해도 연규는 움찔한다. 아버지의 사랑, 가족의 보살핌을 못 받았기에 치건과의 감정선이 더 살아나는 것 같다. 어쩌면 유사부모 같다는 느낌이 든다.
▶홍사빈: ”의붓아버지이자 하얀의 친아버지이다. 술에 취하면 항상 폭력을 휘두른다. 연규의 모습을 그렇게 보여야지 하고 노력을 했다기보다는 그 때 마음이 이러지 않을까하고 연기했다. 아버지를 연기한 유성주 배우가 스산하고 차가운 연기를 해주셨기에 자연스럽게 연규가 될 수 있었다. 치건과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여태까지 연규에게 그렇게 가족처럼 손길을 내밀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규는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데 말이다. 치건은 그런 연규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끈 사람이다.“
Q. 영화를 오롯이 보기에는 심적 고통이 상당하다. 찍을 때 그런 느낌은 없었는지.
▶홍사빈: ”찍을 동안은 힘들었지만, 끝나고는 귀신같이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건강하게 찍었다는 말일 것이다. 별 탈 없이 끝냈다. 연규가 또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송중기 배우가 치건이 아닌, 김형서 배우가 하얀이 아닌 또 어떤 역할을 맡아 어떤 좋은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감을 갖게 된다. 앞으로 언제 또 만나게 될지, 신나는 마음이다. 앞으로도 <화란>처럼 건강하게 작업할 수 있는 창작자가 되고 싶고, 그 방향으로 노력하고 싶다.“
Q. 현장에서 캐릭터에 대한 온/오프는 어떤 식으로 잡는지.
▶홍사빈: ”촬영장에서는 웬만하면 가만히 앉아있지 않는다. 돌아다닌다. 그게 ‘온’이다. 연기생각밖에 없다. 밥 먹을 때도 빨리 현장에 가야지 그 생각만 했다. ‘오프’는 당연히 숙소에서 잘 때였다. 온오프라 할 것도 없이, 학습된 것만 행하는 것 같았다. 난 역량이 모자라서 매소드 식으로 연기를 못한다. 많은 인물을 옆에 두고 돌보려고 하는데 생각만큼 잘 안된다. 그래서 최대한 현장을 믿는 편이다. 집에서 연습하고, 분석한 게 현장에서 잘 안 나오더라. 숙소는 춘천이었다. 춘천에서 80프로 이상을 찍었다.“
Q. 작품을 보면 하드고어한 장면이 많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그런 것이 영상화 되던가?
▶홍사빈: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피, 칼, 총 이런 것이다. 오디션 볼 때도 그 점을 명확히 말했었다. 대본에 아찔한 장면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야지’ 한다. 이런 게 현장에서 도움이 되더라. 안 좋아함을 참을 때의 얼굴과 견딜 때의 얼굴이 연기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잔인한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Q. 김창훈 감독은 어떤 스타일의 감독인지.
▶홍사빈: ”제가 만난 분들 중 수용력이 가장 좋으신 분이다. 제가 뭐라고 하든 다 좋다면서 끌어내주신 분이다. 그런 감독님을 만났기에 부족하나마 이렇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보태어 송중기, 김형서 배우 만나서 이렇게 되지 않았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Q. 감독이 만족해한 장면은 어떤 것인지.
▶홍사빈: ”연규가 치건에게 언제 정확히 링크가 된 것일까. 언제 그 사람을 따르기로 마음먹었을까. 매운탕 먹으며 길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치건이 내 이야기 다 듣고는 ‘놀고 가라. 자고 가라’고 말을 툭 던진다. 그때 제가 작은 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한다. 그건 연규에게도, 치건에게도 진정성 100퍼센트의 대사라고 생각한다. 꼭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그 장면 찍을 때 중기선배는 아웃되어서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칸에서 보고는 ‘저 장면 잘했다’고 하셨다. 그 대사 하나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못하고 살았던 연규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제 생각에 감독님도 공감하셨다.“
(그 장면을 말하니, 영화 초반에 ‘짜장면 한 그릇’ 배달을 두고, ‘안 먹으면 안 돼요?’라는 장면도 있다. 담뱃재 관련해서.) ”그 대사도 그랬다. 그리고 편집에서 잘렸는데 가방에서 콜라를 꺼내 아이에게 건네주는 장면도 있었다. 연규의 미처 보지 못한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 ‘안 먹으면 안 돼요?’라는 대사는 ‘자꾸 이렇게 짜장면 한 그릇만 시키지 마세요’라는 느낌과 먹지 말라고 만류하는 느낌이 둘 다 들어있었으면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연규를 오해하고 싫어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감독님도 좋다면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다.“
Q. 송중기가 연기한 ‘치건’이라는 이름이 독특한 것 같다.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홍사빈: ”‘치건’이라는 이름은 독특한데 왠지 그 인물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저는 작품을 할 때 ‘왜’를 잘 따지지 않는 편이다. 당연히 그럴 수 있으니까 그렇겠지 생각한다. 그래야 연기 준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내가 맡은 ‘연규’도 이름이 너무 이쁘다. 그런데 성이 무엇일까. 우리끼리는 농담으로 ‘송치건’, ‘홍연규’라고 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작품이고, 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잘 만들어야하고, 사랑해야하는데 ‘왜 그렇지?’라고 묻는다면 어쩌면 배덕감이 느껴지는 질문이 될 것이다. 하다보면 왜 그런지 알게 될 것인데 미리 이런저런 생각해서 지쳐버릴 수도 있다.“
Q. 영화를 보면서 왕가위 감독의 [열혈남아]가 떠올랐다. 홍사빈 배우는 홍콩느와르를 보는 세대는 아닌 것 같은데.
▶홍사빈: ”아니다. 옛날영화 좋아한다. ‘천장지구’도 좋아하고. <화란>에서 매운탕 먹는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가 라이트가 초록색과 엠버톤이 섞여있는 질감이 홍콩 느와르 분위기와 흡사하다고 느꼈다. 홍콩 느와르 좋아하고 즐겨본다.“
Q. 총, 칼, 피를 싫어하면 앞으로 액션 영화 찍기 어렵지 않겠나.
▶홍사빈: ”극복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 공개 안 된 작품에서도 총, 칼, 피가 많이 나와 당황스럽다. 분명히 극중에 필요한 이유가 있을 테니 ‘왜’라고 묻기보다는 꾹 참고 연기한다. 찍고 나서는 집에 가서 씻고 절에 가서 기도한다. 제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Q. 중국집 사장 역으로 정만식 배우가 등장한다. 평소 무서운 이미지의 배우인데 같이 연기해본 소감은?
▶홍사빈: “미디어에서 본 만식 선배의 이미지는 강인하고 포스가 있는 분이시다. 실제 만나면 귀여움이 100퍼센트다. 제가 많이 다가갔다. 숙소에 있으면 ‘밥 한 끼 같이 할까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질색하며 ‘싫어, 애가 왜 이래?’하신다. 그 귀여움이 이번 <화란>에서 조금 비친 것 같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이, 솔직담백한 진짜 모습이 비춰진 것 같다. 싫다고 하면서도 ‘뭐 먹을 건데?’라고 하신다. 사적으로 연락도 많이 한다. 사나이픽쳐스 작품에 나온 분들이 츤데레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
Q. (이복)여동생 하얀을 연기한 김형서와의 연기는 어땠나.
▶홍사빈: “비비는 또래라서 통하는 것이 많았다. 아티스트로서의 행보와 선택, 다양성과 재미를 좋아하고 응원했던 팬이었다. 이번 작품하면서 비비의 신곡을 하루 정도 먼저 들을 수 있는 찬스도 있었다. 아, 물론 나만 들은 게 아니고 감독님도 들었다. 형서씨 작업을 존중하고, 좋아하고, 앞으로도 창작자로 만나고 싶다. 옆에만 있어도 활력과 자극을 주는 배우이다.”
홍사빈 배우는 2018년 <휴가>를 시작으로 많은 단편영화에 출연했다. <유열이 음악앨범>에도 출연했다. 올해 들어서는 <방과 후 전쟁활동>(티빙) ,<박하경 여행기>(웨이브),<운수 오진 날>(디즈니플러스)에 출연했다. <박하경 여행기>에서는 목소리연기(특별출연)이다. 홍사빈 배우는 국립극단에서 만든 연극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에도 출연했다. 내년에는 이제훈, 구교환 주연의 영화 <탈주>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이 영화도 총,칼,피가 나온단다.
홍사빈과 함께 송중기, 김형서가 출연하는 김창훈 감독의 <화란>은 오늘(11일) 개봉한다.
[사진=샘컴퍼니/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