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느와르 황금시절에 꽤 인기를 끈 <영웅본색>이 있다. 악당인 형 적룡과 경찰인 동생 장국영, 그리고 주윤발이 나와 강호와 형제의 의리를 폼 나게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 주윤발을 죽는다. 그런데 흥행에 대성공하여 속편이 만들어졌는데 주윤발이 다시 등장한다.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는 설정으로. 그럼 작가가 죽을 경우는 어떡하나. 영화라면 판권 가진 사람이 다른 시나리오작가 고용하면 되지만, 하나의 세계관을 이미 구축한 소설은 어찌해야하나. 마거릿 미첼의 클래식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저자 사망 후 반백년이 지난 뒤 다른 작가에 의해 속편(‘스칼렛’과 ‘레트 버틀러의 사람’)이 세상에 나왔다. 물론, 그 무리수에 실망한 오리지널 팬들이 더 많았고. 여기, 또 하나의 사례가 생겼다. 이번엔 성공할까 실패할까. 스웨덴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은 ‘밀레니엄 시리즈’를 집필한다. 당초 10부작을 생각하고 있었다지만 세 권만 완성하고, 그것도 출판되기 6개월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2004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서 영화(스웨덴판과 미국판)와 그래픽노블이 나왔고, 저작권을 가진 유족이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이른바 ‘스티그 라르손의 시리즈를 계승할 공식 작가’를 지정한 것이다. 스티그 라르손처럼 사건전문기자로 유명했던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이다. 그는 2017년, ‘밀레니엄 시리즈’의 세계관을 이어받은 4편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발표했다. 세간의 우려를 날려버리고 꽤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에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에 의해 시리즈 5편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문학동네, 임호경 옮김)이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제목은 조금 키치하고 올드한 면이 있다.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벌집을 발로 찬 소녀/ 거미줄에 걸린 소녀)
그럼, ‘밀레니엄 시리즈’의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주인공은 둘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대단한 탐사보도 저널리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이다. 리스베트가 엄청난 범죄와 그 배후를 해킹하거나 분쇄하면서, 그 장렬한 스토리를 미카엘에게 알려주면 그는 자신의 미디어(시사잡지 ‘밀레니엄’)를 톻애 정의사회를 구현한다는 크라임-탐정 스릴러이다. 4편이 나올 동안 둘은 최고의 콤비플레이를 펼치며 정교한 음모를 분쇄하고, 복잡한 미스터리를 날렵하게 해결한다. 5편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는 교도소에 갇힌 리스베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부터 시작하여 이야기는 매끄럽게 이어진다. 리스베트의 숨겨진 개인사를 둘러싼 음모와 미스터리는 한층 복잡하다. 그와 함께 이슬람 사회의 여성억압, 미디어 환경의 실태, 스웨덴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 등도 심도 있게 다뤄진다. ‘밀레니엄의 세계관과 스티그 라르손의 창작정신이 충실하게 반영된 셈.
스티그 라르손을 이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는 기자이자 작가이다. 영국의 천재수학자 앨런 튜팅의 이야기를 담은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과 축구선수 즐라탄의 자서전 ‘나는 즐라탄이다’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의 명성에 걸맞게 이번 5편에서도 흥미로운 사건이 펼쳐진다. 구세대 인종연구에서 시작된 유전학전 개체연구의 반윤리성을 지적한다. 학문적으로는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흥미로운 연구’의 이면에는 고통 받는 많은 피해자가 있다.
‘밀레니엄’ 시리즈 전편을 읽지 않았더라도, ‘갑자기’ 5권을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독립적인 스토리 완결성을 지녔다. 물론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과 다르다면 다르다. 소니픽쳐스는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의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새로이 영화로 만들었다. 클레어 포이가 리스베트를 연기한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