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말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감독:이재규)이 개봉 11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완벽한 타인’은 꼬맹이시절부터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사는 이야기를 푸는 드라마이다. 다들 변호사, 성형외과 의사, 레스토랑 사장으로 번듯하게 자리 잡았다.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친구의 집들이 핑계로 모여 회포를 푼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핸드폰’ 게임을 하게 된다. 40년지기 사이에 숨길 게 뭐가 있냐고, 우리 부부 사이엔 비밀이 없다면서 서로의 핸드폰을 공개하기로 한다. 문자가 오든, 카톡이 오든, 전화가 오든 다 공개하자고. 꺼릴 것 전혀 없다고. 호기롭게 다들 동의했지만, 과연 그럴까. 위험한 게임이 시작된다.
‘완벽한 타인’에서 염정아는 변호사 태수(유해진)의 아내 수현을 연기한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편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캐릭터이다. 유일한 삶의 탈출구는 SNS문학반에 참여하며 시를 읽고, 문학을 공유하는 것. 맹꽁이 같은 수현(염정아)에게는 정말 남편에게도, 친구에게도 숨길 것이 하나 없을까. 개봉을 앞두고 삼청동 카페이서 진행된 인터뷰이다.
염정아는 남편(유해진)과 시어머니, 아이들 사이에서 자존감을 상실한 평범한 주부를 연기한다. "감독님은 제가 수현을 연기할 때 어떤 뚜렷한 디렉션을 주기보다는 자유롭게 연기를 하도록 내두셨다. 물론 감독님은 굉장히 젠틀하신 분이시지만 중요한 부분에서는 타협을 결코 하지 않으신다"고 밝혔다.
작품에서 염정아는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 김지수, 송윤하, 윤경호 등 함께한 배우들이 불꽃 튀는 연기를 펼친다. “이런 작품을 언제 다시 만나 보겠나. 7명이 동등하게, 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 낸다. 요즘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이런 영화, 다양한 영화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가장 프라이버시한 도구가 된 핸드폰. 실제 염정아는 남편과는 어떨까. “남편과는 핸드폰은 공유하는 셈이죠. 서로의 잠금장치 패턴도 알고 있고. 근데 신혼 때는 궁금해서 남편 폰을 봤는데 지금은 그다지 관심 없다.”면서, “영화에서처럼 특별한 일탈을 하지도 않고, SNS같은 것도 아예 안 하고, 못 하고, 관심도 없다"고 덧붙였다.
남편에게 짓눌러 사는 수현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꽤 답답하죠? 주위에서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이런 이야기가 젊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영화에서 화기애애하던 술자리에, 위태위태했던 부부관계에 폭탄을 던지는 것은 문학반 친구에게서 온 전화이다. 스피커폰으로 난감한 말을 쏟아내는 목소리 주인공은 라미란이다. “촬영장에서 얼굴도 못 봤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다.”고 깜짝 목소리 출연에 만족을 표했다.
워낙 술자리 분위기가 현실적이고 대사가 리얼하다보니 애드립이 많았을 것 같다. “애드립은 생각보다 없었다. 난감한 전화가 왔을 때 ‘끊어, 끊어. 빨리 끊어’라고 이야기 하는 정도. 대본에는 지문이 상세하게 쓰여 있었다.”
수현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사실, 다 싫은 거다. ‘왕따’ 당하고 무시를 당한 셈이니. 다들 전문직 종사자들이잖은가. 굉장히 자존심은 상하지만 남편 때문에 참석한 것이다.”
남편을 연기한 유해진에 대해서는 “정말 반듯한 사람이다. 요즘 ‘츤데레’라고 하잖은가. 딱 그렇다. 무심한 듯 하면서도 속이 깊다.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다. 그러면서도 전혀 생색을 내지 않는다.”
이서진에 대해서는 “좀 귀엽더라”라면서, 이번 영화에서 욕심나는 다른 캐릭터를 이서진 역할이라고 했다. “하~, 재미있잖아요. 그런 역할을 언제 해봐요?”라고 덧붙였다.
시나리오보다 완성본이 훨씬 코믹해졌다고 시사회 소감을 밝힌다. “웃음 코드가 많아진 것 같다. 이야기가 더 촘촘해졌고.”
친구들과의 저녁자리에서 저런 소동이 일어났는데 그 커플들은 어찌 될까. “다른 커플들은 회복가능하다고 본다. 준모와 세경은 그냥 살아가기엔 찝찝할 것이다.”란다. 그러면서 마지막 장면(유해진과의 베드씬)에 대해 “침대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장면, 그 씬에 눈물이 나더라.”라고 덧붙인다.
염정아는 결혼 후 친구들은 거의 못 만나고 의사인 남편의 친구모임에만 나간다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염정아는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란다. “남편에게 엄청 잘 맞추는 스타일이다."고 ‘현실아내’의 모습을 보였다.
염정아는 영화 '완벽한 타인'에 이어 JTBC 드라마 'SKY캐슬'과 영화 '뺑반', '미성년'에 연이어 출연한다. “'SKY캐슬'은 대학병원 의사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남편과 아이를 최고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덩어리 엄마들의 모습을 그릴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공개될 영화 ‘뺑반’(감독 한준희)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경찰청 광역수사대 경찰로 변신한다. ‘미성년’은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이다.
영화에서는 긴 머리였지만 이날 인터뷰에서는 짧은 커트였다. '완벽한 타인'과 함께 작업한 영화 '미성년'을 위해 변화를 준 것이라고. "연기는 늘 다르게 하겠지만 그래도 외모가 똑같으면 지루하겠더라. 더 할 곳이 없어 이렇게 머리라도 잘랐다"고 대답한다.
쉼 없이 달려오고 있는 염정아는 "그동안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며, “그리고, 운이 많이 따른 셈이다.”고 덧붙였다.
'완벽한 타인'을 넘어, ‘완벽한 배우’로 달려가는 염정아였다. (KBS미디어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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