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목) 오후 7시 40분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는 한가위의 정이 흘러넘치는 나눔의 밥상이 시청자를 찾아간다.
휘영청 뜬 보름달 아래 둘러앉아 조물조물 빚는 송편엔 풋콩과 막 말린 깨가 들어가고, 차례상에는 햅쌀과 햇과일이 올라갔다. 예로부터 한가위의 풍경은 가을의 특권인 풍성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해를 시작하는 명절인 설이 복을 기원하는 날이라면 추석은 한해의 결실을 거두며 감사하는 날이다. 수해로 농가들이 큰 피해를 본 올해, 다가오는 추석이 이전만큼 풍요롭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시련 속에서 하나 됨을 얻었으니, 이들을 통해 한가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며 “좋구나, 좋아!” 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경 속으로 떠나본다.
충청남도 예산군 역리마을 사람들이 명절을 맞이하는 모습이 아주 특별하다. 저마다 예초기며 갈퀴를 등에 지고 나타나더니 풀이 무성한 언덕에 오르는 마을 사람들. 이들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공동묘지다. 마을 근처에 자리한 공동묘지에 점차 무연묘가 늘어나자, 마을 차원에서 벌초에 나섰다는데. 2005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연묘 벌초 작업을 해오고 있다는 역리마을. 누구 하나 마다하는 이 없이 자기 일처럼 나서니, 축구장 7개 넓이의 공동묘지가 금세 깨끗한 모습을 되찾는다.
벌초 작업은 역리 마을의 가장 큰 행사가 되었다는데. 한바탕 잔치라도 벌일 모양인지 천막을 펼치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잔치 음식을 도맡은 건 마을 부녀회. 부녀회 역시 20년 가까운 세월 잔치 음식을 도맡아 장만하고 있다. 묵은지 썰어 넣고 푹푹 끓인 돼지 뼈다귀탕은 땀 흘린 마을 일꾼들을 위한 보양식이다. 일 년 내 잘 묵힌 ‘꺼먹지’가 그 주인공이다. 소금에 절인 무청을 한소끔 삶아낸 뒤, 들기름에 달달 볶으면 쿰쿰한 냄새마저 중독적인 꺼먹지볶음 완성! 잊혀 가던 존재들을 이웃으로 다시 모시는 따뜻한 마음이 밥상에 함께 차려진다.
1973년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장마철 전국 강수량 3위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린 지난여름. 수해로 인한 피해에 전국이 몸살을 앓았는데. 충청북도 괴산군 이탄마을 역시 물난리를 피할 수 없었다. 지난 7월 15일 괴산댐이 넘치며 인근 지역까지 침수 피해를 본 것이다. 이탄 마을 주민들이 즐거운 한가위를 맞이하기 위해 묵혀뒀던 복구 작업에 나섰다. 파손된 도로에 새 흙을 붓고 단단히 다지며 더욱 끈끈해진 마을 사람들. 비에 쫓겨 마음고생, 몸 고생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서로를 위해 감사와 격려의 한 상을 차린다.
제일 먼저 마을 어부들이 나섰다. 마을 앞에 흐르는 달천은 예로부터 소금 배가 오가던 귀한 물길이자 넉넉한 먹거리를 내어주는 고마운 강이었다는데. 마을 사람들을 위해 던진 그물에도 메기, 쏘가리, 장어까지 잔뜩 걸렸다. 그 덕에 이탄 마을 잔칫상에는 빠지지 않는 민물매운탕이 한솥 가득 끓여졌다. 수해로 인해 채소가 더 귀해진 상황이지만 고맙게도 결실을 거둔 녀석들이 있다는데. 특히 물에 잠겼다가 꿋꿋이 살아나 다시 한번 열매를 맺은 고추를 보면 강한 생명력을 배우게 된단다. 그 기특한 고추로 만든 고추찜은 소박해도 감사한 음식! 무엇보다 건강히 나눠 먹을 수 있어 더 소중한 음식들이라는데. 수해를 넘어 하나가 된 마을 사람들을 만나본다!
무주, 진안과 더불어 대표적인 산골 오지로 꼽히는 전라북도 장수군. 높은 산 사이로 드물게도 넓은 평야가 있는 이룡마을은 예로부터 장수의 곡창지대로 꼽히는 명당이었다는데. 그래서일까 이 마을에는 유독 장수한 어르신들이 많다. 여든 이상의 할머니가 무려 서른 명!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들을 다정하게 ‘큰언니’라고 부르며 모신다. 그것 말고도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기 위한 특별한 효도의 전통이 있다는데. 바로 1971년부터 50년 넘게 이어져 온 효도 잔치다. 다른 마을에 가면 노인 대접을 받을 나이라도 오늘은 '80세 아래의 부녀회원들'이 효 잔치를 위해 두 손 걷어붙이고 나선다.
마을 사람들 남녀노소가 다 좋아하는 홍어채가 잔치 준비의 기본이란다. 삭힌 홍어를 막걸리와 설탕에 재워뒀다가 꼭 짜서 절인 채소와 무쳐내는 홍어채는 꼬들꼬들한 식감이 일품이다. 큰언니들 역시 일손을 보태려 오래된 절구통을 꺼낸다. 잘 띄운 콩을 실이 나도록 찧으면 작은언니들은 못 따라오는 깊은 맛의 청국장이 만들어진다. 큰언니, 작은언니가 마주 앉아 나누는 한 끼는 어머니와 딸이 나누는 한 끼나 마찬가지. 마음으로 한 가족이 된 이룡마을 사람들을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