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감독은 충무로의 보배 같은 존재이다. 1990년대 중반 ‘충무로영화’가 산업적 모습을 갖추기 시작할 때 그 선두에 서서 ‘은행나무침대’(96)와 ‘쉬리’(99)를 내놓았다.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2004)로 절정을 이루었다. 한국영화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강제규 감독은 ‘마이웨이’(2011)의 실패로 주춤한다. 중국에서의 영화작업도 좌절되고. 그런 강제규 감독이 <장수상회>(2014)이후 실로 오랜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1947 보스톤>이다.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1936년 베를린에서이다. 그때 손기정(하정우) 선수는 일장기를 가슴에 달아야했다. 그 아픈 과거를 치유한 것은 1947년 열린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이다. 서윤복(임시완) 선수가 참가한다. 당당하게 태극기를 달고? 대한민국의 선수로? 때는 1947년. 아직 헌법이 제정되기 전, 공화국이 출범하기 전이다. 바로 그 소용돌이치는 한국사의 한 순간으로 달려간다. 강제규 감독을 만나 오랜만에 ‘극장’으로 돌아온 소감을 들어보았다.
Q. 전작 [마이웨이]의 첫 장면은 주인공이 런던 마라톤을 뛰는 장면이었다. 이번 영화는 민족영웅인 마라톤 선수 손기정과 서윤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라톤을 좋아하는가 보다.
▶강제규 감독: “오랜 전부터 마라톤 영화를 하고 싶었다. <마이웨이>는 1940년대 초반이 배경이었고, 이번 영화는 1947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나 광복 이후,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마라톤은 희망이었다. 돌파구 같은 게 없던 시절에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이 큰 영향을 끼쳤다. 돈 없고, 백 없는 당시 젊은이에게 큰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맨발로 뛰는 것이니 장비도 따로 필요 없다. 많은 기록을 보니 손기정을 꿈꾸는 젊은이가 많았단다. 인물에 대비시켜, 본격적인 마라톤 영화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Q.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스윙키즈>를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해방 전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기에는 세트작업이 힘들 것 같다. 실경을 찍기도, 세트를 만들기도.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강제규 감독: “그래도 그 시기는 고려나 조선에 비해서는 쉬운 편일 것이다. 그 당시의 사진과 영상자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근대사로 넘어오면서 오픈세트장이 취약하다. 그래서 새로 지어야한다. 제작비가 어마어마 들어가니 그게 딜레마이다. 그래서 발품을 팔아 1947년을 재현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했다. 시대감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비슷한 장소를 찾아 미술작업, CG를 가미해야한다. 미술팀과 CG팀 작업량이 많아졌다. 몰아서 찍어야했다.”
“가장 어려운 지점은 1947년의 보스톤을 재현하는 문제였다. 마라톤 스타트라인과 피니시 라인을 다 담아내야했고, 당시 보스톤으로 날아간 우리 선수들이 기거하고 생활했던 공간을 재현해내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었다. 유럽과 남미 우루과이까지 다 뒤졌다. 그 결과 호주 멜버른 근처의 밸러렛, 질롱 이런 곳이 그나마 그 시대의 느낌을 잘 갖고 있었다.”
Q. 박은빈이 잠깐 출연한다.
▶강제규 감독: “박은빈은 임시완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분량이 좀 더 있었다. 편집을 하다가 전체 맥락에서 닿지 않는 부분이 있어 삭제한 게 좀 있다. 본인이 이 작품에 참여하고 싶은 의사가 강했다. 어떤 연기인지는 떠나,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공감하고 큰 틀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여러 가지 상황이 결합되어 옥림 역으로 특별출연하게 되었다.”
Q. 남승룡을 연기한 배성우 배우의 경우는 어떤가. 배우의 문제로 후반부에서 많은 편집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극에서는 손기정과의 호흡이 또 중요하다.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강제규 감독: “이야기의 원형 자체를 건드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역사적 사실이니. 손기정, 남승룡 선수의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일로 해서 축소되거나 혹시 변형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도 고민이 컸다. 선생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삭제한 부분이 있지만 기본 드라마를 유지하면서, 메시지 전달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Q. 영화 후반부는 보스톤 마라톤 경기장면이다. ‘1947년의 보스톤 마라톤’ 경기를 어떻게 재현했는가.
▶강제규 감독: “당연히 보스톤 촬영이 최우선이었다. 자료차원으로 간 것이 아니라 헌팅 차원에서 갔었다. 지금도 보스턴 마라톤 경기는 출발점과 피니시 라인이 똑같이 운영되고 있다. 만약에 못 찍는다고 하더라고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촬영도 염두에 두고 헌팅을 진행했다. 그런데 계절적 문제, 비용 문제가 예상외로 컸다. 마라톤 코스 자체가 지금은 통행량이 많이 늘었다. 그리고 현대적 건물도 많이 들어서면서 난제가 많았다. 그래서 그 구간과 가장 흡사한 곳을 찾은 것이다. 우리가 찾은 곳은 호주였다. 밸러렛, 질롱, 벤디고 이런 곳에서 마라톤 코스를 담을 수가 있었다. 피니시 라인은 7~800미터 정도의 직선도로이다. 그곳을 구현한 장소를 찾는 게 어려웠다. 1947년 시대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가 없어서 블루 매트 설치하고 찍었다.”
Q. 영화감독의 꿈은 언제부터?
▶강제규 감독: “어릴 때 우연한 기회에 사진을 접하게 되면서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영화감독이란 것을 해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극장에서 본 영화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마산 출신인데 시민극장에서 봤던 영화가 있다. 2층에서 본 작품이다. 관객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닥터 지바고>를 보고나서 강하게 느낌이 온 것 같다. 영화는 사람이 만들 텐데, 저 영화를 만든 사람이 누굴까. 그렇게 영화감독의 꿈을 키운 모양이다.”
Q.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시나리오도 많이 썼다. 느와르 <게임의 법칙>, 정치드라마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도 있다. 그리고 <장미의 나날>이란 작품도 있다.
▶강제규 감독: “대학 다닐 때, 아직 영화판으로 나가기 전에 한국영화에서 가장 큰 문제가 뭘까 생각했었다. 크게 두 가지로 봤었다. 일단은 관객과 거리가 먼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것이다.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를 안 찍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시나리오가 없다. 좋은 도면이 있어야 좋은 건축물이 만들어질 텐데. 조감독 생활하면서 나부터 변화를 시도 해보자, 영화관객의 니즈를 충족해 보자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써다보니 반응이 좋았고, 의뢰를 받기 시작했다.”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게 <게임의 법칙>같다. 장르영화가 활성화되기 전에 나온 작품이라 다들 오래 기억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제목은 이장호 감독님이 지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목을 정하지 못했는데 그런 제목을 지어주셨다. 당시에는 조금 생경스러운 제목이었다. 신선하고 좋았다.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쓴 시나리오를 강우석 감독이 잘 연출하셔서 만족스럽게 나온 것 같다.”
Q. 강제규 감독이라면 <쉬리>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한국영화를 본격적으로 ‘산업’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그런데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후 디지털 리마스터링도 되고 특별상영도 하고 그랬는데 <쉬리>는 너무 잊힌 작품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강제규 감독: “사실 <쉬리>는 내년이 개봉 25주년이 된다. 내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특별상영 해볼까 생각중이다. 그동안 <쉬리>는 저작권 문제로 오랫동안 소개가 안 되었다. 일반인이 정상적인 채널로 볼 수 없는 홀딩상태였다. 다행이 지원을 해주어서 일반인들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Q. <1947 보스톤>에서 서윤복 선수의 입을 통해 당시의 혼란상을 조금 느낄 수 있다. 서윤복 선수는 ‘일본 놈이 물려나니까 이제 미군이 들어왔네. 일장기 휘날리는 곳에 이제 성조기가 나부낀다’고 한탄한다.
▶강제규 감독: “당시에 그 시대의 흐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청년이라면 당연히 그런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입을 통해 나오기 했지만, 그 시대에 같이 고민하고,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는 젊은이라면 충분히 생각했을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좀 더 광복 이후의 혼란, 혼돈의 시대적 상황을 영화 속에 담을까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상업영화의 속성상, 그리고 예산의 한계도 있고, 러닝타임에 대한 계산도 해야 했다. 만약 한 인물의 일대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다양하게 삽입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세 인물을 다루다보니 시대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밀도 있게 담지 못한 부분이 있다.”
Q. 송영창이 연기하는 인물은 당시 충분히 매판자본주의 인물로 대표된다.
▶강제규 감독: “그런 인물과 사건을 풍성하게 배치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아픔의 시대의 코어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 하더라도 그런 이야기를 삽입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Q. 보스톤으로 힘들게 날아갔는데 ‘미군정 소속’으로 성조기를 달고 뛰어야한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그래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는데. 실제 있었던 일인가?
▶강제규 감독: “영화적 픽션이 좀 들어간 부분이다. 큰 틀에서는 그 부분이 경기 직전에 선수에게 닥친 큰 문제였다. 극복해야할 이슈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Q. 그 장면은 영화 초반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장면과 대비되어 큰 효과를 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강제규 감독: “고민을 진짜 많이 한 지점이다. 그런 부분들이 애국주의를 과도하게 부추기는 느낌을 주어 역작용이 될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이 정도의 팩트와 맥락을 던져줘도 느끼고, 아픔을 인식하지 않을까. 손기정 선수 이야기에서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린다는 장면을 더 친절하게, 손기정 선수의 입장에서 플래시백으로 넣을 수 있었겠지만, 저 역시 많이 고민했지만 지금 상태에 충분히 만족한다.”
Q. 영화가 의외로 짧다. <태극기휘날리며>(148분), 쉬리(123분), <마이웨이>(137분)에 비해서 말이다. 108분이다. 보스톤 마라톤 경기장면도 생각보다 짧았고.
▶강제규 감독: “처음부터 이 영화를 ‘1시간 50분’에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시나리오를 보고 든 고민이 제작비가 꽤 들겠다는 것이다. 1947년 한국도 아니고, 마라톤을 재현한다는 것이니. 많은 세대들이 공감하고 봐야하는데, 1947년의 마라톤에 대해 젊은 관객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져줄까. 그런 현실적인 것을 고려할 때, 젊은 관객들이 쉽게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런닝타임도 그런 부분이다. 조금 더 컴팩트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쾌적한 러닝타임을 만들어보자고 고집했다. 결국은 상영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제작비와 연동이 되니까. 처음부터 꼭 필요하지 않은 장면은 많이 걸려내고 털어내었다.”
Q. 제작비 등 여건상 아쉽게 못 찍은 부분이 있다면?
▶강제규 감독: “반드시 찍어야하는 서사 구조라면, 재미와 감동을 더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든 고집을 부려서 흉내라도 냈을 것이다. 아쉬움이 있는 장면이 있다면 보스톤 마라톤 코스이다. 보스톤 마라톤은 반환점을 도는 구간이 아니라 직선코스이다. 구간 중에 ‘하트브레이크 언덕’이라는 마라토너에게 부담스러운 구간이 있다. 그곳은 이야깃거리가 많은 구간이다. 또 웰즐리 칼리지 앞 코스도 재미있다. 이곳 여학생이 마라톤 주자와 키스하면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그곳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메이크업을 준비하면 축제 같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구간에서 헤프닝이 많아 실제 뉴스도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런 것들을 꼭 삽입하고 싶었는데 예산문제로 결국 김상호의 대사로 처리되었다.”
** 웰즐리 칼리지(Wellesley College)는 보스턴에서 약 2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웰즐리에 있는 사립여자대학이다. 이 앞을 지나는 마라톤 코스를 ‘Scream Tunnel’이라고 부르는데 학생들이 마라톤 주자들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응원 피켓을 들고 소리를 지르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키스를 해주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고. 코로나 기간에 선수에게 키스를 삼가라는 것이 뉴스가 되기도 했다. **
Q. 이건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삽화인데, 호텔 양변기물 장면.
▶강제규 감독: “시나리오와 콘티에 있는 것이었다. 슛 들어갔을 때 배우들이 어떤 표정이 나올까 궁금했었다. 현장에서도 많이 웃었다. 능청스럽게 잘해주었다. 서윤복 선생은 당시 경험한 것을 일지 형태로 써놓은 게 있다. 물론 그 상황은 없다. 미국의 신문물을 접하면서 웃지 못할 헤프닝이 많았던 것 같다.”
Q. 무라야마 하루키는 마라톤 매니아이고, 보스톤마라톤 대회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강제규 감독은 어떤 운동 좋아하는지.
▶강제규 감독: “수영을 많이 하는데 이 영화를 하면서 마라톤과 달리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조금씩 한다. 보시는 것처럼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세 분이 건강하게 오래 사셨다. 마라톤 뛰는 길이만큼 비례해서 오래 사시나 보다. 뛰어보니 재밌더라.”
Q. 그동안 중국과 영화 만든다는 이야기가 많았었다. 완전히 엎어진 것인가.
▶강제규 감독: “몇 년을 매달려 캐스팅까지 했는데 결국 엎어졌다. 중국에서는 유명한 소설이 원작이었는데. 한한령이 풀리지 않아서. 많이 아쉽다.”
Q. <마이웨이> 이야기를 해보자.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지.
▶강제규 감독: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영화를 보기 전 상황에서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만든 것이 흥행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영화 홍보하면서 당황했었다. 영화가 제대로 알려지기 전에 그런 일이 생기다 보니.”
Q. <마이 웨이> 이야기는 아주 유장하다. OTT로 만들었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강제규 감독:“<밴드 오브 브러더스>처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서사구조가 스펙터클하고, 볼거리가 풍성하다. 드라마 구축을 잘하면 충분히 좋은 아이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제작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는 아이템이고, 지금 드라마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여건이 좋아지면 그런 기획도 가능할 것 같다.”
Q. <마이웨이> 다음에 <민우씨 오는 날> 같은 소품을 감독했다.
▶강제규 감독: “제작사를 하다보면 쉼표 같은 거 하고 싶어진다. 피로감이 누적된 것도 있고, <마이웨이>가 성과를 이루지 못해 오는 좌절감도 있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학교에 다닐 때처럼 단편 찍어보고 싶더라. 그때 마침 홍콩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대표감독에게 단편 옴니버스를 찍을 기회를 주었다. 잘됐다 싶었다. 상업영화 찍어달라고 했으면 못했을 것이다. 영화제에서 100프로 감독이 원하는 것을 밀어준다고 했기에 가능했다.”
Q. OTT에 대한 생각은.
▶강제규 감독: “지금은 OTT에서도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충분히 가치 있는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영화가 기왕이면 더 많은 나라에서, 더 많은 관객이 보아주기를 원한다. 나도 그런 생각이 강해서 할리우드에도 가고, 중국에도 가고 그랬다. OTT의 강점이 분명히 있으니 앞으로는 병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Q. 개봉을 앞두고 예비관객에게 한 말씀.
▶강제규 감독: “<1947 보스톤>은 추석에 개봉된다. 뭔가 즐겁고, 힘이 나게 하는, 용기를 주는 추석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영화는 망각한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꺼집어내어 전해주는 작품이다. 좌절한 역사가 아니라 승리한 역사이다. 그런 역사를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신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1947보스턴>을 가족과 함께 보셨으면 좋겠다.”
하정우, 임시완, 배성우, 김상호, 박은빈(특별출연) 등이 출연하는 강제규 감독의 영화 <1947 보스턴>은 9월 27일 개봉한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