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7부작 오리지널 <마스크걸>이 큰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원작을 웹툰으로 한 <마스크걸>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풍자’ 같지만, 한 꺼풀 벗기고 들여다보면 끊지 못하는 복수의 비극성을 다룬다. 김경자는 자신의 아들(주오남)을 죽인 김모미(이한별/나나/고현정)에 대한 복수로 두 눈이 멀 지경이다.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을 도와 복수를 완성시켰던 강현남을 연기했던 염혜란을 만나 ‘허무한 복수극’에 대해 들어본다.
”김경자는 워낙 세고 강렬한 인물이다. 우려되기도 했지만 신선하였다. ‘이렇게 강렬한 노인이라니!’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여성은 본 적이 있지만 노인이 장총을 들고 나온다니 그런 신선함이 있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Q. 김경자 역을 맡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염혜란: “일단 글이 재밌었다. 세고 파격적인 김경자를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고민을 했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부분과 비난받아 마땅한 두 가지 모습을 함께 가져가야할 것 같았다. 아들에 대한 비뚤어진 모성애를 어떻게 봐야하나. 초반에 보여주는 것은 보통의 엄마 모습이다. 억척스럽게, 강인한 생활력의 보통의 엄마 모습이다. 아들에 대해 가지는 이 여인의 모성애가 느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아들의 끔찍한 시체를 발견되었을 때는 ‘복수해야지’라는 마음이 들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과연 내 아들을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의 아들을 죽일 수 있느냐. 그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힘들었던 것이 미모를 만나는 장면이다. 모미를 죽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13년을 기다렸다가 미모에게 복수를 하려는 감정의 색깔은 무엇일까. 아들 오남이(안재홍)에게 듣고 싶었던 것은 ‘같이 여행하고 싶어요’, ‘효도하고 싶어요’일 것이다. 그런 말을 미모에게서 듣게 될 때 갈등할 것이다. 물론 자신의 손녀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그리고 신영희(문숙)까지 죽일 필요가 있을까. 현장에서 감독님과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우발적인 죽음으로 처리하자고 했다. 실제 죽이는 장면은 노출시키지 말자고. 피 묻은 칼로 대신했다. 빌런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빌런이 가지는 갈등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작품에서 그렇게 나왔으면 좋겠다.”
Q. 김경자에게 어떤 마음이 생기는지.
▶염혜란: “나쁜 인물이지만 연민이 생기더라. 그게 이 작품의 특징 같다. 나쁜 인물이지만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이다. 김경자는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Q. 김경자의 모성애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염혜란: “감독님과 이야기한 것이 범죄의 주체를 모두 모성애로 가져가는 순간 이야기는 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모성애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같은 것을 경계하자고 했다. 김경자는 세상에 대해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다. 자기만의 프레임으로만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이나, 세대, 종교에 대해서도 비뚤어진 모습을 보인다. 죄를 응징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실행단계에까지 가는 것이다. 아들을 위한 것이라고 미화하는 것이다. 그런 복합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분노가 깊어지는 것이다.”
Q. 미모가 모미의 딸, 즉 자신의 손녀란 걸 끝까지 모르는데,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될까?
▶염혜란: ”그런 아이디어도 냈었다. 손녀를 알 듯 하게 이야기가 끝나면 더 비극적일 것 같다고. 원래는 미역국이었는데 된장국이 나온다. 그 장면은 잘렸는데 오남이를 찾는 과정에서 경자가 혼자 밥을 먹으며 ‘오남이 좋아하는 된장국 끓였다. 너도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미모에게 말하는 것이다. 공통분모를 넣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 애는 도대체 누구 아이일까’ 이런 식으로. 그런데 그렇게 안 한 것도 비극적인 것 같다. 그리고 설사 오남이 딸이라고 했어도 제가 과연 믿었을까? 김경자는 이미 분노의 선을 넘은 사람이다. 중간에 춘애와 모미를 두고 ‘누가 김모미야? 어차피 다 죽일 거야’라고도 말한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김경자는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Q. 모미는 세 사람이 연기하는데 김경자는 염혜란 배우가 혼자 연기한다. 성형수술 하고나서도 말이다.
▶염혜란: ”분장을 하는 스태프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이 정도 수고를 하며 분장할 것이면 노년 배우가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찍는 순간 ‘이건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배우가 하기에도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세 배우가 연기하는 다양한 모미를 만나는 재미가 있었다. 이렇게 생긴 모미, 얼굴 바꿨을 때의 모미, 그리고 13년의 분노를 묻어두었다가 만난 모미에게서 느끼는 감정의 차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Q. 분장은 어떤 식으로 했는지.
▶염혜란: ”세 개의 단계로 나눴다. 분장 감독님이 한 배우에게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더 이상 할 헤어디자인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헤어스타일의 경우 당시 유행했던 스타일이 있다. 5년 차이, 10년 차이의 변화가 있다. 2부에서는 분장한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처럼 약간 흰 칠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분장하니, 그 인물이 되더라. 마치 모미가 마스크 쓴 이후 자유를 느끼듯이. 그냥 그대로 있어도 편안하게 김경자로 만들어준 분장팀에게 감사드린다.“
Q. 극중에서 쓰는 전라도 사투리에 대해. 넷플릭스는 자막 지원이 되어 다행이지, 낯설 정도의 사투리이다. (염혜란 배우는 여수 출신이다)
▶염혜란: ”못 알아들었다고요? 그건 반성 되는 지점이네요. 넷플릭스는 흐름을 잘 따라가는 자막을 넣었다. 실제 풍성한 전라도 사투리를 쓴 기쁨이 있다. 영화에서는 그 곳이 ‘목포’라고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호가 있다. 대충 사투리 썼다가는 목포사람이 싫어할 것이다. 그래서 목포 출신 사람 앉혀놓고 연습했다. ‘할매’와 ‘할마씨’의 차이부터. 육두문자로 원 없이 썼다. 여수에서는 쓰지 않는 ‘했스라우’라는 의미를 많이 붙인다. 보신 분들이 ‘우리 이모 같았어’, ‘우리 엄마 같았어’라고 말해주더라. 뉘앙스만 흉내낸 게 아니어서 연기한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았다.
Q. 고현정 배우는 염혜란 배우가 좋은 배우가 되기보다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한다면서 염혜란 배우를 언급했는데.
▶염혜란: “아이고 고맙고요. <디어 마이 프렌드>(2016)에서 많은 장면을 함께 하지 못했는데 이번 작품으로 만나자마자 ‘너무 잘 보고 있어요.’라고 하셨다. 좀 더 편하게 대해 주셨음녀 좋겠는데.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셨어요. 항상 응원해주고 있어서 감사드린다. 대선배이신데 모미로 만나 대거리도 많고 욕지거리를 해야 하는 상대였다. 첫 장면이 육탄전을 펼쳐야 해서 부담감이 컸는데 촬영 들어가자마자 내려놓으시고 기분 좋게 합을 맞췄다. 너무 열정적으로 하셔서 제가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는 티를 내는데 선배는 전혀 힘든 티를 내지 않으시고 몸을 불사르시더라.”
Q. 현장에서 고현정 배우는 어땠는지.
▶염혜란: “연기를 하면서 많이 들어내는 용기가 부러웠다. 시너지가 난 게 김경자는 뭐든지 꽉꽉 채워서 발산하는 것이라면, 고현정 배우는 다 들어내는, 그렇게 그냥 존재하는 모미였다. 현장에서는 ‘나른한 카리스마’로 통했다. 모든 힘이 쭉 빠져서, 등장만으로도 카리스마가 너무 있었다. 그럼에도 집중하게 하는 선배의 내공이 느껴졌다. ‘조용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Q. 김경자는 신에 광적으로 매달린다.
▶염혜란: ”그 지점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독교인에게는 이 작품 보라는 말을 선뜻 못 하겠더라. 김경자는 제대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하느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복수를 결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용서를 더 구하고, 사랑에 더 집중 했겠죠. 김경자는 기독교를 자신의 식으로 믿는다. 자세히 보면 욕을 하면서 무당을 찾아간다. 또 그곳에서는 기도를 한다. ‘아버지가 무당을 입을 통해서 말씀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고 기도를 하고 있다. 그렇게, 내 식대로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으로 너를 응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신앙이다. 그렇게 믿기를 바랐다. 저렇게 믿으면 안 된다. 저건 잘못된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Q. 안재홍 배우가 아들 연기를 한다. (염혜란은 1976년 생, 안재홍은 1986년 생이다)
▶염혜란: ”하하, 저의 노안이 충분히 커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내가 너무 나이가 어린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게 중요하지 않을 만큼 캐릭터가 훌륭했다.“
Q. 안재홍 배우와의 연기는
▶염혜란: ”나도 배우이기에, 한 배우의 대표적인 이미지만으로는 그 배우를 보지만은 않는다. 저도 그렇게만 보인다면 서운할 것이다. 배우는 다양한 얼굴 갖고 있다. 안재홍 배우를 현장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이었다. 주오남을 보내고, 김경자는 꿈에서라도 진심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원래 대사는 아들이 ‘내가 창피했지? 여자도 없고..’라고 말하면 ‘아니어, 무슨 소리여?’라고 하는 것이었다. 감독님에게 이 장면에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꿈속에서나마 죄책감을 느끼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바꿔서 연기했다. 재홍이의 모습을 그렇게 보고, 함께 연기하는 게 너무 행복했다. 안재홍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시청자입장에서는 행복한 일이고 뿌듯하다. 물론 현장에서는 그런 생각 못했다. 그냥 김경자와 주오남이었다.“
Q. 안재홍의 파격적인 변신을 바로 앞에서 목도한 소감은.
▶염혜란: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밥이라도 한 번 먹자. 그런데 못하겠지?‘ 했다. 어디 식당에 못 갈 것 같았다. 방송 나갈 때 서프라이즈로 숨겨 둬야할 것 같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게 너무 행복했다. 우리 둘은 ’분장감독의 분신‘이라며 행복해했다. 사실은 안재홍 배우가 여러 시도 끝에 댄디하고, 도시남자로 우뚝 섰는데 이런 용기를 갖다니. 이런 행보를 축복하고 싶다. ’배우로서 최고입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른 배우들은 그런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퇴보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훈남으로 갔다가 다시 어둠으로 돌아간다고? 배우로서 매력적이다.“
Q. 이른바 ’아줌마‘연기에 대해. 나이를 보고 놀랐다.
▶염혜란: ”다른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서 아줌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겠다고 그랬다. 아줌마라는 것이 전형적으로 보여서 그렇지 얼마나 다양한가. 아줌마라는, 40대 여성으로 묶어두는 편견이 싫다. 그렇다고 아줌마를 벗어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아줌마, 더 멋있는 아줌마, 많은 전사를 가진 아줌마, 그런 작품을 많이 만나고 싶다. 아줌마를 떠나 솔로를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이전에 한 것보다는 다른 모습,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Q.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 등에서 감초 역으로, 다양한 작품을 하고 있다.
▶염혜란: ”진짜 복인 것 같다. 나 같은 배우에 대한 수요가 생겨난 것 같다. 선택받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런 글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 시대를 잘 타고 났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개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이야기했다. 살을 찌우라는 식으로. 캐릭터가 애매하다면서. 제가 안 가진 부분을 부러워하니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평범한 얼굴이 주는 스펙트럼에서 강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마스크걸>을 통해 기대한 것이 있었는지.
▶염혜란: ”진짜 기대한 것 없다. 바람이었다면 김경자라는 인물이 부담스럽지만 다가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강렬하고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 아닐까. 작품을 봤는데 감독님이 센 부분을 잘 다듬어 우려했던 부분을 상쇄해준 것 같다. 센 캐릭터를 장르 안에서 볼 수 있게 해주셨다.“
Q. 작품을 하면서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는? 대사 같은 게 마음에 걸릴 경우가 있지 않나.
▶염혜란: ”이 작품을 하며 좋았던 것은 감독님이 직접 극본을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출을 하면서 수정에 매우 유연했다. ’감독님, 이 말이 걸려요., ,이렇게 바꿔보면 어때요?‘ ’이거 추가해서 빌드업 해야 될 것 같아요‘ 하면 유연하게 바꿔주셨다. ’이 장면이 이해가 안돼요.‘한 것은 신영희를 과연 죽여야 하는가였다. 며칠을 같이 고민해 주셨다. 대본 수정의 유연함이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했다.“
Q. 오직 아들에 대한 복수로 달려간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자신의 손녀인줄도 모르는) 미모가 ’추워요‘할 때 옷을 벗어주는데 살려주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염혜란: “미모를 볼 때 너무 슬펐다. 눈물 흘리는 장면이 다 삭제되었다. 어디 도망간 줄 알았는데 생일 축하해 주는 장면, 국에 약을 탔는데 맛있다고 할 때. 춥다고 할 때 그 아이의 눈을 못 마주친다. 13년이라는 분노의 시간을 견뎌온 경자이다. 경자가 혼자 사는 집에 커다란 돌이 있다. 미술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누우면 그 돌이 사선으로 가로막고 있다. 상징적으로 큰 돌이 나를 억누르는 것이다. 단 한 시간도 발 뻗고 편히 잠을 잘 수 없다. 그런데 미모 앞에서는 인간적인 갈등이 느껴진다. 그리고 13년을 벼르던 복수인데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의식 같았으면 했다. 평범한 옷은 싫다. 주오남이 입었던 잠바를 입는다. 오직 한 목적으로 직진하는 빌런이 아니라 갈등하는 빌런이 되었으면 했다”
“모미(고현정)랑 싸우는 마지막 장면은 감독이랑 세 사람이 대사를 만들었다. 이 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선배는 ‘지긋지긋한 것 이제 좀 끝내자’라고 말했고, 난 ‘우리 아들 죽었을 때 다 끝났어’라고 말한다. 그 이상 자신의 삶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웹툰을 다시 보니 김경자는 자살로 마무리된다. 그게 인간 염혜란에게는 더 마음이 갔다. 이렇게 나쁜 여자가 자살했겠구나. 자기의 삶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를 죽이지 못한다. 실패든 뭐든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Q. 안재홍 배우는 다음에 또 작품하기를 바란다고 하는데. 연상연하 커플?
▶염혜란: “아, 그건 안재홍 배우가 문자로 ‘다음엔 남매로 만나요’라고 했기에 ‘무슨 소리야 나는 연상연하 커플을 생각하고 있는데..’라고 한 것이다.” (치정멜로는 어때요?) “하~. 그건 생각 못했네. 남들이 봤을 때 평범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좋아한다. 선남선녀들의 이야기. 다른 사람은 발견하지 못하는 순수한 아름다운 이야기 좋아한다.”
Q. 영화 ‘빛과 철’ 개봉 때 제2의 라미란이 되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염혜란: “아직 멀었다. 그 때 그 말을 한 것은 라미란처럼 주인공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라미란 배우의 특별함, 상징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 전 시대에는 주인공을 맡을 만한 배우가 나올 때부터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라미란 선배는 비중이 작을 때부터 차근차근,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 이제 한 작품을 책임지는 주인공이 된, 상징적인 인물이다. 대중적 인지도로 함께 커진 배우이다. 그런 행보를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인물이 이런 시대에 쓰인다는 상징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는 아직 멀었다. 그리고 가는 길도 다르지 않을까. 똑같은 배우가 아니니. 쓰임도 다를 것이다.”
Q. 넷플릭스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넷플릭스의 딸’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이고.
▶염혜란: “‘넷플릭스의 딸’은 너무 한 것 같다. ‘넷플릭스 공무원’도. 공무원이면 4대연금이 나와야할 텐데 말이다. 대신 굿즈는 많이 보내주더라. 댓글에 영어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이런 건 행복하다.”
Q. 동료들의 반응은 어떤가.
▶염혜란: “일반 대중과는 달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세세한 연기과정을 아니까 응원 메시지를 많이 보내준다. 너무 잘 만든 작품이고, 제 연기 잘 봤다고 칭찬해 준다. 좋은 말 많이 해줬는데 ’오래 연기해줬으면 좋겠다‘고 한 그 말이 감사하다. 저도 오래 연기했으면 좋겠다.”
Q. 캐릭터를 만날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염혜란: “처음 연우무대에서 연기에 대해 배운 것이 있다. 내 마음을 움직여야하고, 내 목소리로 시작해 인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선배가 ‘남의 말로 하지 말고 너의 말로 해 봐. 그걸 움직일 수 없으면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라고 했다. 나에게 접근하는 연습을 많이 한 것 같다. 그게 도움이 된 것 같다.”
Q. 아들 주오남의 시체를 보고 절규하는 장면은.
▶염혜란: “그런 게 배우의 숙명 같다. 자식이 죽는다거나 누군가의 죽음을 대입하는 것을 떨쳐버리고 싶다. 배우는 그런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런 고통을 겪게 될까. 그 장면 찍기 전에 배우를 왜 한다고 했을까. 그런 생각까지 했다. 그 장면은 대학병원 해부실에서 찍은 것이다. 현장에 들어가니 기운이란 게 느껴졌다. 너무 차갑고 써늘한 기운이 날 덮이더라. 어려운 장면인데 테이크 많이 안 가고 끝냈다. 연기를 할 수 있어 삶의 고통을 견딜 수 있었던 지점도 있다. 이렇게 많이 힘든 것도 언젠가는 좋은 연기의 바탕이 될 것이다. 언젠가 써먹을 수 있겠지라며 객관화하는 법도 연기에서 배운 것 같다."
Q. 염혜란 전성기인 것 같다.
▶염혜란: “그런 생각은 최대한 안하려고 한다. 길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가 정점이라면 좋은 일만 있겠는가 내려갈 생각도 해야 하니. 길을 계속 걷는다는 생각이다. 긴 배우 생활의 한 지점일 뿐이다. 그런 기사가 보이면 마음에 담아두려고 하지 않는다. ”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을 다시 보는지?) “한 번 보고 다시 볼 용기가 안 난다. 더 볼 용기가 안 난다. 하지만 그 때의 실수를 되뇌려고 한다.” (지금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순풍 불 때 조심하라고, 중심을 잘 잡아라 말해 주고 싶다."
Q. <마스크걸>을 끝내며 든 생각은?
▶염혜란: “이번 작품을 통해 느낀 것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너무 행복하고 좋은데 자신은 그걸 인정 못하는 것 같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 어려운 것 같다. <마스크걸>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자기를 좀 더 사랑했다면 이런 비극까지 갔을까. <마스크걸> 통해 보고 싶은 것은 사랑의 본질인 것 같다. 나부터 온전히 사랑하게 되길 바란다. 모자라는 모습일지라도 날 인정하기를. 자꾸 비교하게 되면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물론 나도 그런 면이 있겠지만.”
[사진=넷플릭스 제공]